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트랜스젠더이며 호적정정을 원합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요?
한국의 법제도 상 트랜스젠더 호적정정이 성문화되어 있는 바 없었지만, 그간 호적정정이 된 판례들이 존재해 왔습니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2006년 6월, 최초로 대법원에서 트랜스젠더 호적 정정을 허가하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호적상 성별을 변경할 수 있고 개명도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대법원은 또한 성별 변경을 허용하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는데요. 지금까지 하급 심에서 판사에 따라 어떤 경우는 허가하고 어떤 경우는 기각하는 등 차이가 많았기 때문에 통일된 기준을 마련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대법원의 판결은 성확정수술을 거쳐 호적정정을 원하는 트랜스젠더에게 고무적인 일이라고 볼 수 있죠.
그러나 대법원의 ‘가이드라인’은 트랜스젠더가 성확정수술을 거쳐 성기성형까지 한 경우에만 호적 정정을 허가한다고 제한하고 있기 때문에, 큰 한계가 있습니다. 트랜스젠더 모임을 비롯해 인권단체들과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등으로 구성된 ‘성전환자 성별변경 관련법 제정을 위한 공동연대’는 수술에 드는 막대한 비용과 위험성을 고려할 때, 가이드라인이 문제가 있다고 비판합니다. 혼인 관계 여부로 성별 변경을 제한한 것도 큰 문제지요.
현재 ‘성전환자 성별변경 관련법 제정을 위한 공동연대’와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은 ‘성전환자의 성별변경 및 개명에 관한 특례법’을 제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요. 지난 2002년 한나라당 김홍신 전 의원이 ‘성전환자 성별변경 등에 관한 특례법’을 대표 발의했지만 폐기된 바 있습니다. 노회찬 의원의 이번 법안은 성별 정정 요건에 있어서 외부성기 성형을 전제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합니다.
그러나 아직 관련 법률이 제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지금까지는 호적 정정을 위해 보통 어떠한 절차를 가져왔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겠지요? 호적 정정을 하려면 충족돼야 할 요건이 상당히 많고 복잡하며, 절차도 결코 간단치 않은데요. 대개의 경우, 다음과 같은 절차를 거쳐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레즈비언상담소는 호적정정에 대해 문의하는 내담자를 위해, 관련 자료들을 찾아보던 중 트랜스젠더 김비씨가 운영하고 있는 김비넷(www.kimbee.net)의 한 게시물을 통해 상세한 내용을 전달 받을 수 있었습니다. 2002년 성별정정 허가가 여러 건 이루어졌을 당시, 김비씨가 부산지방법원 고종주 판사에게 문의해서 받은 문건인데, 이를 참고로 작성한 내용입니다. 2002년 자료라는 점을 감안하시고 보세요.
<호적정정을 하고자 할 경우 필요한 서류와 절차>
1. 구비서류
필요한 구비 서류에는 호적등본(분가시에는 제적등본 추가), 주민등록등본, 초중고교의 생활기록부, 병적확인서, 의사작성의 진단서와 성전환수술확인서, 성호르몬 검사서, 염색체 검사서, 성 역할등에 관한 소명자료, 성전환수술 및 성별정정에 따른 본인의 진술서, 가족들의 의견서 등이 있습니다.
2. 절차
신청서를 작성하고 위 서류를 첨부하여 본적지 관할법원에 직접 신청 또는 우편 발송하면 된다고 합니다.
3. 비용
인지대 1000원, 송달료 7500원입니다.
4. 가까운 법원(지원 포함)의 호적담당자를 찾아가서 도움을 받으면 좋을 것이라고 합니다.
* 참고자료: 성전환수술 이후 성별정정 신청 시 제출서류
1. 호적등본 또는 제적등본
2. 주민등록표 등본
3. 초,중,고교의 생활기록부 등본
4. 병적확인서(MTF의 경우)
5. 의사 작성의 진단서 등
① 성염색체 및 성호르몬 검사서(내과 또는 내분비계 의료인 작성)
② 최소한 2년 이상 심각한 성정체성장애로 고통받은 성전환증 환자임을 증명하는 진단서 (2인 이상의 정신과 의사 작성)
③ 성전환수술 확인서(시술을 한 성형외과 또는 비뇨기과 의사 작성의 소견서)
④ 상당기간 정신요법 치료 또는 호르몬 요법의 치료를 받았다는 확인서 (정신과, 내과, 비뇨기과 또는 산부인과 의사 등 작성)
⑤ 생식능력이 없고, 장래 성인식의 재전환의 가능성이 현저하게 낮다는 점에 관한 소명자료(수술한 의사 등 작성)
6. 성 역할 등에 관한 소명자료
① 반대의 성에 상응하는 사회적 역할 또는 행동이 있었다는 점에 관한 자료
② 성전환증으로 일정한 기간을 경과하였음을 인정할 수 있는 자료
7. 성전환수술 및 성별정정에 관한 본인 진술서(다음 사정의 기재와 이에 관한 소명자료 첨부)
① 출생 이후 성전환수술에 이르기까지 신청인의 성 의식의 변천과정
② 가족관계와 성장기의 사정
③ 학업 및 취업 과정과 이와 관련한 여러 가지 사정
④ 성전환수술을 받게 된 동기
⑤ 앞으로 지향하는 성 역할 및 삶의 목표
8. 성별정정에 관한 부모 형제 등 가족들의 의견서
9. 개명을 원할 경우 종전 이름이 부적합하고 새 이름이 필요한 사정과 이유
상당히 어렵고 복잡하지요? 그러나 2006년 현재는 대법원이 ‘성전환자의 성별 정정 허가신청사건 사무처리 지침’을 마련했기 때문에, 이전보다는 준비과정이나 챙겨야 할 문서들이 간소해졌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대법원이 밝힌 가이드라인은 아래와 같습니다.
만 20세 이상 대한민국 국적자로서 미혼에 무자녀일 것, “성전환증”으로 오랜 시간 고통 받아온 사람으로서 반대 성별에 귀속감을 느껴왔을 것, 상당 기간 정신과 치료 또는 호르몬요법에 의한 치료를 받고 “성전환 수술”을 통해 신체 외부 모습이 반대의 성으로 바뀌었을 것, 생식능력을 상실했고 이전의 성별로 다시 전환할 가능성이 거의 없을 것, 탈법행위에 이용할 의도가 없을 것,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 한 경우 병역의무를 다했거나 면제 받았을 것, 신분관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거나 사회에 부정적 영향을 주지 않을 것 등입니다.
성별 변경과 호적 정정은 나 자신의 정체성을 제도적으로 증명함으로써 확고하게 하며, 원하는 성별의 사람으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합니다. 그만큼 신중하게 결정해야 할 문제이기도 하지요. 내가 왜 성별 변경을 원하는지, 스스로 얼마나 준비가 되었는지, 그리고 호적 정정 이후 삶을 어떻게 살아가고자 하는지, 부딪치게 될 어려움들은 어떻게 헤쳐나갈지 충분히 심사숙고하기 바래요.
또한 그러한 고민을 먼저 시작한 사람들과 많은 정보를 교류하기 바랍니다. 성별 변경과 호적 정정에 관해서는 상담소보다 트랜스젠더 당사자 모임이 더 다양하고 풍부한 정보를 가지고 있을 거예요. 현재 성문화된 법을 통해 트랜스젠더의 성별 변경 및 호적 정정의 권리를 인정 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성전환자 성별변경 관련법 제정을 위한 공동연대’에는 한국레즈비언상담소도 함께하고 있는데요. 공동연대의 연대단체 중 하나인 성전환자인권연대(준) ‘지렁이’는 트랜스젠더 당사자들의 모임입니다.
현재 ‘지렁이’는 홈페이지를 제작하고 있는 중이며, ‘성전환자 성별변경 관련법 제정을 위한 공동연대’ 인터넷 까페(http://cafe.daum.net/kdlpsmc) 안에서 논의를 함께 진행시켜 나가고 있습니다. 함께 하고 싶으신 분들이나 정보를 원하는 분들은 문을 두드려 보시길 권합니다. 트랜스젠더 김비씨의 홈페이지(http://www.kimbee.net)에 방문하여 메일이나 게시물을 통해 문의를 하셔도 도움 받으실 수 있을 거예요.
호적정정을 비롯해, 앞으로 트랜스젠더의 인권을 보장하려는 사회적 조치들이 하나씩 마련되어 나갈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그것은 법과 제도적인 방안들이 모색되고 생성되는 것과 더불어, 우리 사회에서 트랜스젠더를 비정상적인 존재로 취급하고 차별하는 분위기와 왜곡된 인식이 함께 개선되어야 하는 일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