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털이 달린 빨간 빼딱 구두에 넥타이를 매고 후배의 결혼식에 다녀왔다. 노친네들에게는 청바지는 아무래도 청바지로 보이는 모양이다. 기지바지=정장, 청바지=정장 X. 아니면 오늘 나의 청바지차림이 촌스러웠나… 여튼 나이 들고 회사 다니고 살이 더 찐 다음부터는 빨간 털 달린 빼딱 구두 정도로 만족하고 있다. 세련되고 개성 있는 옷차림은 살을 좀 더 빼서 입자, 고 생각하지만 살아 생전에 가능하려는지, 두고 보자는 놈 무섭지 않다고…
예쁘게는 못 입어도 웃기게는 입었었는데 어느새 직장인처럼 입고 있다.
세련되진 않아도 수수하게 언제나 자기처럼 입고 다니던 후배는 결혼 3년이 되어간다는데 오늘은 아줌마 원피스에 아줌마 가디건을 입고 아줌마 신발에 아줌마 가방을 들고 나왔다. 산부인과에도 갔는데 또 실패했어요, 하길래 저번처럼 배속에 안고 있던 아기를 잃었나 하는 생각에 깜짝 놀라서 안아 주었더니 날짜를 받았는데 뜻대로 되지 않았다고. 휴~
직장이 사설 연구소에서 관공서로 바뀌어서 옷차림이 저렇게 되었나 싶기도 하다… 나이가 젊으면 젊은대로 늙으면 늙은대로 다 나름 빛이 있다고 하지만… 그래도 나는 좀 더 젊은 나이에는 좀 더 젊은 빛을 많이, 실컷 내주었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젊은 나이인데도 애늙은이처럼 입고 다니는 건 재미없다. 사람들은 젊음과 그 젊음에 따르는 섹시함을 두려워하는 걸까… 자신의 젊음 또는 젊었든 늙었든 자신의 섹시함을 편안히 느긋이 느끼는 사람을 별로 보지 못한 것 같다. 주변에서.
금요일에는 회사 회식이라고 술을 마시고 어제는 동생과 집을 보러 다니고 나서 술을 마셨다. 술김에 집에 와서 우유를 잔뜩 마시고 잤더니 오늘 계속 배가 아프다. 결혼하는 후배더러 ‘너가 결혼한다니 내가 배가 너무 아프구나. 웨딩 드레스 밟고 확 넘어져라.’ 기타 등등 너스레를 떨었다. 지지배, 아이보리색 웨딩 드레스가 잘 어울렸다. 색도 디자인도 대담했다. 저 대담한 것이 동아리에서 선배 잘못 만나서 기가 죽어 살았다. 몇 년이나. 근성이 약한 것 같았으면 버티지 못했을 텐데 잘 버티고 자기는 후배들을 어찌나 잘 건사했는지… 오늘 결혼식에 온 후배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내가 후배가 저렇게나 많았나… 어휴~~ 저 지지배, 정말 사람을 잘도 챙겼군. 자기 복도 있겠지만 선배들도 대거 참석한 결혼식이었다. 최근 몇 년간, 이 아니라 동아리 선후배 결혼식 사상 최대 선후배 참석률이었다. 저나 비슷하게 선하게 웃는 남편이랑 딸, 아들 낳아서 잘 살기를. 하회탈 같은 눈웃음을 하는 넘이지만 독하고 강팍하게 마누라, 자식 먹여살릴 것을 믿어의심치 않는다.
어제는 동생과 이태원으로 방을 보러 갔다. 이태원은 몇 년 전부터 살고 싶은 동네였다. 이번에 사는 곳의 전세를 올린다고 해서 이사는 정말 귀찮지만 서울로 들어가려는 생각에 방을 보러 다니고 있다. 지난 주에는 부모님 댁 근처에서 봤는데 별로 딱히 맘에 드는 곳이 없었다. 부모님 근처는 사촌 동생 부부와 조카들이 사는 집과도 한동네라 그게 좋긴 하지만 사실 근처에 산다고 해서 조카들을 더 자주 보러 가리란 보장은 전혀 없다. 엄마아빠동생과 너무 가까운 곳에 사는 것은 사실 대략 위험부담도 있다. ㅋㅋ
주말 이태원에 사람이 많아 동생과 팔짱을 끼고 걸었더니 떨어져 가자고 한다. 이런 동네에서 팔짱 끼고 다니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볼 거라나… 참… 나… 그러거나 말거나지 ㅋㅋ
동생과 나는 어릴 때부터 다르게 생겼는데 그래도 어릴 때는 나란히 놓고 보면 자매라는 걸 다들 알아봤다. 내가 학교 다닐 때 동생이 우산이라도 들고 오면 모르던 친구들도 복도에서 보고 ‘야, 너 동생이 기다려’ 이렇게 알려 줄 정도였다. 그러니까 그 때는 나란히 안 세워놔도 알아볼 정도였다는 거지. 초등학생이나 중학생 정도의 어린애라도 알아볼 정도였고. 요즘에는 자매라고 말을 해도 믿지 않는 사람들이 가끔 있다. 그냥 암말도 안 하면 다들 친구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러니 흠… 애인이라고 오해받을 만도 하기는 하겠다만… 그렇다 한들… 지지배, 남들 눈이 나름 의식되는 모양이지? 아니, 하려던 말은 이게 아니라, 그러니까, 어릴 때부터 다르게 생긴 우리 자매였지만 이제 서른 다섯, 서른 넷 하는 나이에 이르러서는 드디어 부모가 물려준 모양보다 우리 삶이 만들어낸 모양새가 더 얼굴에 깊이 새겨졌나보다, 생각하니 감회가 새롭다… 어쩌다가 이렇게 연로해졌나…?
동아리에 나보다 열 살 많은 결혼 안 한 언니가 있다. 그 언니와도 나와도 각별하게 친한 그 언니의 한 학년 후배인 언니가 오늘도 나한테 ‘너도 빨리 결혼해. 뭐시기가 부럽지도 않냐? 너 그러고 있다가 이 언니처럼 된다’ 이 말은 내가 서른 살이 되던 해에도 들었던 말이다. 아니면... 그 조금 전이었나? 그 말을 하기 전에는 ‘너도 이 언니처럼 될까봐 걱정된다’ 이런 말도 했다. ㅋㅋ ‘그 언니’는 당시에 아주 능력 있는 직장인이었고 거의 집안의 가장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 언니처럼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때도 그런 말을 했다가 ‘아니, 이 년아, 그런 거 말구 말이야. 결혼 안 하구 혼자 늙을까봐 걱정된다는 거지이~!’ 이런 말도 들었다. 하하하 그리고 지금은 5년이나 7년쯤 더 지난 서른 다섯이다. 후배들은 앞으로도 줄줄이 결혼할 것 같던데 이제 앞으로도 계속 결혼식에 쫓아다녀야 하나… 슬슬 고민된다… 봐서 대충 핑계 대고 빠질 궁리를 해봐야겠다… 오늘 보니 후배들도 정말 엄청 많더구만 ㅠㅠ
동생은 어느 점장이한테 내 사주를 넣었봤던 모양이다. 평생 일정한 수입이 없을 팔자인데 지금 직장에 다니고 있으면 계속 잘 다니라고 했단다. 보수적인 점쟁인 거지. 평생 일정한 수입이 없을 팔잔데 직장에서 월급 받는 것으로 팔자치레를 하란 말인가? 그래서야 언제 꽃을 보겠나? 빨리 관두고 내 꽃을 피워야지.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평생 일정한 수입이 없을 것이란 말은 정말 나 같은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딱 맞는 말이다. 나는 굳게 마음 먹었다. 인세를 받아서 먹고 살기로. 책을 쓰든 기획을 하든 번역을 하든 어쩌든 간에 나는 인세를 받아서 먹고 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러니까 평생 일정한 수입 같은 것 필요 없다. 월급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더 많이 벌거니까.
일본의 동성애 운동 모임(이름이 뭐였는지 까먹었는데 ‘아까OCCUR’ 뭐 그 비슷한 것이었다)에서 90년대 중반에 낸 수기집을 본 적이 있다. 거기 글을 쓴 사람은 어릴 때 섭식 장애를 겪었고 글을 쓰던 당시에는 ‘자기자신을 숨기지 않아도 되는 직업’을 찾고 있었다. 중요한 조건이다. 나 자신을 숨기지 않아도 되는 직업이란…
그런 면에서도 월급을 받는 회사라는 건 나는 별로 재미 없다. 뭐 회사 중에도 ‘자기 자신을 숨기지 않아도 되는’ 회사도 있는 모양이지만, 나는 그런 쪽으로 힘을 쏟기 보다는 그냥 혼자 일하면서 활자로 나 자신을 알리는 쪽에 힘을 더 쏟고 싶다. 그건 뭐 벌써 서른 다섯이나 먹은, 사회적으로나 직업적으로나 그리 선택의 여지가 많다고 할 수 없는 여자의 취향이니 군말 없기를.
마음이 통해서 키득댈 수 있는 직장 동료에게도 ‘내가 이성애자가 아니오’라는 말을 할 수 있을 만큼 편안하지 못하다는 것은 대략 잔혹한 일이다. 그 정도까지는 그 사람을 믿을 수가 없다. 그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오로지 나의 문제이지만.
이태원에 살고 싶다.
예쁘게는 못 입어도 웃기게는 입었었는데 어느새 직장인처럼 입고 있다.
세련되진 않아도 수수하게 언제나 자기처럼 입고 다니던 후배는 결혼 3년이 되어간다는데 오늘은 아줌마 원피스에 아줌마 가디건을 입고 아줌마 신발에 아줌마 가방을 들고 나왔다. 산부인과에도 갔는데 또 실패했어요, 하길래 저번처럼 배속에 안고 있던 아기를 잃었나 하는 생각에 깜짝 놀라서 안아 주었더니 날짜를 받았는데 뜻대로 되지 않았다고. 휴~
직장이 사설 연구소에서 관공서로 바뀌어서 옷차림이 저렇게 되었나 싶기도 하다… 나이가 젊으면 젊은대로 늙으면 늙은대로 다 나름 빛이 있다고 하지만… 그래도 나는 좀 더 젊은 나이에는 좀 더 젊은 빛을 많이, 실컷 내주었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젊은 나이인데도 애늙은이처럼 입고 다니는 건 재미없다. 사람들은 젊음과 그 젊음에 따르는 섹시함을 두려워하는 걸까… 자신의 젊음 또는 젊었든 늙었든 자신의 섹시함을 편안히 느긋이 느끼는 사람을 별로 보지 못한 것 같다. 주변에서.
금요일에는 회사 회식이라고 술을 마시고 어제는 동생과 집을 보러 다니고 나서 술을 마셨다. 술김에 집에 와서 우유를 잔뜩 마시고 잤더니 오늘 계속 배가 아프다. 결혼하는 후배더러 ‘너가 결혼한다니 내가 배가 너무 아프구나. 웨딩 드레스 밟고 확 넘어져라.’ 기타 등등 너스레를 떨었다. 지지배, 아이보리색 웨딩 드레스가 잘 어울렸다. 색도 디자인도 대담했다. 저 대담한 것이 동아리에서 선배 잘못 만나서 기가 죽어 살았다. 몇 년이나. 근성이 약한 것 같았으면 버티지 못했을 텐데 잘 버티고 자기는 후배들을 어찌나 잘 건사했는지… 오늘 결혼식에 온 후배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내가 후배가 저렇게나 많았나… 어휴~~ 저 지지배, 정말 사람을 잘도 챙겼군. 자기 복도 있겠지만 선배들도 대거 참석한 결혼식이었다. 최근 몇 년간, 이 아니라 동아리 선후배 결혼식 사상 최대 선후배 참석률이었다. 저나 비슷하게 선하게 웃는 남편이랑 딸, 아들 낳아서 잘 살기를. 하회탈 같은 눈웃음을 하는 넘이지만 독하고 강팍하게 마누라, 자식 먹여살릴 것을 믿어의심치 않는다.
어제는 동생과 이태원으로 방을 보러 갔다. 이태원은 몇 년 전부터 살고 싶은 동네였다. 이번에 사는 곳의 전세를 올린다고 해서 이사는 정말 귀찮지만 서울로 들어가려는 생각에 방을 보러 다니고 있다. 지난 주에는 부모님 댁 근처에서 봤는데 별로 딱히 맘에 드는 곳이 없었다. 부모님 근처는 사촌 동생 부부와 조카들이 사는 집과도 한동네라 그게 좋긴 하지만 사실 근처에 산다고 해서 조카들을 더 자주 보러 가리란 보장은 전혀 없다. 엄마아빠동생과 너무 가까운 곳에 사는 것은 사실 대략 위험부담도 있다. ㅋㅋ
주말 이태원에 사람이 많아 동생과 팔짱을 끼고 걸었더니 떨어져 가자고 한다. 이런 동네에서 팔짱 끼고 다니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볼 거라나… 참… 나… 그러거나 말거나지 ㅋㅋ
동생과 나는 어릴 때부터 다르게 생겼는데 그래도 어릴 때는 나란히 놓고 보면 자매라는 걸 다들 알아봤다. 내가 학교 다닐 때 동생이 우산이라도 들고 오면 모르던 친구들도 복도에서 보고 ‘야, 너 동생이 기다려’ 이렇게 알려 줄 정도였다. 그러니까 그 때는 나란히 안 세워놔도 알아볼 정도였다는 거지. 초등학생이나 중학생 정도의 어린애라도 알아볼 정도였고. 요즘에는 자매라고 말을 해도 믿지 않는 사람들이 가끔 있다. 그냥 암말도 안 하면 다들 친구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러니 흠… 애인이라고 오해받을 만도 하기는 하겠다만… 그렇다 한들… 지지배, 남들 눈이 나름 의식되는 모양이지? 아니, 하려던 말은 이게 아니라, 그러니까, 어릴 때부터 다르게 생긴 우리 자매였지만 이제 서른 다섯, 서른 넷 하는 나이에 이르러서는 드디어 부모가 물려준 모양보다 우리 삶이 만들어낸 모양새가 더 얼굴에 깊이 새겨졌나보다, 생각하니 감회가 새롭다… 어쩌다가 이렇게 연로해졌나…?
동아리에 나보다 열 살 많은 결혼 안 한 언니가 있다. 그 언니와도 나와도 각별하게 친한 그 언니의 한 학년 후배인 언니가 오늘도 나한테 ‘너도 빨리 결혼해. 뭐시기가 부럽지도 않냐? 너 그러고 있다가 이 언니처럼 된다’ 이 말은 내가 서른 살이 되던 해에도 들었던 말이다. 아니면... 그 조금 전이었나? 그 말을 하기 전에는 ‘너도 이 언니처럼 될까봐 걱정된다’ 이런 말도 했다. ㅋㅋ ‘그 언니’는 당시에 아주 능력 있는 직장인이었고 거의 집안의 가장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 언니처럼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때도 그런 말을 했다가 ‘아니, 이 년아, 그런 거 말구 말이야. 결혼 안 하구 혼자 늙을까봐 걱정된다는 거지이~!’ 이런 말도 들었다. 하하하 그리고 지금은 5년이나 7년쯤 더 지난 서른 다섯이다. 후배들은 앞으로도 줄줄이 결혼할 것 같던데 이제 앞으로도 계속 결혼식에 쫓아다녀야 하나… 슬슬 고민된다… 봐서 대충 핑계 대고 빠질 궁리를 해봐야겠다… 오늘 보니 후배들도 정말 엄청 많더구만 ㅠㅠ
동생은 어느 점장이한테 내 사주를 넣었봤던 모양이다. 평생 일정한 수입이 없을 팔자인데 지금 직장에 다니고 있으면 계속 잘 다니라고 했단다. 보수적인 점쟁인 거지. 평생 일정한 수입이 없을 팔잔데 직장에서 월급 받는 것으로 팔자치레를 하란 말인가? 그래서야 언제 꽃을 보겠나? 빨리 관두고 내 꽃을 피워야지.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평생 일정한 수입이 없을 것이란 말은 정말 나 같은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딱 맞는 말이다. 나는 굳게 마음 먹었다. 인세를 받아서 먹고 살기로. 책을 쓰든 기획을 하든 번역을 하든 어쩌든 간에 나는 인세를 받아서 먹고 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러니까 평생 일정한 수입 같은 것 필요 없다. 월급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더 많이 벌거니까.
일본의 동성애 운동 모임(이름이 뭐였는지 까먹었는데 ‘아까OCCUR’ 뭐 그 비슷한 것이었다)에서 90년대 중반에 낸 수기집을 본 적이 있다. 거기 글을 쓴 사람은 어릴 때 섭식 장애를 겪었고 글을 쓰던 당시에는 ‘자기자신을 숨기지 않아도 되는 직업’을 찾고 있었다. 중요한 조건이다. 나 자신을 숨기지 않아도 되는 직업이란…
그런 면에서도 월급을 받는 회사라는 건 나는 별로 재미 없다. 뭐 회사 중에도 ‘자기 자신을 숨기지 않아도 되는’ 회사도 있는 모양이지만, 나는 그런 쪽으로 힘을 쏟기 보다는 그냥 혼자 일하면서 활자로 나 자신을 알리는 쪽에 힘을 더 쏟고 싶다. 그건 뭐 벌써 서른 다섯이나 먹은, 사회적으로나 직업적으로나 그리 선택의 여지가 많다고 할 수 없는 여자의 취향이니 군말 없기를.
마음이 통해서 키득댈 수 있는 직장 동료에게도 ‘내가 이성애자가 아니오’라는 말을 할 수 있을 만큼 편안하지 못하다는 것은 대략 잔혹한 일이다. 그 정도까지는 그 사람을 믿을 수가 없다. 그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오로지 나의 문제이지만.
이태원에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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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