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변을 드려요.

letsbe님, 상담소에서 답변을 드려요.
남겨 주신 글은 잘 읽어 보았어요.
중학교 1학년때부터 이제 대학생으로 생활하고 계신 지금에 이르기까지
여성으로서 여성을 좋아한다는 것에 대해
줄곧 고민해 오셨는가 봐요.
수 년간 혼자 여러 생각들을 곱씹으면서
무척 많이 갑갑하셨으리라 짐작해 봅니다.
상담소로 잘 찾아오셨어요.
이렇게 letsbe님 고민을 나눌 수 있게 되어 반가워요.

운동 좋아하시고,
옷차림도 그저 편안한 스타일을 따르는 편이시라고 하셨어요.
여중, 여고를 다니시면서 여자들만 있는 환경에서 쭉 지내오셨다고 하셨고요.
그리고 또 우연찮게 레즈비언들이 유독 많다고 알려진 공간에서 생활한 경험도 갖고 계시네요.
그 때 그 때 눈치채셨던 건 아니더라도, 알고 보면,
letsbe님을 좋아하는 동성 친구들이 상당수 있었기도 하고요.

남겨 주신 글을 가만가만 읽어내려가면서 상담원은 letsbe님이
위와 같은 자신의 스타일이나 경험을
스스로 여성을 좋아하는 여성으로 자각하게 된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여기고 계시다는 느낌을 받았답니다.
그와 관련해서, 상담원은 그런 letsbe님의 느낌을
굉장히 존중한다는 말씀을 힘주어 드리고 싶어요.

어떤 경험이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자신에게 더 중요하게 다가오는 경험과
덜 중요하게 다가오는 경험은 무언지,
어떤 감정이 더(혹은 덜) 소중했는지,
내 마음이 진짜로 향하는 곳이 과연 어디인지, 등에 대해 알아 보는 방법으로는
자기 경험의 결들을 차근히 되짚어보는 것만큼
좋은 게 없다고 생각해요.

letsbe님도 긴 시간 혼자 품고 있던 고민을
이렇게 글로 털어놓으시면서
또 한 차례 자신의 지난 경험과 기억을 갈무리해 볼
그런 기회를 가지셨을 것 같아요.

상담원은 사람들이 설사 아무리 똑같은 경험을 했다 하더라도
사람들은 저마다 그걸 다 다르게 받아들이고 해석하게 마련이므로
letsbe님이 자기 자신의 경험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그 자체로 letsbe님에게 고유한
letsbe님 자신만의 소중한 판단이자 결심일거라 생각해요.
결국 '똑같은' 경험이라는 건 거의 존재하기 어렵겠지요.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어떤 여성들은
십대 때 letsbe님과 비슷한 스타일로 지내면서
letsbe님과 유사한 상황을 체험했다 하더라도
여성을 좋아하는 경험 자체를 안 해 봤을 수도 있고
혹여 그런 경험을 했다 해도
그 경험에 대해 letsbe님과 닮은 방식으로 계속 고민하지
않을 수 있답니다.
그건 부정하고 싶기 때문이기도 할 터이고
정말 스쳐지나가는 바람같은 경험이었기 때문이기도 할 테지만요.
그렇기 때문에 letsbe님이 자기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우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고자 하는 모습부터가
무척 용감하게 여겨지네요.

난 여성인데 남성보다는 여성에게 더 끌린다, 는 걸 인정하는 것 자체가
아직 쉬울 수 없는 게
현실이니까 말이에요.

letsbe님은 자신의 이끌림 자체를 인정하고 계시기 때문에
바로 거기서 고민의 실마리를 풀어나갈 수 있으리라고 봐요.
자기 감정이나 욕구에 대해서도 어찌 생각해야 할지 몰라
그 감정과 욕구의 실체에 대해서 먼저
탐색해야 하는 경우도 많기에
가장 어려운 단계는 이미 스스로 잘 헤쳐나오고 계시는 거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사실 여성으로서 옷 편하게 입고 소위 '여성스러운' 분위기로 안 꾸민다고 해서
다 레즈비언인 것도 아니고
여중, 여고라는 환경이 레즈비언을 더 심하게 양산한다고 일반화할 수도 없고
동성 친구가 날 좋아한다고 하는 점 자체가
나로 하여금 '동성애'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끔
안 할 수도 있는 거라는 건
두말할 나위가 없어요.

'남자같이' 하고 다녀도
남성을 좋아하는 여성들도 무수히 많은 것이고
여중, 여고를 다녔기 때문에 더 부지런히 멋있는 남성을 찾는 여성들도 많은 것이기에
이런 기질을 가지고 이런 경험을 한 사람들은 대부분 레즈비언이 된다, 고 말하기에
무리가 많죠.

그런 '원인설'은 다 뻥이랍니다.
딱 하나의 반례만 있어도 쉽게 부정가능하거든요.
가령 레즈비언에 대한 대표적인 편견 중 하나를
레즈비언은 다 '남자같을 것'이다, 라고 해 봅시다.
이 때 '안 남자같은' 레즈비언이 단 한 명만 있어도
그 말은 진실이 아닌게 되잖아요.
그런데 심지어 '안 남자같은' 레즈비언은 한 명이 아니라 아주 여러명이죠.

그리고 뭐니뭐니해도
과연 뭐가 '남자같은' 거고 뭐가 '여자같은' 거냐라고 질문하면
사실 대답하기 되게 막막해지죠.
'남자같은 여자,' '여자같은 남자'라는 말부터가 어폐가 있으니까요.
그렇게 얘기할 거면 애초에 뭐하러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을 구분할까 하는 의문을
상담원은 늘 갖는 답니다.
'남자같은 여자'라 소위 여겨지는 여성들은
'남자같은'게 아니라 어떠한 자기 개성을 갖고 있는 것으로
'여자같은 남자'라 소위 여겨지는 남성들은
'여자같은'게 아니라 마찬가지로 어떠한 자기 개성을 갖고 있는 것으로
그렇게 여겨지는 게 가장 무방할 테니 말이에요.

이런 말씀을 드리는 건
letsbe님이 letsbe님을 보는 사람들 시선에서
여자답지 않은 여자애라던가
남자 흉내 내는 레즈비언이라던가 하는 식의 비난을 느낀다해도
주눅드시지 않으시길 바라는 마음에서랍니다.
그렇게 보는 사람들이 편협한 거라는 거죠.

그러니
letsbe님이 어떤 모습을 하고 계시건,
어떤 사람에게 끌리건,
letsbe님은 그 모습 그 자체로,
갖고 계신 끌림을 지닌 존재 그 자체로,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하고 귀한 사람이라는 걸
어떤 고민의 과정에서도 늘 기억해 주세요.
동성의 상대를 좋아하는 감정에 대해서 고민할 때도
그 감정 자체에 집중해서 풀어나가도 좋다는 것도 기억해 주시고요.
동성애 자체가 비정상인 것도 나쁜 것도 고쳐야 할 것도 아니기 때문에
원인에 골몰해서 파헤치지 않아도 되는 거란 점, 잊지 않으셨으면 해요.

어이쿠, 이야기가 좀 길어져버렸는데요.
이제 착착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 볼게요.

지금부터는 현재 좋아하고 계시다는,
고등학교 때부터의 친구란 분과의 관계에 대해서
짚어 보고자 해요.

그 친구와는 관계 설정을 조심스럽게 해야 할 것 같아요.
서로 상대방에게 원하는 것과 바라는 바가 다를 수 있는데
그건 대화해 나가면서 파악할 수밖에 없답니다.
관계의 상이 다른 상태에서는
오해도 쉽게 싹틀 수 있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해요.
스킨십의 문제 자체부터가 그렇지요.

동성 친구와 스스럼없이 하는 스킨십에 대해
달갑게 보지 않는 시선들에 문제가 있는 건 분명해요.
사실 꼭 동성 커플 아니더라도 친구끼리도
흔히 '연애코드'로 여겨질 수 있을 법한 스킨십을
왕왕 하기도 하는 것인데
그게 '동성애'로 간주되어 손가락질 받고 숙덕거림의 대상이 된다는 건
여성들간의 친밀함 표시의 한 방법에 대한 비하인 동시에
동성애에 대한 혐오의 표현이므로
참 불쾌한 일이에요.
말씀하신 것처럼, 성소수자 차별적이고 권리 침해적인 반응들이지요.

특히 소위 사회에서 보이시하다고 여기는 차림새를 한 여성과
소위 사회에서 여성스럽다고 여기는 모습을 한 여성이
유난히 친하게 지내거나 스킨십을 하거나 하면
더욱 안 곱게 보는 시선들이 존재해요.

이렇게 되면 '보이시'한 사람과 '여성스러운' 사람이
그저 친구로 가까이 지내는 것일 뿐이라고 해도
이상한 관계라고 욕을 먹기 쉽다는 게 한 가지 문제죠.
이건 어쩌면 우리 사회에 여전히 만연한
전반적인 성적 터부와도 연결되는 걸지도 모르겠어요.

꼭 동성교제까지 안 가고 이성교제에 대해서만 생각해 보더라도
여성과 남성이 친하게 지내면
그걸 본 제 3자들은 이 둘을 못 엮어서 안달인 경우가 많잖아요.

여성과 남성의 친밀함을 당연하다는 듯 연애코드로 해석하는 거나
'여성스러운 여성'과 '보이시한 여성'을 당연하다는 듯 동성커플로 보는 거나
다 지극히 '이성애중심적'인 발상

앞의 경우는
어떤 남성과 친밀한 여성이 그 남성과는 그저 친한 친구이고
사랑과 교제는 여성과 할 가능성을 배제하는,
동성애에 대한 무지와 상상력 부족에서 나오는 발상이기 때문이고요.
뒤의 경우는
모름지기 교제란 이성애일 거라는 전제위에서
아무리 동성간의 교제라도 그 형태는 표면상 이성애의 구도와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꽉 막힌 사고방식이기 때문이에요.

요약하자면
이성애만이 존재 가능하고 자연스러운 관계의 형태라는 질긴 통념이
그러한 시선들을 만들어 내는 것일 터이고요.

더불어 '보이시'한 사람과 '여성스러운' 사람의 친밀함을
당연하다는 듯 사귀는 관계로 여김으로써
레즈비언 커플은 '보이시'한 사람과 '여성스러운' 사람의 조합, 이라는 식의
고정관념이 강화되게 된다는 것 역시도 문제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회적 시선과는 다소 별개로
친구와의 관계만을 놓고 봤을 때는
서로 상대방을 배려하고 예의를 지켜야 한다, 는 고려사항이 들어가잖아요.
만일 letsbe님이 그 친구에게 단지 친구로서의 편안함으로
별 생각없이, 아무런 다른 사심없이 스킨십을 하는 거라면
그 친구와 letsbe님이 피차 생각하는 게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으로
별로 문제될 상황이 아닐 수도 있지만요.

친구 쪽에서는 친구끼리다, 라고 생각할 뿐인데
letsbe님 입장에서는 사실 연애감정도 있고
성적인 호기심도 있고 그런 상황이라면
letsbe님 쪽에서 스스로 선을 그을 필요도
있지 않을까 하는 게 상담원의 의견이에요.

꼭 성적인 느낌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 때문만이 아니라도
워낙에 신체접촉 같은 문제는
사람마다 가족에게, 친구에게, 연인에게 허용하는 범위와 방식이 다 다른 법이라
늘 민감하게 신경써야 하는 부분이다보니
이러한 말씀들을 드려봅니다.

게다가 그 친구를 사귀어 보고 싶다고 말씀하고 계셔서
어느 순간 그 친구와의 스킨십의 성격이 모호해질 가능성이 느껴져
말씀드린 거예요.

물론 하나의 예를 들어
다른 친구들이랑은 다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스킨십을
내가 하면 유난히 싫어하는 상황 같은 경우
그 상대방의 호모포비아(동성애혐오)를 의심해 볼 수 있겠지만
지금 letsbe님과 친구의 관계는 일단
굉장히 부담없는 사이인데
그런 사이에서 letsbe님 혼자 친구 쪽에 연애코드의 감정을 갖고 있다 할 경우
항상 하던 스킨십이 어느 순간 묘해질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고
그렇게 되면 친구와 letsbe님 관계의 균형이 깨질 수가 있어서요.
어느 순간부터는 더 이상 합의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스킨십이 될 수도 있는 것이고요.

그 친구는 현재 남자친구를 사귀고 있다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동성애자이거나 양성애자이기보다
이성애자일 가능성이 조금은 더 많은 상태이지 않을까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야 그녀 본인만이 제대로 알겠지만)
그렇다면 letsbe님이 그 친구와 친구관계로서가 아니라
연인관계로서 만나보고 싶다 했을 때
어떤 식으로 고백하고 할지에 대해
꼼꼼히 준비해서 다가가야 할 것 같아요.

그 친구는
일단 사귀는 사람이 있는 상태고
이성을 사귀고 있고 하니
그 친구가 '동성애'를 얼마나 이해할는지도
평소에 관련된 화제들을 꺼내면서 (영화얘기라던지, 만화얘기라던지 등등)
좀 유심히 살펴 보면 좋을 것 같고요.

그 친구가 letsbe님에게 갖고 있는 감정은
어떤 무늬인지에 대해서도
소탈하게 얘기나눠보고 (너는 내가 어디가 좋아서 친구하냐, 내가 얼만큼 좋냐,
이런 질문은 친구사이에서도 많이 하니까요)
그 과정에서 친구가 보이는 반응으로
그 친구와의 교제 가능성을 점쳐 보면 어떨까 싶어요.
고백했을 때 고백 자체가 받아들여지지는 않더라도
letsbe님의 감정 자체는 존중받을 수 있을지 그것도 안 될지 같은 것도 예상해 보고
그러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마지막으로 추천의 말씀을 드리면서
상담을 정리해 볼까 해요.

레즈비언 커뮤니티(즉, 여성이반 커뮤니티라고도 할 수 있는) 활동을 권하고 싶어요.
인터넷 상에는 수많은 레즈비언 친목 모임 카페들(다음daum.net 카페 사이트에 들어가서
레즈비언, 이반, 여성이반, 동성애자 등등의 키워드를 쳐서 검색하면 다양한 모임이 나옵니다)이 있고
레즈비언들이 엄청 많이 가입돼 있는
대규모 여성이반 포털 사이트도 두 군데나 있어요.

티지넷 www.tgnet.co.kr
미유넷 www.miunet.co.kr

이러한 공간들을 둘러 보시면서
비슷한 사람들의 경험담도 접해 보시고
친구도 만드시고
그러면서 여성을 좋아하는 여성으로서 살아가는 삶의
든든한 지지망을 마련하셨으면 합니다.

이반 커뮤니티 활동을 한다고 해서
바로 맘에 드는 여성을 만날 수 있다거나
손쉽게 교제를 시작할 수 있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사람마다, 상황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으므로)
이반이 아닌 사람들 사이에서만 생활할 때보다는
훨씬 자유롭게 자신의 감정이나 욕구를 표출할 수 있고
비슷한 고민을 하는 친구들과 속내를 터놓고 얘기하며
격려와 지지를 주고 받을 수도 있어
그것이 많이 힘이 된답니다.

누군가를 사귀어 보고 싶다는 말씀은 십분 이해가 돼요.
누군가에게 가슴 설레고, 성적인 욕망을 품고,
애틋한 마음으로 그 사람을 바라보는 것만이 아니라,
실제로 사귀어 보는 걸 통해서 자기 자신을 다시금 살펴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실 수 있을 것 같거든요.
그리고 실제로 그런 면이 없지 않은 것도 아니죠.
분명히 누군가가 누군가와 만나
두근거리는 심정으로 관계를 시작하고
때로는 기쁨에 넘치고 때로는 갈등도 겪으며
그렇게 서로 가장 가까운 존재로서 친밀해져 가는 과정이
자기 자신에 대해 좀 더 섬세하게 되돌아보게끔 해 줄 수 있기 때문이에요.
특히 여성으로서 여성을 좋아하고, 여성과 사귀고 섹스하길 원한다면
그것이 '일반적으로' 널리 눈에 띄는 관계의 형태가 아닌만큼
더욱 내가 직접 경험해 봄으로써 좀 더 분명히 나의 지향을
파악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건
어쩌면 당연한 마음일 수 있어요.

그렇지만 꼭 누군가를 사귀어 봐야만,
섹스를 해 봐야만,
스스로를 구체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이성애자들도 꼭 연애를 해서 그걸 매개로 이성애자로서 살아가는 게 아닌 것처럼
동성애자도 마찬가지랍니다.
만남과 헤어짐은 인연의 끈을 따라 생기는 경우가 많고
내가 바란다고 쉽게 되는 일도 아니기 때문에
언제나 내가 나를 소중히 여기는 것에 초점을 두고
늘 나를 아끼는 마음으로 내 경험을 보듬어 안는 게
가장 중요하리라 봅니다.
기회가 닿을 때, 좋은 사람을 만나서
열렬히 사랑하시면 그것도 또 좋은 일일 테고요.

letsbe님, 상담원이 드린 말씀이
letsbe님이 고민의 실마리를 잘 잡아 나가는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더 구체적으로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거나
고민이 추가되거나 할 때
다시 상담소 찾아주세요.

귀기울여 들을 준비를 하고 있을게요.

-상담소 드림.

* 한국레즈비언상담소 알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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