ㅉㄴ 님, 상담원입니다.
너무도 애타는 마음을 호소하셨는데
거기에 이렇게 뒤늦게서야 답변을 드리게 되어
정말정말 죄송합니다.
좋아하는 친구,
작년에는 다른 반이라 바라만 보던 아이와
올해 같은 반이 되어 심지어 가까이 지내는데
늘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이 커서 힘드신가 봅니다.
게다가 그녀를
오직 내 사람으로만 만들고 싶다보니
다른 친구하고 같이 있는 모습을 보거나 하면
질투심에 사로잡히기도 하시고요.
주말이나 기타 공휴일에는 정말 더
안절부절 궁금하고 그리워서 괴로우시겠는걸요.
상담원도 누군가를 좋아하면서 그래본 경험이 있다보니
ㅉㄴ 님의 마음 참 잘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나저나 그 친구가 아무래도 이성애자 같아서
도대체 내 마음을 어찌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고민이 깊으신가 봅니다.
같은 이반들 사이에서 만난 사이라면
커밍아웃 부담 없이, 낙인찍힐 두려움 없이
고백해 볼 수 있을 텐데요.
그런 경우는
혹여 거절을 당하더라도
이반이라는 사실 때문에 비난 받을 염려같은 건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니 말예요.
지금 ㅉㄴ 님과 그 친구는
학교에서 모두 섞여 있는 가운데 만난 것이다보니
어떤 식으로 이 마음을 전할까 싶어
많이 막막하시겠다 싶어요.
우선은 말이죠 ㅉㄴ 님.
그 친구하고 같이 있을 수 있는 시간 동안
일단 친구로라도 최대치로 많은 걸 나누며
추억을 많이 만드셨으면 좋겠어요.
당장 고백하거나 사귀는 게 불가능하다 하더라도
적어도 친구 관계 자체를
근사하게 이어갈 수 있는 거잖아요.
질투심이나 전전긍긍하는 마음
혹은 친구의 말 한 마디 행동 하나하나에
일희일비 하는 마음 같은 거
수시로 ㅉㄴ 님을 괴롭힐 수 있어요.
그럴 때면
좋은 친구로 잘 지내기 위해서는
나 스스로 그런 마음을 조율할 줄 알아야 해!
라는 주문을 자꾸만 외어 보세요.
우정과는 또 다른 연애 감정으로 좋아하는 사람과
친구로 지낸다는 거 사실
무척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어요.
그러나 뾰족한 수가 당장 떠오르지 않는다면
일단 내가 내 마음을 보살펴야 하잖아요.
ㅉㄴ 님 자신을 위해서라도,
나와 쟤는 친구다, 내가 쟤를 좋아하는 것 뿐
사실상 우리는 현재 스코어
친구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런 생각을
자꾸 떠올려 봐요.
그러면 친구(와 그 친구와 친한 다른 친구들)에 대해
알게 모르게 느끼는 긴장감, 질투심, 경쟁심 같은 마음들
생각보다 덜 어렵게 다루어 나가실 수 있을 거예요.
나 스스로 현실 인식을 잘 하고
그 인식에 맞춰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마음먹기랄까요.
감정이 격렬해지다보면
새삼 고백을 하지 않는다 해도
어느새 그 친구 역시
ㅉㄴ 님의 감정이 그리는 파고를
눈치채게 될 테고
그렇게 되면 친구로 지내는 것도
지금보다 어려워질지 몰라요.
어쩌면 상담원이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을 가지고
ㅉㄴ 님에게 괜한 걱정들을 늘어놓은 건
아닌가 모르겠어요.
ㅉㄴ 님의 짝사랑, 응원할게요.
그 친구도 ㅉㄴ 님에게 마음이 있어서
두 분이 서로 그 마음을 전할 수만 있다면
참 멋질 텐데요.
설혹 그렇게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뭐랄까 누군가를 그토록 열렬히 좋아한다는 그 경험 자체가
정말 소중하지 않나요.
누군가를 그렇게 좋아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도
참 좋은 일이고요.
좋은 소식 생기거든 자랑해 주시고
혹여 그런 소식이 없더라도
또 나누고 싶은 고민이 생기면
언제건 이곳 게시판 다시 찾아주세요.
다음 번에 오시면
그 때는 이번보다 조금 더 신속하게
답변을 드리도록 할게요.
다독다독 위로와 격려를 전합니다.
상담원이었습니다.
201307H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