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aight 님, 담당 상담원이 답변을 드려요.
글 남기신지 일주일이 더 지나버리고 말았지요.
오래 기다리시게 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사과드리면서, 남겨 주신 고민에 대해
찬찬히 짚어 나가 볼게요.
우선은 말이지요,
상대방이 straight 님에게 느끼는 감정이 어떤 건지
상대방의 성정체성이 동성애자인지 양성애자인지
straight 님으로서는 정확히 아실 길이 없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나를 향한 누군가의 태도란
그 누군가가 직접 자기 행동의 배경과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 한
(이 경우 고백에 준하는 행동이 뒤따르지 않는 한)
결국 해석하기 나름이기에
큰 착오를 만드시지 않으려면
어떤 경우에도 내가 지레 잘못 짐작한 것일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시는 편이 좋으리라 생각해요.
여러 사람이 같이 대화 할 때
straight 님만 쳐다 보는 것도
일터에서 유독 의지하는 동료/선배라서
그러는 것일 수 있고요.
유난히 straight 님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계속 눈치를 살피는 것일 수 있지요.
덥석덥석 끌어안고 하는 것도
(straight 님 의사와 관계없이 그랬다는 점이 문제이지만)
마음이 있어서라기보다 오히려 전혀 사심이 없기 때문에
아무렇지도 않게 언니 너무 좋아, 이런 마음으로
그러는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게다가 동성애자라고 해서
자기가 좋아하는 동성에게
스킨십을 하고 싶어 늘 안달하는
그런 존재인 것이 전혀 아니기 때문에
상대 분이 straight 님에게
계속 스킨십을 시도했다는 사실 자체를
상대 분이 동성애자일 수 있다는 근거로 여기기에는
무리가 많습니다.
물론
straight 님이 느끼기에
아무래도 상대방이 straight 님에게
연애 감정으로 호감이 있는 것만 같다면
straight 님이 그렇게 느낄만한 정황들이
분명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의 감정이 과연 어떤 건가에 대해
백퍼센트 확신하며 단정지을 수는 없다는 점,
그리고 그러한 규정이 이 상황에서
꼭 필요한 것도 아니라는 점
(저 사람이 나를 좋아해서 저러는지 아닌지를
알아야만 어떻게 대응할지를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차원에서요)을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외양도
상대방의 감정 혹은
감정과 결부돼 있을 성정체성의
어떤 결정적인 단서로 삼기 어려워요.
칼머리에 이른바 남자같은 차림새라고 해서
다 자동적으로 이반이리라 짐작해 버려도 되는 건 아니랍니다.
이반들 (성소수자들) 의 스타일은 정말
사람 수만큼 다양하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천차만별이고
예전에는 '남성성'과 레즈비언 정체성이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했었으나
최근 들어서는 더더군다나 차츰
소위 '남성성'이라는 것이
여성 이반 정체성의 핵심이 아니게 되어가고 있어요.
(그리고 이반과 일반을 불문하고
여성도 '남성성'을 적극적으로 보일 수 있으며
남성도 '여성성'을 드러내며 살 수 있지요.)
그리고
상대방이 일본 대중 문화에 관심이 크다는 사실도
직접 베이킹을 한다는 사실도
그 분의 이반 정체성을 증거하는
결정적인 사실이기에는 너무나 부족할 따름이에요.
이러이러하면 이반이다,
저러저러하면 이반일 것이다, 라는 말이
어김없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단 하나의 반례도 존재해서는 안 되는데
지금 언급하고 계신 상대 분의 특징들은 하나하나가 다
이반이 아닌 사람들의 반례를
심지어 무수히 들 수 있는
특징들이에요.
그러므로
상대 분이 straight 님을
정말로 좋아하는 건지 아닌지,
상대 분이 이반인지 아닌지, 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짐작, 규정 하는 일은
가급적이면 삼가시는 편이
상대 분을 straight 님 기준에서
재단하지 않기 위해
꼭 필요한 마음가짐이리라 생각합니다.
중요하다 생각해서 거듭 강조드렸어요.
그렇지만
원치 않는 방식의 신체 접촉은
당연히 거절해야 해요.
신체 접촉 뿐만 아니라
관계의 전반에서 straight 님에게
부담스럽게 집착하는 듯하고
straight 님 선에서 그게 감당이 안 될 정도라면
그것 역시 끊어내셔야 하고요.
꼭 누가 누구를 좋아해서만이 아니라
친구들의 그룹 안에서도
유독 기대어 오고 나에게만 집중하고
자기에게 주목해 주길 바라는 친구가 있으면
괴로울 수 있잖아요.
그럴 때는 상대방에게 말해 주는 것이 좋지요.
straight 님의 솔직한 심정을 말예요.
네가 그러는 것이 불편하고
나는 누구와든 일정한 거리두기가 되어야
관계의 유지가 가능하니
그러한 내 입장을 조금은 살펴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시는 게 어떨까요.
그 말이 상대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어요.
필시 상처가 되겠지요.
그것이 어떤 무늬의 감정인지
단언할 수는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하더라도
상대 분이 straight 님에게
몰두해 왔다는 것만은 현상적인 사실이니까요.
감정적으로 에너지를 많이 쏟아온 사람에게
냉정한 말을 듣게 되면
마음이 아플 거예요.
하지만 적어도 상담원은
straight 님이 상대 분에게
그런 말을 하지는 않은 채로
내내 불편해 하기만 하고
점점 더 싫어하게만 되는 것보다는
솔직하게 말을 해 주어서
straight 님이 자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상대 분이 알게 해 주는 편이
훨씬 낫다고 생각합니다.
상대 분이
straight 님의 생각에 대해 알게 됨으로써
자기 행동을 조율할 수 있게 기회를 주는 것이
그 분에 대해 더 예의를 갖출 수 있는
방법일 거라고 보고요.
솔직하게 진심으로 말씀하시면 됩니다.
인간적으로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런 패턴은 나에게 불편하다.
그리고 원만히 잘 지내고 싶지만,
특별히 친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은 없다.
이런 이야기들을 우회없이 하시면 돼요.
그렇게 말씀 하신 바에 대해
상대방이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따라
이야기의 진행은 달라지겠지요.
상처를 크게 받은 상대방이
아예 straight 님과의 관계를
피하고 싶어하게 될 수도 있고
그래서 straight 님이 straight 님의 인간관계로부터
그 분을 잃게 되실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상대방이 예상보다
선뜻 쿨하게 나오면서
어 그래, 불편하게 안 하도록 노력하겠다는 반응이라면
두 분이 각자 위치에서 서로 적정 선을 유지하며
지인 관계를 이어나갈 수도 있겠지요.
이 두 가지 가능성 외에 여타
다양한 경우의 수들이 있겠고요.
중요한 건,
싫은 소리 하게 되는 것이 번거롭고 두려워
하셔야 할 말씀을 못 하게 되시는 일은
없어야 할 것 같다는 것입니다.
상대방에게,
나는 당신이 불편하고 싫어요, 라고 말해야 할 때에
(그래서 정작 싫은 소리를 듣게 되는 건 상대방인 상황에)
상대방이 나를 이상하게, 안 좋게 보면 어떻게 하나, 라는
걱정을 앞세워 이렇게도 저렇게도 큰 결단을 못 하는 건
어쩌면 상대방이 상처입을 것을 배려하는 것이라기보다
내가 상처입을 것을 겁내는 이기적인 마음일 수 있어요.
사실 이같은 이기적인 마음은 어떤 관계 속에서든 누구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품을 수 있는 마음이지만
진짜로 상대방을 최소한도나마 배려한다면
해야 할 말은 적절한 때에 과감히 하시는 편이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스킨십에 대해 단호히 말씀하신 것처럼
주변에서 맴도는 듯한 느낌에 대해서도
한 번 단단히 말씀을 하시는 것이 좋으리라 생각해요.
그럼 이제 마지막으로
한 가지 말씀만 더 드리고
상담글을 마무리 하도록 할게요.
저는 straight 님에게,
내가 상대방을 못 견디는 까닭이
나는 상대방에게 전혀 연애 감정 쪽으로 관심이 없는데
상대방은 (고백 자체만 없었을 뿐) 그런 기색을 상당히 내비치며
나에게 끊임없이 시선을 주고 다가와서
그게 부담스럽다는 데 있는 건지
아니면 똑같은 상황이더라도 그게 이성이라면
이렇게 까지 싫지는 않을 텐데
상대방이 동성이기 때문에 그 점이
마음에 크게 걸린다는 데 있는 건지,
한 번 쯤 곰곰이 생각해 보시기를 권해 드려요.
그리고 상대방이
나에게 스킨십을 자꾸만 해 와서
바로 그 점이 괴롭고 불쾌한 건지
아니면 상대방이 나에게
마음이 있다는 사실 자체부터가
이미 못 견디겠는건지에 대해서도
꼼꼼히 짚어 보셨으면 하고요.
동성애자 정체성에 대해서,
이반들의 삶에 대해서,
성소수자의 권리에 대해서,
머리로 추상적으로는 쉽게
고갤 끄덕이며 지지할 수 있어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런 손쉬운 관용이
현실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부대낌들에 대해
전혀 모르기 때문에 가능하기도 하다는 측면에서
어쩌면 적나라한 호모포비아 만큼이나
위험한 것이기도 해요.
스스로의 관용도를 믿다가도
막상 이같은 이슈가 나와 직결된 문제로 떠오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몸을 사리게 되는 경우가 많지요.
그러면 그런 경험을 하면서 그제야
이제까지 스스로 관용하고 있다고
믿어왔던 것들에 대해
내가 실은 얼마나 속편하게 접근했던 걸까를
새삼 깨닫는 계기가 되는 것이고요.
상담원은 straight 님이
자기가 느끼는 혐오감을 일단
가감없이 직면했다는 사실을
긍정적으로 주목했어요.
내 안의 혐오와 공포가 있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알게 되셨고
그걸 직접 인정하셨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요.
인정하셨으니까
그리고 그것이 부당한 혐오라는 것도 아실 터이니까
앞으로는 이제까지보다는
좀 더 현실적인 차원에서
보다 일상적인 층위에서
성소수자 인권에 대해
고민해 나가실 수 있으리라 믿어 봅니다.
한 번 더 정리해 드리자면,
상대방이 내게 원치않는 신체접촉을 하는 것에 대해
불쾌감을 느끼고 소름이 끼치고 화가 나는 것은
그 상대방이 이성이건 동성이건 상관없이
절대로 부당한 반응이 아녜요.
당장 중단시켜야 하고, 문제삼아야 하지요.
하지만
내게 그런 행동을 해 오는 상대방이
나와 성별이 같다는 이유로
상대방의 성정체성을 추정하고
그렇게 추정한 뒤 상대방에 대해 한층 더 불쾌해 하는 것은
상대방에게 화를 내야 할 포인트 자체를
제대로 못 잡은 것인 데다가
해당 정체성으로 살아가는 다른 많은 이들에게도
부당한 반응이에요.
straight 님은
이제 자기 내면의 호모포비아를
또렷이 겪으신만큼
그 포비아의 정체를 잘 헤쳐 보고 지양하는 연습을
앞으로 꾸준히 해 나가시기를 당부드리며
그리고 기회 닿는대로 그 과정을 돕게 되기를 바라며
오늘 상담은 이만 마치겠습니다.
더 나누고 싶은 고민이 있을 때면
언제든 이곳 게시판 다시 찾아 주세요.
담당 상담원 드림.
2012-2-h-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