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변을 드려요, seunghee님.

seunghee님, 상담소에서 답변을 드려요.
남겨 주신 글은 잘 읽어 보았어요.
이렇게 seunghee님의 고민을 함께 나눌 수 있게 되어 반가워요.

많이 긴 글이 아닌데도 seunghee님이 겪고 계신
혼란이나 답답함 같은 것들은
상담원에게 충분히 다가왔답니다.
지금부터 찬찬히 같이 얘기해 보면 좋겠어요.

올해 들어, 스스로를 레즈비언이라고 생각하게 되셨나봐요.
남자친구와도 사귀고 있고, 여자친구와도 사귀고 있지만
아무래도 여자친구쪽으로 마음이 더 많이 기울고
여자친구를 사랑하는 마음이 seunghee님을 더 행복하게 하고
그런가 보네요.

그러다보니
지금 동시에 사귀고 있는 두 애인과의 관계를
각각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의 문제로
무척 골치를 앓고 계신 것 같아요.
그러면서 동시에 자기 자신이 앞으로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게 될 것인가에 대해
여러가지로 걱정도 많이 하시는 것 같고요.

우선 말이죠,
seunghee님이 지금 하고 있는 두 가지 연애에 대해
먼저 이야기를 해 봤으면 해요.
두 사람을 동시에 사귄다는 건,
어쨌든 처음에는 이 사람도 맘에 들고, 저 사람도 맘에 들고
그 사람들도 날 맘에 들어하니
그렇게 된 것일 터인데요.
상담원은 seunghee님이 이제는
확실히 여자친구와의 관계에
더 많이 집중하게 되신 거라는 느낌을
받았답니다.

두 사람 다 놓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고
각각 매력이 달라
그 두 교제 관계를 다 유지하고 싶다면
seunghee님이 요령껏
양 쪽 관계를 지켜 나가셔야 하겠지만,
만일 마음이 크게 한 쪽으로 기운다면
굳이 두 가지 관계를 동시에 이어나가야 할 이유란
많이 줄어드는 게 아닐까요?

남자친구에게 연락도 잘 안하게 되고
사랑한단 얘길 하는 것도 별로 재미가 없고
스스로 레즈비언인 것 같다고 느끼고 있다는 것은,
자신이 여자친구에게 더 끌린다는 걸
본인 자신이 이미 절실히 느끼고 있기에 가능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그러니 seunghee님,
양쪽 애인을 두고 이를 어찌해야 하나
점점 더 심한 마음의 갈등을 겪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 seunghee님의 마음이 과연 어떤지를
자세히 살펴 보고
seunghee님이 진짜 바라는 바대로
결단을 내리는 게 중요하리라 생각해요.

둘 다 지켜 나가겠다 맘 먹게 되면
그렇게 지내면서 seunghee님 마음도 안 불편하고
애인들도 되도록 상처받지 않게
잘 처신할 방법을 찾으셔야 할 테고요.
덜 끌리는 쪽을 확실히 정리하고자 하신다면
과감히 누군가와는 이별하고 진짜 더 좋아하는 사람과는
사랑을 이어나가게 되실 테고요.

이런 감정의 문제, 관계의 문제에
어떻게 대처할까에 대해서는
정답이 없는 것 같아요.
남이 알려줄 수도 없고 말이에요.
연애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 다르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 해야 한다는 답을
남이 알려주는 건 의미가 없지요.

그러니까 아무쪼록
Seunghee님 마음이 이끄는 방향이
어느 쪽인지를 찬찬히 살피셔서
seunghee님에게 가장 행복한 쪽으로
지금의 두 관계들을 정비해 나가셨음 해요.

그리고 남겨주신 글을 읽으면서 상담원은
seunghee님이 ‘바이’라는 말을
남자와 여자를 동시에 사귀는 것을 나타내는 말로
사용하고 계시는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는데요.
만일 그렇게 생각해 오셨다면
‘바이’란 말의 뜻은
seunghee님이 생각해 오신 뜻과는 좀 다르답니다.

‘바이’(바이섹슈얼=다른 말로, 양성애자)란
내가 지금 동시에 두 사람과 연애를 하느냐 아니냐의 여부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말이거든요.
내가 동성에게도 끌리고, 이성에게도 끌린다는 것을 받아들인 사람들
이러한 사람들이 스스로를 ‘바이’ 정체성으로 규정하곤 하는 거란 점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동성애자도 두 명의 동성애인을 동시에 사귀는 경우가 있을 수 있고
언급하신 ‘바이’(양성애자)도 두 명의 동성애인을 동시에 사귀는 경우가 있을 수 있는 거죠.
바이라고 해서 반드시 이성과 동성을 동시에 사귀거나
이성과 동성을 번갈아가며 사귀는 게 아니라는 것이지요.
바이도 계속 동성의 상대와만 사귈 수도 있고 그래요.

‘바이’에 대한 이야기는
seunghee님이 참고하실 수 있게
간단히 덧붙여 보았습니다.

seunghee님이 바이로 살면
여자친구에게 피해를 줄까 걱정된다고 하신 점은
정확히 어떤 것인지
자세히 적어주지 않으셔서
상담원이 충분히 알긴 좀 어려운데요.

지금 seunghee님이
두 사람과 동시에 사귀고 있는만큼
그 사실이 밝혀졌을 때 여자친구가
seunghee님이 자기만 사랑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어
상처받을지도 모른다는 것 때문에
걱정하시는 것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고요.

여자친구와 seunghee님의 교제가
seunghee님의 남자친구에게 알려졌을 때
그 남자친구가 seunghee님의 여자친구에게
해코지라도 하지 않을까 걱정하시는 것일 수도
있겠다 생각했어요.

뒤이어 적어주신,
레즈비언으로 살면 무시받고 그럴까 걱정된다는 내용, 까지 아울러 보면
아무래도 seunghee님과 사귄다는 사실 때문에
seunghee님의 여자친구도 사람들에게 비난받게 되는 건 아닐까에 대해
많이 신경을 쓰시는구나 하는 쪽으로
짐작을 해 보게 됩니다.

seunghee님이 지금 하고 계시는 걱정에
상담원도 깊이 깊이 공감을 해요.
동성간에 사랑하고 사귀는 게 전혀 잘못된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이성간의 사랑, 사귐, 성관계 등만을
자연스럽고 올바른 것으로 여기곤 하지요.
조금씩 세상이 변화하고 있다고는 해도,
여전히 동성애자들에 대한 차별과 편견은 심해서
동성애자로 살아가기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닌 건
분명해요.

특히 초등학교, 중고등학교에서도
레즈다, 이반이다 하면 친구들 사이에서 따돌림이 일어나기도 하고
선생님들이 징계를 주기도 하는 등
일상 생활 속의 차별이나 폭력 같은 게 종종 일어나고요.
가족들도 그리 순순히 인정해 주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고요.

그렇지만 말이죠, seunghee님.
한국 사회에만 해도 엄청난 여성동성애자(레즈비언)들이 존재하고
자기 자신을 레즈비언으로 받아들인 채
씩씩하게 살아가고 있답니다.
저마다의 몫의 일을 하고, 공부를 하고, 살림을 하면서
사회 곳곳에서 제 역할을 하면서
레즈비언들간에 서로 격려하고 응원하면서
그렇게 꿋꿋이 자기 긍정을 하며 살아가고 있어요.

seunghee님 또래 친구들 중에도,
십대 청소년/청소녀들 중에도,
이십대, 삼십대, 사십대, 오십대, 육십대…그 이상의 여성들 중에도
레즈비언은 어마어마하게 존재해요.
서로 공동체를 이루어 친목을 다져가는 사람들도 있고
취미에 맞게 모임을 이어나가는 사람들도 있고
그렇답니다.

십대 청소년 모임도 굉장히 다양해요.
참고 삼아, 그 중 한 곳을 소개해 드릴게요.

청소년성소수자커뮤니티 라틴, 이라는 곳이랍니다.
http://cafe.daum.net/Rateen

지금 seunghee님이 하시는 고민 같은 거
이 커뮤니티에서 십대 친구들과 나누실 수 있어서
아주 의지가 되고 좋을 거예요.
비슷한 고민하는 친구들과 친구도 되고 말이죠.
꼭 한 번 접속해서 둘러 보시길 바라요.

seunghee님의 여자친구도
seunghee님을 좋아하니까 seunghee님과 사귀는 것일 테지요.
겁이 나더라도 스스로 용기를 내어 seunghee님과의 사귐을 이어가고 있는 것일 거예요.
seunghee님이 걱정하시는 바들을 그 여자친구와 같이 나누어 보면 어떨까요?
무슨 걱정이 드는지, 그런 걱정하면서 얼마나 힘든지 등에 대해 말이에요.
둘이 같이 얘길 나누다보면, 혼자 끙끙 앓으며 걱정을 쌓아갈때보다
마음도 한결 홀가분해지고
서로 더 많은 믿음을 갖고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거예요.
여자친구는 seunghee님이 자신에게 미안해 하는 것에 어쩌면 놀랄지도 몰라요.
seunghee님이 억지로 자길 붙들어 둔 게 아니고 자기도 좋아서 만나는 것이니까요.
여자친구가 seunghee님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사귀게 된 책임이
seunghee님에게 있는 게 아니랍니다.
두 분의 사귐 자체가 잘못이 아니기에
책임을 져야 될 사람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요.
그러니 여자친구와 속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여자친구에게 하염없이 미안한 맘을 조금씩 줄여가도 괜찮으리라 생각해요.
seunghee님이 여자친구를 좋아하고 사귀는 데 잘못된 건 없는 거거든요.

그럼 마지막으로 한 가지 이야기만 간단하게 더 하고
상담을 마무리해 볼까요?
자꾸 스스로 ‘남자’로 생활하고 싶단 생각이 드신단 점에 대해서요.
아주 여러가지 이유로 그런 생각이 들 수가 있는데요.
만일 자신이 여자를 좋아한다는 사실 때문에
남자로 생활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신 거라면
여자가 여자를 좋아하는 것 자체가 문제될 게 없는 일이므로
맘을 조금은 편하게 먹으셔도 괜찮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레즈비언이라는 낱말도 워낙에
여자로서 여자를 사랑하는 사람이 스스로를 규정할 때
붙이는 이름이지요.
동성애는 그 자체로 존중받아 마땅한 감정, 욕구, 사랑의 한 형태랍니다.
동성 친구를 사랑하게 되었다 해서 내가 그 친구에게 이성으로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지금 여자친구도 seunghee님을 남자의 대리물로 사랑하는 게 아니라
seunghee님의 현재 상태 그대로 사랑하는 것일 테니 말이에요.

하지만 seunghee님,
위와 같은 이유에서 뿐만이 아니라
말로 짚어 설명할 순 없지만
좀 더 전반적으로 자기 성별(여성이냐 남성이냐 이건지 저건지 헷갈리냐)에 대해
고민이 된다면
자신이 트랜스젠더일 경우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면 좋겠어요.
아주 간단히 요약해서 말하자면
여자아이로 길러졌지만, 스스로 남자라 생각하거나, 난 여자가 아니라 생각하는 경우
남자아이로 길러졌지만, 스스로 여자라 생각하거나, 난 남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우 등이
트랜스젠더의 경험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러한 경험과 지금 seunghee님의 고민이 맞닿아 있는 것일는지도 모르거든요.

관련해서 접속해 보심 좋을 법한 사이트를 알려드릴게요.

트랜스젠더인권활동단체 지렁이
http://gendering.tistory.com/

앞서 말씀드린 라틴 사이트처럼
이 곳도 한 번 꼭 방문해 보세요.

오늘 상담원이 드린 도움말씀이
seunghee님이 앞으로 고민해 나가는 길에
좋은 길잡이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궁금하거나 고민되는 게 있을 때면
혼자란 생각 말고
언제든 다시 찾아주세요.

오늘은 이만 상담을 마칩니다.
주말 잘 보내시고요!

* 한국레즈비언상담소 알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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