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원칙과 욕망원칙 사이에서

“뽀가 안 아프니 다행이야”

나의 애인, 중년 고양이는
일하러 나가는 나와 밥을 같이 먹으려고,
일하러 나가는 나에게 밥을 먹여 보내려고
자기 뱃속 사정은 무시하고
같이 저녁을 먹었다.

세 시간 동안, 삶의 의미를 알지 못하는
외로운, 커다란 고딩과 씨름하고 나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전화를 한다.

고양이는 나한테 아프지 않은지 묻는다.
그날 낮에 우리는 추운 데서 떨고
뭔가 상한 재료가 들어간 비빔밥을 먹었다.
원래는 오후에 [앤티크]를 보려고 했는데
너무 피곤해서 집에 들어와 자 버렸다.
자는 동안에도 전화가 몇 번 와서
푹 쉬지 못하고 발작하듯 울리는 전화를 받아야 했다.

그리고 저녁을 같이 먹고 헤어졌다.
나는 외롭고 커다란 고딩에게 가고
고양이는 시 경계를 넘어 집으로 갔다.

고양이는 몇 번이나
“뽀가 아프지 않다니 다행이야”라고 말한다.
나는 고양이가 왜 자꾸만 그런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고양이는 그만큼 많이 아프기 때문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한다.
나는 그저 이해하지 못한다.
왜 자꾸만 같은 말을 여러 번 하는 걸까?
은근히 속으로 짜증을 낸다.

다음 날 아침, 고양이는 출근길에 전화하지 않는다.
늦잠을 자서 바빠서 전화 못하나?
나는 대략 기다리며 급한 일을 처리한다.
평소보다 늦게 전화를 건 고양이는
앓아 누워서 출근하지 못했다고 한다.
어젯밤에 집에까지 들어가는 먼 길을,
그리 늦은 저녁도 아니었건만
술 냄새 풍기는 남자들의 술 냄새에 시달리면서
고생스럽게 들어간 얘기를 한다.
아마 비위가 상했기 때문이겠지.

속이 너무 안 좋았다고 한다.
저녁을 먹을 수 없었는데 먹었다고 한다.
아니, 왜 그랬어? 질책하는 나에게
너 일하러 가는데 저녁은 먹여서 보내고 싶었다고 한다.
집에 들어가서는 손가락, 발가락을 다 땄다고 한다.

아, 참…

고양이와 나는 각자 무리하고 있다.
연애는 무리의 연속.
사랑은 무리의 연속?
중년 고양이는 바야흐로 체력의 한계를 맞이했다.
하루 앓아 눕고 하루 움직인다.

나는 그 와중에도 나의 이해심 없음,
공감 능력 부족을 느낀다.

나는 지나치게 공감하고
지나치게 공감하지 못한다.

지나치게 공감하면 오바하고
지나치게 공감하지 못하면 이해심 꽝이 된다.

주로 남에게 지나치게 공감하고
주로 가족에게 지나치게 공감하지 못한다.

엊그제 고양이는 나더러 ‘가족처럼 편하니까’라는 말을 했다.
나도 고양이를 ‘가족처럼’ 대하기 시작한 걸까?

하지만 왜 나는 가족에게 좋은 걸 주지 못하는 걸까?

나는 고양이를 사랑한다.
우리는 지금 현실원칙과 욕망원칙 사이에서
길을 찾아 헤매고 있다.


일반
빠알간 뽀 2

댓글 2개

-님의 코멘트

-
예술적입니다

L & Kira님의 코멘트

L & Kira
최근 상담소 글에 관심이 많았는데 ㅋ 뽀님 글에 중독 되어버린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