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오미 이야기

2008-01-28
나오미 이야기

까맣고 작은 개의 이름은 나오미였다. 나오미 캠벨의 이름을 따서 붙였다나. 곱슬곱슬한 까만 털의 작은 개는 정말 나이를 가늠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내가 처음 봤을 때 이미 꽤 나이가 들어 있었다.

어느 날 좀 전까지 보였던 나오미가 보이지 않는다 싶었다. 응? 어딧지? 나오미는 마당 한 쪽에 옆으로 쓰러져서, 마치 서 있다가 고대로 굳어진 채 쓰러진 것처럼 양쪽 다리의 평행을 유지한 채로, 쓰러져 있었다. 만질 수도 없었다. 나오미… 죽었구나…

나는 큰 소리로 울었다. 우왕~! 나는 오바했다. 나는 방어적으로 울었다. 나는 애인의 개가 죽었는데 울지도 않는 매정한 사람이라는 공격에 대비해서 울었다. 나는 나오미의 죽음에 대한 나의 감정을 느낄 새도 없이, 받지 않은 비난에 대비해서 과하게, 방어적으로 울었다.

내가 나중에 받은 비난이 뭐였을까?

‘네가 너무 심하게 울어서 정작 슬픈 나는 울지도 못했다’

결국 나는 비난을 받긴 받은 것이다.

슬픈 관계였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 돌이켜 보면서 나는 두 가지 마음의 풍경을 본다.
하나는 내 마음의 풍경, 둘은 나오미의 주인이자 당시 나의 애인이었던 사람의 마음의 풍경.

나는 과하게 방어적으로 울었다. 나는 가까운 사람에게 비난을 받는 일에 익숙했고 늘 비난에 대비해서 행동했다. 누구의 탓을 할까? 나에게 터무니 없는 비난을 던진 그들을? 아니면 꼭 그런 사람들만 골라서 사랑하는 나를? 누구의 탓을 하든 나오미에게는 진심이 아니었던 거다. 그리고 이제 와서 그런 생각이 든다. 그녀의 내 탓은 무지 황당했지만, 그 말 자체의 뜻이 아니라 아마도… 나의 진심이 없음을 탓한 것은 아니었을까…?

나오미의 죽음에 대한 나의 과도한 슬픔이 그녀에 대한 나의 충절로 이해되기를 바랐지만 그녀는 속아넘어가지 않은 것이다…

뭐 이런 대략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라면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라 할 만한 생각이 이제 와서는 든다…

그녀의 마음의 풍경은 어땠을까? 정든 강아지가 죽었고 철 없는 애인은 자기 강아지가 죽은 양 울어댈 때, 그래서 정작 슬픈 자신을 울음을 삼켰어야 했을 때, 그녀의 마음의 풍경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녀는 왜 자기를 놓고 나와 함께 울지 못한 것일까? 왜 그렇게 정신을 차리고 있었어야 했던 것일까? 왜 나의 울음이 그토록 부담스러웠던 것일까?

내가 오바하는 동안에 그녀 또한 그녀 자신의 슬픔, 그녀 자신의 정서에 빠져들지 못하고 있었다. 나중에는 내가 원망스러울 만큼. 왜였을까? 그녀는 왜 자신의 감정에 집중하지 못했던 걸까? 그 모든 내 탓은 차치하고서 말이다.

우리는 어쩌면 남이 내 문제를 해결해 주기를 바라는 두 아기였는지 모르겠다.

내가 나를 보고, 나를 느끼고, 나를 알고, 나에게 집중하여 나 자신인 채로, 내 두 발로 내 삶을 살아간다는 일이 어찌나, 어찌나, 이렇게까지나, 아직도 힘에 버거운 일인지… 아니, 단지 결단의 문제인지…정말로 거듭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절체절명. 거듭나지 못하면 살아도 산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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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알간 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