[앤티크] 개봉 기념 [서양골동양과자점]을 다시 읽다

++ 장면 반복이 주는 의미 ++

지난 금요일에 동생이 집에 놀러 왔다.
놀놀 동생이 올해는 그래도 반 년은 일을 한 것 같다.
전에 같이 일하던 팀장을 도와서 일을 시작했는데 꽤나 고생했다.
이게 문제라니깐!
우리 집은 이게 문제다. 나는 이게 문제다.
놀놀 동생이 일을 하면 고되어도 당연하다 생각해야 하는데
‘쩝, 불쌍하다, 고생하는구나’ 이러니 애 망친다.
말로는 동생을 애라고 하면서 사실은 어른 노릇하라고 구박하니
이래도 저래도 동생은 불쌍하다.
내 동생이 불쌍하다는 게 아니라,
동생은 무조건 불쌍하다는 “아무 이유 없는” 느낌이 내 정서의 밑바닥에 깔려 있다.
별꼴이다. 너나 잘 하셈!

동생이 와서 [서양골동양과자점]을 읽다가 방바닥에 널어놓고 갔다.
어질러진 김에 나도 드러누워서 [서양골동양과자점]을 다시 읽었다.
다시 읽으면서 깔끔한 구성에 감탄한다.
전에는 유괴된 아이를 구하는 장면이 클라이맥스라고 느꼈는데
이번에는 실패로 점철된 다치바나의 연애사와 가슴 큰 아나운서의 결혼식이 교차 편집된
3권이 전체적인 클라이맥스로 느껴졌다.

가슴 큰 아나운서는 숙부와 숙모의 집에서 자랐고
어린이집 교사인 키가 작고 귀여운 남자 ‘공무원’과 혼인하면서,
즉, 자기만의 안정된 가정을 꾸리는 발걸음을 떼면서,
잘 키워주셔서 감사하다고 숙부와 숙모에게 인사를 한다.
덤덤해 보이는 장면인데도 강한 느낌을 준다.
마치 케이크 가게에 형사들이 찾아왔을 때 다치바나가
‘나는 이 날을 위해 살아왔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다치바나는 유괴 사건 이후에 부모님이나 집안의 걱정을 사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어린 시절을 어린이답지 못하게 보내게 된다.
연애를 하지만 어쩐 일인지 모든 여자에게 거절당하는 신세가 되고
아무리 잘 하려고 해도 잘 되지 않는다.
자기를 죽은 아들 취급했던 유괴범의 그림자에 짓눌려
고교 졸업식 날 사랑을 고백하는 오노에게 “오바이트 하기 전에 뒈져버리”라고
언제나 선량한 다치바나 답지 않은 거친 말을 쏟아낸다.

처음에 이 장면을 보고 말 자체에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오바이트 ㅠㅠ 뒈져? ㅠㅠ
만화에서 이 장면은 꾸준히 반복되어 나온다.
(아… 세어 봐야 하겠지만 넘어가 주셈…)
불필요하다 싶을 만큼 여러 번 반복되는 졸업식 날의 그 장면은
이제 보니 다치바나의 마음에 그만큼 자주 떠올랐던 장면이었다.

오노가 ‘우리가 고교 동창이란 사실을 잊고 있었다’고 하자
다치바나는 ‘나는 그 날(졸업식) 이후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고 말한다.
다치바나 식 사과인 셈이다.

그 장면의 반복은 또 어린 시절에 유괴됐던 경험이
얼마나 한 사람의 삶을 지속적으로 지배하는가를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주었던 상처, 깊은 인상, 후회와 괴로움,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상처.

다치바나는 유괴범의 다리를 찌르고 도망친다.
연약한 아이는 유괴범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그에게 상처를 입힌다.
상처를 받은 피해자이자 동시에 가해자가 된다.
비교할 순 없겠지만, 법적으로는 정당방위라는 말도 있지만,
한 사람의 가슴 속에서, 한 아이의 가슴 속에서
자기가 입은 상처와 준 상처가 한 덩어리가 되어서
아이의 일생을 지배한다.
그리고 아이는 그 경험과 함께 성장하고 사는 법을 익혀야 한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에.

“더러운 호모 XX, 오바이트 하기 전에 콱 뒈져버려!”
나는 이제 이런 말을 들어도 상처받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말을 허세라고 하는 거겠지? ^^;;;

** XX는 금칙어에 걸린 단어입니다. 저는 굳이 숨기고 싶지 않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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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알간 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