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서] 동성애자 차별을 조장하는 노무현 정권을 규탄한다.

[성명서] 동성애자 차별을 조장하는 노무현 정권을 규탄한다.


우리는 지난 2일 규제개혁위원회로 넘어간 '차별금지법안' 이 '성적지향' 포함 일곱 가지 항목을 삭제한 상태의 법안이라는 데 착잡함을 넘어 분노를 표한다. 성적지향, 학력, 병력, 출신국가, 언어, 가족 형태 및 가족상황, 범죄 및 보호처분 전력에 대한 차별금지의 내용이 빠진 '차별금지법안' 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전반적인 인권 향상과 사회적 약자・소수자의 인권보호를 도모함' 을 법안 제안의 기조로 삼았던 정책 담당자들이 갑자기 '부분적인 인권 향상 및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중 어떤 이들만의 인권 보호만을 제한적으로 도모함' 을 법안의 취지로 생각하는 이들로 교체되기라도 했단 말인가?


날이 갈수록 증가하는 동성애자에 대한 혐오범죄는 어떻게 다루려고 그러는가. 불과 얼마 전 온 사회를 강타했던 학력주의와 그 폐단에 대한 문제를 잊었는가. 수없이 보고되는 이주노동자 인권 침해 문제 및 개인의 병력을 매개로 하여 발생하는 각종 사회적 불이익 문제는 그냥 내버려 둬도 된다는 건가. 아직도 부모와 자식으로 이루어진 4인 핵가족 모델만을 '정상적인' 가족 형태라 외칠건가. 전과를 가진 이의 사회통합을 점점 더 어렵게 만들고 말 텐가. 강제성 없는 국가인권위원회 법 하나 보고 그래도 우리 나라에는 '성적지향' 을 매개로 한 차별을 옳지 못하다고 하는 법조항이 하나라도 있다고 위안받았던 동성애자들은 이제 우리의 차별 문제를 앞장서서 무시하고자 하는 정부 앞에서 어떤 기분으로 하루 하루를 버텨 나가야 하는가.


지금 보수기독교계는 실로 잔치 분위기인 듯 하다. 자신들이 서는 설교단과 교단 위에서 지금까지 그래왔듯 앞으로도 마음껏 동성애자를 헐뜯으며 자신의 교회 혹은 학교에 있는 동성애자를 이성애자로 바꾸기 위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성적지향' 조항 삭제를 두고 한국기독교총연합회 관계자가 '매우 잘된 일' 이라고 했다는 데 우리는 그 말에 분노를 느끼기에 앞서 어리둥절하고 의아하기가 짝이 없다. 자기 바로 곁에서 수많은 동성애자들이 '어, 법이 나는 차별받아도 된다고 그러네' 란 생각으로 자괴감과 우울을 겪고 생의 의지를 꺾이는데 이토록 동성애자들이 힘겨워 하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참 잘 되었다고 그저 희희낙락하니 그가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라는 상식이라도 통하는 인간인가 하고 되묻지 않을 수가 없다. 자기들이 나서서 차별을 조장해 놓고 잔치 분위기라니, 이런 사람들이 한국 기독교 뿐만 아니라 사회 각계에 끊임없이 입김을 불어 넣을 걸 생각하니 끔찍한 기분이다.


그들이 원하는 '나라의 질서'가 과연 그들이 그토록 부르짖는 하나님의 가르침에 부응하는 질서일런지. 기독교의 '믿음, 소망, 사랑' 은 아무래도,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을 핍박하는 게 옳다는 '믿음,' 동성애자들이 하나님께 버림받기만을 바라는 '소망,' 그리고 특정한 사람들만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랑'을 가리키는가 보다. 정말 그렇다면 이는 기독교의 본디 정신과 너무나 배치되지 않는가. 이 사실에 창피해 해야 할 성직자들이 정작 창피 따위 모른 채 사람 차별하는 '차별금지법' 에 행복해 하고 있다. 동성애자가 사라져야 우리 사회의 질서가 바로잡힌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곧 동성애자에 대한 사형 선고나 마찬가지다. 21세기의 대한민국에 다시금 마녀 사냥이 횡행할 예정인지도 모른다.
 

법과 국가는 역시나 권력을 가진 자만이 좌우할 수 있는 것이었던가. 차별받아 온 당사자들은 피눈물을 흘리고 있는데 자기들끼리 그렇게 가볍게 삭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건가.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거나 처벌하는 법적 장치의 필요에 대해 수년 간 애써 온 동성애자 권리 운동 진영의 주장은 돈, 권력, 지위를 갖고 있는 보수기득권 층의 반대 제스춰에 묻혀 버리고 있다. 정부는 정말 대통령 임기 말년까지 이런 식으로 우리의 요구에 등 돌릴 요량인가? 가장 억압받는 자들의 인권을 보장하는 최후의 보루가 되어야 마땅할 법제도를 폭력적 윤리 규범을 갖고 있는 기득권 층의 구미에나 맞추고 있다니 절망스럽다.


참여정부는 대체 이 나라의 운영에 어떤 입장들을 참여시켜 왔는가. 부당한 차별의 피해자, 오랜 억압의 희생자들이 온전한 사회의 일원으로 자리매김할 여지가 그간 참여정부 5년 동안 제대로 마련되어 왔는지 심히 의문이 든다. 그리고 이 차별금지법안을 연내 통과시킨다는 건 이미 인권 향상을 위한 참여 정부의 업적으로 자리매김 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줄곧 지적했듯, 차별금지법안이 차별을 조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곧 현재 규제개혁위원회로 넘어가 있는 법안이 역설적이게도 인권침해적인 차별금지법안이라는 뜻이다.


지금은 차기 대선을 앞둔 현 정권 말기다. 그렇다고 해서 정권이 나태해져도 된다거나 책임과 의무를 방기해도 되는 건 절대 아닐 것이다. 우리는 노무현 정권이 반드시 책임지고 차별금지법안 최종안을 재검토 하길 요구한다. 이 법안이 지금과 같이 성적지향, 학력, 병력, 출신국가, 언어, 가족 형태 및 가족상황, 범죄 및 보호처분 전력에 대한 차별금지의 내용을 포함하지 않는 상태로 통과된다면 이는 우리 사회의 인권 지수를 현저히 떨어뜨리는 것으로, 두고두고 노무현 정부의 오점으로 남을 것이다.


우리는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는 인권 침해적 차별금지법안 입법 과정을 결코 지켜보고 있지만은 않을 것이다. 뜻을 같이 하는 수많은 이들과 함께 인권을 보장하는 차별금지법안이 제정될 수 있도록 힘차게 활동할 것이다. '성적지향' 포함 7개 조항이 삭제된 차별금지법은 차별조장법에 불과하다는 점을 마지막으로 명확히 밝힌다.

 
노무현 정부는 책임지고 차별금지법안 최종안을 수정하라!

 

2007.11. 5
한국레즈비언권리운동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