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에서 평범으로

2007-02-26
다 죽은 것 같은…

요즘 내가 다 죽은 것처럼 느껴진다.

2007-02-28

회사 책상에 엄마 사진을 액자에 넣어서 세워뒀다.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러 나가려고 헬멧, 선글라스, 얼굴 가리개, 운동복에 배낭을 맨 차림이다. 코만 살짝 보인다. 불굴의 엄마. 사진을 볼 때마다 나는 이 말을 떠올린다. 불굴의 엄마. 무엇에도 굴복하지 않았던 나의 엄마. 엄마로서는 가혹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그 불굴의 엄마를 보면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자문한다.

대학 생활을 거의 바친 동아리 활동. 나는 주말마다 산에 갔다. 주중에는 주말에 산에 가기 위해서 회의를 하고 연락을 하고 장을 봤다. 산행 보고를 썼고 산행 계획을 했다. 어릴 때부터 만난 띨한 남자 친구와 헤어지지 않았다면 나는 그 많은 시간을 나 자신만을 위해서 쓰지는 못했을 것이다.

나보다 일년 늦게 대학에 들어간, 그 때는 이미 헤어진 남자 친구는 제가 다니는 학교 산악부를 따라 산에 다녔다. 우리 산악부가 하산할 때 산에 올라가는 그 학교 산악부를 따라가는 그 남자를 만난 적도 있다. 우리는 인사말을 주고받고 그대로 각자의 산악부와 함께, 각자의 일정을 따라 스쳐 지나갔다.

그 남자는 산악부 활동을 열심히 하지 않았든가, 산악부에 제대로 가입을 하지 않고 몇 번 따라다니기만 하다가 말았든가 했던 모양이다. 동기 모임에서는 마주친 적도 없고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다. 단지 그 학교의 산악부 동기가 ‘너랑 동창이라며’ 라는 식으로 한 번쯤 아는 척 했을 뿐이다.

20대 초반에는 내내 ‘없는 년은 없는 년끼리’라고 촌스럽고 유치하게 부르짖으며 술잔을 부딪쳤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그 때 내 인생에 남자가 없었던 것이 내게는 얼마나 축복이었는지, 내가 무엇이 되었건 간에.

입시도 없고 남자도 없고 내 삶에 오로지 구제불능의 나밖에는 없었던 그 시간이. 그렇게 많은 시간을 오로지 나에게만 바치고도 나 자신을 구제하지는 못했지만, 끝내, 끝끝내 구제하지는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물이 줄줄 흐르도록) 고맙다. 구제불능의 나밖에는 없던 그 시간이. 심지어 먹고 살 걱정도 없었던 그 시간이. 물론 내가 단순무식해서 먹고 살 걱정을 할 줄도 몰랐던 거였지만. 그래도 나에게 바쳐진 그 시간이 고맙다… 나는 그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도 살아갈 힘을 얻는다…

회사 책상에 불굴의 엄마 사진을 올려놓고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물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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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알간 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