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렵



요즘 우연찮게 집 근처 버스 노선을 섭렵하고 있다. 남산을 넘는 14번 버스를 타면 아침 저녁으로 드라이브하는 기분이다.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길어서 별로이긴 하지만.

어제는 티비 전기줄을 뽑고 티비 화면이 벽을 보도록 돌려놓았다. 음악을 틀어놓고 대단치도 않은 설거지 좀 하고 (그 대단치도 않은 설거지가 어찌나 피곤하던지), 아, 그 전에 화장실에 샤워 커튼을 설치했다. 봉과 커튼을 사다가 달았다. 드디어. 나무문에 물 튀는 것 걱정하지 않고 샤워를 하게 됐다. 아이, 좋아라. 설거지 다 하고 목도 마르고 덥기도 해서 냉장고에 있는 오래된 화이트 와인을 마셨는데 어찌나 맛이 좋던지! 전에는 그렇게 맛이 좋다고 느낀 적이 없는데, 도리어 싸구려 와인의 비애를 맛본다고 생각했는데 어제는 유난히 좋았다. 그래서 두 잔을 마셨더니 순식간에 삐잉~하고 느낌이 왔다. 아이~ 좋아라~! 냉장고에 넣어둔 지 오래되서 알코올이 날아가서 나에게 적당한 도수가 된 게 아닐까 잠깐 생각했다.

샤워하고, 별로 한 것도 없는데 몸이 피곤한 느낌이 들어 잠을 청했다. 티비를 보면서 늘어져 있지 않으니 이런 느낌이 드는 구나. 몸이 피곤해서 잠을 청하는 느낌은 오랜만이었다.

맨 처음 엄마 집에서 이사 나왔을 때 산 실내 슬리퍼를 버렸다. 요즘 아주 버리는 일에 취미 붙였다. 자꾸 버려야 한다. 버려야 새 것도 사게 되고, 버려야 궁상도 덜 떤다.



일반
빠알간 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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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님의 코멘트

인디
일상에 가끔 신선함을 주는것도 좋은일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