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꿨다.
차를 운전해 가는데 고갯길이 나왔다. 경사가 너무 심해서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고개가 너무 높고 너무 길었다. 도대체 차가 오를 수 있기나 한 걸까? 무조건 엑셀러레이터를 밟았다. 밟지 않으면 차는 곧 뒤로 미끄러질 테니까. 경사가 너무 심해서 미끄러지는 정도가 아니라 굴러 떨어질 것만 같았다. 두 눈을 질끈 감고 말도 안 되는 고갯길을 차를 몰고 올라 갔다. 앞에 간 차가 있었다. 앞에 간 차가 있다는 생각에 그럼 나도 갈 수 있겠지, 자동차는 메커니즘이니까. 체력으로 달리는 인간이 아니라 기계니까 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 무조건 밟았다. 차가 곧 굴러서 고개 아래로 떨어질 것이라는 공포에 말도 못하게 시달렸다. 어찌어찌 해서 고갯길 끝까지 올랐다. 죽지 않고 올랐구나, 안도했다. 안도하면서도 고갯길을 오를 때의 공포가 사라지지 않았다.

꿈을 깨고 곰곰 생각해보니 그 정도의 경사는 절대 차가 오를 수 있는 경사가 아니었다. 차는커녕 사람도 걸어서는 오를 수 없는 경사였다. 암벽등반을 하듯이 두 손, 두 발을 다 써서 기어야 오를까말까한 경사였다. 거길 죽자고 오른 무모함에 치를 떨었다. 아무리 꿈 속이었다고 하더라도. 왜 그렇게 판단이 없을까? 이성이 없는 걸까… 오르지 않는다, 그런 고개는 넘지 않는다, 라는 선택은 할 수 없는 걸까…

나는 늘… 늘 뭐시기뭐시기 해야만 한다는 명제에 시달리며 살고 있다. 인간은 의리가 있어야 하고 신뢰가 있어야 하고 모든 약속은 늘 지켜야만 하고 어쩌고 저쩌고, 그러는 사이에 내 몸은 지치고 병들고 마음은 짜증으로 가득 차는데도.

그래서 거의 대부분의 순간에 나는 솔직하지 못하다. 나는 몹시 솔직해 ‘보이는’ 편인데 그건 그저 그렇게 ‘보일’ 뿐이고, 나의 ‘진솔한 태도’와 나의 ‘진심’ 사이의 거리는 매우 멀다.

나는 오만해서 툭하면 주변에 있는 사람을 발톱의 때만도 못하게 여기는데, 사람들은 내가 겸손하고 친근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붐비는 마을버스에서 성추행범과 성추행을 당하는 아이를 보면서 ‘저들은 몹시 특이한, 즉 나이 차이가 많이 나면서도 몹시 대담한 연인이군’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판단력이 흐린데도 사람들은 나를 강인하다고 본다.

원래가 오만해서 남의 말에는 손톱만큼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 성격인데도 어쩐 일인지 바보스럽게만 보이고 그래서 늘 잔소리를 듣는다. 원래가 오만한데도 심장이 쪼그라들 때는 정말 콩알만해져서는 역시 정상적인 사리분별이나 판단이 되지 않는다.

어디까지가 정상이고 어디부터가 정상이 아닌 걸까…?

사리분별, 사리판단, 내가 올바른 사리판단을 하고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는 걸까? 어디까지가 나를 주장하는 것이고 어디서부터가 광기가 되는 걸까? 그걸 정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경계는 도무지 어디일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상식인 걸까? 균형인 걸까?

피눈물이 나게 물어봐도 대답해주는 사람은 없다. 결국 내가 정해야 한다. 밖에서는 찾을 수 없다. 나의 행동, 나의 판단, 오직 나만이 할 수 있을 뿐이다. 아무도 대신할 수가 없다. 판단도 책임도 삶도, 무엇도 회피할 수도 없고 다 내가 해내야 하는데. 전부 내가 해내야 하는데. 나의 몫은 나의 몫, 내가 해야 할 일은 내가 해야 할 일, 물러서지 말고 맞설 것.

이 배신의 삶에 맞설 것. 맞서서 살아야겠다고 주장할 것. 그렇게 경사가 높고 너무 긴 고갯길은 올라가지 못하겠다고 할 것. 차에서 내릴 것. 운전대를 놓을 것. 앞에 놓인 길이라고 다 가야 한다고 강박적으로 믿지 말 것. 언제나 충분히 선택의 여지가 있다. 선택의 여지가 있는데도 의리나 신뢰를 생각해서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처럼 행동하지 말 것. 고통과 공포에 몸부림치지 말고 내가 먼저 살아야겠다고 주장할 것. 배신할 것. 남의 기대를 배반할 것. 막연히 남이 나에게 원할 것 같은 삶을 살지 말 것. 막연히 살지 말 것.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막연히 남이 나에게 원할 것 같은 삶을 살지 말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