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평등07 상선영감, 지밀상궁] “감귤 마마님을 모십니다!” 상선영감님과 지밀상궁님의 행복한 생활

[혼인평등07 상선영감x지밀상궁_요다] 
“감귤 마마님을 모십니다!” 상선영감님과 지밀상궁님의 행복한 생활

들려준 사람: 상선영감, 지밀상궁
정리: 요다

2025년 새해를 맞아 한국레즈비언상담소에서 진행하는 혼인평등 회원 인터뷰의 마지막 주인공, 상선영감님과 지밀상궁님을 만나고 왔습니다. 두 분은 10년 넘게 삶을 함께해 온 파트너로, 서로의 일상 속에서 가족이라는 의미를 만들어가고 있었는데요. 집에 초대받아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찾아갔더니,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공간이 저를 반겨주었습니다. 구석구석 놓여 있던 사진과 추억이 담긴 물건들, 그리고 두 분의 케미 덕분에 금세 마음이 몰랑해졌답니다.

상선영감님과 지밀상궁님은 유쾌하면서도 진중하게, 두 분만의 시선으로 일상 이야기부터 혼인평등과 가족에 대한 생각까지 나눠주셨습니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 서로에게, 그리고 사회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무엇인지 함께 들어보았습니다.

1. 닉네임의 유래와 동거의 시작 “감귤 마마님을 모시겠다는 뜻에서 시작된 이야기”

요다: 두 분의 닉네임이 재미있고 독특해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나요?

지밀상궁: 저희 닉네임은 입양한 강아지 감귤이에서 비롯됐어요. 감귤이를 정말 마마님처럼 모시겠다는 뜻에서 제가 ‘지밀상궁’, 이분이 ‘상선영감’이 되었죠. 또 저희가 사극을 좋아해서 자연스럽게 이런 설정이 자리 잡았어요.

상선영감: 대장금에서 상선영감이 나오잖아요. 상선영감이 웃으면 장금이가 잘되는 모습을 보고 제가 상선영감이니까 여기는 원래 상궁 중에 대빵을 하려고 했는데, 그냥 지밀을 하게 되었어요. 

지밀상궁: 제조 상궁이 원래 대장인데, 아직 제가 퇴사를 못해서 그 정도로 보필을 못하니까…마마님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보필하는 지밀상궁이 되겠다고 했어요.

요다: 대장금 정말 명작이죠. 오랜만에 다시 보고 싶네요. 두분 얼마 전에 이사하셨다고 들었는데, 지난번 신입회원 세미나에서 말씀하셨던 인덕션은 구매하셨나요? 이사한 집은 마음에 드시는지, 자랑 좀 해주세요! 

상선영감: 인덕션은 아니고 3구짜리 하이라이트를 샀어요. 엘리베이터가 생긴 점이 마음에 들고요. 주변에 강아지 산책로를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는 점이 정말 중요하거든요. 

지밀상궁: 맞아요, 주변에 강아지 산책로를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는게 엄청 중요하거든요. 그런 조건이 잘 맞아서 좋은데 아직 가구가 조금 덜 들어오긴 했어요. 상선영감이 소파를 좋아하고, 저도 이제 허리 건강이 안 좋아져서 눕거나 엎드려 쉴 때 단차가 필요할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거실이 넓다는 점이 좋아서 고민을 많이 했어요. 감귤이가 놀 공간을 더 확보해주고 싶기도 했거든요. 

2. 관계의 비결과 추억  “한 평짜리라도 좋으니, 우리끼리만 있으면 돼”

요다: 두 분은 언제부터 동거를 하신 거예요? 동거를 하게 된 이유 같은 게 특별히 있으실까요?

상선영감: 2018년부터 시작했어요. 제가 로스쿨에 다니며 자취를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같이 살게 되었죠. 본가에서 받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안정감을 찾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던 것도 한몫했어요.

지밀상궁: 맞아요. 제 본가에는 상선님이 혼자 사는 게 걱정된다는 핑계를 대며 자연스럽게 함께 살기 시작했어요.. 서로 의지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기니 점점 자연스럽게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났죠. 2015년부터 만나기 시작했는데, 같이 살기 시작한 건 만난 지 한 3년쯤 되었을 때였어요. 처음에는 각자 집에 살면서 저는 미술관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그때 상선이가 도시락을 챙겨준다든지 하면서 연애를 했죠. 그렇게 만남이 이어지다가 상선이가 로스쿨에 들어가면서는 거의 사실혼처럼 붙어 살게 됐어요.

요다: 저는 좀 궁금한 게, 3년을 사귀다가 같이 살아도 신혼 같은 느낌이 있었나요?

지밀상궁: 저는 아무래도 누군가와 함께 같은 공간에서 낮부터 밤까지 계속 같이 있는 게 처음이기도 했고, 본가가 보수적이라 친구네 집에 가는 것조차 허락받아야 했거든요. 대학생 때 과제나 작업을 한다는 핑계로 밤을 새운 적도 있었는데, 그 덕에 상선이네 집에서 자고 오는 건 허락을 받았던 거죠. 그러다 함께 살게 되었는데, 저랑 마음이 맞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과 온전히 하루를 보낼 수 있다는 게 정말 새로웠어요. 전에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랄까요?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상선영감: 연애할 때는 떨어져 살다 보니 우리만의 공간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한 평짜리라도 좋으니 우리끼리만 있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때 제가 자취하던 방이 5평짜리였는데, 슈퍼 싱글 침대에서 같이 자곤 했어요. 둘이 편하게 누울 수 없었지만, 같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 좋았죠.

요다: 맞아요, 그 기분 너무 잘 알죠. 두 분이 이렇게 오래 연애하실 수 있는 비결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지밀상궁: 음, 서로 맞춰줄 수 있는 의지가 중요한 것 같아요. 살다 보면 원하는 게 다를 수밖에 없는데, 제 방식대로만 하라고 했다면 당연히 관계를 유지하기 어려웠겠죠. 저는 주장이 좀 강한 편인데, 상선이가 그런 면에서 저를 많이 받아줬다고 생각해요.

상선영감: 핵심적인 부분은 사람마다 확실히 예민하게 여기는 부분이 있다는 거죠. 저는 몇가지 예민한 부분이 있는데, 그것만 안 건드리면 나머지는 별 상관없이 무난한 편이에요. 여기도 꽤 무난한 편인데… 아닌가?

지밀상궁: (절레절레) 절대 아님.  

상선영감: 아니라고 하시네요. 아무튼, 서로 애초에 잘 맞는 부분이 있는 것도 같아요. 정치 성향도 잘 맞고, 도덕 관념이 맞는 것도 엄청 중요한데 그것도 잘 맞았고요. 그리고 어디까지 더러워질 수 있는지 같은 위생 관념도 잘 맞아요. 이런 게 비결 아닐까 싶네요.

요다: 와… 정말 운이 좋으시네요. 서로 계속 노력하시는 것도 너무 대단하시고요. 그러면 두 분이 함께해 온 취미 같은 것도 혹시 있으실까요?

상선영감: 그게 참, 딱히 취미라고 할 건 없어요. 그냥 먹는 거? 저희 둘 다 맛있는 걸 먹는 걸 좋아하긴 하지만, 막 찾아다니고 그러지는 않거든요.

지밀상궁: 맞아요. 찾아다니지는 않죠. 강아지 키우기? 근데 그것도 시작한 지 2년밖에 안 됐네요. 취미라고 하면 떠오르는 건 일상에서 티타임을 가지거나, 상선이가 커피나 술을 좋아하니까 그런 걸 같이 마시며 시간을 보내는 정도예요. 너무 평범하죠?

요다: 소꿉놀이 같아요. 아이들이 맨날 티타임하고, 요리하고, 설거지하는 그런 놀이 하잖아요.

상선영감: 맞네요, 그게 진짜 취미인 것 같아요. 아니면 지밀이가 하는 운동을 따라다니기도 했어요. 클라이밍을 정말 좋아하고 잘하거든요. 저는 높은 곳을 무서워하는데도 같이 다니고, 등산도 좋아해서 함께 다녔죠.

지밀상궁: 제가 그래서 상선이한테 비싼 등산화를 사줬어요. (웃음)

요다: 우와, 등산화 사줬으면 또 가야죠!

지밀상궁: 등산화랑 등산 스틱까지 세트로 맞춰서 또 가자고 꼬드기고 있어요. 그런데 지금은 날씨가 너무 추워서요. 저희 같은 초보 등산러는 겨울산은 어렵고, 날이 풀리면 가보려고요.

상선영감: 등산은 아마 앞으로도 오래 할 것 같아요.

요다: 한국에 좋은 산이 정말 많아서, 등산이 오래하기 좋은 취미 같아요. 그러면 두 분이 생각했을 때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상선영감: 이건 진짜 웃긴데요, 저희가 동시에 말하기를 했는데, 완전히 똑같은 추억을 얘기했어요. 예전에 유럽 여행을 갔을 때인데, 보통 기차를 타고 여행하잖아요. 저희가 <하울의 움직이는 성> 배경으로 나오는 프랑스의 작은 도시, 콜마르에 가려고 했는데요. 그때 역무원이 표를 보고 “여기서 내려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갈아타야 한다는 건데… 알고 보니 완전 엉뚱한 곳에서 내리게 된 거였죠.

지밀상궁: 지나고 나서야 확신했는데, 그게 인종차별이었던 거예요. 검표를 하고 나서 굳이 돌아와서 다음 역에서 내려야된다고 얘기했거든요. 그래서 내린 역이 마브엥(marbehan)이었어요. 유레일 패스를 쓰면서 두 번이나 인종차별을 겪었는데, 그게 첫 번째였어요. 새벽부터 움직이고 여독이 쌓여서 정신없이 하라는 대로 내렸죠. 거기는 정말 시골 같은 곳이었어요. 원래 목적지로 가려면 룩셈부르크까지 돌아가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결국 목적지에 도착하긴 했지만, 거기가 은근 외진 곳이라 낮에는 관광객도 많고 예쁜데 밤이 되니까 조명 하나 없어서 으스스했어요. 완전한 외지인이 되어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곳에 뚝 떨어진 와중에,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던 순간이라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이 된 것 같아요.

상선영감: 그때 갈아탈 때 역무원의 표정이랑 지밀이의 허망한 표정이 아직도 생생해요. 날씨도 흐려서 온통 회색빛에 축축한 느낌이었는데, 그 상황이랑 너무 잘 맞아떨어졌죠. 그때 찍은 사진이 완전 최고에요!  머리 카락이 정전기로 계속 막 달라붙고 그러니까 털어내려고 촥 했는데 요런 사진이!(웃음)

3. 갈등과 극복 “문제를 해결하려면 이야기하고 넘어가야 한다”

요다: 두 분이 기억에 남는 추억이 같다는 게 정말 로맨틱하네요. 그러면 힘들었던 기억도 비슷한가요? 

상선영감: 저는 사실 크게 힘들었던 난관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도 처음 함께 살기 시작했을 때, 초반에 이유는 기억이 안 나지만 엄청 크게 싸운 적이 있거든요. 저는 화가 나면 바로 풀어야 하는 타입인데, 지밀은 말을 갑자기 아예 안 하고 생각을 정리하면서 분노를 삭이는 타입이에요. 저는 바로 풀지 않으면 점점 더 화가 나는 편이라, 지밀이 말을 안 하기 시작하니까 당황스럽기도 하고, 이렇게 가면 헤어질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때 지밀이 엄청 긴 문서를 출력해 오더라고요. 우리가 다시는 이런 일을 겪지 않으려면 그냥 넘어가면 안 되고, 대화를 해야 한다고 하면서요. 

요다: 되게 건강한 방식으로 화해하신 것 같은데요? 

지밀상궁: 그렇긴 한데, 상선은 제가 말을 안 하고 있는 시간을 힘들어하니까 이제는 저도 바로 말을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저는 화가 나면 일단 제 감정을 추스르고 검열하려는 습관이 있는데, 상선은 그게 불안하니까 계속 저한테 왜 그러냐고, 화났냐고 물어봤던 거죠. 

상선영감: 저는 그때 지밀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이야기하고 넘어가야 한다”고 말해줬던 순간이 정말 고마운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지밀상궁: 저한테는 감귤이를 입양하는 문제가 엄청 큰 장벽이었어요. 싸운 건 아니지만, 저한테는 정말 큰 일이었어요.

4. 감귤 등장! “감귤이를 입양한 건, 정말 잘한 선택이었어요”

지밀상궁: 감귤이를 입양하기 전에 저희가 길고양이 사고를 목격한 적이 있었어요. 그때 빌라 1층 건물에서 출근하려고 나오는데, 고양이가 축 늘어진 상태로 기괴한 모습으로 누워 있었거든요. 누군가에게 공격당한 것처럼 보였어요. 아직 숨이 붙어 있어서 보호 단체에 바로 연락했지만, 일이 있어서 끝까지 지켜보지 못하고 출근할 수밖에 없었죠. 그런데 돌아와 보니 집주인이 건물 관리 차원에서 빨리 없애고 싶었는지, 이미 청소과에 연락해서 치워버렸다고 하더라고요. 그 사건이 저희에게 꽤 오랫동안 영향을 줬어요. 서로 직접적으로 얘기하지는 않았지만, 둘 다 생명에 대해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해 보던 시기였죠. 그러다 어느 날 상선이가 감귤이를 우연히 알게 되고는 완전히 사랑에 빠져버린 거예요. 저는 그때 한창 진로 고민도 하고 있었고, 경제적으로 부담스러운 상황에 야근도 많았던 때라 감귤이를 키울 시간이 없을 것 같아서 무섭고 중압감이 컸어요. 그래서 완곡하게 거절하려고 “내가 갑자기 임신한 기분이다”라고까지 말했을 정도였는데, 상선이가 그걸 잘 이해하지 못했는지 계속 입양을 하고 싶어 하더라고요.

상선영감: 당시에는 제가 너무 설득하려고만 했던 것 같아요. 

지밀상궁: 한두 번 정도 더 얘기한 뒤에야 상선이가 그제서야 좀 심각하게 받아들이더니 저한테 선택권을 주더라고요. 본인은 감귤이와 함께 사는 걸 포기해도 괜찮으니 제가 정하라고요. 

상선영감: 정하라기보다는 허락을 해달라고 했죠. 허락하지 않으면 안 키우겠다고.  

지밀상궁: 그렇죠. 그래서 결국 제가 선택을 해야하는 상황이었는데 만약 여기서 거절하면 상선이 왠지 떠날거 같아서 무섭고 그랬어요. 

상선영감: 그러진 않았을 텐데.  

지밀상궁: 아니, 그냥 그때 내가 느꼈던 감정이 그랬던 거야. 상선이가 감귤이를 너무 원했어서 내가 위기감을 느꼈던 것 같아. 관계에 대한 위기감을 느끼면서 서운했던 기억이 있어요. 결과적으로는 감귤이를 입양한 게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하고, 지금은 상선이한테 고마워하고 있어요. 덕분에 이렇게 감귤이랑 함께 살게 되었네요.  

5. 커뮤니티와 가족 “할 수 있는데 안 하는 것과, 선택지가 없는 건 다르니까요”

요다: 두 분은 관계를 어떻게 정의하고 계시나요?  

상선영감: 혼인신고는 아직 못하지만, 우리의 관계는 이미 혼인관계와 다를 게 없어요. 식만 안 올렸을 뿐이죠.

지밀상궁: 사회적인 개념을 가져다 붙이자면, 사실혼이라는 게 가장 잘 맞는 것 같아요.  

요다: 만약 결혼이 가능했다면 하셨을 것 같나요?  

지밀상궁: 혼인신고는 진작에 했을 것 같아요. 결혼식에 관해서는 조금 다르지만요.  

요다: 식에 관해서는 어떻게 다르신가요?  

상선영감: 저는 결혼식을 하고 싶어 하고, 지밀은 사인만 하면 된다는 느낌이에요. 저는 사람들을 불러 모아서 노는 걸 좋아하거든요. 결혼식은 정말 불러 모으기 좋은 핑계잖아요. 일반 결혼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주례나 예식 같은 격식을 줄이고, 다 같이 즐기는 시간이 많은 식으로 하고 싶어요.  

요다: 그러면 두 분의 관계를 주변에서 다 아시나요? 가족이나 친구분들에게 커밍아웃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상선영감: 둘 다 가족에게는 말을 안 했지만, 저는 10살 때 처음 얘기했어요. 그때 엄마가 “그럴 수 있어”라고 하시더니, 고등학교 때 다시 커밍아웃했을 때는 고무 다라이를 던지면서 “너 레즈가 뭔지 알아?!?”라고 하셨죠.  

요다: 그러면 아직 받아들이지 못하고 계신 건가요?  

상선영감: 아니요. 이제는 천천히 받아들이시는 것 같아요. 엄마의 말이나 태도에서 차이가 나요. 예전에는 TV에 남자 연예인이 나오면 “저런 애는 어떠냐”, “결혼해야지” 이런 얘기를 하셨는데, 요즘은 주변에서 결혼하라는 이야기가 나와도 엄마가 동조하지 않고, 표정이 약간 미묘해지면서 아무 말씀 안 하시거든요. 그리고 이 집에도 오셨으니 사실 아실 수밖에 없죠.  

지밀상궁: 맞아요. 갑자기 오신다고 하셔서 제가 20분 만에 무지개 깃발이랑 같이 찍은 사진들을 싹 치우느라 진짜 난리도 아니었어요.  

상선영감: 그렇다고 해도 침대가 하나인데, 이전 집도 와보셨으니 아실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저는 친한 친구들한테는 거의 다 얘기했어요.  

지밀상궁: 저는 가족에게 전혀 얘기하지 않았어요. 그냥 비혼주의자라고 하고 있어요. 요즘도 결혼하라는 말을 하시면서 본인이 좋아하는 연예인을 만나라는 둥, 이상한 말씀을 많이 하시곤 하네요. 그래서 당장은 커밍아웃하지 않겠다고 결론 내렸어요. 주변에도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정도죠. 회사에서는 일부러 많이 숨기지는 않아서, 알 사람은 알고 친하게 지내고 싶은 사람한테만 얘기하고 있어요.  

상선영감: 감귤이랑 같이 살기 시작한 뒤로는 뭔가, 감귤이를 통해 만나게 되는 사람들한테는 숨기지 말자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강아지 친구 보호자분들한테는 다 말했어요.  

지밀상궁: 사실 저는 상선을 만나기 전까지 제 성향을 알고 있으면서도 커뮤니티 활동을 전혀 하지 않았어요. 완전 벽장 속에 있었죠. 그런데 요즘은 그런 단계에서 벗어나서, 최대한 많이 알리고 살아야 저도 편하게 생활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래서 새로 만나는 사람들은 괜찮다 싶으면 바로 말해요. 회사에서도 눈여겨보다가 친해지고 싶은 분들을 집에 초대해서, 우리가 이런 관계라고 보여주기도 하고요. 대부분은 “이미 알고 있었어”라는 반응이더라고요.  

상선영감: 맞아요. 다들 각자 언제 알았는지 이야기해 주시더라고요.  

요다: 두 분은 혹시 임신, 출산, 입양 같은 것도 생각해 보신 적이 있나요?  

상선영감: 가끔씩 제가 낳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 때는 있어요. 주변에서 많이들 낳고 있거든요.  

요다: 대세는 아이를 낳아주는 거라서…?  

상선영감: 네, 벌써 주변에 두 커플이나 있어요. 유명한 규지니어스님 말고도요.  

요다: 세상에, 정말 많네요.  

상선영감: 아이를 낳으면 뭔가 새로운 지평이 열릴까 하는 생각도 들고, 얼마 전에 작은 오빠네 아이가 생겼거든요. 그런데 가족들이 조카를 중심으로 대화합하는 걸 보면서, 나도 아이를 낳으면 가족들에게 조금 더 인정받을까 하는 생각이 스치더라고요. 하지만 그런 이유로 아이를 낳는 건 아닌 것 같아서요.  

지밀상궁: 며칠 전에 조카 돌잔치를 다녀오더니 갑자기 “애를 키울까?” 이러는데, 심장이 덜컥 내려앉더라고요. 이번에는 확실히 거절했어요. (웃음)  

상선영감: 사실 심각하게 고민하는 건 아니에요. 저는 자유롭게 여행 다니면서 살고 싶어요.  

지밀상궁: 저도 완전히 생각을 안 하는 건 아니에요. 감귤이를 입양해서 키우면서 만나게 된 새로운 사람들과 그 세계가 무궁무진하게 넓잖아요. 아이를 키우면 또 그런 새로운 경험을 하겠구나 싶어서 궁금하기는 해요. 그런데 여러 가지 현실적인 이유로 아직은 접어둬야 한다고 생각해요.  

상선영감: 근데 진짜 낳으려면 나이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지밀상궁: 저는 어렸을 때부터 입양에 거부감이 없었어요. 그래서 나중에 원하면 언제든지 입양을 통해 아이를 키우면 되겠다고 생각하니까, 급한 마음이 별로 없어요.  

요다: 그러게요. 약간 다른 얘기지만, 사실 한국에서 동성 커플이 입양을 하려면 또 다른 장벽들이 많긴 하겠죠. 그러면 두 분이 장기간 함께하시면서, 가족으로서 서로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의 필요성을 느끼신 적이 있는지도 궁금해요.  

지밀상궁: 어려운 질문이네요. 저는 상선이가 결혼하고 싶다고 얘기할 때마다 마음이 너무 아파요. 결혼식에 대한 생각은 달라도, 법적으로 부부가 될 수 없는 지금 상황이 안타깝거든요. 개인적으로 결혼 제도가 꼭 필요하냐는 생각과는 별개로, 동성혼 법제화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상선영감: 맞아요. “결혼은 가부장제에 부역하는 제도야. 그걸 꼭 해야 돼?”라는 질문을 꼭 받는데요.  

요다: 그래서 안 하더라도 선택지는 있어야 하죠.  

상선영감: 맞아요. 그게 중요한 거죠. 할 수 있는데 안 하는 것과 애초에 선택지가 없는 건 아예 다른 문제잖아요.  

지밀상궁: 법 만드는 게 복잡하다고 해서 그걸 못 하게 하는 게 말이 되나요? 그럴 거면 아예 다 못 하게 해야죠! 사건사고 뉴스를 접할 때마다, 내가 만약 저 당사자가 됐을 때 상선이랑 감귤이를 남겨두고 먼저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면, 지금까지 뼈 빠지게 벌어온 돈들이 그냥 혈연 가족들에게 가는 거잖아요.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물론 부모님께 부채감이 없진 않지만, 그건 완전히 다른 문제죠. 제가 잔병이 많고, 요즘은 점점 건강이 안 좋아지는 게 느껴져요. 거기에다 최근에 주변 지인들이 암 진단을 받거나 큰 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으니 더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내가 입원을 하거나 수술을 받아야 할 때, 상선이가 보호자인데도 부모님이 와야 한다고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해져요.  

상선영감: 저도 비슷해요. 제가 죽었을 때 장례식장에서 상주는 지밀이가 되어야 하는데, 법적으로 완전히 배제된 상태에서 있어야 한다고 상상하면 화가 나서 미치겠어요.  

요다: 맞아요. 정말 가슴이 찢어지죠. 그리고 유언장을 잘 써놨다고 해도, 그게 지켜진다는 보장도 없으니 더 답답하죠.  

지밀상궁: 그렇죠. 그리고 또 하나가 청약이에요. 요즘 다들 청약 통장 붓잖아요. 저도 열심히 붓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혼자 사는 평수밖에 못 하잖아요. 직장 동료는 여자친구와 혼인신고부터 하고 신혼부부 혜택을 받아 넓은 평수를 신청하고 청약에 당첨 되었더라고요. 당시 그분의 말로는 결혼식을 올릴 생각도 없고, 딱히 살림을 합치고 싶어하지도 않는 상태였어요. 그런 얘기를 들으면 괜히 억울하고 화가 나요.  청약 같은 건 기본이고, 전반적으로 소수자가 숨 쉬듯 당연히 배제되고 도태되도록 만들어진 제도들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어요.  

요다: 정말 어렵죠. 저도 한 10년 전쯤에는 게이 친구와 계약 결혼을 진지하게 상상해본 적이 있어요. 집이 너무 갖고 싶어서요. 그런데 여러모로 그건 아닌 것 같더라고요. 

상선영감: 맞아요. 로스쿨 다니다 보면 정상성 사회에 속한 사람들이 정말 많아서, 제 주변에도 결혼한 친구들이 엄청 많거든요. 다들 결혼하면서 부를 축적하더라고요. 유산을 물려받고, 같이 돈 벌어서 재산을 불리고… 그런 걸 보면서 나는 왜 저걸 못 하나 싶어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껴요.  

지밀상궁: 그래서 하루빨리 동성혼이 법제화되었으면 좋겠어요.  

상선영감: 맞아요. 정말 간절히 응원합니다.  

다같이: 동성혼 법제화, 화이팅!  

6. 요다가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메시지

상선영감님과 지밀상궁님은 동거라는 생활 속에서 서로를 지지하며 함께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감귤 마마님과 함께하는 사랑이 가득한 집에서, 이들은 제도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가족의 모습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작년 5월에 시작해 지금까지 총 7편의 혼인평등 인터뷰를 진행하며, 각기 다른 삶의 이야기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기꺼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시고, 경험과 생각을 나누어주신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여러분의 목소리를 통해 많은 이들이 공감과 용기를 얻었을 것이라 믿습니다.

이 인터뷰를 통해 각자의 삶에서 소중한 것들에 대해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혼인평등 법제화가 이루어져,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안정적인 삶을 꾸릴 수 있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앞으로도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관계와 사랑을 당당히 지킬 수 있도록 함께 목소리를 내며 걸어가고 싶습니다.


(인터뷰: 2025.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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