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평등_회원 인터뷰_05 럼블] 여성, 청년, 성소수자의 ‘먹고 살기’

[혼인평등_회원 인터뷰_05 럼블] 여성, 청년, 성소수자의 ‘먹고 살기’

들려준 사람: 럼블
정리: 소연

한국레즈비언상담소가 30주년을 맞아 매달 진행하는 ‘혼인평등 회원 인터뷰’의 다섯 번째 주인공으로 럼블을 만났다. 여러 일들로 정신없는 일정을 보내다 보니 10월호 마감을 코앞에 두고 겨우 연락했는데, 늦은 연락에도 럼블이 흔쾌히 수락해 주었다. 예정보다 순조롭게 진행되어 마음이 놓이면서도, 막상 럼블과의 대화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가늠이 잘 안 되던 차였다. 서로 안부를 나누던 중 결혼할 생각은 없어서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럼블의 농담 섞인 말에 나도 모르게 긴장이 풀리며 웃음이 났다.

럼블: 오면서도 내가 레즈비언이라기보다는 비혼 여성에 가깝지 않나 생각했어요. 5년 정도 쉬지 않고 연애를 하다가 그 후 5년을 아예 통으로 쉬었는데, 이제 레즈비언 정체성이 약해진 상태에 있지 않나. 지금은 돈이 없고 불안정 노동을 하는 여성, 청년, 비혼. 이게 저한테 강한 정체성이지 않나 생각해요.

하지만 오히려 럼블은 딱 내가 찾던 인터뷰이였다. 지금까지의 인터뷰이들은 커플이거나 동거 중이거나 결혼한 상태였는데, 다양한 여성 성소수자들의 삶을 조명하고 싶다는 취지에 맞춰 1인 가구, 비커플, 또는 결혼할 생각이 없는 사람의 이야기도 듣고 싶었다. 럼블은 바로 그런 조건에 딱 맞는 인터뷰이였다. “여성, 청년, 비혼”이라는 키워드를 들으니 ‘이거다!’ 싶었다.

“한국이 싫어서”

내가 기억하기로, 럼블은 평소 사회의 다양한 문제에 관심을 갖고 여러 활동을 해왔던 사람이었다. 지난 6월, 서울 퀴어문화축제 부스 운영을 마치고 뒷풀이 자리에서 처음 럼블과 이야기를 나눌 때만 해도 직장에 다니면서 지역 사회와 좀 더 연결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고 했다. 그랬던 럼블이 뜻밖에도 호주나 뉴질랜드로 이주 계획을 세웠다고 전해 들었다.

올해 6월에 개최된 서울퀴어문화축제를 즐기고 있는 럼블.

럼블: 원래는 한국을 ‘빨아서’ 쓰자 주의였거든요. 영어도 싫어하고 언어 배우는 걸 정말 싫어하고, 또 한국에 익숙하고. 이전에는 활동가 같은 일을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한국을 바꿔서 한국에서 계속 살아야지.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랑 함께.

럼블은 어느 순간부터 한국 사회가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회의감에 휩싸였다. 특히 n번방에 이어 딥페이크 같은 디지털 성폭력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며 현실의 무력함을 절감했다. 길거리를 걷는 사소한 일에서도 “이 사람도 가해자, 저 사람도 가해자 같”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고, 언제 어디서나 피해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그를 압도했다. 럼블의 말 속에서 깊은 절망과 피로감, 답답함이 복합적으로 느껴졌다. 한국을 떠나기로 마음 먹은 럼블에게 공감가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 사회에서 럼블은 나와는 전혀 다른 전략을 가지고 살아온 것 같았다. 철저하게 대문자 J이자 성취지향적인 성향 덕택에 매일을 전쟁 치르듯 사는 나와 다르게 럼블은 대문자 P답게 지금까지 “흐르는대로” 살아왔다고 설명해줬다. 자신도 “이렇게” 살 줄은 몰랐다며.  “자소서도 많이 쓰고 면접도 보러 다니고” 하던 지난 날의 이야기를 진지하면서도 유쾌하게 풀어주었다.

럼블: 그렇게 들어간 회사에서 성희롱도 당하고, 그래서 퇴사를 하게 되고. 그러고보면 한국 사회에 괜찮은 일자리가 있긴 할까요? 그런 직장을 다니는 사람을 거의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과노동을 한다거나 아니면 불안정하거나 아예 일자리가 없거나. 옛날에는 어떤 일자리 구할 때 ‘내가 커밍아웃을 할 수 있는 그런 일자리를 구하고 싶다’ 이런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막상 취업을 하고 직장을 다녀보니까 커밍아웃은커녕 여혐 발언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지 이런 고민을 하고 있고. 뭐랄까, 얼마큼 내가 더 눈을 낮춰야 하지? 진짜 뭘 포기해야 되지?

전혀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지만 럼블의 이야기는 꼭 남의 이야기 같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우리 둘 다 대학 졸업 후 곧장 대학원에 진학했고, 불안정한 노동 시장에서 잠시나마 표류하다가 이곳 상담소에서 만났다. “돈도 없고 직업도 없는” 게 사실은 모두의 이야기이기기도 할 것이라는 럼블의 말엔 상당히 설득력이 있었다. 그러다가도 이주를 위해 용접을 배우려고 한다는 럼블의 말에는 잔뜩 물음표를 띄우며 부연설명을 보챘다. 딱 잘라 “간지”라는 럼블의 대답에 웃음이 터져나왔다.

럼블: 요즘 영주권 받는 게 어렵잖아요. 그래서 이제 기술을 하나 해야겠다. 제가 영어를 막 엄청 잘하는 것도 아니고 한국에서 커리어가 거의 없다시피 하기 때문에 이제 새로운 거를 어쨌든 해야 되는데… 그러면 이제 간지 나는 걸 하자.

생각보다 럼블의 계획은 구체적이었다. 내년 3월부터는 용접 자격증을 따기 위해 학교에 다닌다고 했고, 학교 다니는 동안 생활비를 벌기 위해 계약직 일을 구하고 있다고 설명해줬다. 계약직의 이점은 바로 계약 종료 이후 실업급여가 나온다는 것. 예상치못한 ‘꿀팁’에 얼마나 럼블이 치밀(?)한 사람인지 깨달았다.

 

“친구랑 결혼도 좋겠죠”

럼블은 결혼에 대한 생각도 솔직하다. “사실, 결혼해서 살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어요. 연애의 구속감이나 각본이 저랑은 안 맞더라고요. 저한테는 결혼이 꼭 로맨스는 아니어도 좋을 것 같아요. 제 친구랑 결혼해서 대출도 받고, 같이 더 안정적으로 살 수 있다면 정말 좋겠죠.” 그에게 동성결혼의 제도화는 각자 원하는 방식으로 서로를 지켜줄 수 있는 기회를 의미하는 것 같다.

럼블: 이번에 럭키 아파트도 그렇지만 성소수자들이 아파트에 살면서 겪는 괴로움에 대한 얘기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집 문제가 그냥 우리끼리의 신뢰 문제가 되어 버리잖아요. 내가 애인이랑 같이 산다고 해도 집과 관련된 문제를 어떻게 다룰 수 있을지 막상 알기 쉽지 않아요. 그냥 동사무소나 은행에 전화해가지고 내가 얘랑 결혼하면 대출 어떻게 받을 수 있나요, 이렇게 물어볼 수가 없으니까. 

럼블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여성, 청년, 성소수자’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치열할 수밖에 없는지 새삼 생각하게 되었다. 그는 그저 “흐르는 대로 살아왔다”고 했지만, 한국 사회에서 얼마나 많은 일상의 순간마다 자신의 행동과 말을 통제하고, 타인의 반응에 대비하며 살아야 했을까? 그런 점에서, 럼블이 강조한 대로 동성결혼이 제도화된다면 좀 더 나은 삶을 상상하고 더 구체적인 미래를 그려볼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릴 것 같았다.

혼인평등이 실현된다면 정말로 우리는 덜 폭력적이고 더 정의로운 사회에서 더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 한국에서 정말로 동성결혼이 제도화될 수 있을까? 만약 가능하다면 우리에게 어떤 변화가 찾아올까? 결혼할 생각은 없다는 럼블에게 나는 계속해서 답을 구해보려 했다. 한참 고민하던 그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

럼블: 진짜 상상이 안 된다. 일단 뉴스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어요. 뉴스가 나오긴 하겠죠. 1면에 나오고. 결혼도 한 사람이 있을 거고. 거기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뉴스에 나오고. 제 주위에도 몇 명은 결혼할 것 같아요. 아니어도 하는 사람도 있잖아요. 외국에 간다거나 아니면 자기들끼리 결혼식을 올리는 친구들이 있으니까. 그러면 원래는 안 나간 저의 돈들이 친구들의 결혼식에 가면서 축의금으로 나가지 않을까. (웃음) 약간 배가 아플 것 같아요. 나는 동성결혼 돼도 결혼 안 할 건데? 이러면서. 근데 또 이성애자의 결혼식엔 축의금을 안 줄 수 있지만 이제 레즈비언 커플이 결혼하는데 돈을 안 줄 수가 있어요? (웃음)

럼블이 꿈꾸는 삶의 모습

인터뷰를 마무리할 시간이 다가오자 마지막으로 가장 어려운 질문을 럼블에게 던졌다. 바로 럼블의 꿈꾸는 삶의 모습은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연이은 어려운 질문에도 럼블은 당황하지 않고 진지하게 답변해주었다.

럼블: 여유롭고 그렇게 경쟁적이지도 않고, 돈도 적게 벌어도 되니까 일을 조금 하고, 지역사회와 연결되는 그런 삶을 살고 싶은데 … 워라벨이 있고 싶어요. 항상 꿈은 어디 한적한 데서 운전하면서 커피 마시고 담배 피는. 고양이도 쓰다듬고, 여자도 만나고.

한적한 곳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 럼블의 모습.

이렇게 들으니 막연하게 다가왔던 럼블의 이주 계획이 내 머릿속에 구체적으로 그려졌다. 해가 지지 않은 초저녁, 헐렁한 작업복 차림으로 느긋하게 퇴근하며 담배 피우는 럼블의 모습이 너무 멋질 것 같았다. 해외 영화에서나 보던 그런 장면을 떠올리다보니 어느새 호주나 뉴질랜드가 딱이라고 맞장구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요즘 수영을 배운다고, 가끔 바다 수영도 하고 싶다는 럼블의 말에 나는 역시 미국이나 유럽이 아니라 호주나 뉴질랜드가 딱일 것 같다고, 너무 잘어울린다고 박수를 쳤다.

럼블은 자신이 꿈꾸는 삶을 향해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며, 원하는 것들을 상상하길 멈추지 않는 사람이었다. 원하는 삶의 모습이 나와는 분명히 다른 것 같지만, 우리 둘 다 ‘여성, 청년, 성소수자’로서 꿈꾸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이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에게 ‘먹고 사는 문제’란 단지 괜찮은 수입을 얻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겪는 폭력과 차별을 견디며 복잡하게 얽힌 문제들을 헤쳐 나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럼블이 보여준 삶의 태도는 ‘흐르는 대로’ 사는 것 같으면서도 그 속에 굳은 의지와 희망이 깃들어 있었다.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럼블을 지켜보며, 나 또한 그가 조금 더 살기 좋은 세상에서 마음 놓고 살아가기를 바라게 된다. 더불어 우리와 같은 이들이 조금 더 살만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애써야겠다는 다짐이 괜스레 생긴다. 럼블과의 대화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나는 우리가 나누었던 진지한 고민과 유쾌한 농담들을 떠올리며 또한번 살아나갈 동력을 얻은 것 같은 기분에 잠시 들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