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김하은님.
도저히 털어놓을 곳이 없으셔서 저희 상담소를 찾아 주셨다고 하셨는데요. 이렇게 용기 내어 고민을 꺼내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글로 미루어보아, 여태껏 이성애자로 살아왔지만 얼마 전부터 여성과의 섹슈얼한 꿈을 꾸게 되셨다고요. 남자친구와의 스킨쉽에서는 거부감이 드는 현실과 달리, 꿈속의 경험은 긍정적이었고 계속 생각나며 다시 꿈꾸고 싶다는 마음까지 들어 혼란스러워하고 계신 것으로 보입니다. 게다가 모태신앙으로 기독교 가르침 속에서 자라오신 만큼 지금 느끼는 감정들과 종교적 신념 사이의 차이 때문에 더욱 어려워하는 것 같습니다.
깊은 신앙심을 가진 분들 중에 자신의 내면에서 새롭게 경험하는 감각과 기존의 종교적 가르침 사이에서 갈등을 겪는 일은 결코 드물지 않지만, 동시에 고통스러운 경험이기도 합니다. 내가 믿고 자라온 가르침과 내 안에서 피어나는 본능적인 감정들이 충돌할 때, 이는 정체성에 대한 깊은 고민을 넘어 죄책감이나 불안감으로 이어질 수도 있기에 염려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종교적 믿음과 개인의 감정은 결코 동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퀴어 친화적인 교회들이 존재하며 최근 서울퀴어축제에서는 로뎀나무그늘교회, 향린교회, 섬돌향린교회, 길 찾는교회, 여름교회, 무지개신학, 임보라목사기념사업회, 큐앤에이가 참여하여 다양한 형태의 사랑과 포용이 종교 안에서도 존재함을 보여주었습니다.
기독교 교리와 개인의 정체성이 부딪힌다고 느낄 때, 어떤 이들은 밀려오는 파도를 애써 외면하거나 잠시 모래 속에 묻어두려 합니다. 하지만 그 파도는 끝내 다시 해안으로 밀려와 발끝을 적실 거예요. 그러니 지금 느끼는 감정들이 종교적인 가르침과 상반된다고 해서 애써 외면하거나 깊이 감추기보다는, 오히려 스스로를 더 깊이 이해하고 신앙의 의미를 새롭게 확장해 나갈 수 있는 귀한 기회로 삼아 보는 것도 방법입니다.
성적 지향과 성정체성에는 매우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존재하며 고정된 것이 아닙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성적 끌림과 로맨틱한 끌림을 각각 다르게 느끼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이성에게 로맨틱한 끌림을 느끼지만 성적 끌림은 동성의 몸에서만 느끼는 경우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성정체성 탐색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하은님의 감정과 경험,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이해입니다. 자기 자신을 어떻게 읽고 이해하는지에 따라 특정 성정체성으로 이름 붙이기를 하고, 경우에 따라 하지 않기도 합니다. 가령 자신을 특정 성정체성으로 규정하고 싶지 않다거나, 그냥 어떤 범주에도 속하지 않는 지금의 상태가 좋다고 느끼거나, 정체성에 갇히지 않겠다는 의미로 스스로를 퀘스쳐너 (Questioner)로 자신을 설명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그리고 성정체성은 고정된 것이 아니기에 삶의 과정 속에서 새로운 감정을 경험하고 다시 탐색하고 싶다면 언제든지 새롭게 시작할 수 있습니다.
비록 꿈속의 일이라 할지라도, 새로운 감각을 경험하고 그것을 궁금해 하는 것은 자신을 알아가는 자연스러운 과정의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성정체성이나 성적 취향에 대한 고민은 삶의 어느 시기에나,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자연스러운 경험이에요. 이는 온전히 나를 이해하고 깊이 알아가는 삶의 과정이기에, 종교적인 배경을 이유로 지금 느끼는 나만의 감정을 사소하게 여기거나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오히려 내가 지금 느끼는 감정들을 진지하고 소중히 다룬다면, 자신을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귀중한 자원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자원을 가지고 솔직하고 구체적으로 자신과 대화를 해보세요. 꿈이라 할지라도 여성과의 스킨쉽에 왜 거부감이 들지 않았는지, 구체적으로 어떤 느낌과 감정이 들었으며 계속 생각나거나 다시 꿈꾸고 싶은 지점은 어디인지요. 그리고 반대로 남자친구에게는 왜 거부감이 드는지도요.
마지막으로 하은님께서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에 대한 진정한 대답은 오직 하은님만이 찾을 수 있습니다. 물론 단번에 결정할 수 없을 만큼 힘들고 어려운 일임은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자기 검열로 자책하거나 죄책감을 느끼기보다는, 정말로 자신이 원하는게 무엇인지 따뜻하고 열린 마음으로 내면의 솔직한 목소리에 더 귀 기울이고 아껴 주시길 바랍니다.
하은님만의 속도로 확신과 신뢰를 가지고 천천히 탐색을 한다면, 이 또한 소중하고 의미있는 시간이 될 거예요. 무엇보다 우리 모두는 각자 고유하고 소중한 존재이기에, 종교적 믿음과 별개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마주하고 긍정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하은님이 되기를 진심으로 응원하겠습니다. 더 궁금한 점이 있거나 지금처럼 혼자 고민하기 힘들 때 언제든지 다시 상담을 신청해 주세요. 하은님께 편안하고 안전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드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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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저희 레즈비언상담소에서 발간한 자료집 “이런 질문도 괜찮아요”를 같이 첨부합니다. 간단한 용어의 이해부터 성정체성 탐구, 다양한 성소수자의 삶까지 다양한 궁금증과 답변을 하나로 엮어낸 자료입니다. 저희 홈페이지 자료실에 더 많은 추가자료들이 구비되어 있으니 함께 둘러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런 질문도 괜찮아요’ 자료집:
https://drive.google.com/file/d/114_9qnsgFYg5JqfYK4n-3EU3Z3vxG5YF/view
한국레즈비언상담소 자료실:
https://lsangdam.org/archive/
제가.. 너무 고민이 되는데 말할 곳이 전혀 없어서요..도저히 말할 곳이 없어요..
저는 고3 여학생입니다. 얼마전부터 여성분과 그렇고 그런 행위를 하는 꿈을 꾸기 시작했어요. 매일은 아니지만 꽤 자주 꿉니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지만 여성이라는 것은 알겠어요.. 그런데 중요한것은 꿈에서도 그렇고 깨고 나서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는 거예요.. 심지어 계속 생각나고 다시 꿔보고 싶기도 합니다.
저는 여태까지는 남자만 만나봤어요.
근데 남자랑은 그런 꿈은 커녕 그런 행위를 한다는 것에 크게 거부감이 듭니다. 남자친구가 있어도 키스와 그 이상의 스킨십은 하고 싶지도 않아요..
그치만 여자인 친구를 좋아해본 적도 없습니다..
제가 동성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인 것일까요..?
기독교집안에서 자란 모태신앙이라.. 말할 친구들 조차 없어서 한번 여쭈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