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 국회의원에 출마하다.” - 최현숙위원장 인터뷰
(티지넷 티지매거진)
민주노동당 최현숙 위원장이 내년 초에 있을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한다.
그것도 정치 1번지라 불리우는 종로구로 예정하고 있다 !
얼마 전에 일본의 오쓰지 가나코씨의 출마를 바라보면서
(비록 당선에는 실패했지만)
우리나라엔 그런 신나는 일이 없을까.
지금은 둘째치고 10년 안엔 그런 일이 일어날까...많이 부러워했었는데,
그런 거짓말 같은 일이 우리나라에서 진짜로 일어나게 됐다.
얼마 전 티지넷 자유게시판에 산하님이 올린 글- 최위원장의 출마에 관한 - 을 보면서,
"에이"...
"설마"...
"희망사항이겠지..."
반신반의한 것도 죄송하지만 사실이다.
그러나, 오늘 민주노동당사에 직접 취재를 다녀온 지금, 기자는 매우 기쁘고 행복하다.
온 나라에 성소수자의 문제를 이슈화 해보자구!
신명나게 한 판 놀아 보자구!
이 어찌 지화자가 아닌가!
아직도 흥분을 감출 수 없는 가슴을 누르고,
최현숙 위원장과의 인터뷰를 정리해보겠다.
(편의상, 기자의 질문은 Q로 최현숙 위원장의 답변은 A로 표기한다.)
Q: 안녕하세요. 최현숙 위원장님. 지난 퀴어문화축제 때보다 더 젊어지셨어요.
A: 반갑습니다. 티지넷 회원 여러분들도 모두 안녕하시죠?
Q: 먼저 "사람 최현숙"으로서의 위원장님을 소개해주십시오.
A: (웃으시며) 나요? 나 별로 말할 거 없는데.
1957년생. 1980년에 결혼. 25년간 결혼생활.
2004년 이혼요청 후 별거와 동시에 여성 파트너와 동거시작.
지금 현재 애인은 있으되 앞으로는 동거할 계획은 없음.
이 정도가 보통들 말하는 게 되겠고,
(갑자기 진지해지시며 ) 그럼, 성정체성적인 소개랄까?
10대 중반부터 나는 스스로를 양성애자라고 생각해왔어요.
굳이 동성, 이성애로 나눠지는 것도 이상해 보이더라구요.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거지, 그게 굳이 나눠야 하나 싶어서.
또한 20대에는 동성, 이성 양측으로 정서적 성적 경험도 있고요.
그러다 아까 말한 대로 24살 때 남성과 결혼했고,
그 결혼에서 오는 책임으로 말미암아 25년간을 유지했었죠.
어찌됐든 결혼했으니, 남편과 아이들에 대한 내 책임은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남들이 봤을 때야 평범한 이성애자였겠죠? 아마.
난 사실 성정체성적인 면에서, 나 자신을 구분하기 모호하고.
(위원장님의 파트너는 Male To Female 트랜스젠더임.)
그렇죠? 난 여잔데, 내 파트너도 여성이면 레즈비언인건데,
내 파트너는 또 생물학적으론 남성으로 태어나서 레즈비언의 정체성을 갖고 있는...
아, 복잡해. (웃음)
그리고 내 속마음은 말이죠.
굳이 나눠야 하는 이유도 잘 모르겠어요.
성적 소수자다. 이게 맞는 말 아닌가요?
그래도 굳이 날 나누고 싶으면,
"퀴어인 페미니스트"다. 라고 해주는 게 그나마 정확하겠네요.
"이성애 사회에서 뿐만이 아니라
동성애 사회 속에서도 고착되어가는 성별 이분화 구도에 맞서 싸우는 그런 사람? ^^
Q: 이른바 사회운동에 뛰어드신 계기와 현재 하시는 활동을 말씀해주세요.
A: 글쎄...한 마디로 말할 수는 없겠지요.
난 소위 말하는 부잣집에서 태어났어요.
별로 어려움 없이 자랐고.
그러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결혼을 했고,
가난한 살림을 처음 살아보게 된 거지요.
그 때 처음으로 주변의 가난한 사람들 문제에 눈을 떴어요.
주위에 참 많은 이들이 억울하게 억압받는구나....라는 생각.
그리고 또 신앙을 갖게 된 것도 결정적인 계기라고 볼 수 있겠지요.
그래서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연합'에서 장기수 가족을 후원하는 일을 하게 됐어요.
Q: 제가 대학 다닐때에 선배언니가
김하기씨의 "완전한 만남"이라는 책을 주셔서 읽었던 기억이 나요.
많이 답답하고 아픈 책이었지요.
A: 내가 신앙적인 계기로 운동을 시작했다고 했죠?
나는 언제나 이런 자문을 합니다.
"바로 현재 이 자리에 예수가 있었다면.... 내가 예수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내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하나의 지표가 되는 질문입니다.
물론 늘 갈팡지팡하거나 헛다리를 긁기도 하지만...
2000년부터 민노당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지요.
전국 최초로 민주노동당 지구당 여성위원회를 만들었고,
2002년에는 중앙당 여성위원장을 맡게 됐고요.
그리고 2004년 초에, 위원장직을 사임했어요.
Q: 사임의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A: 그 해에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민주노동당 내에서 비례대표를 선출하게 됐는데,
아무래도 여성위원장 자리면 당연히 한자리가 돌아올지도 모르겠으니
그대로 있을 수가 있어야지요.
Q: 앗...실제로 그 해 총선에서는 민주노동당이 약진을 했고,
비례대표 국회의원도 많이 나왔잖아요.
그냥 계셨으면 지금 국회의원이실텐데......
다른 사람들은 국회의원되려고 조상이 물려준 전답도 팔아먹는 판에...
선생님 왜 그러셨어요!
A: 그 때나 지금이나 내 생각은 변함이 없어요.
"단지 내가 여성위원장이란 당직을 이유로 국회의원이 될 순 없지요."
저보다 훨씬 훌륭하고, 훨씬 오래 일하신 분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그리고 또, 나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 속에서 내가 내린 결론이기도 한 것이
"나는 앞으로 누구와 함께 할 것인가" 였어요.
"그리고 내가 최고로 기쁘게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였고요.
일단 노회찬 당시 사무총장(현 국회의원)과 주위 몇몇 분들에게만 다른 이유를 대고
당직을 사퇴한 후, 둘째 아들이랑 무작정 인도로 떠났지요.
그리고 돌아와서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활동을 시작했어요.
그 후로 2006년에 3기 위원장, 2007년 현재 4기 위원장이지요.
Q: 그렇다면 소위 말해서 '멀쩡하신 여성위원장님'이 갑자기 잠적과 복귀를 하면서
갑자기 성소수자위원회 일을 하신 것인데, 커밍아웃을 하신건가요?
A: 어느날 내가 당원 게시판에 글을 올렸지요.
'47세에 성정체성을 깨닫다' 이런 글이었는데, 읽는 당원들이야 경악했겠죠.
나중에 그런 말들을 하더라구요.
'이제서야 말씀드리지만, 그 때 너무 놀랐어요' 라든가,
어느 후배하나는 또 이러더군요.
'언니, 47세란 나이에도 sex가 문제가 돼?' 라고요. (웃음)
Q: 그 해에 이혼 소송을 하신거죠?
저는 우리나라에도 그런 일이 있는지 몰랐어요.
그러다가 해외의 커밍아웃한 정치인들을 검색하다가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우리나라에도 그런 분이 계시구나...그러다보니,
'성정체성'을 이유로 '이혼소송'을 제기한 최초의 사례가 최현숙 위원장님이시더라구요.
A: 남편에게 이혼을 요청했지요.
하지만 남편은 '그저 지나가는 바람'일 거라면서 동의해주지 않았지요.
물론 큰 충격이고 아픔이었겠지요. 그 점은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미안하다고 해서 더 큰 잘못을 하면 안 되는 거지요.
확신을 갖게 되었다면 잘못을 고쳐서 제자리로 돌려놓는 것이 더 책임감 있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다음의 두 가지 이유로 정식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1. 이성애자가 아닌 나의 성정체성.
2. 그 동안에 있었던 가정 불화 및 남편의 폭력 등.
동성애 진영에서 의미 있는 재판이었기 때문에
변호사팀이 따로 꾸려지고 그랬었지요.
그리고 팀에서 국내외 자료를 샅샅이 뒤졌어요.
우리나라에는 내가 첫 사건이었으니까.
그런데, 외국에도 그런 경우가 없더군요.
Q: 판사도 힘들었겠습니다.^^ 결론은 어떻게 되었나요?
A: 판례가 없으니 재판은 길게 끌어져갔고, 2년 정도 걸렸지요.
결국 판사가 결론을 내린 게 아니라,
남편이 이혼에 합의를 해서 소송 자체가 끝났지요.
Q: 잘 되신 일이지만, 어찌보면 안타깝네요.
법적으로 어떤 판결이 나는지, 그것도 성소수자의 역사에선 중요한 선례가 되었을텐데요.
A: 나중에 이혼 합의후 재산 분할 과정에서 판사가 그러더군요.
"당신의 성정체성이 이혼의 문제이니, 당신에게 귀책사유가 있고,
그러므로 남편에게 위자료를 줘야한다"고.
그래서 난 당당하게 밝혔습니다.
"내 성정체성은 개인인 내가 책임질 부분이 아니며,
가정 폭력등도 이혼사유인데,
단지 내가 동성애자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이혼사유를 책임질 수는 없다"고요.
그리고 결국 그게 인정되었습니다.
Q: 이혼 후, 그리고 지금 현재 가족들은 선생님의 입장과 일을 지지하시는지요.
A: 원래 아이들(현 27세, 24세)과는 매우 개방적이고 대화가 잘 통하는 관계라고 할까요?
난 내 아이들이, 혈기넘치는 십대 후반에 위험한 곳에서 sex를 하는 것보다는
위험하지 않은 곳, 내 집에서 하라고 얘기해주는 엄마였습니다.
Q: (경악에 가까운 기자 )네?
A: 지금 우리 나이에도 이렇게 열정적인데,
그 애들의 에너지는 훨씬 더 크지 않겠어요? (웃음)
그 애들에게 중요한 것은 sex를 하고 말고의 여부가 아니라
행복하고 책임지는 섹스를 하는 것이죠.
전 제 아이들과 성문제에 대해서 서로 터놓고 지내는 사이였기 때문에
커밍아웃을 했을 때 아이들은 저를 지지해줬어요.
별거 과정에서 아이들에게 말했지요.
'엄마는 이제 여자와 살겠다.'
아이들은 절 지지해줬고 축하해줬어요.
큰 아들과는 지금은 좀 멀어진 상태지이만 언젠가는 다시 마음을 열어 줄거라 믿고 있고,
작은 아들과는 지금도 거의 100퍼센트 의사소통하고 있습니다.
남편에겐 물론 미안한 마음이 많지요.
보통의 기준에서 보면, 남편이 '특이한 여자를 만난 '거잖아요.
형제들에게도 커밍아웃을 했는데,
막내남동생은 " 누나가 그 나이에 젊은 여자랑 바람을 피우는거야!" 라며 화를 냈고,
큰 오빠는 사회적으로도 지위가 있는 입장이니 (현 서울대학교 교수- 기자 주)
매우 난감해했지요.
"난 반대한다. 구역질 나는 일이다.
그러나, 니가 그렇다면 우린 당하는 수 밖에 없지.
대신에 가족의 피해를 최소화하자" 라고 했어요.
여동생 2명은 많이 울고불고 난리쳤지만 오히려 제가 엄포를 놨지요.
"니들이 이러면 난 너희들 안 본다"
현재는 가족끼리 만나면 섹슈얼리티에 대한 부분은 서로 입에 담지 않아요.
그 부분만 쏙 빼고 말하는 거지요. (웃음)
부모님께만 들어가게 하지 말라고 형제들이 부탁하는데,
글쎄...그 부분은 좀 걱정이에요.
Q: 선생님은 유명하시고 여기저기 방송도 많이 타시는데, 아직 모르세요?
A: 나도 처음에 그게 걸렸는데, 내가 티비에 나가고 그러면,
" 아, 내 딸이 이번엔 저런 일을 하나보다" 라고만 아시는거죠.
그런데 앞으론 구체적으로 선거도 나가고 그럴텐데...이젠,
" 아..쟤가 그거구나" 하시겠죠.
그러잖아도, 그 전에 부모님께도 말씀을 드려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Q: 사실 그 문제가 가장 궁금했습니다. 국회의원에 출마하신다면서요.
A: 정확히 말하자면, "출마가 거의 기정사실화"되었다고 하면 맞겠네요.
민주노동당에서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에 후보자가 되는 과정은
일단 그 지역 위원회에 예비후보로 등록한 후,
그 예비후보들 중에서 선출되는 것입니다.
종로구에는 현재 제가 유일하게 예비후보로 등록되어 있고,
종로구자체가 이번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에서는 여성에게 할당되는 지역구이기 때문에...
글쎄요...
Q: 사실상 확정상태라고 볼 수 있군요.
전에는 자동당선이나 마찬가지인 비례대표도 마다하시더니,
'떨어질 확률이 백퍼센트인' 지역구 선거에 도전하시는 이유가 궁금하네요. ^^
A: 올해 연초부터 성소수자위원회에서 그런 논의들이 많았습니다.
'우리도 성소수자의 의제를 갖고 총선에 나가자. 나가서 싸우자.'
그런 일환으로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민주노동당에서 지역구 대표로 출마하는 것이니만큼
1. 총선에서의 민주노동당 공약
2. 종로 지역에 대한 민주노동당 후보로서의 공약도 있겠지만
3 '성소수자의 의제', 특히 '레즈비언과 페미니스트 의제'를 갖고 출마하는 것입니다.
Q: 한국에서 처음 있는 일이라 매스컴에서도 난리겠지만,
일부 몰지각한 호모포비아들이 사무실을 습격하고 그런 일은 없을까요?
A: 사실 나도 그게 궁금합니다.
"성소수자가 공직 선거에 나간다?"
과연 기존 언론이나 시민들의 반응은 어떨까.
호모포비아적 반응이 궁금해요.
사무실 습격이라... 언론에 더 나갈 수 있겠군요!
우리의 가장 최고의 목표는
'성소수자 개개인에게 성소수자의 대표를 내세워서 우리의 권익을 찾는 과정'
'그 판을 벌려나가는 것입니다.'
아울러 이번 기회로 성소수자의 진영을 결집하는 것도 목표입니다.
Q: 선생님 말씀을 듣고 나니 속이 다 시원합니다.(사실 눈물 나올 뻔 했음.)
그런데 왜 하필 종로인가요.
종로라고 하면 정치 1번지라 불리우는 곳이잖아요.
각 당에서도 가장 상징적이면서도 '센' 후보를 낼 것이고
최고의 격전지가 될 것이 확실한데요.
A: 종로라는 지역은, 70년대엔 레즈비언의 결집지였고,
지금은 아시다시피 게이들의 커뮤니티가 집결된 곳입니다.
한국 성소수자 역사에 있어서 '게토'이지요.
Q: 그렇군요. 그럼 바보같은 질문 하나만 더 드릴게요.
그렇다면 "왜 민주노동당인가요?"
A: 나를 구성하는 정체성이 3가지 있습니다.
퀴어로서의 정체성,
신앙인으로서의 정체성,
진보의 정체성입니다.
우리 사회 가난하고 억압된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고 행복해지고 싶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사회에서 진보정당과 성적 소수자가 같이 하고 있는 곳도
민주노동당뿐이니 선택의 여지가 없겠지요?
물론 나는 민주노동당내에서도 소수파이지만요. (웃음.)
Q: 여기까지 오시게 된 가장 큰 힘은 무엇일까요?
A: 아까도 말했지만 신앙적인 계기가 컸습니다.
하지만 삶을 돌아보면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는 생각도 들고요.
80년대 후반에 장기수가족 후원회 등, 처음 시작했던 운동은
나의 개인적인 욕망과는 무관한 일이었습니다.
내 가족 중에 빨치산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남파공작원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요.
하지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성소수자 운동은 다릅니다.
'나', '나의 욕망', '나의 섹슈얼리티'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여지껏의 운동은 내 주위의 이웃을 위해 했던 것이라면
이것은 바로 나 자신에서 출발하는 운동이며 삶입니다. 그래서 각별합니다.
그리고 여전히 열악하고 힘들어서 더욱 투쟁의 힘이 납니다. (웃음.)
Q: 정치라는 것이 우리의 생활 그 자체임에도 불구하고,
사실 현실속의 개인은 "정치와 나는 상관없어"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나와 정치, 특히나 여성이며 성소수자인 레즈비언과 정치의 관계는 무엇입니까.
그리고 평범한 레즈비언인 한 개인이 정치 속에서 차지하는 의미는 또 어떤 것입니까.
A: 레즈비언에게 정치적으로 가장 큰 문제는 '성적 시민권'이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고도화된 자본주의속에서는 가부장적 이성애 중심의
소위 말하는 '정상 가족'만 인정하고 장려하지요.
아이(사회의 구성원)를 낳아서 대신 길러주고
장래에 노동력까지 제공해주는 집단이 바로 남녀가 결합한 이성애적 결혼관계이니까요.
그러니 거기에서 벗어난 단위들은 억압하고 소외시킬 수 밖에 없습니다.
동성애자이기때문에 생기는 문제들에 대해서 국가는 못 본 척 하는 것입니다.
법제화된 적도 없고, 시도 자체도 없었지요.
거기에 한국의 특수한 사정이 또 더해집니다.
'가부장제'는 한국의 여성을 수단화하는 든든한 장치가 아닌가요.
그러니 한국의 레즈비언은 더더욱 ...(말하지 않아도 다들 아는 얘기겠지요? )
여성으로서의 마이너리티.
레즈비언으로서의 마이너리티.
그 사회적 차별속에서, 비혼여성, 독신여성, 동성애자...들은
스스로 아무리 "우리도 혼인관계야!" 라고 외쳐봤자 소용없습니다.
그 차별을 스스로 풀어내가는 과정이 바로 "정치"가 되겠지요.
고로 레즈비언은, 여성보다 남성보다 게이보다 더 정치적이어야만 합니다.
가장 억압받는 사람이 싸워야할 명분도, 에너지도 가장 많은 법입니다.
Q: 그렇다면 실제로 정치나 사회운동에 참여를 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A: 자기가 가장 관심있는 분야가 무엇인지 스스로 생각을 해보십시오.
여성으로서 차별받았다면 여성 단체, 노동이면 노동, 문화면 문화.
매우 다양하고 많은 단체들이 있습니다.
자기가 가장 재미있어하고 잘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각종 단체를 방문해보세요.
여기도 가보고, 저기도 가보십시오.
그리고 그 중 '바로 여기다' 싶은 곳에서
회원이든 당원이든 멤버쉽을 가져보세요.
후원회원이나 준회원등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경험상, 책임의식의 유무는 멤버쉽에 따라 확실히 다르거든요. ^^
Q: 선생님. 우리가 꿈꾸는 그런 세상이 정말 올까요?
A: 오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만들고 있다면 오늘이 바로 그 날인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여기 모여서 말을 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우리에겐 그 날이 온 것이고
끊임없이 그 영역을 넓혀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난 오히려 반대의 걱정을 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이미 UN사무총장을 배출한 나라고,
OECD에 가입한 나라입니다.
인권국가로서의 이미지를 제고하려는 단계이지요.
이럴 때는 국가가 먼저 나서서 성소수다 관련 법을 제도화시키는 경우가 있습니다.
생각해보세요.
국가가 먼저 동성애자 혼인법을 만든다고 합시다.
과연 그들이 뭘 알고 제대로 만들까요?
혼인법만 만든다고 될까요?
혼인 그 자체가 개인에게는 아웃팅이 될텐데요.
중요한 것은, 법제화 자체가 아니라,
동성애자의 현실적인 삶을 반영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소수자들이 연대하고 단결해서 미리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주도권을 국가에 뺏기면 안 됩니다.
이번 대선에서 민주노동당의 공약에는 동성혼, 동성애자들의 가족구성권 등이
핵심의제가 될 것이고,
그런 것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바로 성소수자위원회에서 하는 일입니다.
Q: 오랜 시간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선생님 말씀을 듣고 보니 답답했던 속도 많이 풀립니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 더 부탁드립니다.
A: 자기 자신에 대해서 당당해집시다.
세상의 기준으로 자길 보지 마세요.
당당함 속에서 세상을 신나게 살고, 신나게 싸우고, 변화할 수 있는 힘을 갖도록 합시다.
(2007. 10. 19. 오후 2시부터 4시반까지 민노당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인터뷰에 응해주신 최현숙 위원장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
출처는 www.tgnet.co.kr 입니다 ^^
성소수자위원회 www.lgbt.kdlp.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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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알간 뽀님의 코멘트
빠알간 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