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아저씨와 섹시한 여자

2006-02-04

지저분하고 재밌는 종로 얘기를 쓰고 나서 궁금해졌다. 나는 언제부터 그렇게 아저씨였을까?

내 인생에 가장 익숙한 아저씨는 바로 우리 아빠다. 뭐 남들인들 안 그러랴만. 아빠는 아저씨 그 자체다. 여기서 말하는 아저씨의 특징이란 첫째, 호기롭다. 둘째, 실속은 없다. 셋째, 호기로운 아저씨의 실속 없음을 메꾸는 건 결국 가족이 된다. 넷째, 소심하다. 다섯째, 큰 소리 친다. 쓰다보니 빈대떡 신사가 따로 없네. 여섯째, 의리에 죽고 의리에 산다. 일곱째, 의리에 죽고 의리에 사는 인간이란 정신 못 차린 인간이다. 아, 아빠를 비난하고 싶은 건 아니다. 그 아저씨가 바로 이 아저씨인데-.-;;; 무슨 대단한 비난을 하겠나, 나는 그저 좀 탐구하고 싶은 거다. 나는 누구인가…

오래 전에 메롱과 처음 사귀었을 때, 메롱은 나를 좀 여자처럼 보이도록 꾸미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그 때 내 사진을 보면 큭큭, 쑥스럽게도 예쁘다. 정말 나도 못 알아볼 정도다. 생애 최초 내집마련 대출이 아니라, 생애 최초 최장 머리카락을 뽀글뽀글 볶아서 늘어뜨리고 짙은 눈화장에 나보다 작은 메롱에게 기댄 쑥스러운 자태까지 아아 @.@ 정말 얼굴이 빨개지지 않고는 쳐다보기가 어렵다. 다행히 그 때 사진은 거의 없다. 움… 메롱과 쌩전쟁의 3년 반을 보내고 헤어진 후에 내가 갖고 있던 것은 다 없앴다. 작년에 혼인한 친구 집에 갔다가 대학 졸업식날 같이 찍은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 사진을 못 봤으면 그런 모양을 하고 돌아다닌 것을 이렇게 자세히 기억할 리가 없다. 일상 생활에 대한 기억력이라면 난 새대가리다.

메롱의 노력과 사랑받으려는 나의 각고의 노력으로 내 겉모양은 그렇게 남세스런 모습이었지만, 사실은 그 때 ‘우리는 레즈비언 커플이 아니라 게이 커플인 거 같다’는 얘기를 하기도 했다. 우리 내면에는 남자가 있었다. 우리 내면에는 아주 강한 남자가 있다. 메롱의 남자와 나의 남자가 좀 다르긴 하지만 어쨌든 강한 남자들이다.

메롱은 점잖고 깔끔하고 남의 눈을 의식하는 편이다. 내 내면에 있는 남자는 메롱의 남자보다 훨씬 지저분하고 거침 없고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는다. 별자리 점을 보면 내가 속한 별자리 사람은 심하게 뻔뻔스럽고 심하게 부끄러움을 모른다고 하는데, 별점이 다 맞진 않겠지만 이 말은 나한테 들어 맞는다. 한 마디로 아저씨다. 나의 아저씨를 메롱은 참 힘들어 했다. 이제는 그런 메롱의 마음이 이해가 간다. 그 때는 내면의 남자에 대한 자각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나도 그런 메롱을 견디기 힘들었다. 갑자기 여러가지가 생각난다. 떠오른다. 메롱이 내 내면의 아저씨를 너무 견디기 힘들어 해서 나는 오랫동안 거세당한 느낌에 시달리기도 했다. 말하자면 묘하지만…

묘한 느낌을 걷어내고 다시 이야기를 하자면, 그 때 나에게는 내면의 남자, 내면의 아저씨에 대한 인식이 없었다. 내가 남자다운 것은 그저 나의 특징이나 성격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메롱이 나를 견디기 힘들어 하고 내 성격을 싫어하고 나의 아저씨스러움을 너무너무 구박해댈 때, 내게는 아저씨스러움이 아니라 인간다움이었기 때문에, 나는 사랑할 수 있는 힘을 잃었다는 느낌에 시달렸다. 아저씨스러움은 아마 어떤 면에서 내 사랑의 자발성과도 연결이 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그 때를 생각하면 한스럽다… 아직도 가슴이 아프다. 그런 과정을 생각해보면 그 때는 힘들 수 밖에 없었다는 것, 그리고 결국은 헤어질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 스스로 납득이 간다. 나는 어리석었고 메롱은 이해심이 없었다.

나는 아직도 어리석을 것이고 메롱은 아직도 이해심이 없다. 이제 달라진 것은 나는 내가 어리석다는 것을 알고 메롱은 자신이 이해심이 없다는 것을 전보다 좀 더 많이 실감한다는 점이다…라고 생각한다.

사실 나의 아저씨스러움의 기원을 찾으면서 엄마 얘기를 쓸 생각이었는데 하다보니 옆길로 빠져서 삼천포로 해서 남해 구경을 한 것 같다. 엄마는 젊고 예뻤다. 엄마 말로는 연년생인 동생과 나를 양손에 하나씩 잡고 길을 걸어가도 남자들이 줄줄 따라왔다고 한다. 때는 요즘 같은 21세기가 아니라 새마을 운도 열심히 하고 아직도 먹을 것이 모자라던 1970년대였으니까, 애 손 잡고 가는 아줌마가 그렇게 인기가 있었다는 건 엄마의 미모를 설명해 줄 만하다는 거지. ㅋㅋ

엄마는 꼬리를 편 화려한 공작새처럼 남의 눈을 끄는 데가 있었다. 동생이 닮았다. 가끔 집이 아닌 곳에서 동생을 만나면 좀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 저는 편하게 아무거나 입고 왔다고 하는데도 왠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힘이 빡 들어간 것 같은 느낌이 들고, 그런 사람과 나란히 길을 걷는 게 쑥스럽게 느껴진다. 그런 느낌을 뭐라고 해야 할까… 자기가 예쁘고 남의 눈길을 잡아 끈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는 사람과 나란히 걸어가는 느낌을.

한눈에 남의 눈을 사로잡는 매력은 섹시함이다. 나는 섹시함이 왜 그렇게 부끄러울까? 쑥스러울까? 숨고 싶을까? 사실 십년 전 메롱을 사귈 때 내 사진을 봐도 그런 느낌이다. ‘어휴~! 내가 저러고 다녔단 말이야! 완전히 벌거벗은 거 같군!’ 섹시한 매력이 겉으로 드러나면 나는 마치 벌거벗은 듯한 느낌이 든다.

음식 중독이라고 스스로 진단한 나는 가끔 그런 그림도 떠올린다. 뚱뚱한 몸 속에 숨겨진 조각처럼 아름다운 내 모습. 세상이 안전하지 않기 때문에 나는 외모를 위해서도 힘을 위해서도 거대해 보이는 체구를 위해서도 나를 부풀려 주고 안전하게 숨겨주는 살을 포기할 수 없다는 느낌, 살 속에 숨은 내 모습. 세상이 얼마나 어떻게 안전한 곳이 되면 나는 식탐을 버릴 수 있을까…?

엄마는 예뻤다. 예쁘다는 말은 젊은 엄마를 꾸며주기에는 너무 순진한 말인 것 같지만 그래도 아름답다는 말이 주는 추상적인 느낌보다는 낫다. 엄마는 예뻤다. 화려했다. 아빠는 엄마가 저녁마다 화장을 하고 기다려 주기를 바랬고 같이 외출할 때면 차려 입고 나오는 엄마를 보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엄마가 머리 자르는 걸 아빠가 너무 싫어해서 꽤 오랫동안 긴 생머리였다. 나중에 귀찮다고 잘라서 파마를 했을 때는, 그리고 머리를 한 번씩 자르고 파마를 할 때마다, 집은 초상집이 됐다.

엄마는 눈두덩이를 파랗게 화장을 해도 천박해 보이지 않고 우아해 보일 정도로 얼굴이 괜찮았던 것 같다. 나이가 들어서 내가 화장을 시작했을 때도 나는 눈에 주로 회색, 은색, 파란색을 발랐다. 살 때문에 눈두덩이 부어서이기도 했지만 다른 친구들처럼 분홍색이나 주황색 같은 색은 바르게 되지 않았다. 그것도 보고 배운 것이라고. 쭙.

엄마는 예뻤다. 예쁜 엄마에게 나는 보살핌을 받는다는 느낌을 별로 못 받았다. 왠지 알 수 없다. 엄마는 날 열심히 보살폈는데. 엄마는 누구보다도 나를 많이 지원해 주었다. 살림이 없어도 책은 항상 전집으로 사주었다. 전과는 안 사주었지만 금성출판사에서 나온 학습 참고서를 사주었다. 전과처럼 과목별로 진도 따라 일일이 짚어주는 것이 아니라 저학년용, 고학년용 정도로 구분해서 나온 포괄적인 학습참고서였던 것 같다. 작은 학습 백과사전 비슷한 것이었달까. 전과가 아니라 그런 책을 사준 것을 보면 엄마는 배운 것에 비해서는 훨씬 교양도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어릴 때는 어린이용 책이 요즘처럼 많지 않았다. 요즘처럼 색깔 좋고 그림 좋은 동화책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때는 책을 샀다 하면 다들 전집으로 샀다. 후후… 우리 동네서는 다 그렇게 했다. 그러니까 전집을 사거나 아니면 책을 사 읽지 않거나 둘 중 하나였다. 아직도 계몽사에서 나온 50권짜리 세계 명작 동화가 생각난다. 하드 커버에 책 내지는 갱지였는데, 책 표지와 요즘 같으면 사전에나 딸려 있는 책 껍데기는 알록달록 총천연색이었다. 50권을 주욱~ 꽂아놓고 보면 무지개처럼 색이 진했다 흐렸다 하면서 다음 색으로 연결되었다. 책을 사면 책꽂이도 줬다. 읽기를 향한 나의 총천연색 환타지에 불을 붙이고 외국문학 취미를 길러준 전집이다. 나는 한 번 읽고, 두 번 읽고, 세 번 읽고, 그랬다.

내가 열심히 읽기도 했지만, 엄마는 정말 책이라면 아끼지 않고 사주었는데, 내가 뭘 한다고 해도 늘 내 편을 들어주었는데. 엄마가 안 해준 것 1. 걸스카우트 가입비 2만원을 안 줬다.(초등학교 2학년) 2. 기타 학원 원장이 맘에 안 든다고 기타 학원에 안 보내줬다.(초등 고학년? 중학생?) 3. 대학에 들어왔는데 책값은 안 주고(사실 줘야 된다는 걸 몰랐다. 그냥 고딩때처럼 교과서 한 번 사주면 끝인 줄 알았던 거다) 살 빼라고 30만원 주고 어디서 상표도 안 붙은 야채효소를 사왔다. 그 엄청난 돈을 그런 데다 쓰다니… 눈물이 쭉 나왔다.

대학 2학년 여름 방학에 혼자서 유럽 배낭 여행을 갈 때도 엄마가 돈을 줘서 갈 수 있었고, 산에 다닌다고 주말마다 밖으로 나돌아다닐 때도 역시 격려해준 건 엄마였다. 엄마는 늘 나를 격려해줬다. 그런데 왜 나는 엄마한테 보살핌을 받았단 느낌이 없는 걸까? 왜 화려한 여자, 섹시한 여자는 위험한 여자가 된 걸까?

그리고 나는 왜... 내 모습을... 섹시한 내 모습을 심하게 감춰야 한다는 느낌이 드는 걸까?
일반
빠알간 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