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불면

2006-12-22
커피 때문이다. 잠을 잘 수 없다. 마감을 앞두고, 늘 그렇지만, 몸에 힘이 빠져서 종일 커피만 마시고 싶었다. 아침에 두 잔, 오후에 커피 우유 하나, 저녁 먹고 커피 우유 두 개, 설탕인지 커피인지. 여튼 잠이 안 오는 걸 보니 생각보다 커피가 많이 들었나?

며칠 후면 서른 다섯이 된다. 서른 다섯 살에는 아마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게 되겠지… 겁도 없는 것… 그래도 참을 수 없는 것은 참을 수 없다. 일찍 자고 늦게 일어나는 게 좋아… 마음이 없는 곳에 죽자고 몸을 끌고 다녀봤자다… 한계가 있다… 도저히 몸을 끌고 다닐 수 없는 때가 온다. 생각보다 빨리. 몸은 노예가 아니기 때문에…

내 몸과 내 마음은 너무 일치해준다… ㅎㅎㅎ 속이 터지면 몸져눕는다. 도저히 어떻게 해볼 수가 없다. 동생은 정신병이라고 한다. 뭐, 정신병이 별건가… 그런 정신병이라면 건전하다고 생각한다. 속이 터지면 몸져눕는 몸으로 정규교육 다 받아, 입시지옥도 뚫고 나왔고, 직장도 여러 군데 다녔고, 지금 다니는 직장에는 3년 넘게 버텨줬으니 장하다 해줘야지.

서른 다섯, 내년이면 서른 다섯이라고 생각하니 많은 것을 포기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움… 많은 것을 포기하겠다는 인간이 직장은 그만두겠다고 하는 구나… 그러니까 일상적인 기준으로 나를 보지 말란 말이야… 정상적인 기준으로는 나를 해석할 수 없다구…

첫째, 나는 정상이 아닌데다가 둘째, 정상이길 원치도 않는다… 정상이라는 것은 곧 내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살라는 말이니까… 정상이길 거부한다. 당신들의 정상…

이제라도 컴아웃 해야할까 고민하게 만들었던 그녀는 지금 휴직 중이다. 일년…이라고 한다. 그녀가 휴직을 하고 있는 동안에 나는 퇴사하게 될 것이다. 그때 문자메시지나 보내려고 한다.

오늘은 몸이 아파서, 아마도 저녁으로 커피우유를 두 개나 마신 탓이겠지, 다른 날보다 야근을 일찍 끝내고 들어왔다. 그렇지 않으면 내일은 금요일인데 정말 회사에 못 나갈 것 같았다. 동성애는 기본, SM 성향에다 로리타 콤플렉스까지 자극하는 만화 [러브리스]를 보고, 이누야샤를 보고, 뒹굴거리다가 자기 전에 전화기를 충전기에 꽂으려고 봤더니 문자가 와 있었다. 나를 도발해 주시는 부장님이 오늘은 아프냐, 기분이 안 좋으냐 물으시더군. 시간을 보니 내가 퇴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흠…

어쩌시려는 것인지…

정말로, 어쩌시려는 것인지… 단지 관리차원인지, 내가 계속 오바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 뭐가 됐든, 뭐가 됐든 중요한 것은 내 마음, 그리고 내 마음은 그녀에게 별로 끌리는 바가 없다. 만날 그녀의 도발에 넘어가기는 하지만, 발끈하기는 하지만… 이제는 그것도 피곤하다. 어제는 정말 한계에 다다른 느낌이었다. 나는 혼란을 주는 사인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녀의 도발은 나를 향한 것일까, 진지한 것일까, 아니면 그 여자는 원래 그런 여자일까? 다람쥐 쳇바퀴를 도는 구나. 다시 한 번, 중요한 것은 나의 마음, 나는 넘어가려는 마음이 없다. 그녀는 회사에 바쳐진 인생, 나는 죽는 그날까지 회사에는 바쳐질 수 없는 인간, 이미 고속승진이라고 할만큼 승진한 그녀이지만 사실은 회사에 바쳐진 불행한 인생 때문에 우울증을 겪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하지만 그녀는 그런 우울증에서 빠져나오려는 생각조차 않고 있다. 그저 회사에 바쳐진 인생이 다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내 앞가림도 못하는 주제에 남을 제대로 돌볼 자신이 없다. 그녀를 그 우울증에서 끌어낼 자신이 없다. 그녀와 회사를 분리할 자신이 없다. 그런 건 내가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인지 모르지만… 어쨌든 장애가 많다는 건 마음이 없단 소리다, 한 마디로.

마음은 없지만 저런 뜻밖의 문자를 받으면 싱숭생숭하기는 하다. 정말 저 여자는 뭘까? 저 여자가 뭘까,를 고민하는 나는 뭘까? 이제는 몸도 마음도 힘들다. 머리통이 생각하라고 있는 게 아니라 죽이라도 끓이라고 있는 것 같다…

너무너무 의지하고 싶은 마음과 이 자유를 무엇에도 양보할 수 없다는 마음… 과연 이 자유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뭐가 됐든 나는 나와 함께 하루를 정리할 배우자를 원해… 오늘 일을 얘기하고 하루를 함께 정리할 수 있는, 안도할 수 있는 배우자를 원하는데… 원하는데… 원하는데… 언제나 이렇게 침을 질질 흘리면서 사는 것도 지겨워…
일반
빠알간 뽀 1

댓글 1개

허무한 상념님의 코멘트

허무한 상념
빠알간 뽀님! 솔직하고도 꾸밈없는 당신의 글을 보며, 많은 위안을 얻습니다. 음지에서 뿐만 아닌 양지에서도 우리가 언젠가 이런 이야기 할 수 있는 날을 꿈꿔 봅니다. 사랑을 찾아헤메는 끝 언젠가, 꿈꾸는 사랑을 만날 수 있을까요? 그것이 꼭 어떤 대상이 아닐니라도 말이지요. 내 자신일 수도 있겠지요. 글 또 올려주세요.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