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2-26
꿈에
꿈에 아주 연약한 남자를 봤다. 며칠이나 일주일쯤 전에 꾼 꿈에서. 몸은 성인인데 마음은 아주 어린애인 남자였다. 그런 남자가 나의 애인이라고 했다. 하하! 그리곤 어린애같이 씻고서 옷도 안 입고 나왔다. 나는 그런 남자를 가려주느라고 바빴다. 밉진 않았다. 단지 덩치는 크고 하는 짓은 애라서 감당하기 힘들었다. 감당하기 힘들면서도 애처롭고 귀여운 마음도 들었다. 나는 다른 성인 남자와 함께 있었다. 마치 사업을 의논하는 것 같은 분위기였다. 몸만 큰 어린애인 나의 애인은 별로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딱히 대적하지는 못하고 그저 투정을 부리는 듯 하더니 내 무릎을 베고 잠들었다. 참나! 감당하기 힘들어서… 하지만 여전히 귀여웠고 나를 의지하는 것 같아서 좋았다…
내 안의 남성성과 화해하고 있는 걸까?
아무리 만나러 가려고 해도 만나러 갈 길이 없고, 만나러 가려고 하면서도 나에게 어떤 마음을 품었을까봐 헤어진 애인이 해준 반지를 끼고 나서는 그런 꿈은 아니었다.
전에 꾸던 꿈에 사랑스럽게 나오던 남자 아이가 몸만 그대로 커진 걸까?
내 안의 남자와도 여자와도 화해도 공존도 잘 하지 못하는 나라니…
야근을 하지 않아도 집에 와서 저녁을 먹으면 9시에서 9시 30분, 설거지를 하고 씻고 나면 벌써 11시다. 수업 준비도 해야 하고 사소한 일거리도 있는데 도무지 손을 대질 못한다. 하루하루가… 사실 나는 한가하고 멍한 시간을 좋아한다. 티비를 보면서 천천히 계속 먹는 저녁밥을 좋아한다. 저녁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는 시간도 좋고, 설거지를 다 해놓고 내일 먹을 과일과 야채 껍질을 벗기고 잘라서 담는 시간도 좋다. 내일 먹겠다고 시작은 하지만 잘라 담으면서 반의반쯤은 그 자리에서 먹어버리기도 한다. 맛이 좋으면 더 많이 먹기도 한다. 배부른 저녁…
미중년이 되겠다는 결심은 어디로 사라지고… 포만감을 즐기며 저녁을 먹는다. 흠… 천천히, 한가롭게.
낮에 오랜만에 생각이 나서 갓 태어난 아기 엄마에게 문자를 보냈다. 잘 지내느냐고. 별다른 용건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종일 답장도 없고 전화도 없었다. 흠… 아기 키우느라 정말 정신 없이 바쁜가 보다, 포기하고 있었는데 좀 전에 답장이 왔다. ‘자식을 키우는 일이 참 힘들구나’ 흠… 아직은 ‘싫어’라고 말하며 도리도리를 할 때도 아닌데 벌써 이렇게 힘든가??? 아이를 낳은 후로 아기 엄마는 뜻밖의 연속이다. 조카가 처음 ‘아니요, 싫어요’를 말할 때가 떠오른다. 큰 조카의 도리도리에 나는 눈 앞이 노래지면서 ‘너도 드디어 머리통이라는 게 생겼구나, 오호, 통재라…’ 두 말 없이 올케를 불러 아이를 떠넘겼다.
하긴 자식만큼 나 자신의 무력함을 통감하게 해주는 것이 없다지. 그러니 어찌 힘이 안 들겠는가… 쩝…
오늘도 아기 엄마는 나에게 ‘너도 낳아서 키워봐’라는 말을 두 번쯤 했다.
자신의 경험을 절대 공유할 수 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그 언사, 가 몹시 얄밉다. 나름 충격적인 경험이겠으나, 그렇다고 해도 어쩌면 그렇게 생각이 없는 걸까? 회사에 가서 연배가 있는 아이들 엄마에게 ‘그렇게까지 코가 빠질 건 뭐에요!’하면서 투덜투덜 댔더니 ‘그 코 빠진 거 둘째 낳을 때까지 절대 안 나와.’ 하더구만… 기다리는 수 밖에. 친구 안 할 게 아니라면 ㅠㅠ
요즘에 내가 왜 어렸을 때 사귄 남자와 결혼을 못했는가 하는 생각을 했다. 곰곰히 해봤다. 결혼을 못 했는가, 라는 건 사실 너무 멀리 간 질문이고, 왜 어렸을 때 사귄 남자와 좀 제대로 사귀어 보지 못했을까, 라는 게 맞는 말인데, 제대로 사귀었다면 아마도, 둘 다 띨했으니까, 나름 쉽게 결혼까지 연결되었을 거란 건 내 멋대로 가정이다.
어쨌든, 우연치 않게도 요즘 그런 생각이 들어서 곰곰 생각을 했다. 주변에 아기들이 자꾸 태어나고, 몇 년 전에는 나도 내 자식을 가져보겠다고 했던 터라 다시 옛날 생각이 났는지, 여하튼.
찬찬히 생각해 본 결과는 간단했다. 나는 결국 내가 가고 싶지 않은 곳으로 가지 않은 것뿐이다. 이삼십 년을 서로 다르게 살던 사람들이 만나서, 아무리 눈에 콩깍지가 씌어 혼인을 한다 하더라도, 같이 사는 일은 쉽지 않다. 아무리 좋았어도 같이 살기 시작하면 전투는 피할 수 없다. 게다가 20대에는. 뭐, 지금 나이라고 다르랴마는.
나는 이성애 혼인 또는 제도 혼인과 결부된 그 모든 과정이 싫었다. 그리고 그 때는 섹스의 즐거움도 몰랐다. 나는 친구이자 연인이라고 생각했지만 그에게는 연인이 되는 순간 친구라는 건 없어지는 것 같았다. 그는 내게 마치 엄마처럼 자기를 돌봐줄 것을 기대했다. 또는 나의 친구인줄 알았던 사람들이 일제히 그의 편이 되어 나에게 말했다. ‘너는 그의 엄마가 돼주어야 해.’
나는 결국 내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가지 않은 것뿐이다.
누군가의 엄마 노릇은 이제 막 스무 살이 될락말락 하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노릇이 아니었다. 엄마가 필요한 건 나였다. 누구보다도 절실하게 엄마가 필요했던 건, 바로 나였다. 나는 나의 엄마 노릇을 해 줄 마음이 없어 보이는 남자를 떠났다. 또는 나의 엄마 노릇을 해 줄 능력이 없어 보이는 남자를.
서른 다섯, 나이에 비해서는 지나치게 많이 뒤를 돌아보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서른 살 이후의 인생은 내내 이십대를 돌아보면서 살아왔다. 지금도 되씹고 곱씹게 된다.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닌데 현재 시점에서 과거의 일들이 자꾸만 이렇게 또 저렇게 돌이켜진다. 가까운 과거는 가까운 대로 먼 과거는 먼 대로…
가진 것도 없고 남편도 없고 자식도 없고, 없고 없고 없지만, 결국 내가 원치 않는 곳으로 가지 않았다는 생각에 내 마음은 편해졌다. 아이 욕심이 많은 올케에게 한 일곱 정도 낳아서 하나쯤 귀찮아지면 내게 주시오, 이렇게 너스레를 떨지만, 자식 역시 내가 가장 원했던 것은 아니다. 어쩌면 내가 가장 원치 않았던 것인지도.
[미친년 제니]라는 프랑스 소설이 있다. 저녁마다 ‘나는 아무 것도 가진 게 없어’라며 울었다는 미친년 제니가 생각난다. ‘아무 것도 가진 게 없어’라는 말은 ‘원하는 것을 갖지 못했어’라는 말인데, 알지 못하는 미래를 향해 고군분투해야 하는 인생이 고달프다. 오늘밤은 어쩐지 살짝 우울하다.
꿈에
꿈에 아주 연약한 남자를 봤다. 며칠이나 일주일쯤 전에 꾼 꿈에서. 몸은 성인인데 마음은 아주 어린애인 남자였다. 그런 남자가 나의 애인이라고 했다. 하하! 그리곤 어린애같이 씻고서 옷도 안 입고 나왔다. 나는 그런 남자를 가려주느라고 바빴다. 밉진 않았다. 단지 덩치는 크고 하는 짓은 애라서 감당하기 힘들었다. 감당하기 힘들면서도 애처롭고 귀여운 마음도 들었다. 나는 다른 성인 남자와 함께 있었다. 마치 사업을 의논하는 것 같은 분위기였다. 몸만 큰 어린애인 나의 애인은 별로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딱히 대적하지는 못하고 그저 투정을 부리는 듯 하더니 내 무릎을 베고 잠들었다. 참나! 감당하기 힘들어서… 하지만 여전히 귀여웠고 나를 의지하는 것 같아서 좋았다…
내 안의 남성성과 화해하고 있는 걸까?
아무리 만나러 가려고 해도 만나러 갈 길이 없고, 만나러 가려고 하면서도 나에게 어떤 마음을 품었을까봐 헤어진 애인이 해준 반지를 끼고 나서는 그런 꿈은 아니었다.
전에 꾸던 꿈에 사랑스럽게 나오던 남자 아이가 몸만 그대로 커진 걸까?
내 안의 남자와도 여자와도 화해도 공존도 잘 하지 못하는 나라니…
야근을 하지 않아도 집에 와서 저녁을 먹으면 9시에서 9시 30분, 설거지를 하고 씻고 나면 벌써 11시다. 수업 준비도 해야 하고 사소한 일거리도 있는데 도무지 손을 대질 못한다. 하루하루가… 사실 나는 한가하고 멍한 시간을 좋아한다. 티비를 보면서 천천히 계속 먹는 저녁밥을 좋아한다. 저녁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는 시간도 좋고, 설거지를 다 해놓고 내일 먹을 과일과 야채 껍질을 벗기고 잘라서 담는 시간도 좋다. 내일 먹겠다고 시작은 하지만 잘라 담으면서 반의반쯤은 그 자리에서 먹어버리기도 한다. 맛이 좋으면 더 많이 먹기도 한다. 배부른 저녁…
미중년이 되겠다는 결심은 어디로 사라지고… 포만감을 즐기며 저녁을 먹는다. 흠… 천천히, 한가롭게.
낮에 오랜만에 생각이 나서 갓 태어난 아기 엄마에게 문자를 보냈다. 잘 지내느냐고. 별다른 용건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종일 답장도 없고 전화도 없었다. 흠… 아기 키우느라 정말 정신 없이 바쁜가 보다, 포기하고 있었는데 좀 전에 답장이 왔다. ‘자식을 키우는 일이 참 힘들구나’ 흠… 아직은 ‘싫어’라고 말하며 도리도리를 할 때도 아닌데 벌써 이렇게 힘든가??? 아이를 낳은 후로 아기 엄마는 뜻밖의 연속이다. 조카가 처음 ‘아니요, 싫어요’를 말할 때가 떠오른다. 큰 조카의 도리도리에 나는 눈 앞이 노래지면서 ‘너도 드디어 머리통이라는 게 생겼구나, 오호, 통재라…’ 두 말 없이 올케를 불러 아이를 떠넘겼다.
하긴 자식만큼 나 자신의 무력함을 통감하게 해주는 것이 없다지. 그러니 어찌 힘이 안 들겠는가… 쩝…
오늘도 아기 엄마는 나에게 ‘너도 낳아서 키워봐’라는 말을 두 번쯤 했다.
자신의 경험을 절대 공유할 수 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그 언사, 가 몹시 얄밉다. 나름 충격적인 경험이겠으나, 그렇다고 해도 어쩌면 그렇게 생각이 없는 걸까? 회사에 가서 연배가 있는 아이들 엄마에게 ‘그렇게까지 코가 빠질 건 뭐에요!’하면서 투덜투덜 댔더니 ‘그 코 빠진 거 둘째 낳을 때까지 절대 안 나와.’ 하더구만… 기다리는 수 밖에. 친구 안 할 게 아니라면 ㅠㅠ
요즘에 내가 왜 어렸을 때 사귄 남자와 결혼을 못했는가 하는 생각을 했다. 곰곰히 해봤다. 결혼을 못 했는가, 라는 건 사실 너무 멀리 간 질문이고, 왜 어렸을 때 사귄 남자와 좀 제대로 사귀어 보지 못했을까, 라는 게 맞는 말인데, 제대로 사귀었다면 아마도, 둘 다 띨했으니까, 나름 쉽게 결혼까지 연결되었을 거란 건 내 멋대로 가정이다.
어쨌든, 우연치 않게도 요즘 그런 생각이 들어서 곰곰 생각을 했다. 주변에 아기들이 자꾸 태어나고, 몇 년 전에는 나도 내 자식을 가져보겠다고 했던 터라 다시 옛날 생각이 났는지, 여하튼.
찬찬히 생각해 본 결과는 간단했다. 나는 결국 내가 가고 싶지 않은 곳으로 가지 않은 것뿐이다. 이삼십 년을 서로 다르게 살던 사람들이 만나서, 아무리 눈에 콩깍지가 씌어 혼인을 한다 하더라도, 같이 사는 일은 쉽지 않다. 아무리 좋았어도 같이 살기 시작하면 전투는 피할 수 없다. 게다가 20대에는. 뭐, 지금 나이라고 다르랴마는.
나는 이성애 혼인 또는 제도 혼인과 결부된 그 모든 과정이 싫었다. 그리고 그 때는 섹스의 즐거움도 몰랐다. 나는 친구이자 연인이라고 생각했지만 그에게는 연인이 되는 순간 친구라는 건 없어지는 것 같았다. 그는 내게 마치 엄마처럼 자기를 돌봐줄 것을 기대했다. 또는 나의 친구인줄 알았던 사람들이 일제히 그의 편이 되어 나에게 말했다. ‘너는 그의 엄마가 돼주어야 해.’
나는 결국 내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가지 않은 것뿐이다.
누군가의 엄마 노릇은 이제 막 스무 살이 될락말락 하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노릇이 아니었다. 엄마가 필요한 건 나였다. 누구보다도 절실하게 엄마가 필요했던 건, 바로 나였다. 나는 나의 엄마 노릇을 해 줄 마음이 없어 보이는 남자를 떠났다. 또는 나의 엄마 노릇을 해 줄 능력이 없어 보이는 남자를.
서른 다섯, 나이에 비해서는 지나치게 많이 뒤를 돌아보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서른 살 이후의 인생은 내내 이십대를 돌아보면서 살아왔다. 지금도 되씹고 곱씹게 된다.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닌데 현재 시점에서 과거의 일들이 자꾸만 이렇게 또 저렇게 돌이켜진다. 가까운 과거는 가까운 대로 먼 과거는 먼 대로…
가진 것도 없고 남편도 없고 자식도 없고, 없고 없고 없지만, 결국 내가 원치 않는 곳으로 가지 않았다는 생각에 내 마음은 편해졌다. 아이 욕심이 많은 올케에게 한 일곱 정도 낳아서 하나쯤 귀찮아지면 내게 주시오, 이렇게 너스레를 떨지만, 자식 역시 내가 가장 원했던 것은 아니다. 어쩌면 내가 가장 원치 않았던 것인지도.
[미친년 제니]라는 프랑스 소설이 있다. 저녁마다 ‘나는 아무 것도 가진 게 없어’라며 울었다는 미친년 제니가 생각난다. ‘아무 것도 가진 게 없어’라는 말은 ‘원하는 것을 갖지 못했어’라는 말인데, 알지 못하는 미래를 향해 고군분투해야 하는 인생이 고달프다. 오늘밤은 어쩐지 살짝 우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