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6월 6일 오후 6시, <2020 사포의 서재> 첫 번째 영상의 밤이 열렸습니다. 이성애 중심적인 문화 컨텐츠 사이에서 여성 성소수자의 이야기를 다룬 영상물을 찾아 당사자 회원들과 함께 공유하고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입니다. 첫 번째 상영작으로 <식물학자의 딸>과 <오드리 로드, 베를린 시절-1984에서 1992년까지>를 감상하며 영상 속 우리 존재를 발견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본 프로젝트의 스태프로 활동하시고, 첫 번째 영상의 밤에도 참여해 자리를 빛내주신 버블검님의 참여 후기를 전해드립니다.
마스크를 쓴 올해 여름은 조금 더 덥게 느껴집니다. 6월 6일, 상담소로 향했습니다. 도착해서 잠시 앉아있으니 금세 활동가분들이 모입니다. 강아지 윙크도 함께 합니다. 영상의 밤 준비를 위해 차를 타고 가는 동안 나누는 대화에 기분이 좋아집니다. 바깥의 날씨는 여전히 덥지만 기분 좋은 설렘은 더위도 온기로 느껴지게 하나 봅니다. 어느덧 시원한 저녁이 되고 영상의 밤이 시작됩니다. 첫 번째 영상의 밤의 상영작은 ‘식물학자의 딸’과 ‘오드리 로드, 베를린 시절-1984에서 1992년까지’였습니다. 식물학자의 딸은 문화혁명 이후의 이야기로 식물학자의 딸 ‘안’과 식물학자의 수습생으로 들어온 ‘민’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안의 아버지와 오빠는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인 인물로 영화를 보는 내내 속이 상하고 분통이 터집니다. 안과 민의 사랑은 죄가 되어 사형판결을 받아 총살을 당하며 끝이 납니다. 성 소수자로서 그 당시에 태어나지 않았음을 다행으로 생각하게 할 정도로 충격적인 결말입니다. 식물학자의 딸을 보고 몇 주가 지났습니다. 또 한 권의 여성 성 소수자의 에세이가 출간되고 차별금지법이 발의된 지금의 한국을 보며 안도의 숨을 쉽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의 하루가 어제보다 조금 더 다행스럽고 따뜻했으면 좋겠습니다. 다음 상영작은 오드리 로드입니다. 70여 분은 오드리 로드의 매력에 빠지기 충분했습니다. 그는 페미니스트 활동가로 영상 속 그의 일상은 여유롭고 힘이 넘칩니다. 다정하고 자유로운 그의 모습에 주변 사람들도 즐거워 보입니다. 그는 사람을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저도 주변을 한 번 돌아봅니다. 같은 마음으로 모여주신 여러분이 든든합니다. 마침 영화에 춤을 추는 장면이 나옵니다. 여기 계신 분들과 손을 잡고 춤을 추고 싶어집니다. 좋은 영화에 마음이 들뜨는가 봅니다. 상영이 끝난 후 감상을 나누며 영상의 밤이 깊어갑니다. 늦은 밤까지 두 편의 영화를 보느라 몸이 뻐근하지만, 마음은 말랑한 하루입니다. 다음 영상의 밤은 ‘프란시스 하’입니다. 흑백의 뉴욕을 배경으로 27살 프란시스의 사랑과 우정에 대한 고민이 담긴 영화입니다. 여럿이 모이기 어려울 때이지만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영상의 밤에 와 주시길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