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by 보싱N 2011. 11. 지리산
보싱N님이 보내주신 L커플의 동거이야기 최종회를 지금에서야 올립니다.
늦게 올려서 죄송해요. 여러분 최종회까지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간지좔좔빈곤프로젝트 최종회
대한민국 레즈비언이 행복해지는 그날까지렁이~
동거를 통해 두 사람이 일상에서 끊임없이 마주치는 일은 때론 정겹지만, 때론 힘겹다.
이러한 동행에는 때로 멋진 한 끼 식사로 달래지지 않고
짜릿한 오르가즘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무미건조’란 이름의 문턱이 있다.
권태기(라는 표현 식상하다)로 치부하기엔,
단지 급류가 잠시 평원을 만나서 고인 듯 흐르는 호수의 안온함과 같은 시기.
모든 것이 ‘말하는대로’ 돌아가는 시기. 말하자면,
너무 입맛에 맞아 투정부릴 필요도 없고
소화가 술술 되는 몸에 편한 음식을 먹거나 옷을 입는 것 같은 시기.
더욱 깊어지고 게다가 평화롭기까지한 섹스,
HOT하기 보다는 뜨끈한 욕조와 같은 늪에 빠져 숨이 막힐 것 같은...
아, 뭔가 마약과 같은 자극이 필요한 그런 시기.
이런 시기엔 오감을 자극시킬 역동이 필요하다. 고통과 닮은 미친 웃음이.
일단, 삶을 살찌우고 오감을 충족시킬 방법으로
그동안 대학생활과 사회생활 통틀어 여럿이 가는 모꼬지외엔 가본 적이 없는 보싱N은
틈나는 대로 여행을 다니기로 한다. 돈을 벌지 않으니 돈 안드는 여행지를 골라야 한다.
지상에 주머니 돈을 탐내지 않는 지상의 유일무이한 여행지는 바로 산이었다.
사람의 발길이 덜 닿는 산속은 럭셔리한 달빛과 풍요로운 산소와 간지 나는 경치를 제공해 준다.
봄여름가을겨울 산은 저마다 매무새를 단장한 채 맞아주었고,
사람들의 발길에 허물어지면 허물어진대로 풀을 키워 다진다.
나무의 뿌리가 드러나게 산길이 패여도
그 뿌리마저 하나의 장관이 되어 많은 무뢰한들의 방문을 허한다.
식은 밥 한덩이에 김치와 상추 몇 이파리만 펼쳐놓고 빨갛게 익은 단풍아래 먹는 식사는
호텔 레스토랑 뷔페식이 부럽지 않다. 여기에 달큰한 막걸리 한 병 값은 부가가치세 정도!
보싱커플은 옥탑방의 가을과 겨울 봄을 거쳐 쉴 새 없이 등산을 다니며
더 이상 가난을 곱씹지 않게 되었다.
무미건조함에 젖을 새도 없이 산은 오감 충족 따위가 아니라
내장을 쫄깃하게 만들어주는 무한한 충족감을 주었다.
긴 산행 후에 쏟아져 내리는 땀방울은 수억 년 전 부터
우리 염색체에 새겨졌을 땀방울을 상기시키듯 아련한 기분에 들게 했고,
자연의 녹음과 냄새는 마음과 영성 깊숙이 숨어있는 또다른 자아를 일깨우게 한다.
ㅋㅋ 실은 보싱은 조금만 높은 곳이 나와도 손을 내밀고 어리광을 피우며
산에서 강한 보싱N은 무거운 짐을 도맡아 메고도 보싱을 끌어올려주며 뿌듯해하는 걸 보면,
내면 깊숙이 표출하고 싶어서 안달한 또 다른 자아를 충족시켜주는 것 같기도 하다.
BUT, 산에도 복병이 있었다. 특히 우리와 같이 아리따운(헐, 아저씨들에게 그렇게 비춰지나. 웩~~)
아가씨 둘이 산에 가면 꼭 승냥이처럼 들이대는 놈들이 있다.
길 한번 물어봤다가 잘 못 낚여서 하산까지 길잡이를 하겠다며
미주알고주알 수다를 늘어놓고는 산을 내려와 한사코 막걸리를 산다고 떼를 쓰는 진상.
L커플들이여, 길을 물어볼 땐 가능하면 여성에게, 무리지은 수컷들에게 물어보도록 하라.
혼자 다니는 아저씨와는 눈도 마주치지 말도록.
물론 네버! 혼자 산행하며 우리와 같이 명상에 빠진 아저씨들이 더 많겠지.
다만 확률적으로 산에 왔지만 산을 빌미로 여전히 사람에만 꽂혀있는 그런 무리들이 많다는 사실 잊지 말도록.
뿌잉뿌잉.
먼 여행은 아무래도 교통비와 숙박비등이 부담이 되는데,
숙박비를 아끼기 위해 찜질방을 이용하거나, 새벽기차를 이용한다.
그러나 둘의 시간을 갖고 싶을 때는 비수기를 이용해 관광객들이 빠져나간 빈 마을을 누비고
다니면 하룻밤 기름 값 정도만 지불하고 따뜻하고 정갈한 민박을 얻을 수 있다.
서울 지하철의 무임승차는 종종 하고 있지만, 아직 코레일 무임승차엔 도전해보지 못했다.
대학시절 몇 번 해보았던 입석 무임승차 또한 도전과제 중에 하나다.
“간지좔좔 빈곤 프로젝트”에 관한 보싱커플의 팁들은 이것을 마지막으로 막을 내린다.
사실 오래전에 적어놓고 글을 부치지 못했다.
아마도 이 변명이
이번 한국레즈비언상담소 해피로그팀 연재 시즌 1 마무리에 대한 작별인사가 될 듯하다.
윗글을 적을 즈음에 보싱과 보싱N은 사소한 마찰로 인해
갈등이 불거져 순식간에 헤어지니 마니하는 상황이 되고
보싱N은 ‘에잇, 백두대간이나 타야겠어.’하며 사라져버리려는 순간까지 치달았다.
불과 1박 2일 동안 일어난 일이었는데,
백두대간을 타며 순식간에 구상된 소설을 적겠다며 노트를 챙겨든 그날이 해피로그 원고 마감 날이었다.
아~~ 동거이야기라..
이별하고 훗날 무한복제의 미디어 공간 NET에 연재하다니. 우리가 미쳤구나. 아아아아~~~~
사실 4~5회쯤 연재할 때쯤이었나.
원고 내용을 보싱과 함께 검토하며 사실과 다르다며,
어떻게 비춰지겠냐며 옥신각신을 하다가는 뭔가 불편한 진실을 마주한 기분이 아스라이 들기도 했었다.
그런 과정에서 보싱N은 글을 쓸 때마다 동거이야기는 제목답게 좀 더 사적이고
내밀한 공감대를 건드려야 한다는 목표의식과 함께 사적 이야기를 비켜가고자 하는
내적인 욕구와의 충돌을 경험했다.
뒷부분에 연재한 글의 주제와 내용을 상기하신다면, 독자들이여.
후자가 결국 이겼다는 것을 알리라.
막상 이별을 선고받고 보니 보싱N은 이러한 연재 글조차 목에 박힌 생선가시처럼
서로를 아프게 하리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한동안 망연한 기분도 들었던 것 같다... 자식 가진 커플들의 기분이랄까.
여튼 많이 읽히지 않는 글이지만
‘두 사람의 기록’ 그 존재가 주는 데서 오는 부담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보싱N의 백두대간 이별 대장정은 보싱이 한사코 배낭 속에 자신의 짐을 넣고
침낭처럼 대롱대롱 매달리는 퍼포먼스로 인해 무산되고,
우리의 소리 가락처럼 흥도 많고 한도 많은 보싱커플은 언제 그랬냐는 듯 침대에서 백두대간을...... -.,<
여튼, 이러이러한 사연으로 이렇게 폐점 시간이 끝나고서야 찾아뵈었다.
마지막으로, 대한민국 모든 성소수자들이 행복해지는 그날까지 행복 사수하십시오.
특히, 무성애자와 싱글 레즈비언들에게 무한한 자매애를 보냅니다.
- 과거 무성애자이자 미래 싱글 레즈비언 보싱 & 보싱N
ps. 일용직 노동을 하며 틈만 나면 티벳, 안나푸르나, 중국의 어느 시골 마을 등을
누비고 다니는 한 선배의 블로그 글이 떠오른다.
“지구온난화가 심각해지고, 산과 강이 황폐해지는 것을 백번 말로 들어도 실감하지 못한다. 문명이 닿지 않고 개발되지 않은 곳의 산과 길과 나무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직접 보지 않고서는..”
보싱과 보싱N이 다녀온 단풍이 져 볼 것 없는 이번 지리산행에서.
굽이굽이 좁은 지리산 소로의 나무들, 그 나무에 백힌 제 등치보다 커다란 옹이마저 말을 걸었다. ‘나를 보라고.. 나의 옹이를 보라고..’ 그것을 어루만지며 그의 눈물이 가슴에 스며들었다.
산을 넘어서 산등성이에 끝없는 펼쳐진 굽이굽이 산자락의 대양.
‘나를 보라고.. 내게서 넘실대는 거대한 하늘과 구름을 보라고.. 네가 얼마나 천박하고 보잘것없는 곳에서 성화를 하며 살고 있는지.’
산은 아마도 산을 스쳐간 많은 이들이 놓고 간 짐들이 쌓여서 山모양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산을 오르고 내리는 과정이 인생길과 닮았다는 것은 말뿐이 아니라 느껴야 아는 진리.
(이상 보싱N의 산에 대한 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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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님의 코멘트
로마차라님의 코멘트
차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