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아무 때나 전화해도 또는 전화를 받아도 이상하지 않은 친구는 딱 둘이다. 둘 중 하나랑 싸웠더니 인생이 너무 처량해졌다. 그래서 요즘에는 파란색 친구에게 가끔 자주 전화를 한다. ‘요즘 자주 전화하는 걸 보니 너 요즘 한가한가 보다?’

친구를 새로 사귄다는 게 너무 어렵다. 있던 친구들도 이런저런 이유로 멀어지는데. 딱 둘 있는 친구 중에 하나가 결혼을 하고 좀 더 한가한 직장으로 직장으로 옮겼다. 직장이 가까워서 만나기는 전보다 훨씬 자주 만나는데 전화 통화는 잘 하지 않는다. 대학 때까지는 긴 통화도 곧잘 하곤 했는데. 서른이 넘어 언젠가부터는 전화로 긴 통화를 하는 일은 거의 없어졌다. 전화비도 신경 쓰이고 힘도 너무 든다.

마주 보고 앉아서 말을 안 하면 이상하니까 계속 말을 하긴 하지만 사실은 친구들을 만났을 때도 말 없이 차만 마실 수 있다면 좋겠다. 나는 수다장이 캐릭터이기 때문에 갑자기 입을 닫을 수는 없지만 정말 가능하면 말을 좀 안 했으면 좋겠다. 긴장하거나 마음이 편치 않으면 수다가 더 늘어나니 정말 피곤한 성격이다.

하지만 말을 하지 않고 새로운 친구를 사귄다는 건 더 어렵지 않나?

병가 낸 직장 동료(우습구나, 계속 이런 식으로 부르다니, 하지만 전에 붙인 별명도 다 잊어버려서 이제는 등장인물들에게 별명 붙이기도 귀찮다. 조금만 지나면 기억을 못하니.)하고는 꽤 친했다. 그녀가 먼저 나에게 ‘사회 나와서 만난 친구’라는 말을 썼다. 그 말이 얼마나 다정하게 들렸는지 모른다. 돌이켜보면 정말 나에게 잘 해줬던 친구였는데. 하지만 그녀가 나에게 잘 해주면 잘 해줄수록 내 마음은 자꾸만 연애감정으로 기울었고 감정적인 불균형과 기복 속에서 비겁한 나는 그녀를 비열하게 대하고 말았다. 그 때는 ‘이성애자를 전도할 생각 없어!’라고 당당하게 외쳤는데 이제 돌이켜 보니 구차하고 비열했다 싶다. 잘 해준 그녀에게 그렇게 밖에 대할 수 없었나…

하나의 관계를 놓고 정말 여러 가지 시나리오가 나오는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내 마음과 처지가 달라짐에 따라서…

작년 여름에 남쪽에 있는 친구네 집에 놀러 갔다. 그 때 그 친구들은 긴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벌써 떠났는가, 전화기가 둘 다 연결이 안 된다. 가을쯤 서울에 올라오면 연락하자고 했었는데. 가을에 나는 일이 죽게 바빴고 네팔에 갔다 오느라 더 죽게 바빴는데 혹시 그 때 연락했을까? 떠나기 전에 다녀오겠다고 문자 보낸 기억은 나는데 갔다 와서는 연락을 안 했던가? 전화는 걸지 않았다.

서운한 생각이 든다. 연락 없이 그 친구들은 먼 여행을 떠났구나. 오는 봄에 태국에서 만나자고 했는데… ㅠㅠ 지지배들… 뭐, 죽게 친한 친구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서울에서든 태국에서든 만나고 싶었는데… 애저녁에 전화를 걸어 볼 것을 잘못했다. 때마다 문자 메시지만 보냈는데 도대체 언제부터 전화는 끊어져 있었던 걸까???

연락 주시오. 긴 여행 떠난 섬마을 커플.
메일이라도 보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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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알간 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