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 님, 답변이 몹시 늦었어요.
질문을 남기신 뒤로 거의 한 달 가까운 시간이 흘렀네요.
상담을 오래 기다리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많이 지연되고 말았지만, 정성껏 사연 나눌게요.
서로 많이 좋아하고 그만큼 싸우기도 하면서
가깝게 지내는 동성 친구가 있는가 봐요.
그 친구에 대한 김양 님 마음이 우정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연애 감정에 가까운 것 같아서
그 마음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하고 계셔요.
남자도 좋아하긴 하지만
여자인 이 친구가 너무 좋다보니까
본인이 양성애자인가 아닌가 하는 고민도 하시는 중이고요.
상담원은 다른 말씀 드리기에 앞서
김양 님을 안심부터 시켜드리고 싶어요.
동성 친구에게 그토록 매력을 느끼고 애타해도 괜찮다고요.
지금 그 친구를 좋아하는 마음, 무언가 더하지도 빼지도 않은 채
있는 그대로 소중히 품고 가도 괜찮다고요.
누군가와 친구로 지내던 가운데 그 사람에게 새록새록 연애 감정을 느끼게 되는 거
그 자체로 아무 문제될 일이 아니어요.
그 상대가 동성 (김양 님 경우에는 여자겠지요) 이라도 괜찮고요.
상대방에게 연애 감정을 느끼게 된 계기나 배경이 무언지는 상관없어요.
호기심으로 시작했어도 괜찮고, 외롭다보니 그렇게 된 거라도 괜찮아요.
애초에 어떤 연애 감정도 진공 상태에서 불쑥 돋아나지 않는답니다.
사람마다 그 세밀한 결은 다를지언정 저마다 특별한 계기나 배경을 통해
누군가에 대한 호감을 경험하게 되어요.
동성의 상대에 대한 호감도 마찬가지고요.
왜, 어쩌다가 그 친구를 좋아하게 되었는지와 무관하게
그 친구를 좋아하는 마음 자체가 그 자체로 귀하고 근사해요.
이 점을 꼭 기억해 주세요.
좋아하는 남자도 있는데
여자에 대해 내가 갖는 이런 마음에 과연
얼마나 진정성이 있는 것인가 돌아보게 될 수도 있는데요.
이성을 좋아한다고 해서 동성을 좋아할 수 없는 게 아니어요.
이성과 동성에게 다 끌릴 수 있어요.
특정한 이성과 특정한 동성의 상대에게 동시에 반할 수도 있고요.
때로는 동성에게 더, 어떤 경우에는 이성에게 더 매혹될 수 있어요.
누군가가 좋다는 마음이 들고
그 사람 생각에 마음이 두근거린다면
그러한 기분을 마음껏 누리셔도 되어요.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 과연 이래도 괜찮은가하는 생각에 방해받지 않고
아 이 사람이 좋다, 는 마음에만 집중하셔도 괜찮아요.
이미 뜨거운 마음과 떨리는 몸을 의심하지 마세요.
어떤 마음의 진정성은 그런 마음이 이미 존재한다는 데서 증명되어요.
여자도 좋고 남자도 좋다면 김양 님은
직접 질문을 던지신 것처럼 양성애자일 가능성이 높아요.
좋아하는 남자아이에 대한 마음이나
이 사연에 등장하는 동성 친구에 대한 마음을
어느 하나 소홀히 함 없이 속속들이 살펴보고 이해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
조만간 스스로 결론에 도달하게 되지 않을까요?
양성애자라 해서 모두
남자에 대한 마음과 여자에 대한 마음을 똑같은 무게로 느끼는 것도 아니고
언제나 변함없이 동성과 이성에게 다 끌리는 것도 아니어요.
동성애자 정체성에 보다 가까운 삶의 궤적을 그리는 사람이 있는 한편
연애 관계의 패턴으로만 봤을 때는 거의 이성애자나 다름 없어 보이는 사람도 있어요.
가령 현재 관계를 어떤 성별과 맺고 있든, 평생을 함께 할 배우자의 성별이 자기와 같든 다르든
본인이 이성과 동성 모두에게 매혹될 수 있는 사람임을 인정하고
그걸 자기 정체성에 받아 안는다면
스스로를 양성애자라 규정할 수 있답니다.
김양 님이 친구를 좋아하는 마음을 그대로 긍정할 때
여러가지 내적인 검열 없이 자기 마음을 받아들일 때
친구와의 관계도 보다 솔직하고 용감하게 풀어갈 수 있으리라 생각해서
강조해서 말씀드렸어요.
친구를 좋아하는 김양 님 마음
예쁘고 소중하니 귀하게 보살펴 주시라고 말이지요.
그럼 이제 두 분의 관계로 이야기의 초점을 조금 옮겨 볼게요.
두 분이 그토록 각별한데도 자주 싸운다고 하셨는데
그건 어쩌면 서로 상대방에게 (친구로서든 잠재적인 연인으로서든) 기대하는 바가 큰데
그 내용을 두 분이 잘 파악하고 이해하지 못하다보니 생기는 일이 아닐까요?
관계란 둘이 함께 만들어 나가는 것인 만큼
서로 어떨 때 서운하고 어떨 때 기쁜지 등에 대해
평상시 충분히 진솔하게 대화하며 그때그때 해결책을 찾아 나간다면
갈등이 폭발하는 일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해요.
그리고 서로 그만큼 각별하다면 아무리 수차례 다퉈 왔다 해도
기본적인 신뢰 관계가 마련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은데요.
그럴 경우 김양 님이 고백을 한 뒤 친구가 거절하여
설사 연인으로서 이루어지지는 못한다 해도
친구로 남고자 하는 두 분의 의지와 그에 따른 노력만 있다면
고백 이후의 어색함과 괴로움을 헤치고 우정을 지키는 일이
그리 불가능한 일인 것만은 아니라는 말씀도 드리고 싶어요.
만일 김양 님의 고백을 계기로 두 사람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게 되어
연인 관계가 된다면야 너무나 반가운 일일 테고요.
다른 친구들에게나 학교 전체에
김양 님이 친구를 생각하는 마음이 소문이 나면
김양 님이 곤란해질 상황이 생길 수도 있지만
고백을 할 때 친구에게 이건 우리 둘 만의 비밀로 해 달라
간곡히 당부한다면 그럴 위험도 피할 수 있을 거예요.
전혀 모르는 상대에게 반해
아무런 예상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하는 고백일 경우
고백 이후 김양 님이 겪게 될 상황을 통제하기가 거의 불가능하지만
이 친구는 그간 김양 님이 잘 알고 지낸 사람이잖아요.
김양 님이 진실하게 다가가고 절실히 부탁할 때
그걸 소홀히 여길 사람은 아니라는 믿음이 있다면
그 믿음에 기대어 움직여 보아도 좋으리라 생각해요.
상담원이 이런저런 말씀을 드리기는 했지만
고백을 해 볼 것인가
좋아하는 감정을 그저 묵묵히 다독이며
친구 관계를 안정적으로 만드는 데에만 정성을 들일 것인가
과연 어떻게 할 것인가는
결국 김양 님 몫이어요.
심사숙고해서 결론내리고 그에 따라 행동하신다면
그게 바로 김양 님이 필요로 하는 답일 터이고요.
글 남기신 뒤로 시간이 상당히 흘러서
지금 두 분 관계의 양상은 또 많이 달라져 있을런지도 모르겠어요.
더 나누고 싶은 고민이 있거나 마음이 답답하고 괴로우면
언제라도 다시 이곳 게시판 찾아 사연 남겨 주세요.
다음 번에는 상담을 이렇게까지 오래 기다리도록 하지 않을게요.
친구와의 관계 잘 풀어나가시기를 기원하며
오늘 답변은 이만 마칩니다.
20150619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