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님, 상담소입니다.

정체성에 대한 고민으로 많이 힘들다고 적어 주셨네요.
비밀님이 님 자신의 고민을 구체적으로 적어 주셔서,
상담원에게도 님의 마음이 좀 더 명확하게 다가 왔어요.

자기 자신에 대한 탐색하는 일은
아마도 살아 가는 동안 계속되는 일일 것이에요.

상담원은 성정체성에 대한 고민도 그러하다고 생각해요.
자신의 지난 경험들을 되짚어 보면서,
나는 어떤 성별의 사람들에게 이끌리고,
어떤 성별의 사람과 함께 지내고 싶은지에 대해 생각하는
매우 진지하고 어려운 물음이기에 말이에요.

상담소에서 님의 고민을 함께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동성의 상대를 만나서 이끌리고
그 마음이 서로 잘 맞는다면 교제를 하게 되는 일들은,
이성 간의 만남만큼이나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비밀님도 동성의 상대를 만나는 일이 잘못된 일이라거나
비정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으신 것 같아요.

상담원은 이 점이 매우 다행스럽다고 생각해요.
우리 사회가 워낙 레즈비언들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에,
동성의 상대에게 이끌림을 느껴도 그 감정은 무시하거나
부정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답니다.

비밀님의 고민은 그보다 조금 더 섬세한 부분인 것 같은데요.
사람을 만날 때마다 '따지는' 것 같아,
그런 자신을 생각할 때마다 괴롭다고 적어 주셨어요.

우리 사회에서 사랑이란
두 사람이 만나서 서로 아끼고 교제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되어야 행복하다고 믿는 경우가 많아요.

물론, 실제로 그런 방식을 통해 행복하게 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상담원은 사람을 좋아하고 교제하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답니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내가 무조건 좋아하라는 법도 없을 뿐더러,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그 마음이 꼭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세상에는 세상이 규정해 놓은 사랑의 방식이 아니더라도
자기만의 방식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고요.

이러한 모든 경우에 대한 기본 전제는
어떤 방식으로 사랑하고 살아가든지 간에,
자기 자신의 마음이 편안하고
행복해야 한다는 것이에요.

그렇기에 상담원은 무엇보다도 님께
자기 자신을 탓하면서 두려워하지 말기를
권해 드리고 싶어요.

님과 마음이 맞는 사람을 만나고 부딪치는 이 모든 과정들이
매우 자연스럽고 그럴 수 있는 일이라고
먼저 자기 자신을 다독여 준다면,
님이 무엇 때문에 괴로운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그려나가기가
조금 더 편안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님이 말씀해 주신 것처럼
이성애 가족이라고 해서 미래가 보장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레즈비언이 고립되기 쉬운 구조에 놓여 있는 건 사실이에요.

그래서 많은 레즈비언들이 친목 모임들을 통해
지인들과의 연결 고리를 만들고 다져 나가기도 한답니다.

비밀님은 취업난이 심해 이에 대한 걱정이 많으신 것 같은데요.
상담원이
님이 하고 싶은 일을 하세요,
혹은 미래를 생각하셔야죠, 라고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요.

어떤 길이 님을 더욱 편안하고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해서
천천히 고민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다면,
진로 탐색을 할 때 더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궁금한 것이 있을 때 언제든지 다시 상담소에 글 남겨 주세요.
그럼 이만 상담을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