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소에서 답변을 드려요.


상담소에서 답변을 드려요.
고민하시는 바를 나누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부모님께 커밍아웃 할 계획을 하고 계시는군요.
짐작건대, 내담자 분께 정말 큰 결심이었을 것 같아요.
인생에 중요한 계기가 될 결정을
용감하게 내리신 점에 대해
응원과 격려의 말씀 드리면서
글을 시작하고 싶습니다.

내담자 분을 마땅히 칭할 이름(혹은 별칭)을 남겨주지 않으셔서
편의상 A님이라고 부르며 상담글을 써내려가고자 합니다.
임의로 호칭을 정한 것을 양해해 주세요. ^^

남겨 주신 글을 읽으며
커밍아웃을 앞둔 A님의 고민을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해 보았습니다.
최대한 커밍아웃을 섬세하게 하는 방법에 대한 고민,
그리고 커밍아웃 이후 부모님과 계속 소통하며
부모님이 받을 충격을 책임지고 덜어나갈 방법에 대한 고민,
이렇게 말이어요.

커밍아웃을 하셨을 경우
부모님이 정확히 어떤 반응을 보이실지를
뚜렷하게 짐작해 보기는 어렵지만
만일 부모님이 많이 당혹스러워 하시고, 감당 못해 하시면
그런 반응을 접하는 A님 자신부터가
몹시 맘 아프고 막막할 수 있는 법인데
A님은 부모님 입장에서 생각하며
부모님이 겪을 고충까지도 함께
감당하려 하고 계시네요.
그런 A님의 모습이 상담원에게 감동적으로 다가왔어요.
부모님께 결국에는 이해 받고 싶은
간절한 바람도 함께 느껴졌고요.

사실 가장 바람직한 커밍아웃에 대한
고정된 답 같은 건 존재하지 않으리라 생각해요.
커밍아웃을 하는 사람에 따라
그리고 그 사람이 커밍아웃을 하는 대상에 따라
또 이들이 처해 있는 각각의 상황에 따라
좀 더 효과적인 커밍아웃의 방법이나
커밍아웃 이후 관계의 끈을 이어가는 방법이
구체적으로 다 달라질 수 있을 테니까요.

그렇지만 분명 조금 나은 방법에 대한 제안은 가능할 것 같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하고 계시거나
짐작하시면서도 절대 그럴리가 없다고 믿고 싶어 해 오셨거나
거의 확신하시면서도 자신이 알고 있는 점에 대해 결코 확인받고 싶어하지 않으시거나..
이런 여러 마음들 중 지금 A님 부모님의 마음이 어떤지
콕 짚어서 예측하긴 힘들겠지만요.

어떤 경우에건
기본적으로
내 쪽에서 생각을 다 정리하고 혼자 결심해서
어느 날 선언하듯 터뜨리는 것보다는
부모님께서도 마음의 준비를 하실 수 있게,
즉, 미리 생각해 볼 기회를 가지실 수 있게,
암시를 드리는 기간을 일정 정도
갖는 게 더 낫다는 것이
상담원의 생각입니다.

전혀 짐작도 못하고 계실 상태라면
더더욱 그런 작업이 필요하리라 생각해요.
결국 받아들여주시건, 아니면 받아들이기 힘들어 하시건
갑작스레 그러한 사실을 접했을 때의 충격은
클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완충할 수 있는 여지를
전격적인 커밍아웃 전에 미리
마련해 두시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가령, 평생 이성과 혼인하지 않고
독립적인 여성으로 살고자 하는데
부모님 생각은 어떠신지 여쭤 본다거나 하는 식으로,
A님이 자신의 미래를 어떤 방향에서 설계하고 있는지를
부모님이 조금씩 아실 수 있게 해 나가는 것이지요.
그런 이야기를 꺼냈을 때 부모님이
어떤 반응을 보이시는지에 따라
결정적인 커밍아웃의 시기와 방법도
조절할 수 있을 거예요.

동성애와 관련된 뉴스나 영화 그리고 책 등에 대한 화제로
대화를 시도해 보는 것도
그런 주제에 대한 부모님의 관심을 환기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입니다.

그리고 부모님이
'우리 자식이 동성애자라니 믿을 수 없다'는 식으로
충격에 휩싸이실 때
부모님께 건네면 도움이 될 만한 정보들을
A님 스스로 최대한 찾아 준비해 놓는 것도 좋겠어요.

예를 들어, 동성혼이 이미 합법화 된
외국 사례들에 대한 이야기도 좋고,
사회적으로 지명도 있는 존재들 (독일 베를린 시장 등) 에 대한 정보도 좋고,
어렵지 않게 읽어내려가실 수 있는
책자들 (단체 발간 자료 또는 간행된 소설책 등) 도 좋습니다.
부모님이 직접 웹서핑이 가능하시다면
저희 상담소 같은 곳을 소개해 드릴 수도 있는 것이므로
관련된 인터넷 사이트 주소를 모아두셔도 좋겠지요.
또한 동성애자 가족들을 위한 외국의 단체들 정보를
(A님 선에서 가능한 만큼) 한국어로 정리해 두시는 것도
부모님께 커밍아웃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해 두면 좋을
준비 같습니다.

아마도 그렇게 준비하시는 과정에서
상담소로도 상담 요청을 하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로 문의하셨으면
그 곳에서 발간한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 부모들이 알고 싶어 하는 37가지 질문>>이란
책자도 소개를 받으셨겠지요.
만일 아직 구하지 못하셨으면 꼭 구해서 보셨음 합니다.
그리고 상담소 홈페이지 인권 자료 게시판에 보면
캐나다 밴쿠버 교육청에서 발간한
<<동성애자 청소년의 부모 및 가족을 위한 질문과 답변>>이란 자료가 있는데
그것이 '청소년'의 부모와 가족을 위한 것이긴 하나
성인 이반의 부모와 가족에게도 역시
유용한 자료라 생각되어
챙겨 두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그 게시물의 링크는 아래와 같아요.
http://lsangdam.org/fileboard/38

현재 국내에
동성애자의 부모와 가족을 위한 모임이 꾸려진 바는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시도는 몇 번 되었으나 (상담소도 시도한 적이 있지요)
국내 여건 상 아직 시기상조인 것인지
녹록한 일이 아니었어요.
하지만 그 필요성을 굉장히
많은 이들이 절감하고 있으므로
꾸준히 시도되리라 생각해요.
관심을 놓지 마시고
이따금씩 동향을 파악하며
지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하드하지 않은 영화나 드라마, 다큐의 장면들을
부모님께 보여드리며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어도
더없이 좋겠지요.
특히 가족 관계 안의 커밍아웃과
그 이후에 대해 다룬 영상물들 중심으로요.
혹시 A님, 영어를 하실 수 있나요.
현실적으로 영어로 독해와 청취가 어느 정도 가능하시면
인터넷 서핑을 통해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가 있습니다.
아무래도 영어로 된 자료들이 전세계적으로 더 다양한 정보를 담고 있으니까요.

아래 걸어드릴 링크는 한국어로는 "진심으로"라고 옮겨져 온
"Straight From the Heart"라는 다큐멘터리입니다.
부제가 '게이나 레즈비언 자녀에 대한 이해와 사랑에 이르는 부모들의 여정'입니다.
여러 부모들의 허심탄회한 인터뷰들이 담겨 있어요.
자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지지하고자 하는 부모님들의 모습이
가슴 찡합니다.
아래 링크에서 바로 관람하실 수 있어요.
화질이 깔끔하고 좋아요.
영어를 청취하실 수 있으면 바로 들어 보시길 권해요.
다른 이들의 부모님들이 하는 이야기지만
나에게도 힘이 됩니다.

http://www.woman-vision.org/straight-from-the-heart.html

이 다큐의
한국어 자막이 달린 영상물을
상담소가 보유하고 있는데요,
혹시 필요하시면 저희가 전달해 드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보겠습니다.
보관 형태가 좀 애매해서
쉽지 않을 수도 있지만
필요하시면 알아 보도록 할게요.

그리고 A님, 커밍아웃 이후
씩씩하게 부모님을 보살피시려면
A님의 마음을 추스를 각오도 단단히 하셔야 해요.
쉽게 포기하지 않겠다는 마음,
나를 아끼는 만큼 나의 진짜 모습도 결국에는 받아들여 주시리라는 믿음,
그런 걸 마음 속에 꼭꼭 쟁여가면서
커밍아웃 준비를 하실 수 있었으면 합니다.

A님 부모님이 A님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시는지
평소에 A님의 다른 부분에 대한 이해도는 어떤지도
커밍아웃을 준비하며 참고해야 할 사항이지요.
A님이 얼마나 부모님을 아끼고 걱정하는지를
일상의 작은 부분에서부터 표현하고,
늘 부모님 마음을 살피는 딸로
사랑하며 살겠다는 마음가짐을
여러가지 방식으로 보여 드리는 것도
A님에 대한 부모님의 믿음을
평소에 단단히 다지는
좋은 작업이 될 터이고요.

단 한 번의 결정적인 발언이나 대화로
커밍아웃이 완결되기는 어렵다는 점도 기억해 주세요.
반복해서 이야기해야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꼭 노골적으로 거북해하지는 않으시더라도
자식의 이야기가 감당하기 힘든 이야기인 만큼
듣고도 애써 잊으려 하시고
괜히 딴 말씀 하시는 부모님들도 많고,
기껏 이야길 했는데 어느 날
선자리를 봐 오시는 부모님들도 많아요.
그렇기 때문에 튼튼한 마음과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점점 더 딸이 동성애자라는 것을
실감나게 받아들이시게 되면 될수록
그 사실과 더불어 살아가며 겪게 될
부모님 차원에서의 벽장이 있을 텐데요.
그 점에 대해 터놓고 이야기 해 나감에 따라
타인들과 교류하는 과정에서 부모님이 취할 수 있는
전략들에 대해서
A님과 부모님이 같이 고민할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예를 들면,
그 집 딸은 왜 결혼 안 해? 라고 누군가 물었을 때
대강 둘러대며 빠져나갈 수 있게,
그렇게 빠져나오면서 가슴 아파하기 보다,
속으로라도 자기 자식에 대해 당당할 수 있게
끊임없이 노력하는 거죠.

아, 그리고 부모님이 용감 무쌍하셔서
자식의 성정체성을 기꺼이 받아들이시고
그걸 타인에게 말하는 데 거리낌이 없는 (엄청 운좋은 ^^) 경우에도
A님과 부모님은 A님의 정체성에 대해 말해도 되는 범위의 인간관계를
늘 합의해서 결정해 나가야 할 것이므로
'부모님의 벽장'과 'A님의 벽장'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기도 합니다.
부모 자식간의 지혜를 모아 더불어 헤쳐나갈 일이
많이 생길 거예요.

A님, 모쪼록
A님이 자기 정체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적극적으로 자기 삶을 일궈 나가는 데
자신감을 갖고 있다는 것,
동성애자라는 정체성에 대한 자기 긍정 없이는
A님의 행복이 멀기만 하다는 것 등을
차츰 차츰 부모님께 설득하며,
지난한 과정을 거치게 되더라도
결국에는 부모님과 함께 웃을 수 있는
그런 커밍아웃의 경험을 하시게 되면 좋겠습니다.

부모님은 딸이 아프고 불행할까 걱정하시겠지요.
그 걱정만 덜어드려도 한결 부모님을 위로하기 쉬울 거라 생각해요.
그러므로 A님, 자기 자신을 더 잘 보듬으며
A님 스스로 행복할 수 있게 노력하며
든든한 존재로서의 모습을
기회 될 때마다 보여드리셔요.

상담원이 드린 말씀들이
A님이 커밍아웃을 준비하시는 데
보탬이 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더 이야기 나누고 싶으시거나
문의하고 싶은게 있으면
언제든 다시 찾아주세요.

그럼, 격려를 전하며
오늘은 이만 마치겠습니다.
진심으로 응원해요!

* 팝업에 대한 불편함을 말씀해 주셨는데요.
저도 어떤 컴퓨터에서 상담소 홈페이지에 접속할 때면
페이지를 넘어갈 때마다 외국 광고 팝업이 떠서 굉장히 불편했어요.
그런데 또 어떤 컴퓨터에서는 전혀 그런 일이 없답니다.
그래서 이게 홈페이지 자체의 문제인지,
사용되고 있는 컴퓨터의 문제인지,
더 알아 봐야 할 것 같아요.

일단 임시적인 해결책이나마 알려드릴게요.
인터넷 창의 맨 위를 보시면 도구(T)라는 게 있죠.
그걸 클릭하면 '팝업 차단'이란 게 보일 거에요.
그걸 또 클릭해서 "팝업 차단 사용" 을 눌러 표시하셔요.
그러면 페이지를 옮길 때마다 뜨는 팝업이 자동 차단됩니다.

사용하시는 컴퓨터에 바이러스가 들어가서
그렇게 될 확률도 있으니
무료 프로그램을 다운로드 하셔서
바이러스 검사를 한 번 해 보셔도 좋겠습니다. ^^

* 한국레즈비언상담소 알림:

상담내용을 옮기거나 이용하려는 분이 계시다면 사전에 상담소 측에 동의를 구한 다음, 출처를 밝히고 사용하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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