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더 다니기로 했다

2007-02-14

회사를 더 다니기로 했다. 과장, 부장과 면담을 하면서 내내 속으로 물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이고 나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나는 정말 누구인가?’

나는 두려움 없이 아무일이나 전전하면서 자기 앞가림 못하는 줄도 모르고 하늘이 높은 줄도 모르고 천방지축 세상을 돌다가, 어느 날 정신차려 보니 일은 없고, 돈도 없고, 정신은 나태하고 무기력하게 늘어져 있었다. 방바닥을 굴러다니는 십원짜리가 금덩어리처럼 보였고 동생에게 용돈을 받으면 정말 기뻤다. 나도 돈을 벌면 동생한테 용돈을 주고 싶었다. 그 말이 언제나 가정법에서 벗어나질 못해 애가 타고 속이 상했다. 마음 상했다. 사람들이 나를 고용하지 않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너거들이 인재를 못 알아보는 거지’ 그 말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그렇더라도 그들이 나를 고용하지 않아서 손해 보는 것도 없고 그들의 계산법은 나의 계산법과는 다르기 때문에, 그리고 회사라는 것은 여간하지 않고는 창의적인 인재 따위 원하지도 않는다. 모든 직원은 그저 부속일 뿐이다. 이왕이면 이가 잘 맞는 부속을 찾는 것은 당연하다.

누군가 나를 고용해주길 바라면서 눈물 흘렸던 과거가, 남 앞에 털어놓은 적 없는 나의 작은 모습이… 무리를 해서라도 나는 회사에 더 다니기로 했다. 이기적인 결정일 수 있다. 왜 이기적이면 안 되는가? 회사도 충분히 이기적이다. 너 혼자 이기적이지 않겠다고 해서… 기회는 찬스다. 기회 있을 때 이기적이 되라. 기타 등등. 진실의 소리인지 내 머리 속에서 울리는 내면의 소리인지. 여튼… 약간은 누군가의 대리전을 하고 있는 것 같은 묘한 기분도 느끼면서…

회사를 더 다니기로 했다. 당분간 두 가지 일을 병행하기로 했다. 다른 일의 사정이 더 좋아지면 그 때 회사를 그만두려고 한다. 좋아지지 않으면? 회사를 계속 다니는 거지. 아니면 그 때 또 다른 일이 생길 수도 있다.

2주 동안 주말에 원서를 읽고 검토서를 썼다. 쓸 때는 몰랐는데 쓰고 나서 월요일에 출근하니 상당히 피곤하고 눈도 아팠다. 적어도 3월부터 6월 사이에는 다른 일은 벌이면 안 될 것 같다. 말은 이렇게 하는데…

몸의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 굴리라고 있는 게 아니다.

오늘은 이만 자야겠다. 너무 피곤한 수요일이었다. 월요일 마라톤 회의, 화요일 엄마 생신, 피곤한 수요일에 발렌타인 데이, 세밑까지 겹쳐서 도로가 주차장이었다. 종로에서 행신동 오는데 두시간 반이 걸렸다. 발렌타인 데이, 나도 누군가와 낭만적인 그림을 그리고 싶나? 인생이 너무 무미건조하니까? 근디… 내가 요즘 공들이는 인사는 나랑 그럴 생각이 전혀 없나보다… 호응이 너무 낮다. 무시기 몸을 사리나? 그래서야… 나야말로 순정이 있어서 해바라기처럼 바라보는 것도 아닌데… 이 나이에 계속 몸 사리는 걸 보기 좋다고 봐주는 데는 한계가 있다. 자꾸 나이 타령해서 미안하지만… 이러다 길에서 만나는 중얼거리 아줌마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하루하루 인내심이 없어져서 횡단보도에 조금만 오래 세워놔도 구시렁이 막 큰 소리로 나온다. 상태 심각한 사람들과는 차이는 나는 세 마디 정도 하면 그만둔다는 거다. 말투나 소리 크기는 똑같다. 혼자 있어도… 하아… 미치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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