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두
퀴어 정치인을 만든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오츠지 가나코 전 의원과의 만남은, 그에 앞서 참여했던 친구사이 RUN/OUT 프로젝트의 영화 <레즈비언 정치인 도전기> GV를 다시 떠올리게 했다. 영화를 보며 가장 오래 남은 장면은 선거운동을 함께하던 퀴어 당사자들이 아웃팅을 당하지 않도록 가면을 쓰고 유세에 나서는 모습이었다.
지금은 커밍아웃한 연예인, 작가, 변호사, 정치인 등 다양한 퀴어들의 존재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하지만 2000년대 초만 해도 상황은 달랐다. 커밍아웃한 한 사람이 하나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것처럼 여겨졌고, ‘게이’ 하면 홍석천, ‘트랜스젠더’ 하면 하리수를 떠올리는 식이었다. 영화 속 최현숙 후보 역시 공개 레즈비언 정치인으로 출마한다는 것 자체가 사회적 도전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 최초의 커밍아웃 레즈비언 정치인인 오츠지 가나코 전 의원과의 만남은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다. 그는 스물여덟 살에 최연소 오사카부의회 의원으로 당선됐고, 이후 일본 최초의 커밍아웃 레즈비언 정치인으로 알려졌다. 올해 스물여덟인 나에게는 같은 나이에 자신의 삶을 걸고 정치를 시작한 사람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 경험 자체가 깊은 울림으로 남았다.
“레즈비언이라는 정체성이 정치인으로서의 역량보다 더 크게 소비되거나, 오히려 역량을 가리는 경험은 없었는가”라는 질문에 오츠지 전 의원은 자신은 지역에서 ‘레즈비언 정치인’이 아니라 돌봄과 복지 분야에서 일하는 정치인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으며, 자신이 레즈비언인 줄 모르는 주민도 많다고 답했다. 이어 그는 퀴어 당사자 정치인이라고 해서 모두 성소수자 인권을 위한 정치를 하는 것은 아니며, 일본에서는 성소수자 권리에 반대하는 보수 정당에서 활동하는 퀴어 정치인도 있다고 말했다. 반대로 당사자는 아니지만 꾸준히 성소수자 인권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앨라이 정치인도 존재한다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기억에 남은 것은 “유권자가 성장해야 정치가가 성장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오츠지 전 의원은 지금의 정치 구조가 돌봄 노동을 전담하지 않는 사람, 특히 남성을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으며 정치 영역 안의 성평등 역시 여전히 중요한 과제라고 말했다. 결국 퀴어 정치를 이야기하는 일은 소수자의 대표성을 넘어 민주주의와 시민사회를 어떻게 성장시킬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기도 했다.
그 답변은 내게 ‘퀴어 정치인을 만든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라는 질문을 남겼다.
퀴어 정치인을 만드는 일은 분명 중요하다. 당사자의 경험이 정책에 반영되고, 성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 차별받거나 정치에서 배제되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다. 하지만 당사자성이 곧 어떤 정치를 하는지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정치인의 성정체성은 중요한 출발점이지만, 그것만으로 어떤 정치를 하는지가 결정되지는 않는다. “정치만 잘하면 레즈비언인지는 상관없다”는 영화 속 시민의 말 역시 같은 맥락으로 다가왔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퀴어 정치를 만들어 가야 할까.
일본 역시 많은 과제가 남아 있다. 혼인평등 법제화와 재생산권을 둘러싼 논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고, 보수 정치의 저항도 존재한다. 한편 최근에는 LGBT 이해증진법에 따른 기본계획이 마련되면서 학교 현장의 성소수자 이해 교육과 상담체계 구축 등 제도적 변화도 이어지고 있다.
한국은 또 다른 조건 속에 있다. 2000년대 초 최현숙 후보의 도전 이후에도 정치, 교육, 시민사회 곳곳에서 수많은 시도와 변화가 이어져 왔다. 사회의 인식은 분명 달라졌고, 더 많은 퀴어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성소수자는 존재를 드러냈다는 이유만으로 차별을 경험하고, 학교와 직장, 가족 등 일상의 공간에서조차 안전과 존중을 충분히 보장받지 못한다. 혼인평등은 물론, 그보다 더 일상적인 영역에서의 평등 역시 아직 현재진행형의 과제다. 그리고 이러한 과제를 풀어가기 위해서는 거대한 보수 개신교 세력과 양당 중심의 정치 구조라는 현실 역시 직시해야 한다.
오츠지 가나코 전 의원과의 만남은 일본의 퀴어 정치를 배우는 시간을 넘어 한국 사회를 다시 바라보게 만들었다. 퀴어 정치인을 만드는 일은 지금도 반드시 필요한 과제다. 동시에 그 정치인들이 어떤 정치를 만들어 가야 하는지, 그리고 우리는 어떤 시민으로 그 정치를 함께 만들어 갈 것인지. 그 질문은 이번 만남이 내게 남긴 가장 큰 과제였다.

-루니
오츠지 가나코 의원님을 지난 런아웃 행사에서 영상으로 뵈었는데, 실제로 뵈니 더욱 반가웠습니다. 저는 여전히 한국의 정치적 상황에서 여성 퀴어로서 정치적 목소리를 낸다는 것에 대해 막연하고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특히 낙선 후의 감정적 스트레스를 견디는 것이라든지, 성소수자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와 여성으로서 감내해야 할 차별을 인내하는 것에 대해 무척 두렵게 느껴집니다. 그것을 오롯이 견뎌온 삶을 살아오셨다는 점에서 정말 존경하는 마음입니다. 오츠지 가나코님처럼 단단한 길을 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저 스스로에 대해 확신하기 어렵지만, 활동가로서 꾸준히 성장하고 나아갈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되었다는 점에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꼭 전해드리고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