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도 마음도 피곤하고 지쳐서 집에 가는 길에 전화가 왔다.
모처럼 근처에 왔으니 저녁이라도 같이 먹자고 한다. (애인은 꽤 먼 곳에 산다.)
피곤하니 각자 집에 가서 먹자고 했다.
동생도 나오라고 해서 같이 먹자고 한다.
(애인이 동생을 어딘가에 소개했는데 그 일이 별로 잘 진행되지 않는 중.)
‘일의 결과야 어찌되든 이쯤에서 한 번 만나주는 것도 좋겠군.’
마음을 고쳐먹고 동생과 같이 만나자고 한다.
전화를 끊고 동생에게 전화를 걸고 약속을 잡으면서
나는 나를 돌아본다. 애인의 눈으로 나의 행동을 돌아본다.
둘이 먹자고 하면 싫다고 했다가도
동생과 같이 먹자고 하면 좋다고 하는구나. 으음…
연애를 시작한 후에 나는 엄마집에서 한 끼 이상을 먹은 일이 없다.
주말에는 언제나 애인과 노느라고 바빴다.
항상 애인과 먼저 약속을 잡았다.
내가 연애를 시작할 때쯤 동생도 일이 생겨서 게다가
그 일이 주말에도 딱히 쉬지 않고 매일 저녁 늦게 끝나는 일이어서
동생과 나는 한동안 별로 얼굴을 보지 못했다.
동생이 일을 잠깐 쉴 때 내 일이 바쁘지 않으면 그 틈에 봤고
그것도 내 일이 바쁘면 못 보는 거고,
아버지가 술병으로 몇날며칠을 앓아누웠을 때도
나는 거의 다 나았을 때야 부모님의 집을 찾아갔다.
그때는 일이 바쁘기도 했다.
일이 그렇게 몰아친 것도 실은 연애에 집중하느라
일을 제때 못해서 그런 것이긴 했다.
그러니까 나는,
나는 뭐랄까.
나는 뭐랄까…
나는 꼭 뭐라고 해야 하는 걸까?
이 상황을 꼭 뭐라고 변명해야 하는 걸까? (누구에게?)
아니겠지?
혼잣생각이 만리를 달려도 애인은 딱히 뭐라 하지 않았다.
나는 나를 애인의 처지에서 검열하고 있지만
애인은 그런 나를 딱히 뭐라고 하지 않았다.
나는 최선을 다해서 애인과 연애하고 있고
일하고 있고
그리고 부모님과 동생에게는 어느 정도
서운한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한다.
하지만 서운한 소리를 들어야 한다면 그것도 감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기대치는 있는 법이니까.
서운한 소리를 하는 사람이 애인이 됐든
부모님과 동생이 됐든
나만 흔들리지 않으면 되리라 감히 대담한 생각도 해보지만 휘유~
나는 서운한 소리가 듣기 싫어 절절 매고 애를 끓이고
한 편으로 딱 자르면서도 다른 편으론 발을 동동 구른다.
딱 자른 사람이 왜 발은 구르고 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애인이 서운하다 하면 그 말을 들어주고
부모님과 동생이 서운하다 하면 그 말도 들어주고
그리고 나는 중심을 잃지 않으면 된다. 되리라.
애인이 서운해서 나를 떠나겠다고 하면?
부모님과 동생이 서운해서 너를 정말 믿을 수가 없다고 실망한다면?
그 때도 나는 중심을 잃지 않을 수 있을까?
그래도 나는 중심을 잃지 않을 수 있을까?
사랑해.
하지만 말만으론 아무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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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 & Ki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