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기념일

2005-08-15
오늘은 엄마 집을 나온 지 2년이 되는 날이다. 2003년 8월 15일에 나는 엄마 집에서 두번째로 이사 나왔다. 그 전에 두 번째 애인의 작업실로 이사 나갔다가 여섯 달 만에 다시 짐을 싸들고 들어왔다. 사랑스런 동생은 그 때, 쪽팔리느니 어쩌느니 했지만 난 그 때 팔릴 쪽 같은 건 없었다. 단지 직장이 없는 인간의 비참함이 어떤 것인지, 일정한 수입이 없이 애인과 산다는 게, 혼인도 하지 않은, 게다가 남자도 아닌 애인과 산다는 게, 나의 생계에 대해서는 전혀 어떠한 부담도 느끼고 싶어하지 않는 애인에게 얹혀 산다는 게 어떤 것인지 뼈저리게 느끼고 난 터였기 때문에 나를 낳아주고 키워준 가족에게 팔릴 쪽 같은 건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 살아야 하고 가족에게 쪽팔리다는 생각조차 배부른 것이었다.

애인에게 얹혀 살았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나는 애인의 작업실로 얻은 전세집에 방 한 칸을 얻어 살면서 보증금을 내지는 않았지만 약간의 월세도 냈고, 나중에 쓴 돈을 다 계산해 봐도 내가 덜 쓴 것은 없었다. 우리는 거의 공평하게 썼다. 단지 그 때 나의 두번째 애인을 힘들게 한 것은 내가 일정한 수입이 없었으며, 그런 상태에서 우리 엄마에게 돈을 빌리는 것보다는 애인에게 먼저 돈을 빌리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그녀에게 나는 돈의 면에서는 ‘그렇게까지’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던 것이다. 반면에 나에게는 그녀는 배우자였고 그렇다고 해서 월급을 따박따박 받는다거나 큰 돈을 버는 것도 아닌 그녀에게 빌붙을 생각 같은 건 전혀 없었다. 그녀가 믿을 수 있었건 없었건 간에. 물론 그녀는 믿을 수 없어 했고 힘들어 했다. 나에게는 그걸 힘들어하는 그녀를 보는 것이 더 힘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의 자립심이라는 것은 알량한 것이었고, 내가 너무 순진했다는 게 맞는 것 같다. 남도 나와 같을 것이라고 근거 없이 생각하면 그게 순진한 것이다. 순진한 것들은 대개 나쁘다. 경험해보니 그렇다. 그러니까 그 때 나도 좋을 것은 없었을 것 같다.

내가 그렇게까지 무력하게 보였는지, 그건 잘 납득이 안 가지만 어쨌든 한시라도 내가 빌붙을까봐 노심초사하던 두번째 애인과 헤어지면서 나는 돈이 참 무섭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주 조금.

그리고 엄마 집에 들어왔고 그게 아마 2000년 10월쯤이었다. 그리고 2003년 8월에 다시 한 번 짐을 싸서 집을 나왔다. 이번에는 큰 가구는 들고 나오지 않았다. 대신에 아는 사람에게서 장과 침대를 얻었다. 가구를 싸들고 나왔다가 다시 싸들고 들어가는 게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때처럼 반 년만에 다시 기어들어가게 되지 않았다. 2년이 되었다. 기념해 줘야하는 날이다.

작년에는 쌍둥이와 말없음이와 같이 밥을 먹었다. 내가 한 턱 냈다. 독립 기념으로. 그 때도 쌍둥이, 말없음이 커플과 그렇게 사이가 좋을 때는 아니었던 것 같다. 어쨌든 내가 애인을 사귀든 친구를 사귀든 너무 의존하고 너와 나의 경계가 없어지는 경향이 있으니, 사이가 좋지 않은 게 더 나은 것 같기도 하다. 사이가 좋지 않다는 건 한마디로 경계가 생기기 시작했다는 뜻이니까.

올해도 쌍둥이와 말없음이 커플과 함께 기념으로 밥을 먹었으면 하는 생각이 없지는 않았다. 그런데 메롱과 주말에 만나지 못하게 되는 사정이 생기면서 양쪽으로 약속을 하기에는 내가 힘이 없었다. 나는 그냥 메롱을 만나기로 했다. 그런데 메롱은 기념식으로 찻잔이라도 부딪히고 싶은 내 맘도 모르고 그저 비싼 커피는 안 된다면서 나를 무슨 밥값이나 하는 커피를 매일 마시기라도 하는 사치스런 사람마냥 대했다. 우리는 지금 둘 다 다이어트 중이라서 기념으로 고기를 구워먹을 처지도 아니고 술을 마실 것도 아니기에 시원한 커피숍에서 커피로나마 기분을 내보고, 지나간 2년과 앞으로의 날들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보고자 했건만…

메롱이 내 맘을 알아주면 메롱이 아니지. 하도 찍어누르며 안 된다고 해서 거기다 대고 나 독립 2주년이오, 라고 말하고 싶은 기분도 없어져 버렸다. 뭐 그렇게 잘났을까? 정말 돈은 저가 나보다 훨씬 낭비하며 사는 주제에.

게시판에 일기를 올리지 못하고 있다. 혹시라도 아는 누군가가 읽게 될까 두렵다. 메롱이 내 일기를 읽기도 원치 않고 메롱과 나를 아는 누군가가 읽고서 메롱에게 알려주는 것도 원치 않는다. 그래서 일기를 올리지 못하고 있다. 검열이 어찌나 무서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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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알간 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