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평등_회원 인터뷰_03 화쟈X오리] 15분의 온라인 결혼식이 바꾼 것들

[혼인평등_회원 인터뷰 03 화쟈X오리] 

15분의 온라인 결혼식이 바꾼 것들

들려준 사람: 화쟈, 오리
정리: 적분

결혼제도가 누군가를 차별하고 소외시키지 않고 다양한 가족으로 확장될 수 있기를 꿈꾸며, 성소수자 인권운동 진영에서 이끄는 ‘모두의 결혼’ 캠페인! 그리고 이와 더불어 진행되는 한국레즈비언상담소의 혼인평등 회원인터뷰! 그 세 번째 주인공, 화쟈와 그의 아내 오리를 만났다. 화쟈는 작년 한국레즈비언상담소 ‘사포의서재’ 퀴어콘텐츠 비평글쓰기 모임에 참여하며 처음 상담소와 인연을 맺었다. 화쟈와 나는 그 모임에서 몇 차례 함께 글을 쓰고 고치며 서로를 알게 됐다. 내 기억 속 화쟈는 밝은 웃음으로 모임에 활기와 에너지를 번지게 하는 사람이었다.

(small gay, tall gay 셔츠를 나란히 입은 화쟈와 오리 부부)

정체화, 커밍아웃, 그리고 두 사람의 만남

작년 처음 화쟈를 만났을 때 그에게는 미국인 여자친구 오리가 있었고 결혼을 계획 중이라 했었다. 당시에는 오리가 잠시 미국에 돌아가 있던 때라 화쟈의 밝은 표정 뒤로 조금은 ‘롱디’ 연애의 쓸쓸함이 깃들어 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랬던 화쟈가 오랜만에 인터뷰 제안을 위해 카톡을 했을 때 ‘와이프’와 함께 가도 되냐고?! 본인들을 무려 ‘신혼부부’라 소개하여 내심 흠칫 놀라고 말았다. 동성 결혼이 흔해진(?) 요즘이지만 옛날 사람인 나에게는 순간 ‘와이프’ ‘신혼부부’라는 말들이 기분 좋은 당황스러움을 안겼다.

적분: 근데 두 분 어떻게 만나셨어요?

화쟈: 여성 퀴어 어플에서 만났어요. 오리는 이때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왔었고 저는 연애를 좀 당분간 쉬어야겠다~ 다시 좀 퀴어 친구를 만들고 싶다~ 이런 마음에서 어플을 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친구 카테고리 선택한 사람들 사진만 계속 넘기면서 보고 있었거든요. 그러다 우연히 오리 사진을 봤는데 너무 취향인 거예요!(웃음) 근데 오리는 연애 상대를 찾고 있어서 좀 고민이 됐어요. ‘만나보고 나서 그냥 친구할 수도 있는 거니까’라며 스스로를 속이고 연락을 시작했어요. 근데 만나다 보니까 친해지고 약간 텐션도 생기고! 그래서 이렇게 됐어요.(웃음)

화쟈와 오리는 각자의 가족에게 이미 커밍아웃했고, 또 결혼 전부터 서로를 양쪽 가족에 소개했었다. (너무 부러운 커플 아닌가!) 작년 오리가 미국에 돌아가 있을 때 화쟈는 오리를 만나러 잠시 여행을 갔었고 그곳에서 오리 가족들과 즐겁게 지냈다고 했다. 요즘은 서울에서 화쟈의 엄마와 남동생, 그리고 오리가 함께 만나 밥도 먹고 다정한 일상을 보낸다. (너무 부러운 상황 아닌가?!!) 하지만 이들에게도 서로의 가족에게 받아들여지기까지 지난한 과정이 있었다. 화쟈에게 커밍아웃 과정을 물었다.

화쟈: 그냥 던졌던 것 같아요. 중학생 때 차 타고 어디 가다가 엄마한테 갑자기 ‘근데 나 남자도 좋아하고 여자도 좋아하는 것 같아’라고 말했죠. 물론 진지하게 안 받아들여지니까 계속 갱신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제가 남자와 만나기도 하니까 엄마가 더 희망을 가지더라구요. 그래서 누차 커밍아웃해야 하는 상황이긴 했는데 오리를 만나고 나서는 엄마가 되게 좋아했어요. 제가 많이 밝아져서요.

오리: 저희 집이 정말 보수적인 기독교 집안이에요. 여자랑 데이트하는 거나 결혼하는 거, 절대 금지라서 한 번도 생각 못 했어요. 남자랑 결혼도 못 할 것 같고 관심도 없어서 그냥 에이섹슈얼/에이로맨틱(무성애자)이라고 생각하다가 17살 때 교회를 그만뒀고 19살 무렵에야 저 스스로를 받아들이기 시작했어요. 미국에 있을 때는 차마 부모님께 커밍아웃을 못 했고 한국에 와서 전화로 그냥 커밍아웃을 해버렸어요. 머리도 짧게 자르고. 부모님이 정말 깜짝 놀라셨어요. 처음에는 힘들어하셨지만 지금은 많이 괜찮아졌습니다.

마음이 바뀔까봐 타투도 하지 못하던 화쟈의 결혼할 결심

나는 이십 대인 이들이 언어와 국적을 뛰어넘어 결혼까지 결심한 것이 너무 신기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결혼을 결심하기까지의 과정을 물었다. 오리를 만나기 전부터 화쟈님은 결혼을 꿈꾸고 있던 사람이었을까.

화쟈: 모국어가 다른데 국제결혼 같은 걸 어떻게 해? 뭐야? 결혼? 결국 다 프로파간다 아냐? 이러면서 되게 잘난 척했었는데. 결국 결혼하고 그것도 외국인이랑 결혼하고 이렇게 되었네요.(웃음) 근데 거창하게 비혼을 결심한 것도 아녔어요. 그냥 예전부터 굳이? 내가 돈 잘 벌어서 잘살면 되지 않나? 원가족의 영향도 있고 별로 결혼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못 했어요.

적분: 퀴어가 결혼을 상상한다는 게 얼마 되지 않은 것 같긴 해요. 만나고 헤어지는 일도 더 많고, 빨리 가까워지고 또 잘 헤어지기도 하고. 이렇게 많은 퀴어가 동성결혼을 원할 거라고 생각 못 하긴 했어요.(웃음) 그럼 어떻게 결혼을 생각하게 된 거예요?

화쟈: 진지한 마음으로 임한 연애가 처음이기도 했고. 세상을 바라보는 오리의 시각이 좋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고 그랬어요. 근데 조금 현실적으로 얘기하면 비자 문제가 있으니까, 물론 낭만도 중요하지만, (국제 커플이다 보니까) 미래에 대한 계획을 좀 빨리 세우고 싶어 결혼을 생각하기도 했어요. 그래서 ‘너 나 좋아? 나도 너 좋아. 어떻게 할 거야? 지금 비자 연장할 거야 어떻게 할 거야?’ 이런 식였죠.(웃음)

오리: 사귄 후 3주 후에 화쟈가 말했어요. ‘근데 미국에 돌아가야 할 때 어떡하지?’ 라고요. 그래서 ‘제가 결혼하면 비자도 받을 수 있잖아?’ 그랬어요.(웃음)

적분: 미국으로 돌아간다는 전제가 있는 사람을 만났을 때 이 관계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정말 불안하셨을 것 같아요.

화쟈: 서로 얘기 하다가 ‘그럼 너는 꼭 돌아갈 건데 이 연애를 왜 하고있는 거야?’ 되게 까칠하게 하다가 장문의 문자가 오고 가고 전화를 하고, 만나서 얘기를 하고 고민의 과정이 길었어요. 하지만 결국에는 좋으니까 일단은 만나보고 어떻게 되는지 보자 그런 마음가짐으로 시작했던 것 같아요. 그때 또 길이 생기니까. 그때 또 뭔가를 이렇게 해야겠다 하면서. 비자가 될 수도 있고 아니면 누가 한국으로 오든 미국으로 가든 하면 되니까 그런 얘기를 했던 것 같아요.

역시 퀴어는 없는 길도 내는 존재다. 완벽하지 않은 제도와 사회·문화적 조건 속에서도 자신이 원하는 사람과 삶을 꾸려 나가기 위해 길을 만드는 사람들. 두 사람 역시 정해진 답이 떠오르지 않는 상황에서도 서로를 사랑했고, 함께 있고 싶었고 그러다 보면 길이 생길 거라 믿었던 것 같다. 이들처럼 각자가 원하는 삶의 방식들이 하나, 둘 모이고, 이를 실천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용기를 낸다면, 더 많은 길이 생겨날 것이다.

두 사람은 비자만 해결되면 미국으로 이민을 갈 생각이다. 하지만 비자 발급 과정이 생각만큼 간단하지 않아서 1년 이상 한국에 머무르게 될 거라 했다. 가족과 삶의 터전을 뒤로 하고 미국으로 가겠다는 화쟈의 결심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화쟈: 누군가 하나는 계속 일궈왔던 거를 포기해야 하니까 최대한 조금이라도 덜 쌓아놨을 때 빨리 움직이는 게 낫다고 판단했어요. 기왕이면 둘이서 부부로 불릴 수 있는 곳에서 삶을 시작하는 게 좋겠다 생각했구요.

오리: 미국으로 간다면 화쟈에게 무조건 힘든 일 많이 생길 거잖아요. 그래도 최소한 부부라고 인정받을 수 있으니까 조금 더 편하게, 안전하게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지난 4월 두 사람은 미국 법상 공식 부부로 인정되는 화상 결혼식을 올렸다. (코로나19 이후 온라인 ‘줌’ 프로그램을 통해 결혼식이 가능해졌다고 한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둘은 전부터 동거했던 사이인데도 15분의 온라인 결혼식을 올리고 난 후 갑자기 서로를 대하는 느낌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단 15분 결혼식으로 뭔가 달라진다는 게? 이런 게 가능하다고?

오리: 느낌이 정말 달라졌어요. 전에는 그냥 애인 느낌이었는데 이제는 진짜 가족이 된 느낌이 있어요. 많이 행복해요. 너무 행복해요. 이런 좋은 가족을 같이 만들었다는 게 너무 좋아요.

오리의 말에서 정말 가족이 되었다는 진실된 행복감이 묻어났다. 이 행복에 푹 빠진 신혼부부에게 나는 또 굳이 결혼의 부담과 책임감이 힘들진 않냐고 캐물었다.

화쟈: 결혼에 회의적이던 사람이었으니까 한 사람만 바라보고 이 사람이 내 가족이고, 이런 무게가 너무 큰 거예요. 저는 타투하고 싶어서 저장해 놓은 도안도 한 1~2년 후에 보면 ‘너무 못 생겼는데?’ 하고 지워버리거든요. 그래서 타투도 못하는데 어떻게 내가 결혼을? 이게 어느 날 너무 못 생겨 보이면 나 어떡하지? 막 진짜 도려내야 돼?(웃음) 근데 옆에 있는 사람이 얼마나 확신을 주냐가 크게 작용하는 것 같아요. 또 결혼을 앞두고 같이 해온 시간이나 거기서 느껴온 것들을 한 번 돌아보게 되잖아요. 그랬을 때 이런 큰 결정 앞에서 최선을 다했다는 생각, 이 방향이 맞고 이렇게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리: 저는 어렸을 때부터 항상 결혼하고 싶었어요. 제가 살던 곳에서는 되게 빨리 결혼하는 편이에요. 19살, 20살부터 결혼하는 사람도 많고 저는 늦게 결혼하는 거예요. 또 이런 좋은 사람을 만났으니까 결혼하고 싶었어요. 화쟈가 없는 미래를 생각할 수 없었어요. 저에게 있어야 되는 사람이에요. 우리는 소통도 진짜 잘하고, 성격이 잘 맞고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어요.

화쟈: 오리가 세상을 보고 표현하고 생각하는 방식이 되게 좋았어요. 세상의 이름다운 점을 먼저 보려고 하는 긍정적인 사람이에요. 저는 부정적인 면을 먼저 보는 사람이기 때문에 오리의 그런 모습이 좋아요.

오리: 화쟈 만나기 전에는 세상을 싫어하는 편이었던 것 같아요. 화자를 만난 덕분에 그렇게 된 거죠. 이제 좀 저희를 위해 살고 싶어요.

화쟈: 아니야 근데 그런 면이 이미 너 안에 있었던 거야.

(두 사람의 캐릭터가 그려진 케이크. 하트가 무려 12개. 아래는 함께 살자는 문구가 적혀있다)

좋은 소통, 좋은 부부생활을 위한 노력, 구청의 신혼부부 클래스를 뚫다

둘은 이십 대 커플이지만 매우 진지하다. 건강한 소통을 하는 관계를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원래 오리는 한국말을 전혀 못 해서 완전히 영어 소통만 가능했는데, 지금은 한국 사람들과 웬만한 대화를 할 수 있을 만큼 훌륭한 한국어를 구사한다. 오리는 ‘사랑에 빠져서’ ‘사랑하는 사람의 언어도 잘하고 싶어서’ 열심히 공부 중이라고 했다. (로맨틱한 사람^^)

작년, 둘은 구청에서 진행하는 예비부부 클래스를 이수했다. 당연히 헤테로 부부를 대상으로 홍보했던 프로그램에 레즈비언 커플이 신청하다니! 구청에서도 굉장히 놀랐을 법한 상황이었는데 구청은 이들 커플이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뒤이어 올해 동일한 구청에서 열린 신혼부부 클래스를 신청하여, 함께 참여한 수많은 헤테로 커플의 축하 속에 이 과정 또한 훌륭히 마쳤다.

화쟈: 대화하고 어떤 갈등을 해결하고 이런 면에서 처음부터 습관을 잘 잡아두고 싶어서 신경을 많이 쓰고 있어요. 신혼부부 클래스 같은 교육을 함께 듣는 것도 같이 건강한 방식으로 계속 행복했으면 좋겠어서 예요.

작년 예비부부 커플 클래스를 했던 곳에서 ‘신혼부부 수업’을 또다시 기획한 거예요. 그래서 포스터를 봤는데 ‘신혼부부 대상’이라 하고 그 옆에 조그맣게 ‘사실혼 관계’도 된다고 쓰여 있었어요. 예전 예비부부 클래스 때는 구청에 미리 물어보고 신청했는데, 이번에는 그냥 신청을 넣었어요. 전화가 오잖아요? 근데 담당자가 전이랑 다르더라고요. ‘두 분 다 같이 홈페이지에서 신청해 주셔야 해요’라길래 외국인이라서 이게 안 되는데 어쩌고저쩌고 얘기하다가 ‘둘 다 여자분이세요?’라고 묻더라구요. 딱 봐도 담당자가 당황했는데 ‘괜찮아요, 괜찮아요, 네네네’ 하시더라구요. 다행히 강사님이 전과 같은 분이셔서 첫 수업 가니까 앞에 앉으라고 하고 명단에서 이름 보고 너무 반가웠다고 하시더라구요.

재무, 성, 대화법, 가족 문제… 이런 카테고리로 기획된 구체적인 내용의 강의였어요. 대화법 강의에서 되게 좋았던 게, 예를 들어서 싸울 때 ‘네가 이런 행동을 했을 때 난 이런 기분이었어’ ‘근데 사실은 내가 원하는 건 이거 이거였어’ 이런 식으로 대화하는 법을 배우는 거예요. 그리고 감정 낱말이 엄청 많이 있고 그걸 가지고 자기 감정을 확실히 알고 표현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도 있었고 도움이 많이 됐어요.

적분: 두 분은 많이 싸우세요?

화쟈: 결혼 전엔 진짜 안 싸웠는데 결혼하고 나서 엄청나게 싸웠어요. 비자를 처음 준비할 때 둘이 일하는 방식이 너무 달랐던 거예요. 저는 말하는 것만 봐도 진짜 성격 급한 거 나오잖아요.(웃음)

( ○○구청에서 오리와 화쟈가 받은 예비부부교실 수료증)

녹록잖은 퀴어 커플의 서울 살이

두 사람의 신혼생활에도 난관은 있다. 오리는 보수적인 직업군에 있어 아우팅을 걱정하고 있다. 정체성이 알려져 직업을 잃는다면 비자가 끊겨 2주 안에 출국해야 하는 외국인 노동자 신세이다. 둘은 결혼식을 올리고 삶의 큰 변화를 겪고 있지만 정작 일터에서는 퀴어임을 밝힐 수 없어서 ‘연애에 전혀 관심 없는 사람’인 척 살아가고 있다.

오리: 한국 동료들이 남자친구 왜 없냐고 많이 물어봐요. 계속 그냥 관심 없다고 대답해야 하는 게 싫어요. 친해진 동료에게도 계속 거짓말해야 되서 정말 피곤하고 외로워요. 커플링이 있거든요. 근데 아침마다 오른손에 끼고 있다가 퇴근하면서 왼손으로 바꿔요. 거의 맨날 그래요. (*결혼반지를 보통 왼손에 끼기 때문에 직장에서는 일부러 오른쪽에 낀다는 의미) 이런 일들이 항상 너무 슬프고 그래서 일부러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해요. 속상할 시간에 미래 계획에 집중하려고 해요.

인터뷰를 하며 만남, 연애, 결혼에 대해 벅차했던 감정들을 한껏 표현했는데 일상에서는 연애에 아무 관심 없는 사람처럼 행동해야 한다니! 듣기만 해도 정말 슬펐다. 퀴어의 삶은 여전히 고단하다. 우리에게 이렇게 쾌활한 모습을 보여준 화쟈님도 직장에서는 사담 자체를 잘 안 한다고 하셨다. 하나 말하게 되면 또 다 줄줄이 물어보는 게 힘들다고 했다. 그렇다면 미국은 좀 다를까?

화쟈: 아무래도 커밍아웃을 공개적으로 했을 때 미국은 대놓고 혐오 발언을 할 수는 없는 분위기니까. 그래서 법제화가 이렇게 중요한 것 같아요.

오리: 미국이라면 직장에서도 말할 수 있고요. 모르는 사람, 가게 점원이라도 선물 사면 누구를 위한 건지 그냥 물어보잖아요? ‘우리 와이프를 위해 샀어요’라고 말할 수 있어요. 완벽하진 않지만 큰 차이지요.

적분: 앞으로 어떤 가족을 꾸리고 싶어요?

오리: 저는 지금처럼 계속 살고 싶어요. 저희 와이프랑 행복하게, 그리고 좀 더 안전하게 살고 싶어요. 지금 가족에 너무 만족하고 있어요. 하고 싶은 것은 많지만 일단 좋은 집을 사고 싶어요. 저희가 집에 대한 꿈이 많아요. 둘 다 내성적인 성격이라 집이 중요해요.(웃음)

화쟈: 창문이 엄청나게 커서 햇빛이 잘 들어오고 잔디밭도 있고 그런 집이면 좋겠어요. 2D로 집을 미리 만들어볼 수 있는 그런 앱이 있잖아요. 그런 거 맨날 만들면서 어떤 집에 살까, 잠 안 오는 날마다 그걸 하고 있어요. 그리고 와이프가 키우던 고양이 랄스가 아직 미국에 있어서 랄스와 함께 좋은 가족을 꾸리고 싶어요.

(미국에서 함께 가족을 이루기 기다리고 있는 오리의 고양이 랄스)

제도가 우리에게 힘을 줄 수 있다면?

적분: 두 분은 법적인 제도에 대해서 생각이 많을 것 같아요. 지금이 신혼인데 한국에서 인정받을 수 없고 오히려 숨겨야 하니까. 어떤 제도들이 있다면 좀 좋아질까요?

화쟈: 차별금지법이요. 동성결혼 법제화도 물론 둘 다 정말 중요하고 근데 이제 저랑 오리의 경우에는 퀴어고 또 외국인이잖아요. 오리는 정말 정말 열심히 해서 한국어를 의사소통할 수 있는 정도까지 하게 됐지만, 대부분의 외국인은 이만큼 하기 어려워요. 주변 외국인 동료들만 봐도 부당한 대우를 받는 거를 많이 봤어요. 차별금지법이 생기면 다양한 차별 문제가 달라질 수 있겠죠.

친구 커플들이 여러 나라에 흩어져 있는데요, 미국이나 독일 같은 경우는 부모님한테 커밍아웃하고 가족이나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지는 게 너무 당연하거든요. 퀴어 부부라도 나라에서 똑같이 지원받고 하니까 개인이 지는 부담이 덜한 거예요. 반대로 베트남에 간 친구는 또 환경이 퀴어프렌들리 하지 않아서 사회적 제도는 말할 것도 없고 너는 왜 시집을 안 가? 그런 압박들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작은 것들이라 웃어넘기다가도 그게 쌓여서 한 번에 무너지는 날이 오잖아요.

적분: 맞아요. 그게 다 일상적으로 계속 스트레스에 노출되는 거니까. 비자 준비는 왜 이렇게 힘든 거에요?

화자: 간단히 말하면 ‘너네가 진짜 결혼했는지 증거물을 제출해’ 이건데요. 동성인데 국적이 다르니까 은행 계좌도 공동으로 쓸 수 없고 월세 계약서도 공동명의로 만들기 어렵고, 하다못해 카카오 모임 통장이라도 둘 이름으로 만들어 놓으라고 하는데 외국인이라서 계속 안 되는 거예요. 하나하나가 되는 게 없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친구, 가족하고 함께 찍은 커플 사진들을 엄청 많이 모아놓고 해요. 같이 여행 갔던 영수증 같은 것도요. 또 주변 사람들이 이 관계가 진짜 관계인지 증인이 되서 편지를 제출할 수가 있어요, 교수님이랑 엄마, 친구들 전부 부탁해서 편지를 엄청 많이 받아서 냈어요.

오리: 한국에서 만난 사람들은 우리 결혼 자체를 몰라서 부부로서 증명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어요. 동성 결혼이 합법화되면 변화가 많을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코로나 때 친구 레즈비언 부부 얘길 들었는데, 미국 사람과 한국 사람 커플이었거든요. 미국에서 결혼했어도 한국 돌아오면 가족으로 인정받을 수 없어요. 그래서 코로나 격리를 가족이면 다 같이 할 수 있는데 한국에서는 인정이 안 되니까 따로따로 할 수밖에 없었어요.

미국에서 자유롭게 지내던 기억 덕분에(?) 한국에 오면 차별에 대한 체감이 더 크게 느껴질 것 같았다. 씁쓸한 제도의 한계를 얘기하며 그날의 인터뷰를 마쳤다. 한국도 혼인평등 법제화는 어쨌든 몇 년 안에 되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과정에서 실제 존재하는 우리들이 하루하루 이렇게 차별을 견디며 살고 있다는 게 참 안타까웠고 사회 변화가 더디게만 느껴졌다.

화쟈, 오리와 얘기를 나누다 보니 결국 둘은 좋은 관계, 좋은 가족을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인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둘이 만들어 가는 관계를 무척이나 소중하게 여기고 있었다. 원활한 소통을 위해 함께 워크숍도 듣고, 언젠가 마련하게 될 집을 잘 꾸미기 위해 어플로 집도 미리 만들어보고, 같이 살아갈 토대를 든든히 다지기 위해 비자 발급도 경제활동도 열심히 하고 있다. 이들은 결국 더 좋고 안전한 가족을 만들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미국으로의 이주를 결심했다. 아직 한국에서는 동성 커플이 가족을 꾸린다는 것에 한계가 너무 많다. ‘저출생 위기’를 핑계로 국가가 나서서 ‘합법적으로’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정상 가족’ 규범만 더 확산, 강화시키고 있는 것이 2024년 한국의 모습이다. 이런 현실이 답답하게 느껴지는 순간도 있지만 사실 이 땅에는 법의 테두리 밖에서 치열하게 그리고 소중하게 자신만의 가족을 꾸려나가는 퀴어들이 있다. 한국에서도 혼인 평등, 차별금지법이 법제화된다면, 소중한 관계를 위해 이것저것 부단히 시도하고 노력하는 수많은 이들이 우리의 곁에, 서로의 곁에 길을 내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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