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혹은 섹스를 해보지 않고 성정체성을 알 수 있나요?
동성과의 연애나 섹스를 경험해본 적이 없어도 자신이 동성애자나 양성애자인지 확신할 수 있을까요? 물론 그렇습니다. 성정체성을 결정하는 데에 보편적인 판단의 기준이 되는 고정된 경험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연애나 섹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성애자의 경우 특정한 이성의 상대와 직접 연애나 섹스를 해 본 적 없다 해도 자신이 이성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압니다. 동성애자도 그렇습니다. 반드시 동성과 실제로 연애나 섹스를 경험한 다음에만 비로소 자신이 동성의 상대방에게 끌림을 느끼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짝사랑을 통해서 자신의 성정체성을 알게 되기도 하고, 동성의 연예인을 좋아하는 것을 통해 동성을 향한 끌림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특정인을 좋아해 본 적이 없다 해도 자신이 동성이나 이성에게 두루 끌리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하면서 성정체성을 탐색해 나가는 경우 또한 있습니다. 다양한 이끌림의 경험들을 본인의 성정체성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여겨 스스로 자기한테 어울리는 성정체성을 고른다면 이것으로 충분합니다.
한편, 이성과 연애 혹은 섹스를 해보지 않았는데 어떻게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것을 알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은 동성애에 대한 대표적인 편견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성애자에게 “동성과 연애나 섹스를 해보지 않고도 자신이 이성애자라고 알 수 있나요?”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처럼,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깨닫기 위해 이성과의 관계 경험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내가 무엇인가를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기 위해 꼭 그 경험을 해보아야 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런데도 자꾸 이러한 질문을 던지게 된다면 ‘불완전한 동성 간의 관계에 비해 이성과의 관계를 경험했을 때 이에 더욱 만족감을 느끼고 동성애를 그만두지는 않을까’ 하는 편견을 갖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해보세요. 누군가가 자신을 동성애자로 이름 붙인다면 이는 이 사람으로서는 동성과의 친밀한 관계가 이성과의 관계보다 만족스럽고 그래서 이성과의 관계를 굳이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의미임을 기억하세요.