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2006-08-22
요즘은 왠지 가슴께에서 물이 찰랑찰랑 거리는 느낌이다. 내 몸 속에서 파도가 넘실넘실대는 것도 같고 몸이 온통 물로 가득 차서 걸을 때마다 찰랑찰랑하는 것 같다.
힘 빼고 살고 싶어.
엄숙주의를 버리고 싶어.
다시 떠오르는 쪽지고 소복 입고 한 무릎을 세워 앉은 엄숙한 노부인, 이제는 머리도 하얗게 세었다. 그리고 땀을 흘리며 접신 상태에 빠져서 북을 치는 여자. 오방색 옷을 입고 방방 뛰면서 북을 치는 여자가 있다. 나는 누구일까?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머리도 좋고 공부도 잘 했고 지금은 일도 잘 하는 여자. 그러나 일상생활감각이 떨어지는 여자. 어딘가 빈 곳이 있고 서른 중반의 나이에도 곧잘 어리광을 부리는 여자. 결혼에 목매단 여자. 절박하게 남자를 찾아 헤매는 여자가 게이다를 팍팍 돌리고 바이브레이션을 팍팍 준다면. 당신은 그 여자에게 커밍아웃하겠는가? 이를테면 나는 그 여자에게 ‘너도 게이일지 몰라’라는 말까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나 자신이 커밍아웃을 하는 것만으로도 그 여자에게는 있는지 없는지 막연하던 세상의 한쪽 문을 열어주는 것이라고. 그리고 그 여자가 영원히 도망갈 수 없는 질문도 하나 열어주는 것이라고. 혼자만 알고 있을 때와 다른 사람을 알 때 세상의 모습은 확연히 다르다. 다를 수 밖에 없다. 어쩌면 너무 막연해서 나의 친구, 그 여자는 자신을 속일 필요조차 없었을는지 모른다. 아마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커밍아웃을 하면 얘기는 달라진다. 그 여자는 지금 나를 다시 안 보는 길을 갈 수도 있다. 그러나 다시는 자기자신을 모른 척할 수 없을 것이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뭐 아니면 어떻구? 내가 잃을 것은 없다.
정서적인 일상생활의 면에서 – 대외적으로 그 여자는 잘 살고 있다. 그러나 30대 중반 그 여자의 내면은 공허하고 다 못 자란 아이는 늘 뗑깡을 놓고 있다. – 그 여자가 성숙한 인격을 보여주지 않는다고 해서 커밍아웃을 망설이는 것은 과연 공정한 일일까? 그 여자가 어리숙하고 불안정하기 때문에 그 여자를 위해서 커밍아웃을 안 해줘야 하는 걸까? 이런 생각조차 뭔가 차별의 냄새가 나는 것 같은데…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자신을 굳게 이성애자로 믿고 있으며 결혼에 절박하게 목을 매는 여자를, 그러나 결혼과 이성을 향한 뜀박질이 모두 뭔가 공허하게만 보이는 그 여자에게 커밍아웃을 하겠는가?

관심과 애정을 강하게 요구하는. 너는 누구인가?

나는 당황스럽다. 어떤 레즈비언 여자는 주변에 맘에 드는 여자가 있으면 일이반을 가리지 않고 일단 대시하고 본다. 또는 자기가 대시하고 싶은 여자가 생기면 그 여자가 이반일 것이라고 믿어버린다. 나는, 별로 대시하고 싶지 않은 여자들이 나에게 관심과 애정을 요구한다,고 느낀다. 나는 그 여자들에게 그런 식의 관심은 별로 없는데 그 여자들은 어째서인지 나에게 강하게 자신을 어필한다. 자기를 사랑해주고 아껴주고 관심을 기울여 달라고. 당황스럽다. 그네들은 마치 타고난 권리인양 나에게 요구한다. 나는 잘 모르겠다. 나의 어떤 면이 그런 여자들을 끌어들이는지. 나는 원치 않는데도. 그네들의 그런 요구가 몹시 부당하게 느껴지는데도. 당황스러운데도. 잘 모르겠다. 왜 나에게 그렇게 요구하는 건지… 하긴 나는 요구를 많이 받는 인간이긴 하다. 단지 그들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일이반을 막론하고 내 주변의 인간들은 나에게 쉽게 요구하고 쉽게 기대고 쉽게 침범한다. 내가 생긴 것은 그렇게 하라고 여지를 많이 주는 인간처럼 생겼지만 난 사실 그런 인간이 아니라서 힘들다. 어쨌든 나는 그들이 자기가 하는 행동의 의미와 목적을 좀 알고 움직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기가 하는 행동의 책임에 대해서 생각을 좀 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이 찰랑거린다. 내 가슴께에서. 찰랑찰랑. 찰랑찰랑. 왜 이런 때 일은 한다그래서 이렇게 고생을 하는지 모르겠다. 평생 백수, 딴따라 팔자여야 하는데, 노가다 팔자를 뒤집어 쓰고 딴따라를 하려니 힘들다. ㅎㅎ 그게 인생이려니 해야겠지.

여튼, K언니, 언니 생각이 많이 나네, 오늘따라. 가을 타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사람들이 나를 집적거릴 때 언니가 있다면 나는 좀 방패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일 텐데. 언니가 꼭 그 자리에 없어도. 나 혼자만으론 방패가 안 되나부지? ㅎㅎ
일반
빠알간 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