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11-13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의 홍보 엽서를 본다. 엽서 속의 조승우 얼굴은 그저 잘생겨 보일 뿐이다. 무대에서 보여준 것과 같은 광기는 저 사진에는 드러나지 않았다.
누구에게나 나름대로 광기가 있다. 그 광기를 풀어놓을 곳, 또는 표현할 곳을 제대로 찾지 못하면 인간은 타락하게 마련이다. 어디서 들어본 듯한 말이다. 어서 주워듣고 읊어대는지도 모르겠다. 그러거나 어쨌거나 여전히, 광기를 제대로 풀 곳을 찾지 못하면 인간은 타락하게 된다.
“번역은 내가 알고 있는 가장 세밀한 독서 방법이다. 책을 읽고 번역하면서 우리는 해석한다. 번역가는 원문에 담긴 모든 불완전함을 보고, 모든 논리의 부족과 실수, 그리고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 대목들을 본다. 번역가의 눈은 무자비하고 타협하지 않는다.”
--알베르토 망구엘, 아르헨티나의 번역가이자 작가, [번역은 내 운명] 138쪽에서 재인용
번역가의 눈은 무자비하고 타협하지 않는다.
나는 오랫동안 내가 몰인정하고 잔인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몰랐고 모른척했다. 나는 잔정도 없다. 눈 앞에 있으면 간이라도 빼어줄 듯 하지만 그건 그저 몸에 익은 습관일 뿐, 또는 어느 정도는 진심이 들어있다고 하더라도, 인간관계에 너무 빨리 지쳐버리는 내 모습을 보고 있자면, 역시, 나는 정이 있어도 실현할 힘이 없는 인간이다.
나의 다정은 늘 병이 되고 도무지 약이 되지 않는다. 어디서 어떻게 언제부터 잘못된 것인지 알 수 없다. 나의 다정은 늘 병이 된다. 늘. 지겹도록. 일관되게. 나에게도 상대방에게도 도움이 되질 않는다. 차라리 정이 없는 게 낫다. 정 없이 행동하는 게.
무자비한 행동이나 사고방식은 적어도 상대방에게 혼란을 주지는 않는다. ‘저 인간은 늘 저렇게 이기적이지.’ 그게 낫다. 때로는 이기적이고 때로는 이타적인 것보다.
나는 무자비하고 잔혹하고 타협하지 않는다. 이상이 높아서가 아니라 꼴통이라서다. 꼴통에 외골수로 태어난 주제에 이타적인 체 하느라고, 착한 여자인 체 하느라고, 범생인 체 하느라고, 효녀인 체 하느라고 인생을 다 흘려보냈다. 이제라도 그렇게 살면 안 되겠다.
할머니 제사에 못 간다고 아빠한테 전화하는 내 모습에 역겨움을 느낀다. 사실의 전달이 문제가 아니라 말을 하는 내 태도가 역겹다. 할머니 제사에 못 가서 너무 유감스럽다는 듯이 말한다. 사실은 나는 이미 시집 간 딸에게 제사에 오라고 요구하지 않는 것처럼 나에게도 제사 출석을 당연히 기대하지 않아 주기를 바라고 있다. 내 마음이 이렇다면 적어도, ‘너무 유감스러워요, 못 가게 되어서’라며 죄송스러움에 몸을 비비 꼬지는 않았어야 한다. 담담하게 말할 수는 있어야 한다.
나는 누구를 위해서 가장하는 걸까? 누구를, 무엇을 위해서?
나는 부모의 부모 노릇도 그만둬야 한다. 그들은 그들의 삶을 그들 나름대로 이기적으로 살았고, 내가 어떻게 한다고 해도 그 사실이, 그 과거가, 그 과거와 얽힌 나의 과거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이기적으로 또는 이타적으로, 최선을 다해, 할 수 있는 힘을 다해, 살아남기 위해서, 이기적으로 때로는 이타적으로, 자기자신을 위해서 때로는 자식을 위해서 때로는 남편을 위해서 때로는 아내를 위해서, 대부분은 자기자신을 위해서, 대부분은 이기적으로 살았고, 그 과거가, 그 과거와 얽힌 나의 과거도, 내가 어떻게 한다고 해도 달라지지 않는다. 달라질 수 없다. 나는 나의 삶을 살자. 이기적으로. 되도록 이기적으로. 스스로 이타적이라고 착각하지 말고, 피해의식에 빠지지 말고, 그저 내 두 발로 굳건히 서기 위해서,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내 두 발로, 가능한대로 내 온 힘을 다해서, 나의 모든 자원을 동원해서, 내 온 힘을 다해서,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내 두 발로, 일어서자.
스스로 이타적이라는 착각에 빠져 허우적거리지 말자. 사방에 의지한 이타적인 사람보다는 자기 두 발로 일어 선, 자기 힘으로 버티고 선 이기적인 사람이 되자.
나는 잔혹하고 모진 인간이다. 오랫동안 그런 내 모습을 모른 척 했다. 여태 나와 사귄 사람들은 그런 나의 이중성에 고통 받았을 것이다. 지금은 그 사람들에 대한 연민도 내려 놓자. 내 두 발로 서기 위해서 나는 아무래도 좀 더 잔혹해져야 할 것 같다. 좀 더 독해져야 할 것 같다. 바보 같이, 나답지 않게 헤헤거리는 외모를 벗기 위해서 나는 좀 더 와신상담, 절차탁마.
자기 안의 광기를 풀어놓을 곳을 적당한 곳을 찾지 못하면 인간은 타락한다. 나는 지금 적당한 곳을 찾은 것 같다. 나의 잔혹함, 나의 광기, 나의 무자비함, 나의 칼날을 휘두를 곳을. 물러서지 말자. 약해지지 말자. 무릎 꿇지 말자. 약한 척 말자. 이를 꼭 물고, 나는 안다. 내가 누구보다 잔혹하다는 것을. 내가 여기서부터 일어설 수 있다는 것을. 기어코 일어설 수 있다는 것을.
내 평생 두려워한 미친년이 되어 보자. 마음껏. 성질껏.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의 홍보 엽서를 본다. 엽서 속의 조승우 얼굴은 그저 잘생겨 보일 뿐이다. 무대에서 보여준 것과 같은 광기는 저 사진에는 드러나지 않았다.
누구에게나 나름대로 광기가 있다. 그 광기를 풀어놓을 곳, 또는 표현할 곳을 제대로 찾지 못하면 인간은 타락하게 마련이다. 어디서 들어본 듯한 말이다. 어서 주워듣고 읊어대는지도 모르겠다. 그러거나 어쨌거나 여전히, 광기를 제대로 풀 곳을 찾지 못하면 인간은 타락하게 된다.
“번역은 내가 알고 있는 가장 세밀한 독서 방법이다. 책을 읽고 번역하면서 우리는 해석한다. 번역가는 원문에 담긴 모든 불완전함을 보고, 모든 논리의 부족과 실수, 그리고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 대목들을 본다. 번역가의 눈은 무자비하고 타협하지 않는다.”
--알베르토 망구엘, 아르헨티나의 번역가이자 작가, [번역은 내 운명] 138쪽에서 재인용
번역가의 눈은 무자비하고 타협하지 않는다.
나는 오랫동안 내가 몰인정하고 잔인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몰랐고 모른척했다. 나는 잔정도 없다. 눈 앞에 있으면 간이라도 빼어줄 듯 하지만 그건 그저 몸에 익은 습관일 뿐, 또는 어느 정도는 진심이 들어있다고 하더라도, 인간관계에 너무 빨리 지쳐버리는 내 모습을 보고 있자면, 역시, 나는 정이 있어도 실현할 힘이 없는 인간이다.
나의 다정은 늘 병이 되고 도무지 약이 되지 않는다. 어디서 어떻게 언제부터 잘못된 것인지 알 수 없다. 나의 다정은 늘 병이 된다. 늘. 지겹도록. 일관되게. 나에게도 상대방에게도 도움이 되질 않는다. 차라리 정이 없는 게 낫다. 정 없이 행동하는 게.
무자비한 행동이나 사고방식은 적어도 상대방에게 혼란을 주지는 않는다. ‘저 인간은 늘 저렇게 이기적이지.’ 그게 낫다. 때로는 이기적이고 때로는 이타적인 것보다.
나는 무자비하고 잔혹하고 타협하지 않는다. 이상이 높아서가 아니라 꼴통이라서다. 꼴통에 외골수로 태어난 주제에 이타적인 체 하느라고, 착한 여자인 체 하느라고, 범생인 체 하느라고, 효녀인 체 하느라고 인생을 다 흘려보냈다. 이제라도 그렇게 살면 안 되겠다.
할머니 제사에 못 간다고 아빠한테 전화하는 내 모습에 역겨움을 느낀다. 사실의 전달이 문제가 아니라 말을 하는 내 태도가 역겹다. 할머니 제사에 못 가서 너무 유감스럽다는 듯이 말한다. 사실은 나는 이미 시집 간 딸에게 제사에 오라고 요구하지 않는 것처럼 나에게도 제사 출석을 당연히 기대하지 않아 주기를 바라고 있다. 내 마음이 이렇다면 적어도, ‘너무 유감스러워요, 못 가게 되어서’라며 죄송스러움에 몸을 비비 꼬지는 않았어야 한다. 담담하게 말할 수는 있어야 한다.
나는 누구를 위해서 가장하는 걸까? 누구를, 무엇을 위해서?
나는 부모의 부모 노릇도 그만둬야 한다. 그들은 그들의 삶을 그들 나름대로 이기적으로 살았고, 내가 어떻게 한다고 해도 그 사실이, 그 과거가, 그 과거와 얽힌 나의 과거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이기적으로 또는 이타적으로, 최선을 다해, 할 수 있는 힘을 다해, 살아남기 위해서, 이기적으로 때로는 이타적으로, 자기자신을 위해서 때로는 자식을 위해서 때로는 남편을 위해서 때로는 아내를 위해서, 대부분은 자기자신을 위해서, 대부분은 이기적으로 살았고, 그 과거가, 그 과거와 얽힌 나의 과거도, 내가 어떻게 한다고 해도 달라지지 않는다. 달라질 수 없다. 나는 나의 삶을 살자. 이기적으로. 되도록 이기적으로. 스스로 이타적이라고 착각하지 말고, 피해의식에 빠지지 말고, 그저 내 두 발로 굳건히 서기 위해서,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내 두 발로, 가능한대로 내 온 힘을 다해서, 나의 모든 자원을 동원해서, 내 온 힘을 다해서,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내 두 발로, 일어서자.
스스로 이타적이라는 착각에 빠져 허우적거리지 말자. 사방에 의지한 이타적인 사람보다는 자기 두 발로 일어 선, 자기 힘으로 버티고 선 이기적인 사람이 되자.
나는 잔혹하고 모진 인간이다. 오랫동안 그런 내 모습을 모른 척 했다. 여태 나와 사귄 사람들은 그런 나의 이중성에 고통 받았을 것이다. 지금은 그 사람들에 대한 연민도 내려 놓자. 내 두 발로 서기 위해서 나는 아무래도 좀 더 잔혹해져야 할 것 같다. 좀 더 독해져야 할 것 같다. 바보 같이, 나답지 않게 헤헤거리는 외모를 벗기 위해서 나는 좀 더 와신상담, 절차탁마.
자기 안의 광기를 풀어놓을 곳을 적당한 곳을 찾지 못하면 인간은 타락한다. 나는 지금 적당한 곳을 찾은 것 같다. 나의 잔혹함, 나의 광기, 나의 무자비함, 나의 칼날을 휘두를 곳을. 물러서지 말자. 약해지지 말자. 무릎 꿇지 말자. 약한 척 말자. 이를 꼭 물고, 나는 안다. 내가 누구보다 잔혹하다는 것을. 내가 여기서부터 일어설 수 있다는 것을. 기어코 일어설 수 있다는 것을.
내 평생 두려워한 미친년이 되어 보자. 마음껏. 성질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