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티지넷 TG매거진, 한국 L 상담소 탐방기

티지넷 TG매거진

제 목 한국 L 상담소 탐방기.

설마했다.
사무실이라는 것이, 꼭 대로변 넓은 곳에 주차장 완비까지 되어야 하는건 아니지만,
그래도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단체인데…
‘그러고보니, L상담소의 전신인 ‘끼리끼리’ 시절때에도 환경이란 것은 열악했었지. 왜, 좋은 일들을 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힘든 계단을 올라가야 하는걸까.’
혼자 중얼중얼거리며, 등산이라 생각하고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가까이서 올려다본 계단은, 올라가기도 전에 내 다리를 풀리게 했다.)

다 올라가고 나니, 땀이 주르르 등을 타고 내려오는데,
오늘 인터뷰 약속을 해주신, 려수님이 마중을 나오셨다.
막상 려수님을 뵈니,
‘아. 이 분은 매일 이 계단을 오르내리시겠구나’ 생각하니,
오히려 기자가 죄송한 마음이 든다.

상담소는 한적한 주택가에 있었다.
현관에 LCC 작은 로고가 붙어 있을 뿐, 그 외에는 특별한 표식이 없었다.
아쉬움보단, 정신 나간 호모포비아들의 공격으로부터는 안전하겠다 싶어 다행이다.
(십 년전에, 레스보스가 공덕동에서 개업하던 날엔, 변태 레즈들을 처단하겠다는 젊은 남자 하나가 빠를 습격?한 적이 있었다. 우연히 그 자리에 있던 기자는 입술이 터지게 얻어맞았었다.)
(살다보면 정말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는 법이다.)

작은 방 두개의 사무실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대부분의 일들은 전화상담이나 인터넷으로 하고 있는데,
직접 내방해오는 상담자들도 꽤 있다 한다.

한국 레즈비언 상담소는, ‘끼리끼리’를 전신으로 하고 있다.
끼리끼리는 1994년 11월 발족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동성애자 모임이다.
이 때를 기점으로 우리나라의 레즈비언 인권운동이 시작되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후에, 천리안, 하이텔, 나우누리등 pc통신모임이 활발해졌고,
인터넷이란 매체가 등장한 후에는 티지넷등을 통해,
그리고 많은 이반빠등 업소도 활발해지며, 현재의 레즈비언 커뮤니티는 양적 질적으로 엄청난 성장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의 구심점이 초기의 끼리끼리라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이런 끼리끼리가 한국레즈비언 상담소로 전환하게 된 것은,
상담소 홈페이지에 잘 나와 있다.

“최근 레즈비언 커뮤니티의 형성이 더욱 활발해졌습니다.
그러나 레즈비언의 존재가 드러나면 드러날수록 레즈비언을 향한 폭력은 더욱 거세지고,
레즈비언이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차별도 심각합니다.
여전히 이 사회에는 레즈비언의 존재 자체에 대한 무시나 편견, 왜곡이 팽배한 것입니다.

레즈비언은 여성으로서 그리고 동성애자로 이중의 억압에 처해 있습니다.
정체성 혼란, 커밍아웃과 아우팅의 문제, 독립의 문제, 교제의 문제,
레즈비언을 대상으로 한 범죄 등 레즈비언이 직면하고 있는 괴로움은 너무나 많고 심각합니다.
많은 레즈비언들이 우울증에 시달리는 등의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이같은 상황에서 개개인의 레즈비언이 가지고 있는 고민을 털어놓고
해결방안을 함께 모색해줄 공간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또한 개개인의 레즈비언의 고민을 모아 레즈비언이 처한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고
대안을 제시할 공간 역시 꼭 필요합니다.
이에 ‘한국레즈비언상담소’는 한국 최초의 독자적인 레즈비언 상담소로서,
레즈비언을 대상으로 하는 상담을 진행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레즈비언을 억압해온 가부장제와 이성애주의 및 이에 근간한 제도에 대항하고자 합니다.

‘한국레즈비언상담소’는 가부장제와 이성애주의에 반대하는 단체들과 굳건히 연대하며,
개개인 레즈비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레즈비언을 향한 모든 차별과 억압의 종식을 위하여 열심히 활동해 나가겠습니다.”

( 레즈비언 상담소 홈페이지에서 발췌.)

이런저런 간단한 소개를 끝내고,
려수님과 마주 앉았다.
려수님은 현재 상담소의 사무국장이자 간사이시다.

기자: 상담소에서 하는 일들은 뭔가요?

려수님(이하 려수라고 씀): 쉽게 말하면, 아웃팅이나 차별등,
성적소수자로서 직면해야 하는 부당한 문제들을
같이 고민하고 상담하며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곳이라고 보면 됩니다.

기자: 어떻게 이 일을 하시게 되었나요?

려수: 중1때 정체성을 알았어요. 제가 좀 빠르죠? ^^
이상한 표현이지만, 저희 중학교가 “레즈가 풍요로운 좋은 학교”였거든요.(웃음)
덕분에 전 쉽게 제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었어요.
교내에도 이반동호회가 발달되어 있었고,
지역 사회 레즈비언 커뮤니티의 중심이 우리학교였을 정도니까요.
하지만, 우리끼리 만나봤자, 제일 큰 언니가 고등학생인 정도니까,
막상 어른에게 의논할 길이 없어서 힘들었지요.
그래서, 중2때 결심했어요.
커서 레즈비언을 상담해주는 사람이 되자고요.

기자: 대단한 학생이었군요. (웃음)

려수: 그러다 고등학교때 ‘”이반검열”을 찍기위해 청소년을 모집한다는 글을보고
정말로 난,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대학교때 무작정 상경을 했어요. 인권운동을 하자고요.
그때부터 1주일에 한 번 이상 서울에 와서 상담교육을 받았고,
그렇게 하다보니 지금의 제가 되었네요.

기자: 정말 대단하시네요. 어쨌든 꿈을 이루셨으니 축하드립니다. ^^
근데 아무리 꿈을 이뤘다해도, 막상 힘든 일도 많으시겠어요.

려수: 상담중에 같이 가슴이 아플 때가 많아요.
아웃팅 협박을 받는 경우엔 같이 걱정되고 힘들고,
사실 어떤 문제건, 상담해주는 저희들은 “이렇게 저렇게 해보세요”라고 하면서
같이 마음 아파하지만,
아무리 그렇다해도, 당사자들, 그 분들이 힘든 것, 그것 이상이 될 수 있을까요.

기자: 그렇군요. 누군가의 힘든 얘기를 듣는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 같네요.

려수: 가해자가 전화를 해 올때도 있어요.

기자: 가해자가 전화를 걸다니요?
예를들어, 애인이 배신을 했다. 아웃팅 시켜서 복수하겠다. 뭐 이런 건가요?

려수: 누가 들어주고, 이해해주길 바라시는거지요.
그 분 입장에서도 실제로 가해를 하고 싶은 게 아니라,
너무나 답답하고 화가 나니까, 자기의 상처를 털어놓고 싶은데 그럴 수 없으니까요.
자기가 상처 받은 만큼, 상대를 해하고 싶은 마음에 전화를 걸어오시는데,
다 들어드리고, 얼마나 상처받았는지 이해해드리면, 그 분들도 화가 풀리고,
나중엔 뭔가 풀어진 목소리로, 전화를 끊을 때, 안도를 하지요.
보람도 느끼고요.

기자: 그렇군요. 그런 부분은 미처 생각을 못했네요. 가해자의 상담이라…

려수: 하지만 그런 경우는 드물지요. 보통은 실제로 큰 문제가 되는 일들이에요.
예전에 뉴스에도 나간 사건인데, 이런 사건이 있었어요.
온라인을 통해 사람을 만났는데, 상대가 여자라고 속인 남자였어요.
그 남자로부터 피해자가 성폭행까지 당했는데, 집에 아웃팅 시키겠다고 협박해서
신고도 제대로 못하고 지속적으로 만나주고 성폭행을 당한 사건이었어요.

기자: 어처구니 없군요. 말이나 됩니까?

려수: 슬프고 분노할 일이지요.
하여간에 그러다가 저희쪽이랑 연결이 되어서,
결국 가해남성을 고소했고 형사입건까지 시켰어요.

기자: 한마디로, “성폭행보다 무서운 아웃팅”인건가요. 휴…
슬픈 현실이군요.
상담 얘기 좀 더 해주세요.

려수: 상담을 해오는 사람들은, 주위로부터 고립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요.
주위에 이반 친구가 전혀 없거나, 자신이 이반인지조차 확신을 갖지 못하는 경우요.
어떤 의미에선, “티지넷”을 안다는 것 자체가 큰 축복이라고 봐요.
티지를 안다는 것은 일단 누군가에게 도움이나 의논의 손을 내밀 수 있다는 거니까요.
티지, 혹은 이반커뮤니티가 있는지조차 모른다면,
세상에 자기 혼자뿐이라고 생각된다면 얼마나 힘들겠어요.

기자: 아, 이것도 평범한 레즈인 저로서는 생각지도 못한 거네요.

려수: 인터넷을 전혀 못하는 4,50대분들의 상담도 들어오곤 해요.
혹은, 내 자녀가 레즈다, 라고 자문을 구해오는 부모님도 계시고요.
이런 경우엔, 내 딸을 이성애자라고 바꿔달라고 주문을 하시기도 하지요.
그러다가, 이 곳이 어떤 상담소인지 잘 알게 되면,
상담원을 조롱하거나 화를 내는 사람도 있고요.

기자: “고쳐달라”고 했더니, 실은 너희도 레즈구나, 라는 의미에서인가요?

려수: ^^

기자: 제일 많이 들어오는 상담은 어떤 유형인가요?

려수: 아무래도, 성정체성에 관한 거지요.
“제가 레즈인가요?”
“이상해요. 친군데 그 이상으로 좋아져요.” 등등이요.
그런데 요샌 아웃팅이라던가, 포비아(혐오)문제가 많이 들어오고 있어요.
상담을 하다보면, 우시는 분들도 많고, 속시원해졌다고 하는 분들도 많고요.

기자: 하루에 몇 건이나 들어오나요?

려수: 아예 없는 날도 있고, 많을 때는 열 건 이상 들어올 때도 있지요.

기자: 누군가의 이야기를 다 들어줘야 한다는 건, 사명감이 있다해도 힘든 일일텐데요.

려수: 하고 싶었던 일이니까요. 그리고 앞으로의 꿈도 그렇고요.
전 특별히 청소년 레즈비언문제에 관심이 많아요.
가족에게 알려져서 집에서 쫓겨나거나 가출한 청소년들은,
하루하루 친구나 선배집을 전전하거나, 청소년 쉼터에 들어가기도 하지만,
결국 거기에서도 오래 있지 못하고 나와야 하지요.
청소년이란 시기는 정말 더 힘들고 인생을 결정짓는 시기잖아요.
그래서 전 청소년 레즈비언 쉼터가 생겼으면 하는 게 꿈이에요.

기자: 상담소라는 단체의 입장에서는 무엇이 가장 큰 애로점인가요.
아무래도 현실적인 것일텐데요.
지금 여기 이 사무실은 어떻게 유지되는건가요?

려수: 후원금과 회원들의 회비등으로 충당되는데 힘들지요.
저 같은 경우엔, 상근 시간이 오후 1시에서 8시까지예요.
물론 더 있는 경우가 많구요.
그러다보니 아무래도 제 일은 포기하고 하는데,
월급을 못 받을때도 있고요.^^

기자: 이래저래 좋은 일을 한다는 것은, 자기 이익과는 상관없어야 한다는 것,
어디나 마찬가지겠지만, 우리 커뮤니티는 아무래도 더 힘들죠.

려수: 그래도 정말 보람있어요.
언젠가는 꼭 좋은 날이 올거라고 믿고요.
그 날이 올때까지 모두 열심히 잘 살아야겠지요. ^^

기자: 오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저도 티지에 상담소의 안내글이 올라올때마다
그저 막연하게, “상담해주는 곳”이 있구나, 라고만 생각했거든요.
앞으로도 우리 커뮤니티의 지킴이가 되어주세요.

인터뷰를 마치고 되돌아오는 길엔, 다시금 그 계단이 있었다.
올라올때 보는 계단과 내려갈 때 보는 계단은 역시 달랐다.
올라오는 계단이 많았을수록, 내려가는 계단도 많은 법이라 했던가.
우리 이반커뮤니티도 지금은 힘들고 고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언젠가 내려갈 계단들은 더 편해질 날이 올 것이다.
그런 소망을 가져본다.

한국레즈비언상담소 http://www.lsangdam.org

바쁘신 와중에도 친절히 시간을 내주신 려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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