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아줌마§포르노§] 제2화. 보지를 보지라 부르기까지


제2화. 보지를 보지라 부르기까지
 
2009년 퀴어퍼레이드에 갔다가 베를린 광장을 바쁘게 가로지르는 ‘보지’를 봤다.
반가운 마음에“보지~!”하고 부르니 역시 반갑게 답해 준다.
과장되게 손을 흔들고 돌아서다 문득 ‘우리가 서로 아는 사이였던가…?’
글쎄… 어디선가 몇 번쯤 얼굴을 마주쳤을진 몰라도… 결정적으로 [레즈비언 정치 도전기]라는 다큐멘터리 때문에 보지를 아는 사람으로 착각한 것 같다. 다큐에서 보지의 이름은 ‘잘해보지’로 나왔다.
그 전에도 보지를 본 적은 있었다. 다큐를 보면서 ‘잘해보지’라는 작명에 배꼽을 잡았다.
후에 보지를 만나서 ‘잘해보지’라는 이름을 두고 얘기한 적도 있다는 게 기억나는 걸 보면 역시 보지와 나는 아는 사이? (헷갈리네…)
그러다 또 문득 베를린 광장을 반쯤 가로지르는 거리에서 내가 보지의 이름을 크게 불렀다는 걸 깨닫는다. 
크고도 반가운 목소리로, “보지~!” 베를린 광장이 비록 마당만하긴 하나.
‘보지’라는 단어를 소근거리지도 못했던 때가 있었는데.
 
내 보지를 처음으로 ‘대면’한 것은 여성학 수업에서 ‘보지를 거울로 보고 느낌을 적어오기’라는 숙제를 받았을 때다. ‘보지를 본다’는 것은 왜 그렇게 불안한 일일까? 남의 보지도 아니고 내 보지인데!
나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보지를 보면서 ‘누가 금방이라도 문을 박차고 들어올 것만 같은 불안’을 느꼈다는 걸 숙제를 다 읽은 선생님이 말씀해 주셨다. 여자는 자기 몸을 보면서도 마음으로 감시당하는구나.
 
언젠가 ‘나는 ‘그 말’을 입에 잘 올리지 못하겠다’고 했더니
그때 사귀던 친구가 즉석에서 ‘자지 보지 자지 보지 자지 보지’를 청산유수로 읊어댔다.
앗! 저런 재주가 있는 줄 몰랐군! 나는 그 자리에서도 ‘그 말’을 따라하기 어려웠다.
말을 처음 배우는 어린이처럼 더듬었다. 소리를 내기 어려웠다. 입에 올리기가 어려웠다.
뭣 때문에?! 내 마음에 어떤 금기가 있었길래!
 
이후로 자지, 보지를 입에 올리려고 노력했다.
입에 담고, 소리 내고, 그런 말을 하는 나 자신을 허용하기. 자지, 보지뿐 아니라 욕도 연습한다.
바바리맨을 만나면 제일 좋은 처방이 ‘야, 그것도 좇이라고 달고 다니냐! 너무 작아서 보이지도 않는다!’
뭐 이러라고 했던가. 연습한다. 나도 말할테다!
 
‘좇 같은 놈, 좇만한 놈, 좇까, 개새끼, 씨발새끼, 씨발놈아’
나의 욕 리스트, 짧군. 창의적이지도 못하군. 더 노력해야 된다.
 
1992년 여름 내 친구와 나는 유럽의 어느 도시에서 기차를 기다리며 대합실에 앉아 있었다.
우리는 대합실에 늘어선 의자의 맨 뒷줄에 앉아 있었고,
한참 후에야 뭔가가 우리를 노리고 있다는 걸 알았다.
좇이었다! 이따!만한 좇이 우리 바로 앞 줄 남자의 바지춤에서 흘러나와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헉! 저게 뭐냐! 실습이 부족했던 친구와 나는 저거야 말로 말로만 듣던 섹스토이냐, 설마 진짜일까?
그러나 진짜라고 보기에는 그것이 참… 초현실적으로 생겼었다.
물론 모든 것은 실습이 부족했던… 아니지, 성교육이 부족했던 탓이다.
그리고 뭣보다 우리가 그렇게 무기력하게 성추행에 노출되어 있다는 현실을 인정하기 싫었다.
그곳은 한적한 대합실도 아니었다.
불쾌하긴 했지만 겁을 먹을 환경은 아니었기 때문에 우리는 일어나서 다른 쪽으로 갔다.
큰 소리로 그 자리에서 바로 고발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할 생각은 둘 다 못했다.
촌스러운 동양 소녀 둘이는 그저 조용히 자리를 옮겼다.
 
이윽고,
그 남자가,
아주 말끔하게 정돈된 모습으로,
우리 옆을 지나가면서,
“좋았냐? Was it good?”
고 물어볼 때까지는 우리가 당한 일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엿 먹어! Fuck you!”
라는 말도 못한 것인지.
 
둘 다 눈만 화등잔만 해져서 뻐끔거리고 있었을 뿐이다.
그 남자는 부끄러워하지도 미안해하지도 않았다.
그는 보기 좋게 우리를 강간했다.
백주대낮에 공공장소에서.
 
지금 생각해도 착잡하다.
 
어느 날 길에서 아프리카가 원산지로 보이는 열쇠고리 두 개를 샀다. 아주 작은 남녀의 전신상이다.
남자는 팔뚝만한 자지를 과시하고 있다. 여자는 엉덩이를 바닥에 대고 무릎을 세워 다리를 벌리고 앉아서는 잘 보이게끔 두 손으로 보지를 양쪽에서 벌리고 있다.
남자의 상처럼 여자의 상에서도 보지가 크게 과장되어 있다.
여자는 크게 과장된 보지가 잘 보이도록 양 손으로 벌리고 앉아 있는 모습이다.
 
충격과 감탄!
그 상을 ‘본’ 것만으로도 내 맘 속에서 얼마나 많은 금기가 떨어져 나갔는지 모른다. 하필이면 여자상을 잃어버려서 보여드릴 수 없어 죄송하다.
 
몸을 부끄럽게 느끼도록 만드는 건 뭘까?
왜 욕을 하면 나쁜 사람인 걸까?
나는 적합한 때와 장소에서 욕을 못한 나 자신을 평생 ‘멍청한 년, 덜 떨어진 년, 모자란 년!’이라고 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