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와 애인

이 집에 이사 온지 일 년이 되었다. 작년 유월에 이사왔으니.
일 년 동안 벽시계를 벽에 붙이지 않고 현관 옆 잡동사니
수납장 위에 기대 놓고 살았다. 뭐,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데이트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부엌에 의자를 들고 나가
벽에 부착식 고리를 붙였다. 하루 정도 뒀다가 시계를 걸었다.
걸고 보니 눈대중을 잘못해서 원래 붙이려고 했던 데보다
10 센티미터 정도 아래쪽에 붙였다는 걸 알았다.
뭐, 할 수 없지. 붙인 고리를 다시 떼서 다시 붙이는 수고를 마다하고
그냥 그 자리에 시계를 걸어두기로 했다. 그래도 이게 어딘가?
일 년 동안 걸지 않고 흔들거리는 자리에 기대 세워뒀던 시계를 걸었다.

새로운 인간관계가 생겼다. 한 동안 굉장한 집중력을 요구할 수 밖에 없는
인간관계가 생겼다. 주변을 가능한 단순하게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회사 관두고 주말과 주중의 구분이 없어지면서 부모님 댁에 가는 회수가
줄었다. 게다가 자꾸만 앓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게다가 이제 주말이면
데이트까지 하게 되니 부모님 댁에는 갈 시간이 정말 없어졌다.
그랬더니 한 동안 어머니가 자전거를 타고 출몰하시더니 오늘은
드디어 아버지까지, 부모 동반으로 자전거를 타고 오셨다.
정말 운동권 부모님이다. ㅎㅎ

반찬에 미역국을 끓인 냄비까지 자전거에 싣고 온 부모님은
짐을 내려놓고 잠깐 앉아서 과일을 좀 드시고는 곧 가셨다.
자전거를 타고 골목길을 내려가는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애인과 애인의 어머니와 우리 부모와 내가 좀 큰 집을 구해서
다같이 살면 좋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부모에게 커밍아웃할 생각은 별로 없었다.
그런데 어쩐지 요즘, 그런 생각이 한 번 들더니
오늘 아주 같이 살잔 생각까지 들었다.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양쪽 부모가 감당할 수만 있다면.
으음… 무슨 때가 다가오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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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알간 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