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평등_회원 인터뷰_06 란다, 말랑빵] 놀러오세요, 사랑가득한 우리집에!

[혼인평등_회원 인터뷰_06 란다, 말랑빵]
놀러오세요, 사랑가득한 우리집에!

들려준 사람 : 란다, 말랑빵
정리 : 양말

한국레즈비언상담소에서 진행 중인 혼인평등 회원 인터뷰 시리즈의 올해 마지막 주인공, 란다님과 말랑빵님을 만났다. 두 분과는 www 풋살팀을 함께 하며 알게 되었다. 악마같은 스타성이라는 말이 절로 떠오르는 두 분은 풋살팀의 알아주는 분위기 메이커이다. 정말 웃기지만, 동시에 너무나도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두 분과 현 시대를 살아가는 또래 20대 여성 성소수자로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1. 동거의 시작, 그리고 선택

그들은 현재 네 마리의 고양이들과 함께 살고 있다. 태풍 “종달새”가 왔던 어느 날 태어난 천둥, 번개, 태풍이와 그들의 엄마까지. 최근 구조한 스트릿 출신 고양이 꼬순이가 그들을 대가족으로 만들어주었다.

양말: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란다 : 귀여운 고양이들과 더 귀여운 말랑빵님과 함께 살고 있는 20대 후반 레즈비언입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레즈비언이라는 정체성을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평생 이걸 안고 살아야 한다는 불안감도 함께였죠. 

말랑빵 : 저는 좋아하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많은 내조의 여왕이에요. 란다가 제 첫 여자이자.. 마지막 여자이죠! (웃음)

말랑빵이 직접 싸준 란다의 점심 도시락. 내조의 여왕이라는 수많은 증거들 중 하나.

란다가 처음 정체성을 깨달은 시기는 무려 6살. 자기소개에서도 두 분의 성격이 드러나는 것 같아 흥미로웠다.

양말: 동거는 어쩌다 하게 되신거에요?

란다 : 사실 저희가 같이 살게 된 건 꽤 급작스러웠어요. 사귄 지 한 달 만에 동거를 시작했죠. 말랑빵의 부모님께서 저희 사이를 우연히 아시고는 강경하게 반대를 하셨는데, 사랑과 재채기는 숨길 수 없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만났어요. 결국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집을 나오게 됐죠. 커밍아웃을 했을 때 거주 공간을 잃을 수도 있다. 의식주를 잃을 수 있다는 것은 많은 레즈비언들이 겪는 일일 것 같아요. 게다가 제가 부모와의 연을 저버리게 한 것 같아서 죄책감이 컸죠.

말랑빵 : 좋게 나온 게 아니다 보니 겁도 나고 많이 울기도 했어요. 그 때마다 란다가 많이 걱정해줬던 기억이 나요. 삶에서 저를 제외한 부분을 모두 도려내어 새로 살아가기로 결심을 한 거니까… 이성애자가 동거한다고 삶을 도려내진 않잖아요.

양말: 결정이 쉽지만은 않으셨을 것 같아요.

란다: 사실 이 사람을 보호해줘야겠다는 책임감도 있었지만, 동시에 이게 정말 맞는 결정일까 혼란스러웠어요. 보통의 연애는 심플하게 만나다 안 맞으면 헤어질 수도 있는 거잖아요. 나중에 안 맞아서 헤어진다면 어떻게 하지? 당장 갈 곳이 없는 사람에게 그만 하자고 말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들이 한꺼번에 들더라고요. 

양말: 그럼 그 혼란스러웠던 때의 동거와 지금의 동거의 의미가 달라지셨을까요?

말랑빵 : 예전에는 같이 사는 사람이 있는데 그게 애인! 인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다양한 추억을 쌓고, 신뢰가 깊어지니까 훨씬 안정감도 느끼고 동거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의미가 더 풍부해진 느낌이에요.

란다 : 가장 큰 차이는 불확실성과 확실성인 것 같아요. 가치관에 대해 얘기할 겨를도 없었고, 맞지 않는 부분이 뭔지도 몰랐죠. 하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 안 맞는 부분은 물론 그대로 존재하겠지만, 그걸 내가 이해할 수 있고 품어줄 수 있다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어요.

서로 생각이 다른 부분은 그대로인데, “괜찮을까”라는 불확실한 마음에서 “무엇이든 품어줄 수 있어”라는 확실한 마음으로 바뀌어 갔다는 답변에서 관계의 성숙함을 느낄 수 있었다. 두 분은 이제 같이 살기 시작한지 어언 2년이 다되어 간다고 했다. 이들이 함께 헤쳐나가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들이 궁금했다. 

2. 현실 속 차별과 불안 : 제도적인 어려움.

양말: 동거하면서 가장 크게 겪고 있는 어려움이나 고민이 있으실까요?

란다 : 저는 우리 둘이 이미 결혼했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는데, 기혼 이성애자들이 받고 있는 직장 내 복지 혜택을 못 누리는게 너무 억울해요. 서울 집값이 얼마나 비싼데, 결혼한 동료들은 회사에서 사택을 제공받더라고요. 그들이 앞서나가는 만큼 저는 후퇴하는 기분이 들어요. 그 차이를 메꾸려면 더 아득바득 재테크를 해야 하구요. 그래서 매달 기혼 동료들보다 150만원정도는 손해를 보고 있는 느낌이에요.

사회 초년생으로서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깜짝 놀랐다. 이 정도로 복지의 차이가 있을 줄은 몰랐다. 하지만 이런 차별은 단순히 수치상의 문제에 그치지 않았다. 동거하는 커플이지만 아직 말랑빵님의 전입신고는 이루어지지 않은 것. 그래서 서류상으로 그들은 서로 다른 곳에 살고 있다.

란다 : 전입신고를 지금 못하고 있는 상황이거든요. 직장에서도 동네에서도 유난히 예의주시하는 시선들을 느껴요. 직업 특성상 한번은 인사과에 전입신고 서류를 제출할 일이 있었는데, 상사가 굳이 본인을 통해서 제출하라고 한적이 있었어요. 누구랑 사는지 궁금했던 거죠. 안그래도 사람들이 (머리가 짧다는 이유로) 의심하는 상황인데 말랑빵님을 세대원으로 넣으면 너무 얘깃거리가 되기 뻔한 상황이니까 조심하고 있어요. 제가 훨씬 조심스러운 성격인데 말랑빵님이 그걸 다 맞춰주고 있어서 많이 고맙죠.

말랑빵 : 저는 좀 미안하긴 해요. (란다가 신경쓰는 거에 비해) 너무 걱정을 안해서.

란다 : 동네도 좀 오래 사신 분들도 많고 연령대도 높은 편이라 폐쇄적인 분위기인 것 같아요. 우리가 어떤 사이일지 쳐다보는 시선들이 있어요. 그래서 손도 안 잡고 엘리베이터를 타도 일부로 데면데면하게 굴기도 하구요.

과감해 보이지만 사람들이 오나 안 오나 엄청 눈치 보며 찍었다. 마치 라라랜드의 한 장면!

3. 우리가 바라는 미래

양말: 그럼 두 분은 개인적으로 꿈꾸는 가족의 모습이 있을까요?

말랑빵 : 옛날부터 고양이랑 사는걸 꿈꿨어요. 거기에 사랑하는 사람도 있으면 금상첨화겠죠. ‘집이라는 건 내가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공간이겠구나’ 라는 생각에 심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많이 안정을 찾은 상태에요. 어쩌면 지금이 제가 꿈꿔왔던 현실이랑 비슷하게 살고 있는 것 같아요. 원가족과 함께 살 땐 형제도 살가운 편도 아니고 부모님도 맞벌이셔서 항상 피곤해 하셨던 기억이 나요. 그래서 좀 외로웠었는데 지금은 사랑하는 사람이 기다리고 있는, 내가 지친 일과를 끝내고 마침내 돌아갈 곳, 따뜻한 공간이 있다는 거 자체만으로도 만족스러워요.

란다 : 다른 부분에선 불안이 하나도 없는데 레즈비언으로서의 불안은 진짜 강한 것 같아요. 6살때부터 평생 그거에 대한 걱정을 하고 살아서 그런가봐요. (하하) 뉴스기사를 보면 억울한 일을 당한 선례도 많고… 그래서 더욱 집에 대한 열망이 큰 것 같아요. 작은아씨들 드라마에 나온 대사 중 ‘이런 집 하나만 있으면 네가 바닥을 기어도 다시 올라갈 수 있어’ 라는 말이 너무 공감됐어요. 백수여도 라면만 먹고 살아도 내 집 하나만 있으면 뭐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정말 만에 하나 우리가 여느 커플처럼 이혼하게 될 수도 있는 건데 헤어져도 상대가 못 먹고 살고 그러면 어쩌나 하는 불안이 너무 커요. 그래서 꼭 각자 이름앞으로 집이 한채씩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강해지고 있어요. 그냥 최악을 대비하고 싶은 마음?

소수자 차별에 대해 안전망이 없는 현실을 개인이 뛰어넘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란다님한테 집이란 개념은 물리적인 공간,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수단의 의미라면 말랑빵님에게 집은 사랑하는 존재들과 함께하는 곳이라는 관념적인 의미로 다가온다는 인상을 받았다. 방향은 다르지만 함께 행복하고자 하는 강렬한 의지는 같은 두 분이었다. 이것이 바로 황금 밸런스일까 싶었다!

양말: 그렇다면 만약 두 분께 경제적 어려움이 닥친다면 어떻게 대처할 것 같으세요?

란다 : 이 질문을 미리 받았을 땐 원가족의 도움을 받는다 정도 밖엔 현실적으로 떠오르지 않았어요. 근데 부가설명을 들으니까 아 내가 말랑빵과 가족이라는, 부부라는 틀안에 묶인다면 제도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방법도 분명 있겠구나. 내가 차별받고 있는지도 몰랐네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출이든 보험이든 개인보단 ‘법적 가족’ 중심으로만 지원받을 수 있는 문제가 있다. 혜택뿐만 아니라 구제에 있어서도 이런 현실 속에 여성 성소수자는 박탈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 란다님께서도 원가족의 도움을 떠올렸듯이 제도적 지원이 없다면 개인적인 자원에 기대어야 한다. 법제도 뿐 아니라 여성 성소수자로서의 커뮤니티의 필요성과 중요성도 느낄 수 있었다.

양말: 20대 후반을 다가가면서 커리어에 대한 고민도 많으실 것 같아요.

말랑빵 : 지금은 란다가 이곳저곳 옮겨 다녀야 하는 직업이라 한번은 아예 다른 지역으로 발령나도 따라와 줄 수있냐고 물었어요. 저는 당연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어딜 가도 내가 일할 자리 하나는 있겠지 이런 마음이에요. 나중에 제가 빛날 시기가 오면 또 란다가 든든하게 옆에 있어주겠죠. 둘이 함께 있으면 어디에 있든 상관 없는 것 같아요.

란다 : 성지향성을 너무 일찍 깨달아서 불안감도 오래도록 가지다 보니 이게 일생 전체에 걸쳐 저를 계속 무력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진로도 상대적으로 안정적이고 보장된 미래가 있는 걸 맞춰간 것 같고요. 여성 임금이 낮다는 것도, 남성에 비해 나이든 여성이 퇴직 시기가 이르다는 것도 알고 있어서 공무원 같은 직업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뿌리 깊게 박혔었어요. 그런데 지금 보면 스스로를 너무 옥죄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꼭 꼬마아가레즈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고. 이 세상엔 재밌는 게 너무 많고 너는 생각보다 큰 사람이니까 정체성을 스스로 족쇄로 삼고 살지 말라고요.

의정부 음악도서관에서. 취향이 비슷해 함께 즐기는 순간들이 많다.

3. 우리에게 동성혼이란?

양말: 두분에게 결혼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말랑빵: 과거에는 형식적인 서류만이 중요한 줄 알았어요. 그런데 같이 살아 보니까 예전에 비해 더 현실적인 느낌이 된 것 같아요.  왜냐하면 서류상으로 결혼을 하려면 동성혼 법제화가 되어야 하거나 외국으로 가야하는 상황이고, 외국에서 혼인신고를 하는 것도 만만치 않잖아요.  오히려 집이나 경제적인 것이 묶여 있고 자식 같은 고양이도 함께 키우고 있는 지금, 공동으로 책임을 지는 것들이 많아지니 결혼이 주는 의미를 더 광범위하게 느낄 수 있게 된것 같아요. 그리고 어차피 이젠 서로의 원가족들과 식사도 자주 하고 자주 찾아뵙는편이니 혼인신고만 안했을 뿐이지 (결혼과) 다를 바 없는 것 같아요.

양말: 동성혼 법제화가 어떨 때 필요하다고 느끼세요?

란다 : 사회적으로 혐오가 너무 만연한데 혐오에 대항할 방법이 부족한 것 같아요. 법으로 인정을 해준다면 혐오가 지속되더라도 법을 근거로 반박할 수 있잖아요. 그럼 이 만연한 혐오를 끝낼수 있는 시작이 될 가능성이 있겠죠. 그리고 일단 정치인들이 정치적으로 동성애를 너무 이용한다고 생각해요. 특정 종교에 대한 지지율을 유지할 목적으로 반대한다고 하기도 하고.. 그래서 아예 법으로 제정해놓으면 더이상 그쪽으로 동성애를 이용할 수 없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어요. 동성애자한테는 생존이 걸린 문제가 정치인들 한테는 표몰이로 쓸수있는 장치중 하나라는게 너무 오만해요.

말랑빵 : 앞서 말한 란다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해요. 어디가서 친구 또는 사촌지간이야 라고 하지않고 우리의 관계를 얘기할수 있는것만으로도 필요성을 느껴요. 서로의 공식적인 보호자가 되어줄 수 있는것도 당연히 중요하구요. 좀 낙관적인가 싶지만 언젠가는 법제화가 될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양말: 동성혼 법제화가 현실로 이루어진다면 어떤 변화가 있을까요? 꿈꾸는 결혼식이 있으시다면요?

란다 : 저는 결혼식 프로참석러인데요. 갈 때 마다 축의금을 내도 못 돌려받는다는 것에 대한 회의감은 항상 있어요. 거의 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사람들에게 진심어린 축하를 받을 수 있는 것도 부러웠구요. 그래서 만약 결혼을 하게 된다면 편견 가득한 직장 동료들을 모두 초대해서 충격을 선사하고 싶어요. 

말랑빵 : 만약 할 수 있게 된다면 이혼하기는 싫으니까 좀…(생각해봐야겠죠)…(웃음) 근데 이제 동성애자면서 비혼주의자일 수도 있는 거니까. 저는 예전에는 비혼에 대한 생각도 있었어요. 그래서 당장 뭘 하자! 보다는 조금 더 아, 드디어 됐다. 이런 심적으로 안정되는 부분이 클 것 같아요. 결혼을 했다고 둘 사이에 갑자기 없던 신뢰가 생기고 사랑이 더 깊어지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우리도 이성애자들처럼 선택지가 생기는 거죠.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고. 사실 그게 당연한 건데, 결혼을 하거나 하지 않거나, 시행착오를 겪어 이혼을 하는 것 까지도 일종의 권력인 것 같아요. 아, 그리고 저는 결혼 하게 된다면 사랑하는 사람들 가족들 다 초대해서 진정한 축하를 받고 싶을 것 같아요.

양말: 마지막으로 동성혼 법제화에 대해 하고싶은 말씀이 있으실까요?

말랑빵 : 우스갯소리로 법제화가 죽고나서 될 것 같다고 하기도 했지만, 요즘에는 전통적인 구성원보다는 개방적이고 다양한 형태의 가족들이 있으니 법제화 뿐 아니라 생활동반자법도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만약 원가족들과 소통할 방법이 없거나 왕래가 없는 상태에서 아프면 어떡할 거예요, 당장. 의식주, 그리고 응급상황만 생각해도 필수적인 제도인 것 같아요. 기본적인 복지가 잘 이루어져야 아이도 낳고 미래를 생각해볼 여유가 생기는거잖아요.

란다 : 반대하는 많은 의견들 중 대부분이 인과관계가 어긋난 주장이라고 느껴져요. 좀 더 인류를 사랑하는 방향으로 다들 마음을 썼으면 좋겠고, 나와 조금 다르다고 동성애자가 불법이다! 할 게 아니라 그냥 사랑으로 좀 감싸줬으면 좋겠어요.

9와 숫자들의 창세기 가사 중 한 구절을 새겨 넣은 첫 커플링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고민하고, 당연한 것들을 쟁취하기 위해 목소리를 선뜻 내주는 두 분을 보니 용기가 샘솟고 조금은 무기력 했던 정신이 깨워지는 기분도 들었다. 사랑과, 서로의 꿈과 고양이가 가득한 이 둘의 집에 서류한 장까지 추가되는 그날까지 많은 이야기들이 이 세상에 나왔으면 한다.

퀴어가족들의 안정적인 중년, 노년을 진심으로 바라면서 인터뷰 마침.

(인터뷰 : 2024.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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