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뤼미에르에 간 삼순이

[까페 뤼미에르]라는 일본 영화를 보면 남자 친구의 아이를 임신했지만 남자가 마마 보이라서 결혼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여자가 나온다. 여자는 도꾜에서 혼자 사는데 대만(이었던 것 같다)으로 출장을 자주 가는 직업이다. 남자 친구는 대만 사람(인 것 같다)이고 부모가 부채 공장인지 우산 공장인지를 하고 지독한 마마 보이라고 했다. 남자 친구는 영화에 등장하지 않는다. 출장을 다녀온 다음에 부모의 집에 찾아가서 (그날은 몹시 덥고 습한 여름날이었다) 임신했다는 얘길 한다. 왜 그 남자와 결혼할 생각을 안 하느냐는 말에 남자가 너무 마마보이라서 그렇다고 했다.

여자는 고물상인지 헌책방인지 헌 레코드 가게인지를 하는 남자와 친구다. 둘은 연신 어울려 다닌다. 남자는 어떤 소리를 계속 녹음한다. 어울려 다니기는 하지만 설레임이 있는 관계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어울려 다니고 좋아할 만한 선물을 하거나 한참 연락이 없으면 찾아와서 혼자 아파 누워있는 것을 보살펴 준다.

두 사람이 여느 때처럼 어느 기차역인지 지하철 역에서인지 만나기로 했을 때 여자는 갑자기 현기증을 느껴서 약속 장소에 가지 못한다. 몸이 안 좋냐는 걱정에 임신을 해서 그런 것 같아, 라고 말한다.

남자는 너에게 결혼하자고 하고 싶었는데 뭐, 이런 말을 한 것 같다.

그 여자에게 대만에 있는 남자 친구는 어떤 의미였을까?

도꾜에 있는 남자는 또?

어떤 사람과는 잠자리를 같이 하지만 결혼할 생각같은 것은 없고, 어떤 사람과는 취미 생활을 같이 하면서 서로 꽤나 알아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막상 남자 친구가 있다는 얘기도 하지 않았다.

도꾜와 대만으로 분리된 두 공간과 각각의 공간에 있는 남자들.

일상이 있는 도꾜와 출장이 있는 대만. 남자 친구를 사귈 정도로 잦은 출장이지만 역시 일상을 같이 하고싶은 생각은 없는 남자다.

왜 그 여자와 그 영화가 갑자기 생각이 났는지 잘 모르겠다.

오늘 엄마 집에서 종일 뒹굴고 있는데, 내가 지금 바라는 것은 뭔가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이라는 생각을 하던 중이었다. 내가 연애를 하면서, 아니지, 내가 사람을 사귀면서 쭉 하던 생각도 뭔가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을... 보호 받기를 바란 마음이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중학교 1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그런 말을 했다. 나이가 들고 결혼을 해도 안정이라는 것은 없다고. 삶에 안정이라는 것은 없다고. 나는 정말 믿을 수가 없었다. 지금은 믿고 싶지 않지만 아마도 믿어야 하지 않는가, 하는 훨씬 수용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

가족을 원한다는 것은 결국... 보호 받기를 원한다는 것 아닐까?... 보호 받고 있다는 느낌을 원한다는 것 아닐까?... 이렇게 되면 꽤나 삼순이 비슷한 바람인 것 같다... 이 풍랑 많고 굴곡이 많은 인생을 삶을 함께 헤쳐나갈 누군가를 원한다고.

보호란 일방적인 것은 아니다. 단지 '있음'으로 해서 줄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내가 보호할 누군가가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보호받을 수도 있다. 가족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하지만 영화에 나오는 그 여자는(그 여자가 부모의 집에 가서 하는 행동은 나랑 꽤 비슷한 것 같았다) 그런 가족을 원하는 것 같지 않았다. 그런 여자가 아이를 낳으면 아이와는 어떤 가족이 될까? 가족을 전혀 원하지 않는 것 같은 그 여자는 왜 아이를 낳으려고 하는 것일까?

애인의 보호를 바라지 않는 여자. 친구와 일상을 공유하는 여자. 태어날 아이를 기다리는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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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알간 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