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생필품이 아니잖아

게눈 감추듯

목구멍이 포도청보다 더 원초적인 모랄이 나왔다. ‘게눈 감추듯’

사이드웨이스를 봤다. Sideways. 무슨 뜻인가? ‘외도(外道)인가 했더니 그게 아니네…ㅋㅋ 산드라 오가 아주 화끈한 여자로 나온다.

마일즈는 영어 교사(우리나라로 치면 국어 교사)이면서 작가이다. 3년에 걸쳐 회심의 역작을 탈고했지만 책을 내주겠다는 출판사가 없다. 부인 빅토리아와 와인을 즐기며 고상하게 사이 좋게 잘 살았는데 2년 전에 헤어졌다. 딱 부러지는 이유는 나오지 않지만 안 팔리는 작가의 숙명 같은 것이겠지. 친한 친구의 결혼식작에서 재혼한 빅토리아를 만났다. 함께 와인을 즐기고 와인을 논하던 빅토리아가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말에 깜짝 놀란다. 빅토리아는 ‘임신했다’고 말한다. 그 순간은…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쓴 [타나토노트]에서 전생에 맺어졌다는 인연을 포기할 때의 그 느낌일까… 그런 느낌이었다.

삶은, 인생은 언제나 비참한 것. 비참할 수 밖에 없는 것. 누가 또 뭐라고 했는데… 심장은 부서지라고 있는 거라고… 뭐, 그런 거지. 그런데 이상한 것은, 참 이상하게도, 인생은 언제나 비참한 것, 그러니까(요 그러니까에 강조) 언제나 희망을 잃지 말 것, 하루하루에 고마움을 느낄 것, 용기를 잃지 말 것, 그리고 포기하지도 말 것… 뭐, 이런 느낌이 들더라는 거지. 그 영화인지, 영화를 보는 나인지… 뭐가 됐든.

영화는 마일즈가 다른 여자의 집 문을 두드리는 순간 끝난다. 희망에 가득 차서. 마치 다시 태어난 것 같은 느낌으로. 다른 여자의 집 문을 두드리는 순간.

그뿐이겠지. 내가 할 수 있는 건. 두드리는 것.


커피 프린스를 보다가 예고편에서 ‘내가 너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다’는 대사를 들었다. 마음에 콕! 박혔다. 커피 프린스를 보다가 예고편에서 ‘내가 너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다’는 대사를 들었는데 기억에는 ‘내가 너 때문에 미치겠다’라고 저장되었다. 나중에 본편을 보니 ‘내가 너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다’였다. 되씹고 곱씹었다. 이유도 모르고. 그저 마음에 콕! 박혀서.

이 사람에게 혹하기도 하고 저 사람에게 혹하기도 하고, 이 사람은 어떨까, 저 사람은 어떨까, 마음 속으로 자를 열심히 대보기도 하고, 자위를 할 때는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내게 너무 바람직한 그녀(그러나 바뜨 이성애자, 뭐 어때, 사귀자는 것도 아닌데)를 상상 속에 그려보기도 하는데…

그러다가 문득 생각이 났다. 나는 보고 싶은 사람이 별로 없구나… 내가 이 사람에게 혹해도 저 사람에게 혹해도 나는 그 사람이 못 견디게 보고 싶은 그런 일이 별로 없다. 못 견디게… 자꾸 생각이 난다든가 그런 일도 없다. 못 견디게는 둘째 치고… 회사를 옮긴 친구가 메신저로 나한테 ‘보고 싶어요’라고 말해도 도무지 공감이 안 간다. 얘는 왜 내가 보고 싶을까? 까까까? 나도 그 얘가 좋은 애라고 생각하고 만나면 쾌적한 사람이긴 하지만 그래도 나는 네가 보고 싶다는 생각은 좀처럼 들지 않는데, 내가 너를 싫어하거나 좋아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저 나는 좀 삭막한 것 같다.

사람을 찾아, 사람을 고파하는, 나의 일상이 우스워졌다. 이건 아니잖아… 이건 아니잖아… 정말…

누군가 못 견디게 보고 싶고 그리워지고 궁금해지고 마음이 아프거든 그때, 그때 밝히도록 해. 사람은 생필품이 아니잖아… 사람은 생필품이 맞는 것도 같지만, 아, 아냐아냐, 이건 아냐, 사람은 정말… 생필품이 아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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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알간 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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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알간 뽀님의 코멘트

빠알간 뽀
나는 왜 이렇게 삭막한 걸까? 나의 감정은 다 어디로 간 걸까? 다치기 싫어서 아주 땅을 파고 들어가버렸니? 하하하하하! 인생이 도망간다고 어디 도망가지디? 그러나저러나 널 끄집어 내고 싶다고 억지로 끄집어낼 재주도 없는 것 같구나… 기다리며 살아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