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아줌마§포르노§] 제5화. 아무것에도 빠지지 말자 했더니 - 아줌마의 포르노


제5화. 아무것에도 빠지지 말자 했더니 - 아줌마의 포르노
 
경고: 포르노는 마약, 도박, 술, 인간관계, 일, 설탕 따위와 마찬가지로 중독성이 있음.
 
어린시절: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이었다.
나의 유년기-청소년기는 아버지의 술 중독 때문에 많이 불행했다.
나는 무엇에든 빠지지 말자고 결심했다.
 
성인초기: 음식을 잘못 먹고 두드러기가 났다.
같이 먹은 사람 모두 괜찮은데 나만 두드러기가 났다. 
내과에 가서 주사를 두 번이나 맞았지만 낫지 않았다.
어머니는 두드러기 때문에 벌서 몇 년째 고생하고 있었다. 겁이 덜컥 났다.
어머니가 다니는 한의원에 갔다.
밀가루, 우유, 아이스크림을 포함한 모든 유제품, 튀긴 음식, 돼지고기, 닭고기, 어패류를 먹지 말라고 했다. 빵집 앞을 지날 때마다, 반들반들 조명을 받는 빵을 바라볼 때마다,
이유는 전혀 다르지만 장발장이 된 것 같았다.
빵집 쇼윈도를 외면하면서 길을 걸을 때면 우울감이 밀려왔다. 젓갈 넣은 김치도 안 먹었다.
대부분의 음식이 금지 목록에 오르자, 내가 얼마나 먹는 일에 집중하고 있었는지 알게 됐다.
하루 24시간은 두 가지로 분리되었다. 먹는 것을 생각하는 시간과 실제로 먹고 있는 시간.
나는 음식 중독이었다.
 
중독이란: 미국 드라마 ‘씨에스아이(CSI)’와 ‘닥터 하우스’를 열심히 보면서 중독에 대해 좀 더 알게 됐다.
예를 들어 ‘나는 일 중독이야’라는 말은 ‘나는 일을 아주 열심히 해’라기 보다는
‘나는 일을 하지 않으면 나 자신이 무가치하게 느껴져’에 가까운 말이다.
마찬가지로 ‘나는 알코올 중독이야’라는 말은 ‘나는 술을 마실 때만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어’라는 뜻이다. ‘술을 마실 때만 진정으로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술을 많이 먹게 돼’라는 식이다.
중독은 뇌의 특정 부위를 자극하는 쾌락을 끊임 없이 갈망하고 그 쾌락에 의존한다는 뜻이다.
 
나는 음식 중독이다.
그리고 나는 아무것에도 빠지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면서 살아왔다.
의미 있는 어떤 일, 내가 흥미를 느꼈던 어떤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면
나는 지금쯤 어디에선가 뭐가 되어도 돼 있으리라. 그러나 나는 그 무엇에도 집중하지 못했다.
빠질까봐 두려웠다. 그리고 나는 음식중독이었다. 결국 피해가지 못했다.
 
내가 한참 끼리끼리 상담모임 ‘징검다리’에서 공부할 때, 포르노 중독이란 말을 처음 들었다.
포르노를 보고 즐기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실제로 해보려고 하거나 남에게 강요하거나
점점 더 강한 내용의 포르노를 찾아 헤매는 것, 그것이 포르노 중독이었다.
포르노 중독이 되면 현실과 포르노를 구분하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중독은 어떤 것에 중독되든 옆에 있는 사람들까지 불행하게 만들고 만다.
그러므로 포르노 중독은 나쁘다. 곧 포르노는 아주 나쁘다…
 
정말? 포르노는 정말 나쁜가?
……무엇엔가 의존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인간의 약한 면을 이용해서
돈을 버는 데 집중하면 나쁜 일이 되는 것 같다……
그런데 사실 나는 포르노가 좋다. 다행히 포르노 중독은 아니다. 보고 싶단 생각이 별로 들지 않는다.
아니다. 나에게 포르노는 말하자면 [러브리스 Loveless] 같은 일본 만화다.
[서양 골동 양과자점] 류의 만화도 좋아한다.
다른 사람들이 포르노라고 생각하는 실사영화는 비위가 상해서 보고 싶지 않다.
포르노를 표방하는 성인 만화 역시 감당이 안 되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러브리스] 같은 만화를 보면서,
미국 드라마 CSI의 기준으로 보면
나는 가학적인 소아애호증일까, 궁금해 진다. 어디까지가 건강한 걸까?
 
포르노 하면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러브 액추얼리 Love Actually]
 
한물 간 늙은 가수가 오랜만에 히트곡을 내고 엘튼 존의 크리스마스 파티에 초대를 받았다.
그런데 금방 돌아와서는 ‘세상에서 제일 못생긴 매니저’에게 말한다.
“엘튼 존의 파티장에서 생각해 보니 내 옆을 가장 오래 지켜준 사람은 바로 너였어.”
그러고는 둘이는 멋쩍게 한 번 슬쩍 껴안는 척한다. 쑥스럽기는 마찬가지인 매니저가 눙친다.
“엘튼 존 파티장에 가더니 게이가 되었나?”
늙은 가수가 ‘포르노나 한 판 때리자’고 하니 두 사람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아저씨의 포르노’를 때리러 간다.
 
솔직하고 따듯한 마음은 쑥스럽다.
어쩌면 포르노보다 더 감당하기 어려운 듯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