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레즈비언상담소>의 시작이라는 낭보를 들으면서 옛 이야기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부처님의 본생담을 담은 설화 중의 하나입니다. 어느 날 토끼 한 마리가 상수리나무 아래에 누워 하늘이 무너지면 어떻게 될까 하는 공상에 잠겨 있었습니다. 그때 마침 상수리 열매 하나가 토끼의 머리 위로 톡 떨어졌고, 토끼는 그것이 하늘이 정말 무너지는 징조라고 생각하고 겁에 질려 마구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토끼의 모습에 다른 동물들도 놀라 덩달아 겁에 질려 함께 도망치기 시작해 숲속엔 일대 소란이 벌어지게 됩니다. 하지만, 침착한 어느 사자 한마리가 하늘이 무너진다는 건 이상한 일이다라고 생각하고 소문의 진원지를 캐가기 시작했고 마침내 그 토끼와 함께 다시 상수리나무를 찾아가 그것이 ‘기우’였음을 밝혀낸다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단지 저 설화 속의 토끼가 어리석어서 나무 열매 하나에 놀란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대신 떨어진 열매 하나가 떨어진 하늘 조각으로 느껴지도록 하는 삶의 여건들을 떠올려 봅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많은 편견과 무지, 견고한 터부와 금기들로 우리의 자유로운 삶을 짓눌러 작은 일 하나에도 겁에 질려 아무 것도 하지 못하게 만드니까요. 이런 현실에서 <한국레즈비언상담소>가 침착하고 지혜로운 사자 (설화엔 성별이 안 밝혀져 있지만 우린 갈기는 없지만 생활력이 뛰어난 암사자로 그려보죠)처럼 작고 힘없는 이들의 걱정을 들어주고, 그 짐을 덜어주고, 용기를 심어주어 세상을 당당히 바라볼 수 있도록 돕는 곳이 되길 바라며,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역시 기대와 희망을 걸어봅니다. <한국레즈비언상담소>의 개소를 축하드립니다.
한채윤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