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ede님, 상담소에서 답변을 드려요.
학교서 짝꿍을 하고 있는 여자 친구를 좋아하고 계시네요.
고백해 보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고, 겁도 나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시던 중 상담소를 찾아 주신 것 같아요.
kaede님 고민을 나눌 수 있게 되어 반갑습니다. 😀
(답변이 다소 늦어졌어요. 그 점 사과드려요.)
본격적인 상담에 들어가기에 앞서
kaede님이 자기가 레즈비언이라는 사실 자체를
부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
상담원에게 무척 기쁘게 다가왔다는 것을 먼저
말씀드리고 싶어요.
동성의 상대를 좋아하는 자신의 감정을 깨닫고도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워하고
끊임없이 자책하고 괴로워하며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무척 많다보니
늘 안타까운 심정이거든요.
사람들로 하여금
힘들어하지 않아도 될 일을 가지고
힘들어하게끔 만드는 우리 사회의
이성애 중심성이 참으로 갑갑하고요.
그런데 kaede님은
여성으로서 여성에게 끌리는 자기 자신을
그 자체로 존중하고 아껴주실 만큼
용감한 분이리라 짐작되어요.
자기 자신에게 떳떳한 kaede님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격려하고 싶습니다.
그럼 이제
kaede님이 좋아하는 친구와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로
진입해 볼까요?
좋아하는 친구하고
마음처럼 잘 지내지는 못하는 듯한 느낌에
늘 좀 아쉬운 심정이신가 봐요.
그 친구는 kaede님이 보내는 문자에
답장을 잘 안 보내 주는 편이고
kaede님은 그게 불만스럽네요.
그 친구가 특별히 kaede님에게만 소홀하다기보다
원래 그런 스타일이라는 걸 알고 있더라도
kaede님이 워낙 그 친구를 좋아하고 있다 보니까
아쉬운 느낌이 더할 수도 있으리라 생각해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에게 보이는 반응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하나하나 신경쓰이게 마련이니 말이에요.
그리고 남겨 주신 글귀들로 미루어보아,
kaede님에게는, 친구와 문자메시지를 주고 받는 것이
친구간에 친밀한 감정을 나누고
서로간의 일상을 공유하는데
아주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것 같아요.
워낙 그러한데,
그 친구에게는 친구 대하는 감정과는 또 다른
특별한 호감까지 갖고 있다보니
마음만큼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지 못하는 게
더더욱 아쉽게 느껴질 수 있겠다 싶고요.
그 친구와 가까운 편이라고 적어주셨는데요.
그렇다면 그 친구와 kaede님이 친구로 지내면서
서로 베풀고 양보하며 배려하는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게 우선 가능하리라 봐요.
당장 연애감정을 고백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말이에요.
친구 관계에서도 서로 상대방에게 불만스러운 걸
적절히 맞춰갈 수 있는 법이니까요.
그러니 그 친구가 너무 답장을 안 한다 싶으면
그래도 최소한도의 답장은 잘 해 주길
좋게 당부해 보는 것도
관계를 좀 더 적극적으로 만들어 나가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거에요.
친구가 kaede님의 당부(혹은 제안)에 보일 반응에 따라
같이 대화해 나가며 관계 안에서의 연락 문제를
잘 합의해 나가는 것이지요.
kaede님 쪽에서 상대방에게 말도 꺼내 보지 못한 채
혼자 속상해 하고, 아쉬워 하고, 애타 하다 보면
고백의 문제에 앞서 친구 관계마저
삐그덕 할 수가 있답니다.
본디 친한 사이라면
고백의 여지를 살펴 보더라도
그 관계를 잘 지켜 나가면서
친구에 대해 더 잘 알아 나갈 기회를 가지며
고백의 틈을 살피는 게
보다 그 친구에게 가까이 다가가기
좋은 방법일 테지요.
그러므로 친구 관계의 실질적인 원만함을 위해서라도
서운하고 답답한 점이 있으면
친구에게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내
풀고 넘어가기를 권하고 싶어요.
헌데 상담원이 정확히 파악을 못한 것은요,
'솔직히 좋아하는 건 알고 있는데' 라고 적어주신 게
kaede님 스스로 자신이 그 친구를 좋아하고 있다는 걸
확실히 느끼고 있다는 걸 가리키는 건지
아니면 kaede님이 그 친구를 좋아하고 있다는 걸
그 친구가 알고 있다는 걸 가리키는지에 대한 거예요.
적어 주신 것으로만 봐서는 어느 쪽인지
잘 감이 안 오더라고요.
친구가 전혀 kaede님의 감정을 눈치 못해고 있는 상태라면
그 친구가 동성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여자친구들끼리 좋아하고 사귀는 것에 대해
평소에 어떤 느낌을 갖고 있는지, 등에 대해
미리 알아 보는 것도 고백을 위한 사전 준비로
유용한 일이랍니다.
동성애자로 알려진 해외 유명인 이야기나
케이블 텔레비전(혹은 유선 방송)에서 방영되는 관련 프로그램,
또는 인터넷에 올라오는 동성애 관련 각종 소식 등의
화제를 이용해 동성애에 대한 친구의 감수성을
얼마간이나마 알아 볼 수 있을 거에요.
이 때 친구가 동성애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얘기 잘 하고
편견없는 모습을 보인다면
이성의 상대에게 고백하고자 하는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은 조건 속에서
고백에 대해 생각해 보면 되겠지요.
이성간의 고백이라 하더라도
그 고백은 받아들여질 가능성과
거절당할 가능성을
늘 동시에 갖는 거니까
동성 친구에게 고백하고자 할 때도
두 가지 가능성을 다 염두에 둬야 하겠고요.
반면 그런 과정 속에서 알아 본 결과
친구가 동성애에 대한 거부감을 크게 갖고 있다면
고백을 보류하겠다 결정하실 수도 있겠지요.
왜냐하면 거부감이 큰 친구에게 고백했다가는
고백 자체를 거절당할 뿐만 아니라
kaede님이 동성애자라는 사실마저 비난받는
그런 경험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그러한 결론이 예상이 된다면
슬프고 불쾌할 상황을 아예 안 만들겠다
작정할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지레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원통하더라도
나 자신을 지키겠다는 마음이 앞선다면
고백을 포기할 수도 있을 겁니다.
물론
친구가 거부감을 보이더라도
내 감정은 꼭 전달하겠다, 라는 마음이 든다면
친구가 보일 반응이 썩 호의적이지 않으리란 예상을 하며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말을 꺼낼 수 있을 터이고요.
친구가 동성애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전혀 모를 때보다는
거부감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라도 사전에 알아 두는 게
고백하기 전에 마음을 다져 먹는 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해요.
만일 친구가 kaede님의 감정을 이미
어느 정도 눈치를 채고 있는 상태라면
동성애와 관련된 친구의 생각을 떠보는 게
실질적으로 kaede님의 속을
더 많이 드러내는 일이 될 수가 있으므로,
고백을 적극적으로 생각하신다면
안 좋아하는 듯한 태도를 취하며 친구를 헷갈리게 하기 보다
아예 허심탄회하게 말을 꺼내시는 게
최선일 수도 있어요.
그게 정답이라고 할 순 없을지라도요.
한편
고백할 생각이 없다면
친구가 자기가 눈치챘다고 생각한 게
실은 아니었다고 다시 믿게끔
kaede님이 마음 단속을 잘 하시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kaede님의 감정이 자꾸 친구에게 전달이 되어
친구가 그렇게 자신에게 오는 kaede님의 감정을
부담스럽게 느끼게 되면
두 분의 친구로서의 관계도
어려워지게 되기 쉬우니까 말이지요.
꼭 사귀는 사이가 되지는 못하더라도
그간 쌓아온 친구 관계 속에서의 우정 또한
연애감정 못지 않게 꾸준히 지켜나갈 충분한
의미가 있는 그런 감정이므로
친구 관계를 지키는 데도 정성을 들이면 좋을 것 같아요.
언제나 잊지 마셔야 할 것은
만일 고백을 하게 된다면
고백과 더불어 상대방에게
부탁하는 것도 놓치지 않으셔야 한다는 거에요.
어떤 부탁인가 하면, 바로, kaede님의 고백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말아달라는 부탁이지요.
고백하는 건 곧 커밍아웃과 같은 일이다보니
동성의 상대에 대한 고백 사실이 알려져
제3자들의 눈총을 받고 손가락질 당하는 상황을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고백받은 당사자가 '고백'에 대한 사실을 비밀에 부쳐주길
당부해 두는 게 필요하리라 봐요.
또 한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건
고백의 결과가 어떻든 그것과 무관하게
kaede님은 kaede님 자체만으로
소중하고 귀한 유의미한 존재라는 점을
언제나 기억하셨으면 좋겠다는 것이에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해 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겠지만
항상 일이 그렇게만 이루어지는 건
아닌 것 같아요.
하지만 혹여 내가 좋아하는 이로부터
거절을 받는다고 해도
그게 내가 사랑하고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존재라거나 하는 게
결코 아니라는 점,
나는 그러한 거절과 무관하게
그 자체로 충분히 멋진 존재라는 걸
항상 맘 한 켠에 간직해 주세요.
kaede님, 상담원이 드린 답변이
좋아하는 친구에게 어떻게 고백할 수 있을까의 문제에 대해
고민해 나가시는데 작은 실마리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상담을 마칠게요.
그리고
상담원이 드린 여러가지 도움말들은
어디까지나 kaede님이 '참고'삼으실 것들이라는 점도
말씀을 드립니다.
모쪼록 용기 백배하여 지금의 상황을 헤쳐 나가길 바라요.
그 친구와 kaede님이 어떤 방식으로든 따스하고 좋은 관계를
이후로도 쭉 만들어가실 수 있도록
격려의 말씀을 전해요.
* 한국레즈비언상담소 알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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