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평등_회원 인터뷰_04 두두] “정상성의 사회는 재미가 없어요”

[혼인평등_회원 인터뷰 04 두두] – “정상성의 사회는 재미가 없어요”

들려준 사람: 두두

정리: 레인

한국레즈비언상담소에서 진행 중인 혼인평등 회원 인터뷰 시리즈의 네 번째 주인공, 두두를 만났다. 두두는 내가 상담소에서 상근활동을 시작하며 알게 되었다. 상담소 정기총회와 서울퀴어퍼레이드 등 여러 행사에서 마주친 두두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다양한 사람들을 바라보고 환대해주는, 통통 튀는 밝음이 있었다. 왠지 ‘퀴어한’ 사람들과 함께 재미있게 살고 있는 것만 같은 두두는 나에게 언제나 궁금한 사람이었다.

두두는 누구인가

레인 : 최근에 연애를 시작하셨다고 들었어요. 꽤 쉬다가 연애하시는 거네요?

두두 : 네, 3년 동안 연애를 안 했는데 오랜만에 하는 거라 저도 어색해요.(웃음)

두두는 늘 경험을 통해 배우고, 어떤 일이든 도전하고 겪어내는 데 주저함이 없는 사람인 듯하다. 경험 중심적인 태도라고 해야 할까. 그래서인지 두두가 바이섹슈얼이라고 자신을 좀 더 정체화하게 된 것은 여자친구를 사귄 경험을 통해서였다. 팬섹슈얼 정체성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다. 자신을 팬섹슈얼이라고 정체화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그에 얽힌 경험은 무엇일까, 어떤 경험과 인식이 바이섹슈얼과 팬섹슈얼을 둘러싸고 있는 것일지 고민 중이다.

국토대장정 코스 위에 있는 두두

두두는 상담을 전공했고, 얼마 전 지역기관에서 활동가로 일하기 시작했다. 대학원 공부, 활동가로서의 활동, 상담가 등 다양한 영역에 대해 계속 관심이 있다. “내담자의 내면은 물론 사회를 같이 변화시킬 수 있는 ‘다문화사회정의 상담사’가 되고 싶다.”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며 정리가 된 자기소개 문장.

레인 : 다문화사회정의 상담사라니 흥미로워요.

두두 : 그게 제 인생을 관통하는 문장처럼 생각이 되어요. 제가 생각하는 다문화는 민족이나 인종, 출신 국가가 다양하다는 뜻에서 좀 더 나아가서 성적 지향, 장애, 가족의 형태 등을 아우르는 것이에요. 저는 상담사로 개인을 변화시키는 것도 중요하고, 활동가로서 사회를 변화시키고 싶은 마음도 큰데, 이 둘이 동떨어져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둘 다 같이 가고 싶죠.

다양성을 존중하며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데 보탬이 되는 상담사이자 활동가. 공부하고 활동하며, 사회를 변화시키고 싶은 사람. 두두가 바라는 그 꿈이, 두두라는 사람이 누구인지 잘 표현해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의 형태는 정해져 있지 않다

두두가 꿈꾸는 가족의 형태는 무엇일지 물어보았다.

두두 : 제 나름대로 저를 소개하긴 했지만, 저도 저를 잘 모르겠는 부분이 있어요. 예전에는 ‘어떤 가족을 꿈꾸나요?’라는 질문에 되게 명확한 답이 있었어요. 한 여성과 반려묘와 함께 살아가지 않을까 상상하곤 했죠.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꼭 그래야 할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구체적인 가족의 형태를 상상하기보다, 가능성을 열어두고 싶어요. 점점 많은 것들이 모호해지는데, 그 모호함도 괜찮다 싶거든요. 정해진 것이 없고, 현실과 현재에만 충실할 수 있는 상황들이 생각보다 나쁘지 않더라고요.

레인 : 모호함도 괜찮다는 생각, 정해진 것이 없는 상황이 나쁘지 않다는 말이 참 와닿아요. 그런데 꿈꾸는 가족에 대해서도 모호해진 면이 있는 건데, 더 구체적인 이유가 있을까요?

두두 : 한편으로는 내가 꿈꾸었던 가족 형태를 정말 이룰 수 있을까 자신이 없어진 면도 있어요. 성인이 되어 현실적인 어려움을 더 알게 되어서일 수도 있고, 나를 지켜 주는 최저선이라고 할 만한 법적인 장치가 존재하지 않으니까 다른 사람들 시선에 신경 쓰지 않고 사는 것도 쉽지 않고요. 퀴어가 아닌 사람들에게 존재하는 권리가 저에게는 없다는 점이 뭔가 불안하기도 해요. 제가 실제로 혼자서든 가족을 꾸려서든 생활할 때, 남들이 여성이고 퀴어인 나를 취약한 존재로 보겠구나 싶은 거예요. 가령 집에 남자가 없으면 안 된다, 위험하다 등등의 말만 봐도 우리 사회에 아직 편견과 고정관념이 많잖아요. 그러다 보니 저도 어떤 가족의 형태를 꿈꿀 때 불안하거나 자신감이 없어질 때가 있어요.

그러나 두두는 그 불안까지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가족 형태에 대한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려는 것처럼 보였다. ‘모호해지는 것도 괜찮다’는 말은 그런 의미일 거다. 어쩌면 두두는 자신만의 답을 다시금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날을 위해 잠시 모호함의 시간을 겪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다.

한편 가족은 누구랑 살지 가족의 형태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어떤 가족인지, 분위기와 문화도 중요하다. 두두의 생각은 어떨까? 두두는 다문화가정에서 자랐고, 위계적 분위기를 많이 겪었다고 했다.

두두 : 저는 어머니가 중국분이고, 아버지는 좀 가부장적인 편이에요. 위계라는 게 가족 안에서도 생길 수 있고 저한테는 그게 사회의 단면처럼 보였어요. 그래서 제가 가족을 꾸린다면 모든 구성원이 동등한 관계에서 서로 존중하며 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단순히 잘해주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내가 생각하는 상대의 모습으로 상대를 보려고 하지 않고, 진짜 그 사람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 같아요.

존중이 있는 평등한 가족. 두두는 인터뷰를 하며 ‘대안가좍’이라는 표현이 좋고 재미있다고 말했다. ‘대안가좍’은 가족 혹은 대안가족이라 하면 떠오르는 전형적인 상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유머스럽게 비튼 표현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두두 : 저는 미디어 중독자인데, 혈연이 아닌 자신의 선택으로 돈독한 관계를 맺어나가는 인물의 서사를 보면 너무나 벅차버리는 사람이에요.(웃음) 다양한 사람이 공존하는 세상 속에서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해주고 피보다 진한 관계가 되는 것, 그게 결국 진짜 가족이 아닌가 싶어요. 어쨌든 ‘가좍’이라는 게 혈연이나 혼인으로 이루어진 일반적인 형태의 가족은 아닌데요, 우리가 ‘퀴어가좍’이라고 말하듯이 연대와 존중, 애정으로 이루어진 관계를 뜻하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그런 관계를 매력적으로 여기고, 법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들도 가까이 둘 권리를 가질 수 있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가족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이성결혼 말고는 별로 없잖아요.

두두가 찍은 2024 서울퀴어문화축제의 현장

남자랑 결혼하는 저는 상상이 안 가요.” 혼인평등과 법제도

두두는 언젠가 애인과 헤어지고, 애인이나 본인이 남성과 결혼하게 되진 않을까 하는 생각에 불안해지기도 한다. 남성과 결혼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두두에게 왜 불안으로 이어지는 것일까?

두두 : 바이는 결국에는 남자랑 결혼할 거라는 말들이 있잖아요. 남자랑 결혼할 수 있는 선택지가 있으니까요. 남들이 그렇게 말하면 저도 ‘안 되는 건 아니지’라는 생각이 들어요. 근데 정상성을 수행하는 결혼을 하고 이성애 가족 속에 있는 제가 상상이 안 가고, 그렇게 되면 미래의 제가 우울할 것 같아요. 제가 지금까지 꿈꾸고 실현하고 싶었던 삶과는 정반대의 삶처럼 느껴지거든요. 저는 도전하고 사회를 바꾸는 사람이 되고 싶지, 순응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요. 그러니까 결혼하는 사람이 여자냐 남자냐 하는 성별이 중요하다기보다, 정상성의 사회에 편입해서 나도 다를 바 없는 사람으로 살아가게 되는 게 무섭다는 거예요.

레인 : 그런데 단순하게 생각하면, 정상성 사회에 편입되어서 살아가는 게 무서운 일이 아니라 오히려 편입되지 못하는 것이 무서운 일일 수 있잖아요?

두두 : 보통은 그렇죠. 근데 제가 무서워하는 것은 스스로 어떤 경계도 하지 않게 되는 것이에요. 어떤 위계가 생기거나 잘못된 일들이 당연하게 벌어져도 아무렇지 않게 덮어두고 살아가는 게 정상성 사회의 일면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것을 경계하지 않고 그냥 살아가는, 순응하는 것이 제가 제일 무서워하는 일이에요.

레인 : 경계하지 않는 삶, 순응하는 삶이 왜 두려울까요?

두두 : 근데 저만 아니라 다른 퀴어들도 그렇지 않을까요. 퀴어들이 다 같이 자문해봐야 해요. 왜 쉬운 길을 가지 않는지, 왜 어려운 길을 굳이 걸어가는지, 다 자문해 봐야 해요.(웃음) 음, 그리고 일단은 정상성의 사회는 재미가 없어요. 저는 진부한 걸 별로 안 좋아해요.

두두는 진지한 것이 중요한 나와는 정말 나와 달랐다. 재미있는 것, 진부하지 않은 것을 매력으로 느끼고 좋아한다. 재미있는 삶이 중요하기에, 그리고 스스로 위계와 부당한 일들에 무뎌지지 않고 항상 경계하며 당사자로서 살아가고 싶기에 두두는 ‘퀴어하게’ 살아간다. 그런 두두에게서는 늘 자신감과 에너지가 느껴진다.

레인 : 그럼 동성혼이 법제화된다면 어떨 것 같으세요?

두두 : 전 뭐든지 많이 경험하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결혼이라는 제도가 있다면 제도적 결혼도 한번 해보지 않을까 싶어요. 제가 선택할 수 있다면요.

레인 : 동성혼 법제화가 실현된다면 두두님이 꿈꾸는 미래에 어떤 변화가 생길지요?

두두 : 그렇게 큰 변화는 없을 것 같아요. 법적으로 결혼이 가능하지 않더라도 제가 하고 싶으면 할 것 같아요.(웃음) 법적으로 결혼이 보장되지 않아도 결혼식을 올리는 등 결혼을 할 수 있으니까요. 가족이란 것도 꼭 이성애 결혼제도를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한솥밥을 함께 먹으며 서로 존중하는 관계일 때 가족일 수 있는 것처럼요.

사람들의 인식이 달라지며 법과 제도를 개선해나가기도 하지만, 때로는 법제도가 변화면서 사람들의 인식 변화가 뒤따라오기도 한다. 그래서 두두는 동성혼 법제화가 본인보다도 다른 사람들에게 더 큰 변화를 가져다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제도적 차별이 하루빨리 사라져 인식도 달라지고, 결혼하고 싶은 사람들이 결혼할 수 있게, 다양한 가족을 꾸릴 수 있는 사회가 될 수 있으리라고 본다.

두두 : 저는 아직 원가족에서 벗어나 살아본 경험도 길지 않아요. 지금은 다양한 사람과 대상을 알아가야 할 시기라고 생각해요. 다만 한가지 원하는 건, 미래에 제 신변에 문제가 생기거나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제 도움을 필요로 할 때 법과 제도, 사회적 시선이 방해되지 않는 거예요. 제 가족보다 돈독한 관계에 대해 ‘그래 봐야 타인 아니냐’라는 식의 폄하가 있지 않기를 바라요.

사회적 편견과 폄하를 막으려면 어떤 법과 제도가 필요할지 물었다. 두두는 새로운 법이나 제도가 필요하다기보다도 기존의 법이 수정되어야 한다고 했다. 기존의 법과 제도에 존재하는 차별을 먼저 없애야 한다는 말이다.

두두 : 주민번호에 성별을 넣는 것 자체가 되게 폭력적이라고 느끼기도 했거든요. 법적으로 성별을 나눌 필요가 진짜로 무엇인지 모르겠어요. 가족이 될 수 있는 기준도 혈연과 혼인만이 아니라 더 다양하고 넓은 가능성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사회의 위계나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쓰여온 법과 제도를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느끼는 거죠.

두두와 애인이 ‘큐앤에이’ 단체의 티셔츠를 커플티로 입고 있다. 큐앤에이는 한국 교회를 향한 퀴어한 질문을 던지는 퀴어-앨라이 운동단체다.

퀴어 페미니스트 여성들과 함께할 때 재미있다

두두를 볼 때면 여러 퀴어/페미니스트 여성들과 함께하는 일상을 추구하고 탐험하고 있다는 유쾌한 인상을 받는다. 두두는 서울여성회 페미니스트 대학생 연합동아리인 ‘서페대연’에서 활동했고,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도 자원활동과 후원활동을 했다. 퀴어 페미니스트 댄스 공간 ‘루땐’에도 참여하는 등 다양한 경험을 해왔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많아서, 또 ‘정상성’의 사회에서 보이지 않는 퀴어함을 찾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 경험들이 재미있어서다.

레인 : 어떤 것이 재미있나요?

두두 : 저마다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삶이 다 다르고, 그럼에도 다들 다정하고 서로 존중해줘요. 어떤 잣대로 평가하지 않고요.

두두가 퀴어/페미니스트 활동을 지속하는 데 동력이 되는 것이 바로 이런 부분일 테다. 재미있고 다정한, 애매하고 퀴어한, 다양한 사람들 속에서 일상을 보내고 ‘대안가좍’을 꿈꾸는 것.

부당한 일들이 당연하게 벌어지고 있는 건 아닐지 경계하는 삶을 산다는 두두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 역시 혹여 정상성의 범주에서 누군가를 차별하고 배제하고 있지는 않을지 돌아보게 된다. “세상에 있는 그 누구도 배제받는다는 기분을 안 느끼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본인의 선택 때문에 말이에요. 맞아요, 고양이조차도요.” 두두가 원하는 그 누구도 배제받지 않는 세상 속에서 대안가좍을 꾸려나가길 응원하며, 그의 재미있는 일상들 속에 나도 함께이기를 바라본다.

(인터뷰: 2024년 9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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