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1. 나는 비열한 남자를 한 명 알고 있다.
장면2. 그는 내 친구의 애인이었다. (다시) 그 여자는 내 친구의 애인이었다. 우리 셋은 모두 끼리끼리 회원이었다.
MBTI라는 성격 유형 검사가 있다. 그걸 해보면 나는 정보를 감각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아니라 인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오감을 이용해서 정보를 낱낱의 사실로 받아들이는 사람과 한데 뭉쳐서 흐릿한 인상만 기억하는 사람이 차이를 극명하게 깨달은 날이 있다. 미국 선거전이 한창일 때 오바마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 주로 부모와 조부모 이야기가 나오는 기사였다. 그는 부모와 조부모는 어떤 사람들이고 그를 어떻게 교육시켰는가. 나는 그의 어머니가 매우 개방적인 여자이고 그의 조부모는 딸을 대신해서 손자를 열심히 교육시켰다는 인상을 받았다. 하루이틀 후에 그때 같이 일하던 언니와 그 언니의 직장 사람과 점심을 먹는데 그 언니가 오바마에 대해서 조목조목 얘기하는 걸 듣고 있자니 나와 같은 기사를 읽은 게 분명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온갖 상세한 이야기들을 그 언니는 말 그대로 조목조목 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인류학자였고, 현지 조사차 간 곳에서 오바마의 아버지를 만났고, 오바마를 낳았지만 이혼했고, 다시 떠났고, 오바마의 교육은 백인 상류층인 조부모의 손에 맡겨졌고, 오바마는 혼혈이지만 그의 교육적 배경은 어떻고 저떻고… 지금 내가 읊는 것과도 다른 수준으로 그 언니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아!
내가 그 언니에게 같은 기사를 읽었다고 말하자 MBTI에 일가견이 있던 언니인지라 이렇게 설명해줬다. ‘나는 정보를 오감을 통해서 받아들이는 사람이고 너는 인상을 포착하는 사람이라서 그런 거야.’
나에게 외부의 모든 정보는 흐릿한 인상이다. 그래서 내 친구의 애인을 한때는 남자라고 착각하기도 했다. 우리 셋 다 끼리끼리 회원이었는데 말이다. 그 친구는 내 눈에 부치로 비쳤겠지. 그리고 내가 별로 생물학적인 남자가 등장하지 않는 일상생활을 하고 있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그 여자를 생물학적인 남자로 착각하다니, 그런 어처구니 없는 일은 나 같이 띵~한 애들이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이런 면에서 나는 가끔은 남들이 비난을 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나란 사람의 뇌가 받아들이는 정보 구조가 그 모양이므로 남들의 이해를 일일이 구할 수 없다.
그 여자를 남자로 착각한 것은 일시적인 일이었다.
나중에 그 여자가 바람을 피웠다. 내 친구를 뻔히 두고 바로 옆에 있는 다른 여자와. 그들은 한동안 친구를 속였다. 나중에 알게 된 친구는 울고불고 화내고 분노하고 치를 떨었지만, 헤어지고 싶지 않아 울기도 했다. 싸우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고를 반복하다가 결국 헤어졌다. 헤어졌는데 그 여자는 그러고 나서도 한 동안 술 마시고 나서 밤 늦게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그러면 친구는 나에게 괴로움을 호소했다.
어리석은 나는 마치 친구의 대변자라도 된 것처럼 그 여자와 싸웠다.
그때는 친구도 나도 어리석었다.
장면3. 몇 달 후에 그 여자에게 전화가 왔다. 미안하다고 했다. 나는 홍대 앞에 있었다. 홍대 앞 어느 술집 아니면 찻집에 있었다. 사람들을 만나고 있었다. 찻집 밖 테라스에 나와 전화를 받았다. 그 친구는 어색한 목소리로 ‘오랜만이다, 전에는 미안했다’고 말했다. 나는 호기롭게 웃으며 대답한 것 같다. ‘아니, 뭐가 미안하다고 그래. 뭐 다 그런 거지. 어쩌고 저쩌고.’ 나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대했다. 아무 일도 아닌데 그런다는 것처럼 그 친구의 사과를 ‘깔아뭉갰다.’ 내가 왜 그랬을까?
그 친구와 통화를 하면서 내가 말하는 뽄새가 굉장히 아버지를 닮았다고 느꼈다. 어색하고 뻔뻔한 방식이었다. 굉장히 호기롭고 거짓되고 잘난척하는 방식이었다. 나는 아버지가 다른 아저씨들과 말할 때 쓰는 것 같은 말투를 쓰고 있었다. 어색했지만 멈출 수 없었다. 그 친구는 뭔가 더 말하고 싶은 것 같았지만 나의 거짓된 태도에 질린 것 같았다. 우리는 어색하게 전화를 끊었다. 아저씨처럼 말하고 아저씨처럼 행동하고 아저씨처럼 남을 깔아뭉갠다. 무시한다. 그때 내가 그 친구를 대했던 태도다.
나는 굉장히 비열한 한 남자를 알고 있다. 그 남자에게는 모든 인간관계가 ‘네가 이길까, 내가 이길까?’이다. ‘너 오늘 사람 잘못 만났다. 내가 너를 질리게 해 주겠다’ 이런 것도 있다. 나는 내 안에 그런 남자가 살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
정신 없는 직장 생활은 내 안의 남자를 횡행하게 한다. 직장에서는 내 안의 남자가 활보한다. 나는 매일 출근하고 또 퇴근하지만 사실은 출근도 퇴근도 하지 않고 직장에서 살고 있다. 내 안의 남자가 나를 사로잡아서 퇴근해도 퇴근이 아니다. 나는 늘 일하고 있고 이기려 하고 있다. 누구를? 무엇에게?
지는 게 이기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내 안의 여자다. 이기는 게 이기는 거라고 생각하는 건 내 안의 남자다. 나는 여자로 일할 수는 없는 걸까. 머리만으로는 살 수 없다. 머리만으로 사는 건 지겹다. 머리만으로 사는 건 역겹다. 역겹다. 역겹다.
- 그렇게 미친듯이 일하지 않아도 돼. 그렇게 미친듯이 나 자신을 증명하지 않아도 돼.
- 나는 조용한 저녁 시간, 퇴근 후 조용한 나만의 저녁 시간을 누릴 자격이 있어.
- 한 걸음 나아갔다가 두 걸음 뒤로 물러서는 인생이라 해도, 지지부진한 삶이라 해도, 구차한 목숨이라 해도 나만의 조용한, 차분한, 적요한, 저녁 시간을 누릴 자격이 충분히.
장면2. 그는 내 친구의 애인이었다. (다시) 그 여자는 내 친구의 애인이었다. 우리 셋은 모두 끼리끼리 회원이었다.
MBTI라는 성격 유형 검사가 있다. 그걸 해보면 나는 정보를 감각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아니라 인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오감을 이용해서 정보를 낱낱의 사실로 받아들이는 사람과 한데 뭉쳐서 흐릿한 인상만 기억하는 사람이 차이를 극명하게 깨달은 날이 있다. 미국 선거전이 한창일 때 오바마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 주로 부모와 조부모 이야기가 나오는 기사였다. 그는 부모와 조부모는 어떤 사람들이고 그를 어떻게 교육시켰는가. 나는 그의 어머니가 매우 개방적인 여자이고 그의 조부모는 딸을 대신해서 손자를 열심히 교육시켰다는 인상을 받았다. 하루이틀 후에 그때 같이 일하던 언니와 그 언니의 직장 사람과 점심을 먹는데 그 언니가 오바마에 대해서 조목조목 얘기하는 걸 듣고 있자니 나와 같은 기사를 읽은 게 분명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온갖 상세한 이야기들을 그 언니는 말 그대로 조목조목 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인류학자였고, 현지 조사차 간 곳에서 오바마의 아버지를 만났고, 오바마를 낳았지만 이혼했고, 다시 떠났고, 오바마의 교육은 백인 상류층인 조부모의 손에 맡겨졌고, 오바마는 혼혈이지만 그의 교육적 배경은 어떻고 저떻고… 지금 내가 읊는 것과도 다른 수준으로 그 언니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아!
내가 그 언니에게 같은 기사를 읽었다고 말하자 MBTI에 일가견이 있던 언니인지라 이렇게 설명해줬다. ‘나는 정보를 오감을 통해서 받아들이는 사람이고 너는 인상을 포착하는 사람이라서 그런 거야.’
나에게 외부의 모든 정보는 흐릿한 인상이다. 그래서 내 친구의 애인을 한때는 남자라고 착각하기도 했다. 우리 셋 다 끼리끼리 회원이었는데 말이다. 그 친구는 내 눈에 부치로 비쳤겠지. 그리고 내가 별로 생물학적인 남자가 등장하지 않는 일상생활을 하고 있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그 여자를 생물학적인 남자로 착각하다니, 그런 어처구니 없는 일은 나 같이 띵~한 애들이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이런 면에서 나는 가끔은 남들이 비난을 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나란 사람의 뇌가 받아들이는 정보 구조가 그 모양이므로 남들의 이해를 일일이 구할 수 없다.
그 여자를 남자로 착각한 것은 일시적인 일이었다.
나중에 그 여자가 바람을 피웠다. 내 친구를 뻔히 두고 바로 옆에 있는 다른 여자와. 그들은 한동안 친구를 속였다. 나중에 알게 된 친구는 울고불고 화내고 분노하고 치를 떨었지만, 헤어지고 싶지 않아 울기도 했다. 싸우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고를 반복하다가 결국 헤어졌다. 헤어졌는데 그 여자는 그러고 나서도 한 동안 술 마시고 나서 밤 늦게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그러면 친구는 나에게 괴로움을 호소했다.
어리석은 나는 마치 친구의 대변자라도 된 것처럼 그 여자와 싸웠다.
그때는 친구도 나도 어리석었다.
장면3. 몇 달 후에 그 여자에게 전화가 왔다. 미안하다고 했다. 나는 홍대 앞에 있었다. 홍대 앞 어느 술집 아니면 찻집에 있었다. 사람들을 만나고 있었다. 찻집 밖 테라스에 나와 전화를 받았다. 그 친구는 어색한 목소리로 ‘오랜만이다, 전에는 미안했다’고 말했다. 나는 호기롭게 웃으며 대답한 것 같다. ‘아니, 뭐가 미안하다고 그래. 뭐 다 그런 거지. 어쩌고 저쩌고.’ 나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대했다. 아무 일도 아닌데 그런다는 것처럼 그 친구의 사과를 ‘깔아뭉갰다.’ 내가 왜 그랬을까?
그 친구와 통화를 하면서 내가 말하는 뽄새가 굉장히 아버지를 닮았다고 느꼈다. 어색하고 뻔뻔한 방식이었다. 굉장히 호기롭고 거짓되고 잘난척하는 방식이었다. 나는 아버지가 다른 아저씨들과 말할 때 쓰는 것 같은 말투를 쓰고 있었다. 어색했지만 멈출 수 없었다. 그 친구는 뭔가 더 말하고 싶은 것 같았지만 나의 거짓된 태도에 질린 것 같았다. 우리는 어색하게 전화를 끊었다. 아저씨처럼 말하고 아저씨처럼 행동하고 아저씨처럼 남을 깔아뭉갠다. 무시한다. 그때 내가 그 친구를 대했던 태도다.
나는 굉장히 비열한 한 남자를 알고 있다. 그 남자에게는 모든 인간관계가 ‘네가 이길까, 내가 이길까?’이다. ‘너 오늘 사람 잘못 만났다. 내가 너를 질리게 해 주겠다’ 이런 것도 있다. 나는 내 안에 그런 남자가 살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
정신 없는 직장 생활은 내 안의 남자를 횡행하게 한다. 직장에서는 내 안의 남자가 활보한다. 나는 매일 출근하고 또 퇴근하지만 사실은 출근도 퇴근도 하지 않고 직장에서 살고 있다. 내 안의 남자가 나를 사로잡아서 퇴근해도 퇴근이 아니다. 나는 늘 일하고 있고 이기려 하고 있다. 누구를? 무엇에게?
지는 게 이기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내 안의 여자다. 이기는 게 이기는 거라고 생각하는 건 내 안의 남자다. 나는 여자로 일할 수는 없는 걸까. 머리만으로는 살 수 없다. 머리만으로 사는 건 지겹다. 머리만으로 사는 건 역겹다. 역겹다. 역겹다.
- 그렇게 미친듯이 일하지 않아도 돼. 그렇게 미친듯이 나 자신을 증명하지 않아도 돼.
- 나는 조용한 저녁 시간, 퇴근 후 조용한 나만의 저녁 시간을 누릴 자격이 있어.
- 한 걸음 나아갔다가 두 걸음 뒤로 물러서는 인생이라 해도, 지지부진한 삶이라 해도, 구차한 목숨이라 해도 나만의 조용한, 차분한, 적요한, 저녁 시간을 누릴 자격이 충분히.
댓글 1개
ehdna님의 코멘트
ehdna마음 끓이는 주말을 보내는 것 같아 마음이 쓰이네요. 편안한 밤 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