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빈님, 보셔요.

한규빈님, 상담소입니다.
답변이 늦어져 죄송합니다.

좋아하는 친구가 생겼는데
전학을 가서 속상하시겠어요.
친구가 계속 생각나고 보고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 지 고민이 되시나 봐요.

상담원은 먼저
규빈님이 용기를 내어 고민을 글로 정리하고
또 게시판에 남겨주신 점을 격려해 드리고 싶어요.
지금의 이 고민들,
무사히 잘 풀어나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 보아요.

상담원은 규빈님이
규빈님도 여자이고, 그 친구도 여자인데
좋아하는 감정이 들어
걱정이 되실 거라는 짐작을 해보았어요.

먼저 규빈님, 상담원은요,
그 친구가 생각나고 보고싶고 좋아하는 그 감정을
규빈님이 그 감정 그대로 들여다보시길 바라요.

지금 규빈님의 감정과 고민은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거든요.
좋아하는 친구가 보고싶고 계속을 연락을 하고 싶은 그 감정은
전혀 이상하거나 잘못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거랍니다.

여자친구에게 우정과는 다른 호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닌데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하기 쉬우니까)
규빈님은 자기 감정을 솔직하게 받아들이고 있어요.
그 점에 대해 상담원은, 규빈님을 격려하고 싶어요.

그리고 상담원은
본인의 정체성을 진지하게 탐색해 보는 시간을
규빈님께서 가져보기를 권해 드리고 싶어요.
이 때 규빈님이 레즈비언이 맞는지 아닌지에 대해
상담원이 판단을 내려줄 수는 없다는 말씀도 함께요.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서는 자기 자신만이
가장 정확히 규정을 지을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상담원은
규빈님은 지금 여자친구를 좋아하니까 레즈비언이에요,
혹은 규빈님은 레즈비언이 아닙니다, 라는 식의
말씀을 드릴 수도 없고요,
그렇게 말해도 안 되는 거랍니다.

규빈님의 정체성은
규빈님이 그동안의 경험들을 찬찬히 돌아보면서
생각해볼 수 있는 거예요.

내가 주로 이끌렸던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나.
난 어떤 사람들에게 두근거렸고 어떤 사람들과 가까워지고 싶었나.
이런 점들에 대해 하나하나 기억을 되살려 보는 거예요.

그러다보면 지금에 이르겠죠.
지난 경험들에 이어 지금의 규빈님이 있으니까요.
지금 규빈님은 한 친구를 무척 좋아하고 있어요.
그리고 그 마음을 잘 받아들이고 있어요.

그리고
미래의 나는 어떨까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요.
나는 앞으로 주로 어떤 이들에게 호감을 느낄까.
어떤 사람에게 설레이고, 어떤 사람과 함께 있을 때 행복을 느낄까.
어떤 이들과 인생을 나누고 싶을까.
나 자신은 어떤 사람으로서 살아가고 싶을까.
이런 점들에 대해서 말이에요.

본인이 만일 이제까지 좋아했던 이들이 대부분 동성의 상대였고
지금도 동성의 상대에게 이끌리는 상태이며
앞으로도 그럴 것 같은 경우,
'난 여자를 좋아하는 여자로 살아갈거야' 라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이 바로 레즈비언일 거예요.

다른 말로 하면,
여자에게 감정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성적으로 이끌리는 여자들 중
자기 자신이 그렇게 여자에게 이끌리는 사람이라는 것을
자기 정체성 안으로 통합적으로 받아들인 경우
이 사람은 자기 자신을 레즈비언이라고
규정한 것이라 볼 수 있다는 것이죠.

상담원은 규빈님에게
상담원이 위에서 언급한 질문들을
자기 자신에게 스스로 던져 보는 시간을
꼭 가져 보길 권하고 싶어요.
그러면서 자기 자신에 대해 천천히 알아가는 거예요.

절대로 서둘러 자기 정체성을 결정짓고자 할 필요가 없답니다.
지금 당장 결정할 필요는 없어요.
느긋하게 생각해도 괜찮아요.

중요한 건,
동성의 상대에 대한 이끌림 자체를
나쁜 거라거나, 그래서는 안 되는 거라거나, 죄짓는 거라거나 하고
생각하지 않아도 정말 괜찮다는 거예요.

동성의 상대에 대한 이끌림,
동성의 상대와의 사귐,
동성의 상대와의 성적 스킨십,
이 모든 건 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거랍니다.

사람은 누구나
동성의 상대에게 이끌릴 수 있는 가능성과
이성의 상대에게 이끌릴 수 있는 가능성을
동시에 갖고 있다고 해요.

다만 우리 사회가 워낙 이성애만 당연시하니까
동성의 상대에게 이끌릴 수 있는 자기 안의 가능성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을 뿐이죠.

그러니까
사랑과 교제와 성관계와 결혼 등은
마치 이성간에만 가능하고 이성간에서만 자연스럽다는 발상이
오히려 부자연스럽다고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여자를 좋아하는 것 자체에 대해
혹여 수치심을 느끼고 있거나
이러면 안 되는 것 아닌가 싶어 두려움을 느낀다거나 했다면
그러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기억해 줘요.
있는 그대로 느끼고 받아들여도 괜찮답니다.
스스로의 마음을 격려해 줘요.

덧붙이자면, 레즈비언 중에서도 남성을 좋아한 경험이 있거나
남성과 연애를 해본 사람들이 많아요.

누군가를 좋아했던 경험,
연애를 해 본 경험도 중요하지만
자신이 레즈비언인지 아닌지는 그것만으로 판단할 수는 없어요.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이끌린 경험이 있었을 때,
자신의 경험 중에서
어떤 것이 자신에게 중요했는지
자신이 좋아하는지 등을 생각하여
자신을 레즈비언 혹은 이성애자로 정체화할 수 있어요.

규빈님, 일단 지금 친구를 좋아하는 감정
그 감정에 충실해 봐도 좋을 것 같아요.
그런 감정은 너무나 사랑스럽고 소중한 감정이잖아요.
본인이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고민은 그 감정들을 충분히 만끽하면서
천천히 해 나가도 괜찮아요.

그리고
그리고 규빈님,
규빈님의 지금 십대 때의 경험과 감정을
소홀히 다루지 말아주셨으면 하는 마음을 전해요.

보통 십대 때의 경험을
청소년기의 사춘기 때의 지나가는 경험이라서
가볍게 이야기하곤 합니다.
십대 때는 충분히 동성 친구와의 우정을 착각할 수 있고,
아직 어리기 때문에 혼란스럽고, 잘못 판단할 수 있다고요.

규빈님, 잘 생각해보셔요.
지금 자신의 감정을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를요.
자신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감정을 지니고 있고
어떤 것을 하고 싶은지를
누가 제일 잘 알 수 있을지.
누가 고민하고 답을 내릴 수 있을지를 말이에요.
규빈님의 감정을 아무도 정의 내려 줄 수 없답니다.
규빈님이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또한
다른 사람이 정해주거나 대신 생각해 줄 수 없어요.

이것은 규빈님이 십대 때인 지금도 마찬가지잖아요.

자신에게 흘러나오는 감정이
얼마나 소중하고, 아껴만 주어도 아까운 것인데
청소년기라서 그래, 라고 가벼이 여기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규빈님의 정체성 고민과 함께
친구 분과의 관계를 고민한다면
좀 더 명료한 그림이 그려지지 않을까 싶어요.

이를 테면 규빈님의 감정이 이끌림이라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그 친구와의 관계를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지,
아니면 이대로 규빈님의 마음을 정리하면서
그 친구와의 관계를 친구로 유지할지,
규빈님의 마음의 변화를 받아들이되
그 친구에게는 규빈님의 마음을 감추며 이대로 친구로 지낼지,
어떤 답이든 님 스스로가 가장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
마음이 편해질 수 있는 방법을 찾아 가시기를 바라고 있을게요.

상담원이 이제까지 드린 말씀들이 규빈님에게 도움이 되면 좋겠어요.
그럼 이만 상담 마치겠습니다.
다음에 다른 고민이 생기시면 언제든 상담소를 찾아주셔요.

* 한국레즈비언상담소 알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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