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평등_회원 인터뷰 02 쇼어] “이모랑 엄마랑 나는 사랑하는 사이”, 우리는 그렇게 가족이 된다
들려준 사람: 쇼어
정리: 나루
성소수자 인권운동 진영이 힘을 모으는 ‘모두의 결혼’ 캠페인과 더불어 한국레즈비언상담소에서 진행하는 혼인평등 회원 인터뷰, 그 두 번째 주인공으로 쇼어를 만났다. 2019년에 회원이 된 쇼어는 한때 사무국에서도 실무활동을 맡는 등 상담소 일이라면 언제고 발 벗고 나서는 분이다. 떠올리면 마음 한편이 든든하고 따뜻해지는 사람. 오랜만에 그와 만날 생각에 미리부터 정답고 설렜다.
나루 쇼어님, 안녕하세요. 사적인 이야기를 열어놓고 하는 자리여서 인터뷰를 수락해주실까 염려도 됐어요. 흔쾌히 제안을 받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쇼어 상담소 일인데 제가 할 수 있는 거라면 당연히 하고 싶었어요. 가족에 대한 인터뷰인 만큼 애인의 동의가 필요했지만, 아이 의견도 중요했어요. 정작 아이는 “이모랑 나랑은 편하고 좋은 사이인데”라면서 “내 얘기 해도 괜찮아!” 하더라고요.(웃음)
쇼어는 애인, 그리고 애인의 초등학생 고학년 딸과 함께 살고 있다. 올여름이면 애인과 만난 지 어느덧 4년이 된다. 애인 역시 회원으로서 둘은 상담소 행사에서 처음 알게 돼 가까워졌다.
쇼어 사실 호감을 느끼기 시작할 무렵엔 그분에게 아이가 있는 줄 몰랐어요. 그러다가 사귀고 싶다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애인이 초등학생 자녀에 대해 말해줬죠. 본인은 그걸로 엄청 고민했는데 저는 그렇게 큰 문제인가 싶었어요.
호감이 있는 상대에게 자녀가 있다면 그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 내가 아는 쇼어도 그렇다. 더구나 그는 자신의 레즈비언 정체성을 어렴풋이 느끼던 어린 시절부터 “혼자 살더라도 아이를 입양해 키울 수 있지 않을까, 그럼 의미 있는 삶이지 않을까” 하고 막연히 그려보기도 했다고.
나루 제가 느끼기에 쇼어님은 받기보다 주는 사람, 돌봄이라는 활동에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선뜻 내어줄 수 있는 분이기도 해요. 그래서 애인에게 아이가 있다는 게 별문제가 되지 않았던 걸까요?
쇼어 그런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아요. 아이가 있어도 우리 사이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애인을 안심시켰지만, 거기엔 같이 산다는 것까지 상상하지 못했던 까닭도 크거든요. 그런데 막상 같이 살게 되니 뭐랄까, 고유한 가족 안으로 제가 어색하게 합류해버린 느낌도 들었어요. 나루님이 보시는 것과 달리 저는 혼자 있는 시간도 필요하고 개인의 자유도 중요해요. 그래서 내가 어떤 이름, 어떤 역할로 애인과 아이와 함께해야 할지를 간과하고 가볍게 생각한 건 아닐까, 내가 너무 오만했구나 싶을 때도 많았고요.
때로는 “연애를 하기도 전에 결혼을 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데이트를 하다가도 아이 밥을 챙겨줄 시간이면 집에 가야 한다든지 어린 아이를 위주로 생각해야 하는 일들이 많았다. 그런 데서 쇼어가 섭섭함을 느끼는 만큼 애인인들 답답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애인은 삶이 새롭게 달라지는 것을 넉넉한 품으로 받아들였고, 긍정적이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잃지 않았다. 그렇게 둘은 하나하나 새로운 일상을 채워갔다.
쇼어우리가 이룬 가족을 둘러싼 고민은 여전히 많아요. 하지만 그걸 저 혼자서만 혹은 우리 가족 안에서만 해결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결국 문제가 되는 것은 대부분 가족 외부로부터 오는 부정적인 영향력 때문이거든요.
나루 가족 외부의 부정적인 영향…… 더 구체적으로 들어볼 수 있을까요?
쇼어예를 들어 아이가 저한테 “남자야, 여자야?”라고 묻고는 했어요. 당연히 여자인 걸 알고 있고 저를 이모로 부르지만, 엄마와의 사이를 보면 제가 꼭 남자여야 할 거 같았나 봐요. 엄마랑 『뷰티풀 젠더』(아이리스 고틀립 지음, 까치, 2020)라는 책을 읽고 난 어느 날 아이가 저한테 “이 책에 이모 나왔다”라고 말하더라고요. 그렇게 아이도 자기 나름대로 저를 이해해갔던 거 같아요.
아이가 보여준 어느 날의 일기.
쇼어는 “지금까지의 연애와는 차원이 다른 세계지만, 그래도 좋다”라고 미소를 띠며 말했다. 애인을 많이 사랑했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그의 가족에 흡수된 것 같다고. 양쪽 집안에서는 둘 사이를 알지 못하는데, 그럼에도 쇼어의 부모님은 아이에게 용돈도 주시고 아이를 예뻐하신다. 쇼어는 자신이 조금 다른 가족형태를 이루었을지언정 ‘개척자’는 아니라고 했지만, 부모님이 아이를 손녀처럼 예뻐해주신다는 얘기에 괜히 내 마음이 흐뭇해졌다.
나루 그러면 아이는 두 분 사이를 정확히 어떻게 알고 있어요?
쇼어 지금 다 알아요. 그동안 아이가 저를 같이 사는 이모로 생각하는 것에 섭섭함이 없었다면 거짓말이지만, 받아들일 수 있었어요. 그런데 애인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니까 아이한테 말을 해줘야겠다 싶더라고요. 제 애인은 자녀 때문에 전전긍긍하는 엄마는 아니에요. 그보다는 아이한테 많은 사랑을 주고 아이의 정서를 풍요롭게 가꿔주는 엄마죠. 그런데 저와의 관계에 있어서는 자기 이기심 때문에 아이를 힘들게 하는 건 아닐지 많이 걱정했고, ‘나쁜 엄마’가 된 것 같다고 자책하더라고요.
나루 그래서 아이에게 혼란을 주기보다 솔직히 이야기하기로 한 거군요.
쇼어 네. 어느 날 아이와 차를 타고 가면서 이야기했어요. 그날따라 아이가 저더러 꼭 자기 옆자리에 앉으래요. 옆에 앉아 가면서 “이모는 여자고 엄마도 여자잖아. 엄마랑 이모랑 무슨 사이 같아?”라고 물었죠. 그리고 “친구이면서 아빠 엄마처럼 만나는 사이야”라고 이야기해줬어요. “같이 살면서 사랑하는 사이”라고요. 아이가 그런 개념을 이미 배웠고 알고 있는데도 제 말에 생각보다 충격이 오래 갔어요. 올해 초까지도 우리 가족은 어떤 가족이냐고 물어보기도 했고, 며칠 전에는 “내가 머리로는 아는데 밖에 나가서는 좀 헷갈려”라고 이야기하더라고요. 혼자 고민했구나 싶어요. 아무리 털털하고 밝은 아이 같아도 애들은 그 나름의 깊이가 다 있잖아요.
그러고 보니 일전에 들었던 일화가 생각났다. 밖에서 아이가 “엄마랑 이모랑은 사랑하는 사이야!”라고 크게 외칠 때가 있어서 깜짝깜짝 놀란다고. 그 이야기를 들은 당시에 나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에피소드라 생각했지만, 그간 얼마나 힘든 일이 많았을까.
쇼어 애가 기분이 엄청 좋을 때 그래요. 한번은 고속도로 휴게소 편의점에서 큰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더라고요. “우리는 가족, 이모랑 엄마는 사랑하는 사이, 나는 이모를 사랑해” 이런 노래였어요. 기분이 너무 좋으니까 저도 모르게 흥얼흥얼 나왔나 봐요. 그래서 아이한테 “밖에서는 그런 말을 크게 하면 안 돼. 잘못된 건 아닌데 사람들이 이해를 못할 수도 있고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어”라고 얘기해줬죠. 애가 너무 행복해서 외치고 싶은 건데, 조심하라고 말해야 해서 너무 미안했죠.
앞서 그가 언급한 ‘가족 외부의 부정적인 영향력’을 확인하는 순간이 바로 이런 때일 테다. 이제 아이는 할머니(애인의 어머니)가 쇼어에 대해 물어볼 때면 ‘엄마랑 좋은 친구사이’라는 식으로 능청스레 연기도 할 줄 안다. 그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아이가 기특하고 대견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애틋한 마음이 든다. 행복에 들떠 “이모랑 엄마랑 나는 사랑하는 사이”라고 노래해도 아무 걱정도 제약도 없는 세상이 오면 얼마나 좋을까.
아이와 함께하는 일상.
쇼어 저희는 여러 집이 아이를 맡기고 돌보는 공동육아도 하고 있는데, 다들 너무 좋은 분이고 진보적이에요. 그런데도 우리 애가 한 여자애를 좋아하고 손도 잡고 하니까 그 애 부모님이 좀 불편했던가 봐요. 우리 애는 짝사랑하는 남자친구가 따로 있는데도 말이에요. 이성애 부부 밑에서 자라는 아이였다면 그런 오해가 생겼을까요.
그런 일들을 거쳐 쇼어가 애인에게 제안하기를, 애인이 살아온 동네에서 애인의 지인이나 이웃을 자주 마주칠 만한 장소에는 함께 다니지 않기로 했다. 애인은 그럴 필요까지 없다는 입장이지만 쇼어는 그러한 절충이, 특히나 아이가 커갈수록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손을 잡고 산책을 하거나 다정한 눈빛을 나누며 장을 보는 일상의 소소한 기쁨마저 때론 이렇게나 조심스럽다.
가족의 따뜻하고 평범한 일상, 아이의 성장은 그 자체로 축복받고 지지받아 마땅한 일이다. 그러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법과 제도는 무엇일까. 당연히 동성혼 법제화가 우선 언급되리라 생각했지만 그는 뜻밖에도 ‘차별금지법’을 꼽았다.
쇼어 물론 다양한 가족 구성을 인정하는 법이 필요하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어요. 아이는 대부분의 애들과 다른 가정환경에서 자라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만으로도 혼란을 겪곤 하니까요. 집에서는 자연스러운데 밖에 나가서는 어색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고 말하는 것도 그래서겠죠. 다만 동성혼을 보장해주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것 같아요. 아이가 앞으로 중학교, 고등학교에 가면 또 어떤 경험을 하게 될지 걱정도 되는데요. 사회적인 인식 변화가 폭넓게 뒷받침되어야 하고, 그러려면 차별금지법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동성커플 가족만 아니라 차별과 혐오를 겪는 다른 가족들도 많은데, 그런 소수자 가정의 아이들을 포괄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변화가 생기면 좋겠어요.
쇼어의 애인은 결혼제도에 반기를 드는 삶을 살아왔다. 전남편과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아이를 본인 호적에 올렸다. 쇼어 역시 결혼제도보다 소수자를 향한 차별과 폭력을 금하고 다양성을 포용할 수 있는 차별금지법이 긴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문득 현실적이고 중요한 문제도 한 가지 떠올랐다.
나루 아이가 있는 동성커플 가족, 혹은 노부모를 부양하는 동성커플 가족에서 커플 중 한쪽이 변고를 겪으면 남은 가족들은 어떻게 가족으로서 보호될 수 있을까요. 감히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지만, 만약에 애인분께 무언가 나쁜 일이 생긴다면 남겨진 쇼어님과 아이가 가족으로 함께 계속 살아갈 수 있을까요. 그런 면에서는 동성혼 법제화가 강력한 보호수단이 되어주기는 할 것 같아요.
쇼어 그 말을 듣고 보니, 동성커플이 헤어지면서 양육권 다툼이 생기는 상황도 떠올려볼 수 있겠네요. 그런 경우의 수가 축적되어서 더 많이 논의되면 좋겠어요. 생각보다 아이를 기르는 동성커플이 많은 걸로 알고 있어요. 우리에게 필요한 게 동성혼 제도인가, 아니면 또다른 제도인가 깊게 논의할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아직까지는 차별금지법이 제게는 더 중요하게 생각되고요.
쇼어는 새로운 법과 제도가 불러올 구체적인 미래를 그리기 위해 더욱 여러 가지 사례들이 이야기되기를 바랐다. 상담소의 인터뷰에 참여해 준 것도 그런 올곧은 마음, 미래를 향한 에너지 덕분이지 않을까. 그리고 쇼어의 긍정적인 에너지를 만드는 원천 중에 사랑하는 애인만큼 커가는 아이도 이제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다.
쇼어 아이와의 관계가 늘 좋은 것 같지만 그렇지는 않아요. 애인은 아이를 자유롭게 키우려는 사람이라 제가 엄해져야 할 때도 있거든요. 제가 화를 내거나 아이가 삐칠 때도 있어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럴 때 아이가 먼저 다가와요. “이모랑 나는 가족이잖아. 가족끼리 이렇게 지낼 수는 없지” 하면서요. 제가 이 공고한 생물학적인 가족, 애인과 아이 사이에 들어갈 수 없다고 느낄 때도 가끔은 있었어요. 애인의 가족에 끼어든 건 나이고 내가 적응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하면서 거리를 두기도 했고, 그러다 보니 외부인이나 이방인이라는 느낌이 평생 이어지지 않을까 슬프기도 했고요. 그런데 아이는 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거예요. 그게 너무 놀라워요. 진짜 많이 컸다 뿌듯하기도 하고. 아이 때문에 산다는 게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요.(웃음)
이야기를 들으며 “가족끼리 이렇게 지낼 수는 없지”라며 건네는 손을 나 역시 맞잡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세상엔 얼마나 파괴적이고 괴로운 가족도 많은지. 아이의 그 다정한 언어가 나의 슬픔까지 어루만져주는 것 같다.
아이와 어떻게 놀아주어야 할지 고민이 되었던 초기에 친구 커플이 아이와는 놀아주는 게 아니라 ‘같이 노는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머리를 띵 하고 울린 그 조언 덕분에 쇼어는 아이와 한결 편하게 관계 맺을 수 있었다. 가족도 그런 게 아닐까? 어떤 제도나 형식을 바탕으로 살아주는 것, 가족이 되어주는 것이 아니라 그냥 같이 울고 웃고, 성장하고, 함께한다. 쇼어와 애인과 아이는 그렇게 가족이 되었다. 우리는 그렇게 가족이 된다.
(인터뷰: 2024년 6월 25일)
덧말) 마침 이 인터뷰를 정리하는 7월 18일, 동성 배우자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는 대법원 판례가 나왔다. 동성부부의 사회보장제도상 권리를 보호하는 첫 단추가 꿰어진 것이다. 그렇게 우리의 ‘가족’은 조금씩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