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빛님, 상담소에요.

일곱빛님, 상담소에서 답변을 드려요.
답변이 상담소에서 공식적으로 약속드린 것보다
하루나 늦어져서 죄송하다는 말씀부터 드리고 싶어요.
요일별 담당자가 따로 있고,
후속 상담일 경우 계속 같은 상담원이 도맡게 되어 있는데
이번에 어쩌다 제때 확인이 안 되었어요.
다시 한 번 사과를 드려요. ^^;

지난 번에 상담요청 글을 남겨 주시고
이번 글을 남겨 주시기까지의 사이에,
중학교에 입학하셨군요.
초등학교 때와는 또 다른 세상이
일곱빛 님에게 열린 거네요.
학교 생활이라는 게 마냥 즐거울 수 없는게
한국 사회의 획일적인 교육 제도의 현실이지만
그래도 일곱빛님이 그 안에서
자기 삶의 반짝이는 의미들을 찾아가며
씩씩하게 살아갈 수 있길 바라요.
그런 의미에서 중학교 입학 축하드립니다.
학교 생활 꿋꿋이 헤쳐가실 수 있게
용기와 격려를 보내요.

그럼 이제 이번에 남겨 주신
고민의 내용에 대해
본격적으로 이야기 나눠 볼까요.

아, 그 전에 앞서,
지난 번의 성정체성 관련 상담이
일곱빛님으로 하여금
어떤 성별의 상대에게 마음이 끌리든
그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고 마음 먹을 수 있는데
보탬이 된 것 같아서
상담원의 마음이 다행스럽고 참 좋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답니다.

하지만 지금 일곱빛님이 부딪치게 된 상황은
상담원에게도 너무나 막막하고 맘이 아프네요.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새로이 좋아하게 된
A라는 친구가 있는데
초등학교 때 굉장히 가깝게 지낸,
사귀는 것처럼 지내기까지 했던,
B라는 친구 또한
일곱빛 님처럼 A라는 친구에게
호감을 갖고 있다는 걸 알게 되셨는가 봐요.
그런데 이 상황에서 A는 레즈비언도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을 받고 계시고요.

참 여러가지 문제를 한꺼번에 고민하셔야 하는 상황이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단 지금 마음이 많이 끌리는 A라는 친구 자체에 대한 문제.
그 친구가 좋은 건 맞는데 그렇담 어떻게 해야 하나.
다가가 보아야 하나, 그냥 감정을 삭이며 지내야 하나.
다가간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이런 고민들이 일곱빛 님 안에 있을 것 같고요.

또, 절친한 B도 A가 좋다는 이 상황에서
B에게 나도 A가 좋다는 걸 알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고민도 상당히 되실 것 같고요.
예를 들면, A에게 만일 고백을 해 보고 싶다거나 할 때
B에게는 일곱빛님이 A에게 고백 등의 방식으로
좀 적극적으로 다가가볼 예정이라는 걸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식으로 말이지요.

게다가 A라는 친구가
이반인지 아닌지 확실히 가늠이 안 되는 상황이라
과연 좋아하는 마음만으로 다가갔을 때
고백이 받아들여지는 건 고사하고
동성 친구에게 연애감정을 느낀다는 것 자체를
전혀 이해받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과 염려도 깊으실 것 같아요.

누군가에게 고백했다가 거절당한 경험이
여전히 상처로 남아있다는 것도
일곱빛님이 A란 친구에게 다가가는데
주저하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인 것 같고 말이지요.
그러게요, 일곱빛님.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상담원의 생각에는, 일단은
추이를 좀 지켜 보면 어떨까 싶어요.
A라는 친구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도
좀 더 파악해 보고,
B의 감정이 어떻게 흘러가는지에 대해서도
좀 더 지켜 보고,
그 과정에서 B와의 친구관계 속에서
둘 다 A를 좋아하는 맘을 갖고 있을 때
어떻게 그 친구 관계를 잘 지켜 나갈 수 있을지,
A에게 계속 마음이 끌릴 때 그 감정을
스스로 어떻게 다루어 나가면 좋을지,
이런 것들을 탐색할 여유를 조금 가져 보는 것이지요.

지금 당장
나도 A가 좋고
내 친구도 A가 좋대, 어떡하지..? 하는
압박스럽고 막막한 마음이 들 수 있어요.
그건 아주 당연한 일이란 생각이에요.
하지만 이런 때일수록 웅성거리는 마음을
차분히 차분히 가라앉히면서
어떻게 이 상황을 헤쳐 나가면 좋을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는 게 필요한 것 같아요.

만일 고백을 계획하신다면
그 자체가 커밍아웃을 전제하는 거니까
고백 이후 A가 보일 가능성이 있는
여러가지 가능성에 대해
미리 떠올려 보며 대응할 방식들을
마련해 두고 연습하는 게 필요할 터이고요.

B와 일곱빛님의 그러한 감정에 대해 공유하고자 하신다면
솔직하고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는 자리를
만들어 볼 수도 있는 것이고요.

A가 이반인지 아닌지의 여부도
지금 상황에서 A를 좋아하는 또래 친구분들에게
초미의 관심사이겠지만
이반이건 아니건 기본적으로
동성애에 대해 편견이 없고
이반 친구들을 있는 그대로 존중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 친구라면
A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자기 맘을 A에게
고백하고 하는 데 훨씬 나은 조건일 수 있을 것 같아요.
A가 이반이 아니라고 해서 당연히 거절당하리라는 법도 없지요.
동성의 누군가가 자기 자신에게 고백해 오는 걸 계기로
A란 친구 스스로도 자기 자신의 감정 및 욕구에 대해
새로이 생각해 볼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자신에게 고백해 온 친구에게
매력을 느끼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니까요.
물론 이 역시 하나의 가능성이지만요.

그리고 A님, 많이 좋아했던 누군가에게
거절당하는 경험이
자존감을 떨어뜨리고
자신감을 잃게 할 수 있어요.
상담원도 뼈아프게 경험해 본 일이라서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답니다.
제대로 거절당한 뒤로
어느 누구에게도 먼저 적극적으로 다가가지 못했던
어떤 시기가 있었거든요.
하지만 A님, 그 두려움을 조금씩 줄여가실 수 있으면 해요.
왜냐하면 아주 분명한 사실 하나 때문이에요.
사랑받길 원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받건 그렇지 못하건 상관없이
나는 나 자신 자체로, 나 자신만으로 충분히 나에게 소중하고 가치롭다.
바로 이 사실 말이지요.
그리고 거절을 당한다 해도
그게 내가 매력이 없고, 무의미한 존재라서가 아니라
단지 그 사람에게 호소력이 없었을 뿐이라는 거,
그 점을 기억하는 게 중요해요.
내가 많이 좋아했던 사람인만큼
그 사람이 날 어떻게 보느냐에 내가 영향을 많이 받는 건
어쩌면 지극히 자연스런 일일 수 있지만
그건 그 사람의 반응일 뿐이라는 거,
그 사람이 날 거절했다고 해서
내가 영영 거절만 당하며 살게 운명지어지는 건
전혀 아니라는 것,
그 점을 꼭 기억해 주세요.

사실 지금 일곱빛님이 부딪쳐 있는 상황에 대해
상담원이라고 해서 어떤 뾰족한 방법을
제시해 드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보니(사람들 사이의 미묘한 감정 문제니까)
상담원의 마음도 무척 안타까워져요.
그렇지만 지레 풀죽거나 겁먹지 마시고
B와의 관계 속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A에 대한 감정을 어떻게 해 나갈지,
찬찬히 찬찬히 다뤄가시기를 바라요.

학교 생활 해 나가는 과정에서
이번에 남겨 주신 이야기 같이
이반으로 사는 것 관련하여 고민되는 일 있음
언제든 다시 상담 요청해 주시고요.
이제 곧 주말인데, 환절기 감기 조심하시고, 주말 잘 보내셔요.
상담원이 드린 말씀들이 일곱빛님이 이 상황을 현명하게 뚫고 나가는데
참고가 되면 좋겠습니다.

그럼 오늘은 이만 마칠게요.
일곱빛 님 힘내셔요!


상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