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도 얼굴도 알릴 수도 없었던 한 사람이 홀로 쓸쓸히 영원한 안식을 맞이한 일이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 사람을 이렇게 불렀습니다. 더럽고 성적으로 문란하고 가까이 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라고 말입니다 그는 HIV AIDS 감염인이었습니다. 살 수 있었고 꿈, 사랑, 우정과 같은 소중한 기회의 삶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러지 못 했습니다. 삶의 끝자락에서 다시 한 번 살아보겠노라고 다짐한 그는 마지막까지 이름도 얼굴도 알리지도 못한 채 차가운 병상 위에서 눈을 감았습니다.
아픈 그가 누운 곳은 진정으로 쉴 수 없었고 드러낼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이름도 얼굴도 없는 김무명씨가 있었던 곳은 오늘 날 저희 HIV AIDS 감염인들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던 알았다 해도 차갑게 외면하려 했던 수많은 김무명씨가 있었던 곳이었습니다.
이름도 얼굴도 알릴 수 없었던 김무명씨는 2013년 8월 21일 홀로 쓸쓸히 영원한 안식을 맞이한 HIV AIDS 감염인이었습니다.
김무명씨를 수 많은 김무명들을 알리고 싶습니다.
이정식(노랑사)작가는 2013년 12월 9일 HIV 양성 확진 이후 글과 영상. 전시의 형태를 통해 질병과 소수성을 말하는 작업들을 진행에 왔습니다. 현재 HIV AIDS 감염인 커뮤니티에 나오지 않는 감염인 분들과의 접촉을 통해 그들과의 인터뷰를 베이스로 한 설치 작업을 준비하여 진행하고 있습니다.
작가는 수동연세요양병원 사태와 故 김무명씨의 사건을 접하고 고인의 추모제에 참석했었습니다. 그때 故 김무명의 무명이 이름이 없다는 뜻의 무명이라는 것과 검은색 종이로만 남겨진 고인의 영정사진에 충격을 받게 됩니다. 이름도, 얼굴도, 밝히지 못하고 사라진 존재 앞에서 느낀 무력감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습니다. 그 이후 감염인 커뮤니티에 나오지 않는 HIV AIDS 감염인과의 접촉을 통해서 대다수의 감염인들의 삶이 故 김무명과 다를 바 없는 현실을 살고 있다는 것을 직시하게 됩니다. 사회적인 편견과 관념 속에서 스스로를 검열하고 숨기도록 종용받는 감염인들의 모습은 故김무명과 같은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작가는 전시 김무명|faceless 통해 관객들이 하나의 검은 얼굴에 속한 또 다른 검은 얼굴들을 기억하길 바라며 아직도 공동체 바깥에 머물고 있는 HIV AIDS 감염인들의 삶의 무게를 함께 느끼기를 원하고 사회라는 거대한 공동체의 관계망 속에서 왜 타인이 스스로를 지우도록 남겨두어야 하는지 같이 고민하기를 바라봅니다.
이름도, 얼굴도 없는 사람들을 말하는 전시 김무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