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와 읽기

2005-10-03
벌써 시월이다.

걷기는 나에게 평화를 준다. 걷기가 주는 평화는 다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다. 어릴 때는 읽기가 나에게 평화를 주었다. 평화와 위안을 주었다. 도피처도 되어 주었다.

대학 2학년 때 산에 다니기 시작했다. 산에 다니는 일은 힘들었다. 배워야 할 것도 많았고 뭘 해도 느렸던 나는 선배들에게 혼도 많이 났다. 배낭을 지고 쉼 없이 걷는 일도 고달팠다. 그래도 걷는다는 것, 산 속에 있다는 것, 나무들에 둘러싸여 있다는 것 자체가 내게 많은 힘을 주었다. 견딜 수 없는 삶을 견딜 수 있는 힘을 주었다. 그 때, 산에 막 다니기 시작했던 대학 2학년 때를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때, 삶에 어떤 방향을 주었던 것은 산에 다니는 일뿐이었다. 하루하루 삶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 자살하지 않기 위해서 목매달지 않기 위해서 나 자신의 머리를 땅바닥에 세게 부딪지 않기 위해서 나는 산에 다녔다.

걷기와 읽기는 나에게 큰 평화를 준다. 아주 잠깐이라도 걷고 있으면, 읽고 있으면 나는 잠시 다른 세상을 구경하고 돌아오게 된다.

잠시 다른 세상을 구경하고 돌아오게 된다… 살지 않을 수 없으니까. 이 세상에서 살지 않을 수 없으니까. 나는 다른 길을 모르겠다. 이 세상에서 살아낸다는 것이 내게는 절대 명제와 같다. 너무너무 힘들지만 포기해서는 안 되는 절대 명제. 그래서 걷고 읽는다. 잠시 다른 세상에 머리를 디밀었다가 다시 이 세상으로 돌아오기 위해서. 나에게는 걷기와 읽기가 그저 마약인 것 같다. 너무도 건전한 나의 마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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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알간 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